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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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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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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지오 디 오리진 -53화-

DUMMY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곳에 모인 이들은 성조그룹 각 계열사 비서실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이른바 언더커버였다. 성조에 의해, 성조를 위해 키워진 성조장학생 가운데 빛이 아닌 어둠을 선택한 이들이다.

그들은 성조라는 종교를 믿는 광신자였다.


“내 소개는 굳이 안 하겠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젊은이도 있고 늙은이도 있다.


“첫날부터 업무는 좀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일은 일이죠. 시작합시다.”


지오가 상석에 앉자 모두 착석했다.


“현재 주목할 만한 사안은 동국일보가 터트린 안문길 게이틉니다.”


회의를 주재한 이는 서른 중후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였다.

홍준영, 별명은 혈사血蛇.


‘블러드 스네이크라니 얼마 독한 놈인가.’


나중에 등장할 주인공의 심복 중 한 명이다.


“우리랑은 연관이 없잖습니까?”

“성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다만 오장군 부회장님의 사모님이신 장순옥 여사님 친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장순옥은 세현그룹 전 회장인 장문경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당시 오장군과 장순옥의 결합은 매우 뜻밖이었는데 왜냐면 장문경은 데릴사위가 아니면 딸을 시집보내지 않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오장군이 쿠데타를 실패하고 세현으로 몸을 옮기지?

-네. 경일과 전쟁 중에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죠.


장자승계 또는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문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었다. 그런데 이게 동양만의 문화일까? 아니다. 아들을 선호하는 건 동·서양을 막론했다. 특히 물려줄 재산이 많은 가문의 후계자 대다수는 남자다.


-21세기에도 결혼한 아내는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핏줄과 관련된 일은 상식이 안 통해.


성공한 자에겐 자신의 유산Legacy이 후세에 어떻게 전해질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까.


“안문길 게이트의 핵심 삼인방 중 한 명인 조규영은 한성산업 부회장이고 더불어 신한국건설과 성심I&G도 이 파국을 피해가지 못할 겁니다.”


한성산업 조규영 부회장은 익숙한 이름이다. 지오가 오현우와 정태석을 물 먹인 재개발사업의 최종승자였으니까.


“정확히 어떻게 관련 있는 겁니까?”

“장순옥 여사님의 친정인 정우 파이낸스에서 한성산업의 재개발사업 몇 곳에 투자한 정황이 있습니다. 투자는 문제가 아닙니다만...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건 세탁이 안 된 겁니까? 아님 덜 된 겁니까?”

“둘 다로 예상됩니다.”

“바보들이 아니라면... 자금을 급히 조달했다는 뜻인데...”


지오의 시선을 느꼈는지 홍준영은 부연에 들어갔다.


“지분이 여의도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정치자금? 폭로 배후가 누굽니까?”

“동국일보의 배후는... 한중겸입니다.”

“한중겸? 여당 최고의원 한중겸?”

“맞습니다.”

“본실은 어쩌고 있습니까?”

“대관 3팀이 대응 중입니다.”


괴팍한 정치인들을 전담하는 부서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동국일보를 감시하랍니다. 정확히는 동국일보에서 한중겸과 손잡은 인물을 가려내는 겁니다.”

“좋습니다. 홍 팀장이 주도해서 작업을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다음은?”

“다음 안건은.”


다음 안건들이 순서대로 나왔지만 지오의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한중겸 의원은 히로인 후보 한채원 경감의 부친이었다. 어쩌다 보니 주인공과 한채원이 첫 만남이 될 이벤트(연쇄살인마 박재우)를 방해한 셈. 어쩌면 한채원의 미래도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흐흐. 주인공 개새꺄. 이거야말로 통쾌한 NT...


-J?

-크흠. 단순한 정치공작인가?

-경고를 보낸 거죠. 내 앞길을 막지마라는.


안문길 게이트의 정치자금은 한중겸과 대선에서 경쟁할지도 모를 또 다른 거물정치인에게 흘러들어갔다. 안문길 게이트의 안문길은 사람 이름이 아니었다.

