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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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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53
추천수 :
1,137
글자수 :
928,341

작성
22.09.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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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퀘스트, 할 수 있으니까

DUMMY

자본치료!


하루 일당이 일 안 하고 60이라니. 이게 돈 복사 아니고 뭐란 말인가?


더불어 그의 스킬, ‘통찰’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분명하게 점지하지 않았나. 3개나 되는 상승의 화살표로!


‘돈이 복사가 된다고? 돈이 복사가 되는데, 군주 그 까짓거 못 할 이유가 있나?’


안 할 이유가 있나. 총알 걱정은 없다. 동훈은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승용 내과에서 입은 내상도 사르르 치유되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있어 고개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기분 좋게 하겠는가.


“일을 해야 사회의 역군이지. 내가 젊을 때는 말이야, 새만금이다, 뭐다 다 발로 뛰었어. 다 이 두 다리로 뛰었다는 말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몸 쓰는 일을 싫어하더라고. 그게 진짜 일인데.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게 다 귀한 경험이에요. 내가 스무살적에 말이야....”


택시 기사의 훈계 또한 얼렁뚱땅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라떼로 돌아가는 택시 기사의 설교는 무한한 장광설로 이어졌다. 자기 말에 취한 기사는 동훈을 흘끗흘끗 보며 설교를 이어갔다.


물론 동훈은 관심 없었지만.


그렇게 불어난 잔고를 보며 동훈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띠링!


은행앱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를 본 동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돈이 들어왔다는 알람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알람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이제야 들어오면 안 되는 돈이었으니까.


이 알람은 바로 밀리고 밀리던 저번 달 월급이 입금됐다는 소리였다.


Q메디 1,950,000원


‘예, 아저씨. 열심히 땀 흘려 일하니 돈을 한 달 밀려서 주네요. 주식은 따박따박 수익이 나는데요.’


이전이었다면 동훈도 택시 기사의 말에 일부분 동의했을 것이다. 돈은 땀 흘려 버는 것뿐이라는 주장에.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남의 돈 먹기는 언제나 어려웠지만 그걸 쉽게 해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그걸 재능이라고 불렀다.


이제 와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려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돈 버는 재능이 있다면 동훈에게는 스킬 ‘통찰’이 있었다.


꼬박꼬박 일해서 버는 돈보다 순식간에 돈을 불릴 수 있는 초월적인 수단이.


졸졸 흐르는 돈의 시냇물을 콸콸 흐르게 할 폭탄 같은 능력이.


‘이 폭탄도 일정량의 돈이라는 마중물이 필요하단 말이지. 정말 돈이 돈을 번다니까? 일단은 이 월급도 내게는 반갑다.’


씁쓸하지만 총알이 2배가 됐다. 2배로 돈 벌 시간이다.


***


잠들고 꿈속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할 수 인간은 없다고 한다.


동훈 또한 분명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운 것까지는 기억했지만 그 이후 상쾌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쾌활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동훈은 더 벨룸의 세상에 언제 들어올 수 있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지난번의 진행 상황이 그대로 저장되어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는 마치 책의 읽던 부분을 잠시 덮어놨다가 다시 와서 펼친 것과 같았다.


정말이지 그때 작별했던 더 벨룸 속 공기, 냄새, 온도 등이 단 1초도 변하지 않았다.


저 앞을 걸어가는 사냥꾼 반다르와 그의 사냥개까지 그대로.


샤아아아!


달라진 것은 동훈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시스템이었다.


===

출석체크!

1일차 - 1만 크로네.

===


더 벨룸의 게임 시스템은 동훈이 접속하면 접속할수록 깨어나는 것처럼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줬다.

저번 접속에는 없었던 출석 시스템이 그중 하나였다.


이번 출석 시스템에서 받은 1만 크로네는 동훈의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원래 출석 보상은 일주일에 한 번씩 큰 거 주고 평일에는 그거 주던 거 아니었나. 만 크로네를 주네?’


현실 서버와 게임 서버의 자잘한 차이는 눈 감아 주도록 하고.


동훈은 잠시 멈춰 서서 맑은 공기를 만끽했다. 현실 세상의 매연 가득한 공기와는 차원이 다른 맑음.


흐으읍, 후우.


현실과 다른 더 벨룸 세상이 가진 이질감에 동훈이 잠시 그것에 취해있는 사이 반다르는 동훈을 보곤 한마디 했다.


“자네 걸음으로 걸으면 다크엘프 촌락까지 사흘은 걸리겠군. 이번엔 길가의 들꽃 모양이 궁금하던가?”


남부 변경의 마른 바람이 동훈의 머리를 헝클었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다.


