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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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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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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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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손동훈의 혈맹

DUMMY

반다르는 그들의 행동에 당황했고 동훈이 나서자 그와 눈빛을 교환했다. 둘 또한 오랜 합을 맞춰온 것처럼 눈빛만으로도 뜻이 통했다.


제끼자.


칼은 좋은 대화수단이지.

좋은 칼 두고 입 아프게 떠드는 건, 더 벨룸에서는 시간 낭비라고 여겨지는 일이었다.


보통 PK범들을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대처법은 죽기 전에 죽이는 거였다. 카오 수치 올라가지 않게 먼저 공격받는 것에 주의하면서.


“이 새낀 뭐라는 거야! 기사여서 자신만만한 거야?”

“무서워서 돌아버렸나 봐. 우리가 기사라고 안 죽여봤을까 봐?”


[템주면안죽임]과 [난걍죽임ㅋㅋ]이 낄낄거리며 동훈을 손가락질했다.

그들이 도적질을 하다 보면 이렇게 겁에 질려 발작하는 이들이 있었다. 동훈은 이례적으로 빠른 편이지만 그 반응 자체는 평범했다.


셋이 의기투합하여 대륙 서부 카에르령에서 도적질을 할 때 허공에서 무기를 꺼내는 기사도 죽여본 이력이 있었다. 그게 문제가 되어 남부 변경까지 흘러들어온 거지만.


“기사도 찌르면 죽는 건 똑같더라! 기사라고 뱃가죽 더 두껍더냐? 두껍긴 하더라마는.”

“쟤는 얼마나 두꺼운지 보자고. 형님, 저 칼은 비싸 보이는데 누구꺼로 할까?”


동훈은 기사를 죽여본 적이 있다는 놈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미 동훈의 것을 자신들 것으로 여기는 도둑놈 심보도 들어넘겼다.

어차피 저들이 죽일 수 있는 기사래 봐야 저레벨의 기사일 게 분명했으니까. 기습에 다굴로 10짜리 기사를 잡았대도 동훈을 어쩌지는 못할 터였다.


세상은 돌아가는 법칙이 있다. 칼을 휘둘러 거죽을 베면 피가 나오는 것이 법칙이요, 급소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는 게 법칙이었다.


하지만 더 벨룸 속 요지경 세상에서는 다른 법칙이 있었다.


힘 스텟, 공격력 스텟이 높으면 강력한 피해를 줬다. 스쳐도 치명상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것처럼.

방어력 스텟, 데미지 리덕션 스텟이 높으면 같은 공격도 덜 치명적이게 받아냈다. 기이한 힘이 상대를 해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일전에 감히 마녀를 겁박하려던 도적을 썰어버릴 때 동훈의 공격이 도적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스텟 법칙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악!”

“막내야!”


게임 모드를 켠 동훈이 휘두르는 영웅 등급 신블레이드에 [난걍죽임ㅋㅋ]의 손가락질하던 팔이 뚝 떨어져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스텟이 동훈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종합적인 스텟 수준을 논할 것도 없이 동훈은 이미 탈튜토리얼급이었다.지연 없이 게임의 루트를 진행만 한다면 더 벨룸의 메인이랄 수 있는 ‘중앙지대’ 진입 후에도 문제없이 군주를 자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동훈을 비웃으며 멍청하게 서 있던 [난걍죽임ㅋㅋ]의 팔을 벼락처럼 썰어버린 동훈은 재차 공격을 이어갔다.


칼이 물처럼 흐르며 다음 상대에게로 치솟으며 쇄도했다.

[난걍죽임ㅋㅋ]의 팔을 강력한 종베기로 내리찍었다면 동훈의 칼이 뱀이 머리를 치켜들 듯 중력을 역행하여 튀어 올랐다.


“헛!”


PK쟁이들과는 대화를 나누는 게 손해였다. 괜히 쟤네 재미만 보게 해주거든.


PK범들은 대개 죽이지 말라는 채팅이나 때리면 미안하다는 채팅을 보고 낄낄거리곤 했다. 그들에게 피해자의 발버둥이란 재미요소에 불과했으니.


동훈의 급습에 [템주면안죽임]이 기함하며 뒤로 물러났다. 팔이 떨어진 [난걍죽임ㅋㅋ]은 상처 부위를 붙잡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막내야! 물러서라! 강한 자다! 너희들은 상대가 안 돼! 내가 상대하마! 적어도 1단계에는 오른 기사 같다!”


죽임 삼형제 중 첫째, [답하면안죽임] lv.7이 동생들을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그의 7레벨이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이는지. 분명히 이 근방에서 칼질하기에는 모자람 없는 레벨이었지만 동훈 앞에 당당하게 서기에는 너무나 모자란 레벨이었다.