안문길은 도로 이름이다.

재개발에 중요한 건 구획을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도로는 그 구획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안문길 게이트라는 건 없었어. 본래는 주인공과 인연이 닿은 한채원 덕분에 한중겸은 성조의 막대한 후원을 받았지.


그런데 바뀌었다. 주인공은 한채원을 모르고 한중겸은 성조의 후원을 받지 못한 채 대선은 성큼 다가왔다.


-폭로전은 정치인에겐 양날의 검이야. 노회한 정치인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고... 누굴 보호하려는 거지?

-당연히 한채원이죠.

-딸을? 경찰인데?

-본래라면 주인공이 그녀를 보호해야 합니다만...


주인공과 한채원이 만나지 못했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상 이벤트는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강승언을 잡아넣은 한채원은 자신감을 얻었고 인지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벌집을 건드린 겁니다.


한성산업과 조규영은 그 벌집에 꿀을 바치는 일벌이다.


-애국회?

-맞습니다. 정확히는 대한애국회죠.


어느 나라든 기득권은 저들끼리 똘똘 뭉쳤다. 학연과 지연, 혈연 등 온갖 핑계를 들어 그들만의 이너 서클을 형성하는 것이다. 대한애국회의 시작은 평범한 재계 사교모임일지 몰라도 어느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다.


-대한애국회에는 소모임이 많습니다. 나이 지긋한 회장끼리 나뉘고 후계자집단과 3세는 또 따로 모입니다. 기업의 서열과 업종으로 구분한 작은 모임은 셀 수 없습니다. 한채원이 파헤친 곳은 소위 건설족으로 불리는 이들이죠.

-부패하기 쉬운 업계긴 하지.


건설은 지오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장모가 부동산과 관련된 회사를 가졌으니까. 다행이라면 장미소는 사교모임은 관심 없었다.


-한중겸은 한채원 때문에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딸을 정말 사랑하나보군.

-그렇게 설정했으니까요.


뛰어난 정치인이란 적당히 인기에 영합하고 적당히 권력과 타협하는 속물일 수밖에 없다. 대쪽 같이 청렴결백한 정치인? 그런 건 없었다.


-한채원이 굽힐 가능성은?

-굽히느니 죽는 걸 택할 겁니다.


하긴 둘 다 그렇게 설정했다. 두 사람이 고초를 겪든 말든 별 감흥은 없지만 창작자로서 일말의 책임감은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홍준영만 남게 했다.


“어린놈이 설친다고 너무 고깝게 여기진 마세요.”

“아닙니다.”

“나에 대해 말이 많죠?”


홍준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전미란이 지오를 싸고돌자 성조그룹의 뒤치다꺼리를 담당하는 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장손과 같은 이름을 가졌기에 방계라는 소문은 거의 정설로 여겨졌다. 더 나아가 오천명 명예회장의 사생아가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왜 주인공의 아비인 오태양이 아닌 오천명일까?

날이 갈수록 거동이 힘들어지는 늙은이지만 젊을 적 여성편력은 유명했다. 뭐 아직까진 내가 혼외자요! 하고 기자회견을 벌인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재벌치곤 가정에 충실한 거지 돈 있고 힘 있는 남자는 많은 여자를 사귀는 것을 대단한 능력으로 여겼다.


“바뀌는 건 없습니다. 아니네요. 하나 있군요. 홍 팀장 일이 많아졌어요. 물론 보상도 클 겁니다.”


일이 많아지면 돈이든 뭐든 보상도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은 많은데 보상은 쥐꼬리만 하다? 불만이 안 생길 수가 없고 불만이 쌓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뒤치다꺼리를 담당하는 자가 앙심을 품으면 여러 사람이 곤란했다.


“다른 말을 해봐야 잔소리밖에 안 되겠죠. 앞으로 쭉 선조치후보고 하세요. 책임은 내가 집니다.”

“감사합니다.”


홍준영을 내보낸 지오는 의자에 앉았다.


-한중겸은... 질 거야.

-정치인에게 폭로전은 마지막 수단이죠.