햇볕은 축제처럼 따사롭게 내리쬐고 맑게 갠 하늘은 바다같이 새파랬다. 바람이 쓸고 가는 벌판의 연둣빛 풀들이 발목어림에서 춤을 춘다.


앞서가는 반다르를 쫓아가기 위해 동훈은 빠른 걸음을 옮겨야 했다.


“아, 갑니다.”


컹! 컹!


반다르의 사냥개가 동훈을 타박하듯 컹컹 짖어댔다. 왜 이렇게 걸음이 늦냐고, 늦게 오는 동훈을 타이르는 모양새였다.


반다르의 사냥개는 정말 친화력이 좋아서 낯선 동훈에게도 꼬리 흔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배도 까겠어.


“허허, 이놈아.”


반다르가 개를 진정시켰다. 짖어대는 사냥개의 입을 다물리고 반다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동훈이 뒤따라 오는 것도 확인했으니 무뚝뚝한 반다르는 시선을 앞에 두고 걸었다.


아버지 나이대의 장년 남성 특유의 무뚝뚝한 앞만 보기 워킹은 반다르와 꽤 잘 어울렸다.


동훈은 이곳에 온 순간부터 현실에서의 근심과 걱정을 다 털어버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살아있는 이곳, 더 벨룸에는 본 적 없는 풀과 꽃이 많았다. 그래픽으로 보던 나무와 하늘, 풍경은 장엄한 느낌이 있었다.


이 모든 자연경관은 완벽했다.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눈과 귀, 영혼을 깨끗이 씻어냈다.


딱 하나만 빼면 이 자연, 이 세계는 완벽했다.


바로 인간만 딱 빼면 말이다.


세상은 흉흉했고 각지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저 지평선 부근에서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면 저기서도 싸움이 벌어졌었구나, 하는 짐작이 가능했다.


‘더 벨룸에서 싸움이 벌어질 요소는 너무나 많지. 자원이 한정돼서 싸우지, 누가 괴롭혀서 싸우지, 싸움을 걸어와서 싸우지. 이건 NPC들이라고 다르지가 않아.’


대가리가 없으면 힘 좀 있는 놈들이 다 자기 무리를 이끌겠다고 싸움이 많아지는 것도 큰 몫을 할 것이다.


왕이 없는 세상, 이곳은 각축장이었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전쟁터였다지만 NPC들도 만만치 않게 싸웠었지. 현실 서버의 더 벨룸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쟁을 하고 있으려나? 더 벨룸이 전쟁 게임인 만큼 전쟁이 없을 리는 없고,’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을 것이다. NPC라고 플레이어들이 전쟁하는 양상과 다를 것이라고 상상하긴 어려웠다.


사람 모아서 스펙 키우고, 뜻 모아서 혈맹을 만들고, 돈 모아서 전쟁을 일으킨다.


이렇게 말로만 하면 쉬운데 세상이 말대로만 돌아가나. 전쟁을 한 번 할래도 수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게 세상일이었다.


‘사람이 모여있으면 문제가 발생해. 더 벨룸은 그걸 이용하는 게임이지.’


규율에서 벗어난 병사는 강도가 되기 마련이었고 전쟁이 많은 지금, 그런 무도한 놈들은 산재했다.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온다.


꺄아아악!


***


더 벨룸에서는 총 3가지의 퀘스트 종류가 있다.


가장 커다랗고 더 벨룸이라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 스토리를 속에 품은 메인퀘스트, 그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곁가지 스토리를 풀어가는 부가퀘스트, 마지막으로 소모품을 얻을 수 있는 반복퀘스트가 있었다.


부가퀘스트는 미션 퀘스트와 이벤트 퀘스트로 나뉘었다.


미션 퀘스트는 일간주간월간으로 나뉘며 소위 숙제라고 불리는 퀘스트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벤트 퀘스트는 게임사가 진행하는 컨텐츠, 이벤트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로 비정기적인 퀘스트였다.

추석이니 설날이니 하는 날이 오면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도 다 이벤트 퀘스트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모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생성하고 스타팅 마을로 떨어져 시작하게 된다.

스타팅 마을에서는 메인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으므로 모든 플레이어는 최초에 메인퀘스트를 먼저 접하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스타팅포인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한 동훈은?


이런 부가퀘스트를 메인보다도 먼저 마주할 수 있었다.


===

부가퀘스트!

[이벤트]도움 요청


위험에 처한 여인을 구해주세요.


보상 : 2백 크로네, 10% 경험치, 일반 장비 소환 레시피 조각 1개

===


같은 게임을 15년간 하다 보면 자못 개발자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즐기라는 거 다 즐겨봤고 게임 속 여기저기를 모험하듯 돌아다녔으니 고인물들은 즐기라고 내놓은 것 이외의 것들을 찾아서 즐기고 싶어했다.

