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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난이도를 기록한 모의고사 수학시험.
교실 전체가 초상집이었다.
절반도 건지지 못한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이번 수학문제를 페르마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페르마 등급은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수학난이도를 뜻했다.
학생들의 긴장감을 자아내려고 난이도를 높였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긴장감보다는 좌절감을 맛본 학생들이 압도적이었다.
시험점수에 절망한 동급생이 투신자살 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계단에서 발을 삐어 절뚝거리기만 해도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게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보통은 투신자살처럼 극단적인 선택보다는 펑펑 우는 쪽을 택했다.
선생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이렇게 서럽게 울진 않겠다!”라고 핀잔을 주고 호통쳤지만, 학생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이번 수학시험은 국제 수학 올림피아 수준에 근접한 것들이었다.
나에겐 전국 한 명뿐인 만점자라는 영예가 쥐어졌지만, 기쁘거나 자랑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별종이 된 것 같아……. 외로웠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점수를 받는 녀석이 꼭 한 놈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가끔 나를 앞지르던 그 녀석, 유학이라도 간 걸까? 아니면 시답지 않게 기타 따위에 정신이 팔린 걸까? 학생들에게 서러움을 안겨준 시험문제였지만, 나에겐 한숨이 나올 정도로 따분했고 한편으론 얄팍하다는 느낌까지 왔다.
문제를 위한 문제의 전형적인 짜깁기 패턴은 우중충했고, 역함수의 유일성을 묻는 출제의도는 뻔뻔했다.
그럴싸한 수학기호로 치장된 유치찬란한 문제들은……. 그림자밟기처럼 실체가 없었는데....... 꽃단장을 한 늙은 여우 같았다.
문제를 푸는 내내 원치 않는 섹스를 하는 것 같아……. 피곤했다.
5번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져 묻는 몰상식함을 보였다.
역설보다는 코미디에 가까운……. 답을 적어 넣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언제까지 이런 촌스러운 장단에 춤춰야 하는 걸까? 확률밀도 함수가 수요공급 곡선에 응용되고 글자 수로 문단 나누기가 결정되는 현실……. 세상은 고등학생들에게 어처구니없는 것을 요구했다.
이를테면 L함수의 미분 가능함을 증명하거나 멀쩡한 영어문장을 수동태로 바꿔 절름발이로 표현하는 따위.
영어 1번 문제도 논란거리였다.
발음에 관한 것이었는데, 시험에 나온 단어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 어였다.
Triage. 원음 추종의 원칙에 따라 프랑스 어 발음을 따라야 했지만, 정답은 엉뚱하게도 일본식 발음을 기준으로 했다. 정말이지 국적불명의 글로벌한 영어문제였다.
내 이름은 준. 아이큐 198. 사진 같은 기억력과 컴퓨터 같은 계산능력을 지녔다.
중학교 때부터 접선의 기울기를 구할 때, 연립방정식을 풀지 않고, 미적분으로 답을 구했다.
40개의 휴대전화 번호를 30초 이내에 외우고, 해밀턴 함수 적분을 암산으로 푼다.
포물선과 타원함수의 접점을 구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친구들이 처량해 보이고, 그런 친구들을 위해 인슐린 주사를 놓듯 공식을 주입하는 선생님도 서글퍼 보인다.
모두 애쓰는 건 알겠지만……. 요령이 부족했다.
친구들과 선생들은 내 이름 뒤에 ‘짱’을 붙여 ‘준:짱!’이라 부른다. 공부짱, 운동짱, 외모짱, 배경짱……. 아버지는 대학병원 원장이고 어머니는 누구나 알만한 기업을 운영한다.
부모님은 농구코트가 깔린 체육관을 학교에 기증했다.
학교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고교 아이돌과 사귀고, 여대생 모델들과 클럽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논다는 것.
그러면서도 시험 때에는 항상 일 등을 한다는 것.
강력한 집안 배경과 뛰어난 학업성적 때문에 선생님들도 나의 ‘취미’에 대해서 노코멘트한다는 것.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치면 교장선생님이 먼저 인사를 한다는 둥........ 짐작하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직접 만든 거야.”
현정이가 종이봉투에 든 쿠키를 건넸다.
부끄러워했지만 ‘너는 내 꺼!’라는 깃발이 펄럭였다.
학급회장인 그녀는 모의고사가 끝나고 가장 먼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울음은 핵분열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급력을 유발했다. 모두 그녀를 따라 울었고 괜스레 나까지 눈물이 고였었다.
“고마워.”
그녀의 성의를 봐서 한 입 베 문다.
부드러운 촉감과 바삭함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합성 유화제와 팽창제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맛이었다.
뒤끝이 개운한 단맛....... 액상과당과 자당에스테르를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첨가물을 사용할 바엔 대량생산된 쿠키를 사는 게 나을 텐데........ 쿠키의 촉촉한 느낌은 글린세린과 같은 보습제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버리기 아까운, 사용하지 않는 과일 샴푸를 넣어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만든 거야. 괜찮지.”
고삼의 하루는 일반인들의 일주일과 맞먹는다.
그 시간을 쿠키 만들기에 사용했다고? 부담스러웠다.
주위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이런 식의 연출에 능했다.
항상 주목받는 여자이고 싶어 했고, 모든 걸 독점하려 했다.
필요하다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쁘다기보다는 지나치게 극성맞은 성격이었다.
아주 좋게 표현하자면, 엘리트 교육제도가 원하는 목표지향적인 인격체였다.
본래 성격과 성품이 그런 건지?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좋은데.”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와 미소를 교환하기엔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고, 미소를 교환할 정도로 친하게 지낼 맘도 없었다.
“좀 더 기쁜 표정으로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깍쟁이처럼 그게 뭐야.”
그녀는 달나라에 깃발을 꽂듯이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찔렀다. 쓴웃음이 절로 났다.
훗날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정복당하는 건 싫은데........ 나에겐 여자 친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첫째, 쿠키를 만들 때 액상과당을 사용하지 말 것.
둘째, 손가락으로 어깨를 찌르지 말 것.
세 번째가 가장 중요했는데......... 시험점수 때문에 울지 않을 것.
쿠키를 다 먹을 즈음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실리카겔 방습제가 든 쿠키를 직접 만들었다고 거짓말하지 않기.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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