“당신은 상대가 되고?”


캉! 채챙! 쓍! 쓍!


[답하면안죽임]이 나름 현란하게 칼을 휘두르며 동훈에게 맞섰다.

살인으로 다져진 실전 길바닥형 검술은 변칙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그의 검술은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를 깎아내는 데에 집중한 기형적인 검술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의 악에 받친 듯한 검술에 기가 질려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싸움은 별 긴장감 없이 흘러갔다. 동훈을 향해 휘두르는 [답하면안죽임]의 공격은 동훈의 AC에 비해 명중이 낮아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마치 힘 앞에 모든 기술은 의미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공방이었다.


정직한 동훈의 검술은 [답하면안죽임]의 몸에 계속 상처를 누적시켰다. 동훈이 [답하면안죽임]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였다.


[답하면안죽임]은 동훈과 칼을 부딪칠 때마다 손이 마비될 것 같은 충격에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답하면안죽임]은 당황에 차 소리쳤다.

동훈과 반다르를 가지고 놀 때 멋있는 척을 하며 가졌던 여유는 모두 사라져버린 뒤였다.


“너, 넌 뭐냐! 이런 변방에, 당신 같은 강자가 있다니.”


[템주면안죽임]은 반다르가 상대하는 중이었다. 사냥꾼, 원거리캐인 반다르는 근접전에서도 꽤나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호신용 짧은 칼을 꺼내 [템주면안죽임]의 공격을 노련하게 막아내며 호시탐탐 공격 기회를 노리는 모습은 무기의 길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등하게 싸웠다.

그것만 봐도 반다르의 피비린내 나는 무술, 걸출한 스텟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끝내자.’


동훈은 [답하면안죽임]의 수준을 알아보는 것을 멈췄다. 캐릭터 실사화에 대한 예의를 다 차려준 셈이었다.

[답하면안죽임]을 필두로 한 죽임 삼형제라는 유명 플레이어에 대한 팬심은 여기까지 하고.


막피에 누워본 적도, 막피를 눕혀본 적도 있는 동훈은 특별히 PK유저들에게 악감정이 없었다. 그들도 나름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찾은 것이고 누군가는 악당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니.

막피라면 듣기만 해도 짜증날 수 있겠지만 동훈은 그런 돌발 이벤트도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발한답시고 욕하고 조롱하면 기분 나쁘긴 하더라. 그것만 아니면 뭐.’


동훈은 [답하면안죽임]의 HP가 까이는 것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HP바가 다 닳는 것을 본 동훈은 마무리지었다.


“꺼어억! 꺽!”


목의 정중앙을 찔린 [답하면안죽임]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동훈은 칼끝에서 점점 스러져가는 그의 생기를 느꼈다. 근육이, 피부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다 차츰 사라져갔다.


동훈은 첫 살인 이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다. 요 며칠 벨룸인들과 함께 지내서 그런가? 그들의 무덤덤함과 단호한 손속이 동훈 마음 깊이 스며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LEVEL UP!


5레벨 달성. 레벨이 올랐다.


더 벨룸에서 5레벨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5레벨을 찍는다는 건 완전 쌩뉴비를 벗어났다는 뜻이고 어엿한 벨룸인이 되었다는 말과 비슷했다.

일종의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군생활의 시작은 일병부터 아니겠나.


==

클래스를 선택해 주세요.

군주 / 엘프 / 다크엘프 / 인간기사

==


‘이건 뭐야? 클래스 선택창? 아! 이걸 5레벨 때 한다고?’


더 벨룸은 종족과 클래스를 게임 시작과 동시에 정했다. 애초에 캐릭터를 만들 때 정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에서 클래스 선택창은 존재하지 않았다.


동훈은 망설일 것 없이 군주 클래스를 골랐다.


군주!


가장 명예로운 클래스이자 선망의 클래스였다. 왕이 되려는 자들은 반드시 군주라는 클래스를 골랐으며 더 벨룸에서 강하다고 손꼽히는 플레이어들의 클래스는 대부분 군주 클래스였다.


군주라는 클래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더 벨룸의 꽃.


‘꽃은 꽃인데 아주 매운 꽃이지. 돈 무지하게 잡아먹는 매운 꽃. 어지간한 사람한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꽃이야. 굳이 추천하라면 취미에 몇억씩 쓸 수 있는 겜돌이 자산가?’


기사나 엘프, 다크엘프 클래스는 특징에 맞게 힘 스텟 1.2배 보정 혹은 민첩 스텟 1.2배 보정같이 스텟 보정이 있는 반면 군주 클래스는 아무런 스텟 보정이 없는 바닐라 클래스였다.