그러니 게임의 BM이라던지 구조, 스토리 맥락 따위의 제작자스러운 구역까지 탐하게 되는 것이다.


동훈은 다크엘프 종족으로도 게임을 플레이해봤다.


40레벨이었나, 까지 키워봤으니 스토리는 대충 다 따라가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크엘프 캐릭터를 생성하고 마을에서 메인퀘스트를 받은 뒤 그걸 해결하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이 구간.


저 비명이 들려오는 구간에서는 바로 플레이어가 새로운 형태의 퀘스트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게임 진행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뭐가 있으면 신기해서 가볼 거 아냐?


‘그래서 이쪽으로 진행하면 원래는 산적 소탕 같은 반복퀘스트가 끼어들어가면서 일간퀘인 반복퀘 1회 클리어 같은 걸 깨도록 만들어지는데. 난데없이 이벤트 퀘스트? 이건 인게임에서 진행되는 이벤트가 아니잖아.’


동훈은 이벤트가 있는지 그제야 인터페이스에서 커뮤니티창을 뒤졌다.


공지나 업데이트를 고지하는 커뮤니티창은 동훈의 예상대로 텅 비어 있었다.


‘현실 서버라서 벌어지는 이벤트 퀘스트라고 봐야겠는데. 이 현실 서버를 운영하는 게임사에서 아무 공지를 안 한 게 아니라면 서버 특성상 그냥 있는 거라고 봐야지.’


간혹 한시적으로 등장했던 이벤트 서버에서는 이렇게 이벤트 퀘스트가 있기도 했다.


1대1 전투만을 위해 열렸던 투쟁 서버에서 킬 미션이 걸린 이벤트 퀘스트도 이런 식이었고, 보스몬스터 레이드만을 위해 열렸던 사냥 서버에서 보스킬 미션이 걸린 이벤트 퀘스트도 이런 식이었다.


특별한 이벤트 목적으로 열린 서버에서의 전례가 있으니 영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메인보다도 전에 부가를 시작한다는 게 불안하긴 한데 동훈은 그래도 이 세계로 떨어져 처음으로 맞이하는 퀘스트를 피할 마음이 없었다.


동훈은 앞서가는 반다르에게 넌지시 물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하겠지만 엄연히 동행이 있는데 양해는 구해야 하니까.


“비명 들으셨습니까? 저쪽에서 난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들었네. 하지만 우리는 둘이야.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도적떼는 대부분 다섯 이상이고. 어설픈 동정심으로 목숨을 잃는 걸 권하고 싶지 않군.”


반다르의 노회한 눈은 무감정하게 번들거렸다.

동훈은 거기에서 반다르가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도덕관을 가졌음을 절실히 느꼈다.


동훈은 문득 반다르라는 NPC가 게임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캐릭터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없다.


기억에 없다.


반다르는 어느 마을의 경비병1처럼 이름 없는 NPC 중 하나일 것이다.


모니터에 모든 NPC의 이름이 나오진 않듯 반다르 또한 더 벨룸을 구성하는 NPC 중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 못한, 평범한 데이터 조각 중 하나였다.


의미 없었을 데이터 조각은 현실로 오며 사람의 몸과 숨을 부여받고 이곳에 살아있었다.


더 벨룸 안의 도덕관과 가치관, 세계관을 가지고 말이다.


반다르의 저러한 도덕관이 특별히 매정하거나 파렴치하다고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와 전쟁, 칼과 칼이 부딪치는 더 벨룸의 세상에서 어설픈 온정은 비명횡사를 낳을 뿐이다.


자기의 목숨은 소중히.


위험한 곳일수록 삶의 지혜는 더 각박해지는 법이었다. 그 간단한 지혜가 나쁜 게 아니기도 하고.


새삼 동훈은 이곳이 현대와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목숨이 목숨 같지 않고 정말 삶과 죽음이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는 곳.


하지만 동훈은 저것을 그냥 지나쳐갈 수는 없었다.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게 당연한 일이라서? 아니. 저 겁탈당할 어느 아낙이 불쌍해서? 아니. 그럼 퀘스트는 꼭 해결해야 해서? 아니.


동훈은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될 놈인지.


군주가 될 놈인지 말이다.


운을 시험하는 셈이라고 쳐도 좋다.


퀘스트와 상점과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군주로 낙점될 놈이 첫 마수걸이조차 못 해서 되겠나?


“어르신을 탓할 수가 없겠군요. 저도 옛날이었다면 그냥 눈 감고 지나쳤을 겁니다.”


동훈은 그렇게 말하며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말은 해서 무엇하랴. 옛날이었다면 눈 감고 지나쳤겠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뜻 아니겠나.