-더 좋은 수가 없었나?

-알다시피 건설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습니다.


건설 경기는 국가경제의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그 이해관계는 기득권과 서민을 가리지 않았으니 인기에 민감한 정치인에겐 양날의 검이었다. 유권자 대다수는 서민이다. 하지만, 모든 서민이 보호가 필요한 약자라거나 선한 건 결코 아니었다. 본래 타임라인이라면 한중겸은 주인공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도울까요?

-어떻게?

-정치인에게 중요한 건 역시 여론과 표심 아니겠습니까?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G의 역량으로 보건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교도소에서 누군가를 꺼내거나 납치된 피해자를 협상으로 석방시키는 등 난제를 척척 해결했다.

뭐 사고사를 가장한 암살이 가능한 시점에 말 다했다.

스카이넷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인 셈.


-대통령이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한중겸은 원래 대통령에 오를 인물입니다. 변수는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역사를 네 맘대로 주무르고 싶은 건 아니고?

-...아닙니다.

-지금 고민했지?

-아닙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어쩌면 닝겐들?의 미래가 심히 어둡지 않을까 싶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만 아니면 돼!

퇴근한 지오는 곧장 강선아를 찾아갔다. 안식년은 프레타포르테 준비로 날아갔다. 며칠 후면 다시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 낭만의 도시 파리, 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20세기 감성이다.


“언제 왔어?”

“방금.”


스튜디오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강선아는 구석에 조용히 앉은 지오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녀를 안고 가볍게 키스했다.


“도와줄까?”

“아니!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가서 사진만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뭘 그리 챙길 것이 많은지 1시간은 지나야 끝났다. 야근한 직원들에게 금일봉을 몰래 찔러준 지오는 강선아를 데리고 친정을 찾았다.

장미소는 웃는 얼굴로 딸과 사위를 마중했다.


“어서 와. 아들.”

“엄마, 나는?”

“넌 징그러우니까 절루 가. 뭘 이런 걸 사왔어? 그냥 오지.”


친딸을 쓰레기 치우듯 밀어버린 장미소는 양손 무거운 지오를 반겼다. 선물이 반가운 게 아니었다. 선물을 준비한 마음이 기꺼운 것이다. 가정부를 불러 선물을 옮긴 장미소는 손수 차를 끓여 지오에게 건넸다.


“선아 땜에 파리에 간다며?”

“네.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아서요.”

“괜히 아들만 고생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저도 즐겁거든요.”


지오는 강선아와 함께 있을 땐 장모에게 반말하지 않았다.

모녀 사이에도 뭔가 미묘한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생은 내가 하거든?”

“고생은 무슨! 남편 잘 만나서 노났지.”


그냥 패션쇼도 아니고 파리 프레타포르테다.

물론 메인은 아니다. 그래도 명품브랜드에 포토그래퍼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건 대단한 영광이었다. 모델 이상으로 치열한 업계가 이쪽이니까.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제는 강봄이 된 에이프릴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봄이는 잘 지내니?”

“아, 봄이도 파리에 함께 갈 거야.”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 근데 학교는 어쩌고?”

“미국은 우리랑 달라. 엄마. 사회활동에 학점을 인정한다고.”

“놀러가는 것도?”

“누가 놀러간대? 인턴으로 가는 거야.”


이씨자매와 윤소정, 강봄을 비롯한 LA패밀리 전원의 파리행을 결정한 것은 강선아였다. 결혼한 뒤로 아이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의외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다.

어째서 지금까지 혼자였는지 모를 정도다.


“어머님도 함께 가시죠.”


지오의 말에 장미소는 눈을 크게 떴다.


“나도?”

“네. 이참에 봄이도 보고 유럽도 관광하시죠.”

“좋다! 엄마도 같이 가자!”

“회사가...”

“회사는 삼촌에 맡기고!”

“그럴까.”


강선아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장미소는 지오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후우,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조금 부러워하는 미세한 표정변화를 빨리 알아챈 것이 주요했다.


-사위사랑은 장모지. 그리고 사랑받는 사위는 장모님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해. 이게 능력자지.