다른 클래스들은 스텟을 찍을 때마다 특화 스텟을 찍으면 보너스가 존재하는데 군주 클래스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클래스들이 레벨업과 스텟 분배로 득을 볼 때 군주 클래스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이 손해를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보면 군주 클래스는 득은 하나도 없고 손해만 잔뜩 있는 클래스였다.


하지만 돈을 무지막지하게 쓰는 핵고래 유저들은 단연 군주 클래스를 더 벨룸의 꽃으로 보며 반드시 하나 이상은 키웠다.

스텟 보정이 없기에 다른 클래스의 캐릭터와 비등하게 싸우려면 돈을 무진장 처발라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군주 클래스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바로 군주 클래스가 가진 특성. 바로 혈맹 창설 때문이었다.


군주만이 더 벨룸에서 왕을 노리는 유일한 단체인 혈맹을 창설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있을 공성전 컨텐츠에서도, 각종 혈전 컨텐츠에서도 군주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군주가 없으면 더 벨룸 컨텐츠 대부분은 소용이 없었다.


동훈이 군주 클래스를 선택하자 동훈의 눈에는 혈맹창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들어왔다.


상점창과 상태창, 여타의 인터페이스와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진 혈맹창에는 혈맹의 이름이 좌측 상단에 자리했다.

밑에는 아직은 0인 혈맹 공헌도가 표시되며 그 아래 군주와 휘하 간부가 적을 수 있는 공지사항칸이 크게 자리했다.


그 옆에 이제 혈맹원에 대한 정보가 적히는 칸이 있었다.


‘혈맹창. 군주만 볼 수 있는 몇 가지 설정이나 버튼이 있네. 옛날에 군주 형님 캐릭 대리 조금 돌릴 때 봤던 창이지. 그땐 건드리지도 못한 설정들. 추억이네.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혈맹창에는 모든 것이 텅텅 비어 있었다.


유일하게 채워져 있는 혈맹원 표시창의 가장 윗줄.


‘손동훈(디올) - 군주’


동훈은 군주란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니 뭔가 쑥스럽기도 하면서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책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겠지. 클래스를 선택하니 내가 옳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클래스 선택을 마치자 동훈은 자신의 근원에서 꽉 채워지는 충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동훈 내면의 충족되지 않고 있던 욕구가 해소되면서 느껴지는 충만한 해방감일지도 몰랐다.


혈맹 이름은, 이것도 원래 창설하면서 정해야 하는 건데 동훈은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도 혈맹이 창설됐다. 공란으로 남겨진 혈맹창은 어딘지 어색했다.


혈맹 이름이라. 지금 정하면 되지.


‘혈맹 이름을 뭐로 하지? 전에 내가 몸담았던 청풍명월? 옛날에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혈맹인 겐나이츠? 아니야. 내가 창설한 내 혈맹이니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지.’


고심한 끝에 동훈은 이름을 정했다.


온전히 자신 안에서 온 혈맹의 이름을 꺼내기로 했다.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나, 더 벨룸이라는 애정하고 증오하는 판타지 세계에서 오는 익숙함과 낯섦의 공존, 두 세계를 넘나들며 얻게 된 상식 밖의 능력, 치열한 전투와 생과 사를 넘나드는 날것의 폭력.

마지막으로 군주로서 우뚝 설 결심까지.


동훈은 이 모든 것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혈맹의 이름란에 우아하게 적히는 이름.


‘로드 오브 벨룸(Lord of Bellum)’


이게 LOB, 전쟁군주 혈맹의 시작이었다.


혈맹의 이름까지 정한 동훈은 클래스 선택창의 뒤를 이어 떠올랐던 새로운 창 또한 열었다.


화려한 금장으로 마감된 멋스러운 알림창은 새로운 스펙업 시스템의 해금을 알렸다. 동훈은 설렘과 기대를 담고 알림창을 읽었다.


==

‘왕의 축복’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클래스 선택 이후 기묘한 충족감에 휩싸여있던 동훈은 새로운 창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말았다.


“젠장. 빌어먹을 똥의 축복 같으니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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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퇴사각(2) 22.10.13 551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7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4 12 20쪽
»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16 메인퀘스트 22.09.30 887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14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삼가세요 +1 22.09.28 919 15 13쪽
13 게임과 현실 22.09.27 934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1 17 18쪽
11 LEVEL UP! 22.09.26 1,101 18 16쪽
10 또다른 플레이어? +1 22.09.25 1,171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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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녀 구하기 +2 22.09.23 1,275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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