동훈의 담담한 걸음걸이를 반다르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정말 갈 셈인가? 죽을 수도 있어. 난 묻어주지도 못해. 자네가 여기서 목숨 버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네.”


반다르의 말은 동훈에게 꼭 여기서도 잠깐 참고 넘기면 현실의 삶처럼, 툭 튀어나오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동훈은 이곳에 넘어오며 결심한 바 있었다.


여기서도 군주를 꿈꾸지 않는다면 새롭게 주어진 더 벨룸 안에서의 삶이 의미가 있는 걸까?


현실에서처럼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하며 이유만 찾아 섬긴다면 결국 불만족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이유요? 할 수 있으니까요. 그거면 충분한 이유 아니겠습니까?”


동훈의 말은 썩 그럴싸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숭고한 의미가 있지 않았다.


동훈의 답은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퀘스트를 해결하러 간다,’는 정도의 대답이었다.


아마 누구라도 동훈의 멋들어진 답을 듣고 영웅 혹은 선한 사람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그 생각을 듣는 동훈이라면 오히려 손사래를 칠 것이다.


내가 뭐라고. 동훈은 선한 일과 호구 같은 일을 잘 구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관도 옆쪽으로 난 숲으로 들어가는 동훈의 뒷모습을 반다르는 꽤 오래 지켜봤다.


반다르는 왜 동훈을 시험하려 했을까?


비명을 듣고 누구보다도 빨리 손을 움찔거렸던, 활을 잡고 뛰쳐나갈 것 같았던 반다르는 왜 동훈에게 자신은 전혀 구할 마음이 없다고 위장한 걸까?


그건 반다르 자신도 몰랐다. 거사를 앞둔 반다르는 운을 시험해 보고 싶었고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만큼 디오르라는 정체 모를 이 또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시험당한 동훈이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놓은 데도 반다르는 디오르에게 못된 짓을 한다거나 해를 끼치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크엘프들의 마을에서 작별을 고했겠지.


반다르는 평범한 사람이 비명을 듣고 할 법한 대응을 내놓았고 디오르는 그러지 않았다.


반다르는 단 한 번의 행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디오르가 지금 내놓은 답, 구하러 가는 데에는 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는 답은 인상적이었다고 평하겠다.


아마 동훈이 반다르의 생각을 들었다면 ‘음흉한 늙은이,’라며 욕했겠지.


***


관도 옆으로 난 숲은 그리 울창하지 않았다.


머리 빠지는 50대의 탈모 남성이 그러하듯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 있고 본격적인 ‘숲’이라는 느낌보다 엉성하게 나무를 심어놓고 숲이라 부르니 그렇게 부르자는 느낌이었다.


도적놈들의 못된 짓은 그런 숲처럼 엉성하게 숨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관도에서 벗어나 조금만 내려가니 그 범죄의 현장이 드러났다.


퍽! 짜악!


살과 살이 부딪히는 폭력의 소리가 들려오고 고성이 오간다.


“입 닥쳐, 이년아! 이 어르신들이 펠리페 관도에서만 몇 년을 도적 생활해왔어. 이 근방에서 누가 널 구하러 올 것 같아?”


“흐흐흐, 왜 닥치라고 그래. 좀 더 질러봐. 어우, 난 비명이 좋더라.”


퀘스트가 일러준 대로 도적 둘은 투박한 치마를 입은 시골 아낙을 겁탈하려 바지춤을 내리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그들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왜냐?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찢어진 옷으로 제 몸을 감추려는 아낙네의 필사적인 모습에서 더 절절한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의 시선으로 보았다면 모니터 속에 여성 NPC가 대자로 쓰러져 텍스트로 도움을 요청하고 2레벨의 도적 졸개 둘이 서 있는 것으로 표현될 터였다.


적나라한 폭력의 현장을 맨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놈들은 아낙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털이 숭숭 난 주먹이 여린 육신을 오로지 망가뜨리기 위해 휘둘러지는 폭력은 문명에서 벗어나 야만에 속해있었다.


놈들은 아낙네를 때리다가도 저들끼리 실랑이 벌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짐승을 보는 기분이었다.


“야! 내가 먼저라고! 저번에 네가 먼저 했잖아! 악! 물었어? 이년이!”


“저번에 내가 먼저 했으니 이번에도 내가 먼저지. 이리 빠져!”


도적들의 저속한 말씨가 계속 이어지고 저항하던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퀘스트의 대상이 되는 여인의 얼굴이.


동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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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퇴사각(2) 22.10.13 551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7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4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16 메인퀘스트 22.09.30 887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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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게임과 현실 22.09.27 934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2 1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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