-...대단한 능력이네요.

-흣! 뭐 결혼을 해봤어야 알지.

-눼이눼이! 아주 대에에단한 사위 납셨습니다.


다음날 유럽에 뭘 입고 갈지를 놓고 모녀의 백화점 쇼핑투어가 시작됐다. 어? 이게 아닌데?


-...

-풉!

-우서?


누군가의 불행은 또 누군가의 행복이다.


-아니! 맘에 들면 그냥 사면 안 돼?

-여자를 모르는군요. J.

-...


여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나중에 합류한 윤소희 때문에 발생했다.


“나도 갈 거야!”

“뭐?”

“우리 소정이 보러 갈 거야.”

“영화는?”

“다 찍었어.”

“드라마는?”

“내일 막촬이야.”

“광고는?”

“갖다 와서 찍으면 돼.”

“회사에서 허락해줘?”

“왜 이래? 나 윤소희야!”


주인공과 헤어진 뒤부터 왠지 막나가는 것 같다.


“그럼! 우리 소희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지.”

“그렇죠? 엄마.”


윤소희는 또 언제 장미소의 딸이 됐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장부 셋이 모이니 지오로도 감당이 안 된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군지 혼란하던 그를 구원한 건 한 통의 전화다.


“이 수석.”

“축하드립니다. 이사님.”


이택기의 축하에는 날이 섰다.


“나도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야.”

“여사님이 칼 들고 협박이라도 하셨습니까?”

“그런 셈이지.”

“...”

“우리 사이는 달라질게 없어. 여사님이 보스의 적은 아니잖아?”

“그건... 좋습니다. 넘어가죠.”

“그래서 용건이 뭐야?”


단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려고 연락할 위인은 아니었다.


“프랑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백찬경 때도 그렇고 그 나라는 참 이상했다.


“뭔데?”

“우리 직원이 살해당했습니다.”

“왜?”

“그걸 알아봐주십시오.”


대한민국에서야 성조 하면 벌벌 떨지 몰라도 타국에서는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이제까지 확인한 건?”

“직원과 가족 전원이 자택에서 총살당했습니다. 금품이 털렸고... 강간 흔적이 있습니다.”

“강간?”

“열네 살, 열여섯 살. 딸이 둘이고 와이프도...”

“미쳤군.”


이건 단순한 강도살인이 아니다.

쇼핑삼매경에 빠진 그녀들에게 양해를 구한 지오는 곧바로 프랑스행 티켓을 끊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마중한 얼굴은 기억에 있었다.


“세빌?”

“어서 와. 제이.”


세빌, 성조그룹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프랑스의 대형로펌 장루데의 시니어 변호사다. 백찬경 사건 때 도움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파리 중심가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비보를 전하게 돼서 유감이야.”

“그래서 수사는 어디까지 진척됐어?”

“외무부와 국가경찰이 수사를 주도하고 있어.”

“외무부?”

“외국인이 관련된 사건이니까.”

“프랑스 경찰은 외사과 같은 곳이 없나?”

“외사? 아, 인터폴 말이군.”


국제형사경찰기구ICPO, 흔히 인터폴로 불리는 국제기관 본부가 프랑스 리옹에 있다. 인터폴 하면 존나 힘 있는 기관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외국인 살인사건 수사에 인터폴이 관여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 인터폴의 기능은 수사보단 외교나 공조에 충실했다. 더구나 현지 경찰 대부분은 사건이 복잡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EU의 등장으로 국경선이 무의미해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양상은 더욱 과격해졌다.

사고를 치면 뭐 국경을 넘어 숨으면 되니까. 공조수사? 옆 동네 경찰과도 마찰을 빚는데 이웃나라와 그런 게 쉽게 될 리 없었다.


“직접 봐야겠어.”

“알았어.”


민간인이 사건현장에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라고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사건현장은 고급주택가였다.

치안이 좋은 지역에서 불법침입에 강도살인이라? 아주 대범한 놈들이다.


