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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1

웃는 아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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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작품등록일 :
2014.05.13 10:54
최근연재일 :
2015.08.14 17:42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3,929
추천수 :
1,767
글자수 :
85,239

작성
15.08.14 14:25
조회
3,573
추천
95
글자
8쪽

#2

DUMMY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담임이 교무실로 불렀다.

교무실에는 면도크림 같은 특이한 향이 떠돌았다.

교무실 안의 선생님들은 인터넷을 하거나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교무실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쉬는 시간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쉬는 시간을 줄이면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의 반발이 더 크지 않을까?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담임선생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책상에는 십자수로 만든 성경문구 액자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았다면, 군수공장에서 낙하산 품질을 점검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숙제 검사에 철저했지만, 언제나 정해진 수업시간보다 오 분 일찍 수업을 끝내거나 오 분 늦게 수업을 시작했다.

근거 없는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가진 그저 그런 부류의 선생님으로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그는, 용의자를 사진과 대조하는 형사처럼,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심상찮은 눈빛이었다.

뭐지? 내 얼굴에서 성령이라도 본 건가? 그는 농담 삼아 나를 ‘공부의 신’으로 불렀는데, 그의 성향으로 미뤄 보건대 나를 숭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희가 홈피에 자살에 대한 글을 남겼어.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던데....... 짐작되는 게 없니?”

아! 연희. 우리 반에서 가장 희박한 존재감의 여학생이었다.

가끔 지각도 하고,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였고 쉬는 시간에도 멍 때리는 표정으로 책을 보거나 엎드려 잠을 잤지만, 묘하게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연희를 지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뭐랄까? 스스로 존재를 감추는 마력의 소유자였다.

고삼의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둔했기 때문에 별명이 웅녀였다.

학생들이 시험성적으로 울음 블루스를 쳤을 때, 그녀는 지극히 담담했다.

그녀를 보면서 초월의 경지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감탄했다.

웅녀라는 단어는 묘하게도 쾌감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격한 섹스를 연상시켰는데, 이런 별명을 가진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나의 여자 친구는 웅녀야.’라고 말하고 싶어 할 남학생도 없었고, ‘나의 절친은 웅녀야!’라고 발랄하게 웃을 여학생도 없었다.

모르겠다. 웅녀가 백 일 동안 마늘만 먹는다면 뭔가 새로운 변화가 생겨날지도.......

웅녀는 가난한 아줌마를 연상시켰다.

수업시간의 웅녀를 보면 대학입학을 포기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장래희망을 수의사로 발표해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진정으로 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좀 더 노력해야 했다.

현실은 꿈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에 걸맞은 노력이나 재능이 필요하다.

둔하고 둔한 연희가 홈피에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썼다니........ 웅녀도 어쩔 수 없이 예민한 감성의 고등학생이었다.

그나저나 담임은 왜 나에게 웅녀에 대한 것을 캐묻는 것일까? 나를 웅녀의 단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웅녀의 정보를 얻기 위한 포괄적인 면담의 일부?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남학생은 여학생들의 아기자기한 정보망을 뛰어넘지 못한다.

정확한 정보를 원한다면 나보다는 여학생을 부르는 게 나을 텐데?

“너라면 알 줄 알았는데.......”

“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웅녀와 나를 연결했다는 사실이 살짝 불쾌했다.

나는 그녀뿐 아니라 교실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대화가 통하는 친구도 없었다.

훗날 취직이나 쉽게 해볼 요량으로 나에게 잘 보이려는 녀석들뿐이었다.

(현정도 그런 부류에 가까웠다.)

심한 경우에는 나의 시종이 되겠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슬프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뜨내기 덕분에 청년실업문제의 절박함은 나도 경험한 것 같다.

“모두 널 좋아하잖아. 이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나서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고…….”

그는 말을 흐리며, 의미가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날 좋아한다고?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처럼 느껴졌다.

동급생들은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를 신기하게 여길 뿐이었다.

보석가게에 진열된 가장 화려한 보석을 구경하듯이 나를 대한다.

그 보석에 욕심을 내고, 쿠키를 선물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구경만으로 만족했다.

백번 양보해서 친구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렇지.

연희 문제를 나더러 해결하라니! 내가 그렇게 할 일 없이 보인 걸까? 담임은 일 초 정도 미소를 지었는데, 이중 계약을 연상시키는 가면 같은 미소였다.

‘연희가 힘들어하는데, 그걸 저에게 맡기겠다고요? 선생님은 뭐하시고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

결국, 나의 담임도 월급은 사랑하지만, 업무에는 흥미가 없는 시시한 샐러리맨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짐작했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할 줄은 몰랐다.

어쩌면 문제가 생길 경우 나를 방패막이로 삼을 계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사회적 배경을 고려할 때, 나를 방패로 써먹을 수 있다면, 거의 모든 문제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

나의 대답이 늦어지자 그가 다시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딴 일에 신경 쓸 틈도 없지만, 넌 여유가 있잖니.”

‘고작 그런 이유로?’ 모두 마지막 스피드를 올리며 공부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떠넘기다니! 월권이라기보다 근무태만이다.

혹시 담임은 이번 수능에 응시할 계획일까? 그렇다면 그의 입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학생 지도는 선생님께서 직접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소문나지 않게 잘 처리해라.”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대화가 끝나 있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대놓고 거절하긴 어려웠다.

최소한 시도라도 해서 발을 뺄 빌미를 만들어야 한다.

“연희가 힘들어하는 이유가 뭐죠?”

“어디 한둘이겠니. 너만 믿으마.”

그는 양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페인트처럼 짙은 로션냄새가 확 풍겼다.

교무실에서 나오며 도서관에 들러 카운슬링에 관한 책을 빌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웅녀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는 정신노동이 귀찮게 느껴졌고, 그녀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을 거란 계산이 나왔다.

누가 영화배우나 인기가수에게 자신이 고민을 털어놓겠는가? 영화배우와 인기가수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웅녀에게 문제가 있다면........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구나 문제가 있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다만, 행동하지 않을 뿐이다.

불평하고 낙담하고 변명하는 대신, 묵묵히 노력한다면 대부분 문제는 눈 녹듯이 해결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은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노력으로 매워야 할 공간을 불평으로 채워 넣으며 편하게 살겠다는데........ 말릴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웅녀의 문제는 웅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자살은 그것이 편하다고 느껴질 때 선택되는 법이다.

자살하는 게 너무나 어려울 때, 그러니깐 사는 게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할 일이 널려 있고,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고, 내일 기다리던 영화가 개봉할 때에는 누구도 자살하지 않는다.

웅녀에게 필요한 일은 자살보다 더 신나고 즐겁고 편안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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