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캔커피+1

웃는 아이 출판사

웹소설 > 작가연재 > 일반소설

캔커피
작품등록일 :
2014.05.13 10:54
최근연재일 :
2015.08.14 17:42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3,930
추천수 :
1,767
글자수 :
85,239

작성
15.08.14 15:23
조회
2,445
추천
63
글자
4쪽

#8

DUMMY

병실에는 방금 청소를 끝낸 화장실 냄새가 났다.

벽걸이형 선풍기 두 대가 부지런히 돌아갔다.

봉사자를 나타내는 녹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환자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다.

죽을 받아먹는 환자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눈먼 사람처럼 잔뜩 얼어붙은 채, 모로 누운 자세로 입을 오물거렸다.

맞은편에는 무기력하게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흰 바탕에 초록색 무늬가 새겨진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익숙한 세상이 아니었다……. 익숙해져야 할 세상.

“인사해야지.”

형이 날 채근했다.

“안녕하세요. 준:짱!입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어쩌면 내 목소리에 섞여 있는 거부감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병실문이 열린 순간, 고개 돌리고 싶었다.

활기라고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발을 들이밀고 싶지 않았고 섞이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의 이름은 훈이야. 죽을 먹일 때에는 아주 천천히 해야 해. 서둘면 목이 메서 숨을 못 쉬어.”

할머니는 환자에게 눈을 떼지 않고 설명했다.

훈은 나와 같은 나이었고 입원 날짜는 올 1월이었다.

내가 학창생활을 하는 동안 녀석은 투병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로써 아버지가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졌다.

‘경험하고 고생하고 반성해라…….’ 한 가지 메시지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짐작되지 않았다. 내 뒤에서 형 목소리가 들렸다.

“근육과 연결된 신경세포가 시드는 병이야. 움직이지 못하지만,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다 할 수 있어. 우리 대화도 듣고 있고 생각도 할 수 있지, 책을 읽어주면 좋아할 거야. 가져온 책이 있니?”

“아뇨.”

“매점에 책이 많아. 거기 있는 책 중에 노랑 스티커가 없는 것을 가져오면 돼.”

“노랑 스티커가 있는 책은 왜 안 되죠?”

“그건 이미 읽은 책이야.”

“누가 읽어 준 거죠?”

나는 형을 본 후,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눈이 나빠서 글자가 안 보여.”

할머니는 계속 수저로 훈에게 죽을 떠먹이며 말했다.

세상의 종말이 와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턱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30도 각도로 접힌 침대에 걸터앉듯 누워계셨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할아버지는 느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살아계시고?”

“네.”

“그런데 어쩌다가 여길…….”

“아르바이트죠.”

형이 나 대신 대답했다. 그는 나의 정체를 숨기려 했다.

“힘들 텐데…….”

“힘들지 않은 게 어디 있겠어요.”

형은 사근사근했다.

훈은 갓난아이가 엄마 젓을 빨듯 죽을 받아먹었다.

참으로 막막해 보였다.

형이 나를 밖으로 잡아끌었다.

그는 복도 끝으로 가서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앞으로 네가 훈을 돌봐야 해. 밥을 먹는 것뿐 아니라 대소변까지 처리해줘야 해. 훈 앞에 있는 할아버지는 뇌종양 말기 환자야. 남는 시간엔 그분도 간호하고……. 하루가 아주 짧은 거야. 할 수 있겠어? 이곳 일은 억지로는 할 수 없어. 가고 싶으면 지금 돌아가도 돼.”

솔직히 돌아가고 싶었다.

희망이라곤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가는, 이런 곳은....... 불편하다.

형은 나에게 마지막 출구를 열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금 도망쳐 버리면, 나는 평생 ‘그런 놈’이 되고 만다.

그런 놈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아는 내 모습은 ‘그런 놈’일 것이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고....... 그래도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야했다.

남들이 지켜보는 개구멍으로 달아나기에는 나는, 뭐랄까, 너무 젊었다.

“형. 아까 말했잖아요. 나는 준:짱!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웃는 아이 출판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 ENDING +101 15.08.14 3,027 185 4쪽
20 #20 +5 15.08.14 2,214 93 19쪽
19 #19 +3 15.08.14 2,173 78 9쪽
18 #18 +5 15.08.14 2,078 83 9쪽
17 #17 +4 15.08.14 2,193 76 12쪽
16 #16 +6 15.08.14 1,975 66 13쪽
15 #15 +2 15.08.14 2,059 73 11쪽
14 #14 +3 15.08.14 2,130 72 6쪽
13 #13 +5 15.08.14 2,282 84 9쪽
12 #12 +4 15.08.14 2,145 83 9쪽
11 #11 +4 15.08.14 2,185 78 10쪽
10 #10 +4 15.08.14 2,229 68 8쪽
9 #9 +5 15.08.14 2,495 82 13쪽
» #8 +1 15.08.14 2,446 63 4쪽
7 #7 +4 15.08.14 2,459 66 8쪽
6 #6 +4 15.08.14 2,514 74 6쪽
5 #5 +9 15.08.14 2,790 74 10쪽
4 #4 +3 15.08.14 2,593 76 6쪽
3 #3 +4 15.08.14 3,074 83 12쪽
2 #2 +5 15.08.14 3,574 95 8쪽
1 #1 +14 15.08.14 5,296 115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