“폐쇄회로에 찍힌 범인은 모두 넷, 체격으로 보건대 전부 남자야.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신원을 확인하긴 어려워.”

“목격자는?”

“없어.”

“총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어.”

“아무리 밤이 늦었어도 총소리를 못 들을 수 있나? 그럼 소음기를 썼다는 건데... 소음기를 쓰는 강도라?”


영화에서나 소음기를 쉽게 구하지 화기火器에 딱 맞는 소음기를 구하기란 여느 범죄자에게도 거의 불가능했다. 거리에서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피스톨과는 난이도가 달랐다.


“원한을 의심하기엔 프랑스로 넘어온 지 겨우 두 달째야. 범죄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거의 없지. 그럼 정말 우연인가?”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일가족이 살해된 현장은 참혹했다. 시신은 옮겨졌지만 그들이 흘린 피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강간을 당하면서 살려달라고 비명 질렀을 텐데 벽을 넘지 못했나보다. 아니면 무심한 이웃들이 외면했을지도.


‘똘레랑스?’


프랑스 강력범죄의 잔혹함은 전 세계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다. 자국 내에서 총질로 테러하는 나라다.


“경찰이 순찰을 도는 시간과 경로를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일을 벌였어. 철저한 계획범죄라는 뜻이지.”

“살해된 킴이 성조에서 중요한 사람이었어?”

“아니, 평범한 중간관리자였어.”


김주창의 백그라운드에는 특이점이 없었다.


“강도짓을 벌이기엔 위험부담이 큰 지역이야. 무장경찰이 쫙 깔린 곳이라고. 대체 왜 그랬을까?”

“물어보면 알겠지.”

“뭐?”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개새끼들을 잡아서 실토하게 만들면 된다. 이택기의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G의 추적은 시작됐다. 파리경찰청 서버를 해킹해 부검과 감식 보고서를 확보했고 사건현장 주변의 폐쇄회로, 셀폰, 개인용 컴퓨터, 차량 블랙박스 등 모든 전자기기를 들여다봤다.

오직 G만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다.


-김주창 외 3인의 살해 동기는 금품이 아닙니다.

-그럼?

-암살이죠.

-암살? 김주창이 거물은 아니잖아?

-목표는 김주창이 아니었습니다.

-김주창이 아니다?


망막디스플레이에 여러 영상과 사진이 떠올랐다.


-범인들의 목표는...

-딸이군.

-정확히는 둘쨉니다.

-왜?


왜 열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목표가 됐을까?


-알렉산더 코르센코의 죽음과 관련 있습니다.

-얼라이언스?


데스 사이드와의 전쟁은 얼라이언스의 승리로 끝났다. 문제는 뒤바뀐 미래다. 알렉산더 코르센코의 죽음은 내가 아는 미래와는 달랐다.


-얼라이언스의 본질은 결국 사모펀듭니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합중국에서 동맹의 중요한 키워드는 결국은 돈과 권력이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인맥이 함께하는 것이다.

망막디스플레이에 한 장의 사진이 클로즈업됐다.


-인터넷에 한 번이라도 올라간 사진은 영영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본을 삭제하면 어느 정돈 통제할 수 있죠.

-에밀리야 코르센코?

-하이디 잭슨도 있습니다.


에밀리야 코르센코의 익숙한 얼굴, 하이디 잭슨도 만난 적은 없어도 익히 알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일리야 로빈도 찍혔다는 사실이다. 스캔들 당사자들인 장리시와 케이트 에버그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배경으로 까만 머리카락의 소녀가 셀피 포즈를 잡고 있다.


-언제 찍힌 거지?

-날짜로는... 9개월 전입니다.

-이 사진이 왜 중요한데?

-인물보단 배경에 주목해주십시오.


파티를 배경으로 찍었으니 스타들 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한 번 더 클로즈업하자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보였다.

음. 어디선가?


-마이클 워커와 앤디 호프먼입니다.

-What?


자세히 들여다보자 익숙한 IL이 보였다. 맞다. 내가 만든 주요캐릭터 중 한 명인 마이클 워커와 앤디 호프먼이다.


-마이클 워커는...

-데스 사이드의 엘리트 청부업자죠.


앤디 호프먼은 알렉산더 코르센코의 오른팔이자 얼라이언스의 간부였다.


-이건... 야합인가.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집단의 주요인물이 비밀리에 접촉한다? 100% 음모가 있다.


-둘의 만남은 없는 설정이야.

-미래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습니다.

-알렉산더의 죽음은... 배신이군.


믿었던 오른팔의 배신.


-호프먼은 뭘 얻었지?

-코르센코의 부재로 말미암아 조직은 새로운 리더가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호프먼은 참모는 몰라도 지도자가 될 깜냥은 안 됩니다. 현재 얼라이언스의 새 지도자는.

-사일러스.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리더는 놀랍게도 주인공과 관계가 깊었다.


‘사일러스.’


풀네임은 사일러스 S. 오, 한국 이름은 오태양.

그렇다. 주인공의 아버지다.

성조왕국의 왕세자 자리를 뻥 차고 미국으로 넘어온 오태양은 현재 부인과 만나 케이트&썬 컴퍼니를 창립했고 몇 년 뒤 월스트리트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호프먼의 반란은 실패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으니 빨리 흔적을 지워야겠죠.


왕좌에 앉았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다.


-하지만, 이건 너무 과격해.

-맞습니다. 호프먼의 방식은 아닙니다.

-그럼 워커군.


데스 사이드의 엘리트 청부업자는 돈만 되면 뭐든 했다.

일가족을 몰살한 네 명의 범인은 마이클 워커의 하수인이고 넷 중 처음으로 찾아낸 놈은 콜걸 다섯을 불러 신나게 즐기다 붙잡혔다. 지오는 범인을 찾자마자 피떡으로 만들었다.

반쯤 헐벗은 콜걸들은 구석에서 그의 눈치를 봤다.

의자에 묶인 채 신음하는 놈 앞에 다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안녕.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

“퉤!”


놈은 피 섞인 침을 뱉었지만 지오의 몸에 닿진 못했다.


“아직 대화할 준비가 안 된 거 같네.”


재갈을 물리고 다시 팼다. 고통에는 한계가 없고 지오는 제국군에서 수많은 외계생명체를 심문한 이력이 있다. 심문에는 당연히 정신적 육체적 고문이 포함된다.

그의 기억으론 인간은 외계인에 비하면 고통에 매우 취약했다. 아니, 민감하다고 해야 할까.


“끄으으으!”


재갈 사이로 흐르는 고통에 찬 신음.

무표정한 지오의 얼굴과 맞물리자 콜걸들은 더욱 공포에 떨었다.


“자, 이젠 대화할 준비가 됐을까.”


재갈을 다시 풀어줬다. 이번엔 침을 뱉지 않아 다행이다. 왜냐면 더 고문하면 죽어버릴 테니까.


“왜 그랬어?”

“뭐, 뭘...”

“알잖아.”

“...”

“이래도 준비가 안 됐나.”

“마, 말하겠습니다!”


지오가 다시 재갈을 들자 놈은 급히 말했다.


“도, 돈을 받았습니다!”

“어린애를 강간하고 죽이라고?”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습니다!”


Money! a lot of money!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아무리 좆같은 청부업자라도 불문율은 있잖아?”

“...”

“누구한테 돈을 받았지?”

“그, 그게...”

“마이클 워커.”


더듬거리던 놈은 지오의 마지막 말에 숨을 들이켰다.


“폰 넘버.”


놈은 순순히 숫자를 불렀다.

신호는 금방 끝났다.


“안녕.”

“...Who?”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미스터 워커. 중요한 건 당신이 선을 아주 크게 넘었다는 거지.”

“...”

“이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조만간 널 찾아갈 거야. 그러니 일분일초라도 더 살고 싶으면 단단히 준비하라고.”


통화는 끝났고 지오는 놈이 가진 소음권총으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100유로짜리 지폐다발이 가득 든 가방을 콜걸들에게 던져주자 공포는 어디 갔는지 돈을 챙겨 냅다 튀었다.

달덩이 같은 엉덩이들이 씰룩거리는 모습이 아찔했다.

눈요기는... 좋구먼.


-정리해. G.

-CCTV, 셀폰, 블랙박스 전부 삭제 중... 완료.


이제 지오는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는 셈. 어차피 이 얼굴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가짜니 콜걸이든 다른 목격자든 어떤 진술도 무의미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한 곳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고속철도 떼제베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었다. 그는 런던행 열차를 탔다. 좌석에 앉아 신문을 폈다. 요즘 프랑스의 언론의 관심사는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영국에게 지는 건 죽어도 싫고 독일에 지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스페인,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의 축구사랑은, 아니 유럽인의 축구사랑은 유별났다.


-구시대 인류의 축구사랑은 유별나네. 근데 황제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았나? 일각에선 개발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유언비업니다.

-흠.


제국프로축구리그인 Galaxy-ball의 최대후원자는 다름 아닌 황실이다. 세븐마스터스리그에서 최고인기종목을 꼽자면 축구는 항상 세 손가락에 들었다.

폰이 진동하자 발신자를 확인하고 통화를 눌렀다.


“이 수석.”

“현지 직원을 따돌리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현재 지오는 유럽본부 직원과 장루데의 시니어 변호사 세빌조차 따돌린 채 혼자 움직이는 중이다.


“알아서 좋을 게 없거든.”

“범인은 찾았습니까?”

“하나 보내고 셋은 추적 중.”

“보내다니... 죽였다고요?”

“청부업자더라고.”

“맙소사! 이유는, 이유는 알아냈습니까?”

“메일 확인하고 다시 전화해.”


지오는 알려도 될 정보만 취사선택해 메일로 보냈다.

이택기의 전화가 다시 걸려온 건 10분이 채 안 돼서다.


“사실입니까?”

“True.”

“음.”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특히 호프먼은...”

“조치하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오태양이 다치거나 죽으면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할까? 아버지를 잃고 서주를 쑥대밭으로 만든 조조처럼 돌아버릴까?


“워커는 놔둬.”

“직접... 처리할 겁니까?”

“왜? 이상해?”

“이런 일은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 뒤처리? 아니야. 난 별로 개의치 않아. 내가 싫은 것은 명분 없는 죽음이지. 그냥 꼴리는 대로 사람을 써는 건... 정신병자야. 솔직히 난 폭력을 좋아해. 미치도록 사랑하지.”

“화가 많이 났군요.”

“맞아. 난 지금 화가 났어.”

“지원이 필요합니까?”

“놉!”

“혹시라도.”

“걱정하지 마.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 아, 세빌은 의심할지도 모르겠네. 그쪽은 돈지랄하든 협박하든 당신이 맡아줘.”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자 타이밍 좋게 런던에 도착했다.

지오의 두 번째 목표는 아주 유명한 호텔에 있었다. 스위트룸에서 호캉스를 즐기던 놈을 옥상으로 끌고 왔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G의 도움을 받으니 일사천리다.

첫 번째 놈과 마찬가지로 보자마자 피떡으로 만들었다.

만신창이가 된 놈을 옥상 끝에 세웠다.


“유언이 있어?”

“퍽!”

“섹스?”

“퍽!”

“섹스.”

“퍼.”


말을 끝마치기 전에 그대로 밀어버렸다.


“으아아!”


비명이 멀어진다.

구시대 인류는 날개가 없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다.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은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뭉개지고 터졌다. 오우! 떨어지는 중간에 어디에 걸렸는지 배때기가 찢겨 장기자랑?을 선보였다.


-남은 둘은 네가 처리해. G.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젠 반대를 시도도 안 해? 변했구나.

-제 윤리회로는 멀쩡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롸져.


구체적인 계획은 묻지 않았다. 희미하게 흩어지는 사이렌을 뒤로한 채 호텔을 나섰다. 내 흔적은 G가 지워버릴 것이다.


-기분 나빠.

-정신진단을 받겠습니까?

-아니.


후회는 없지만 뭔가 마음이 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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