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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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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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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지오 디 오리진 -46화-

DUMMY

“해외봉사는 처음이야! 두근두근해!”


강선아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성조가 마련한 전세기에 오르자 그제야 숨을 돌렸다. 이코노미석은 없는 올 비즈니스석 전세기를 보니 성조가 돈 좀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조그룹이 진행하는 상반기 가장 큰 해외봉사긴 했다.

전쟁 혹은 분쟁 중인 국가의 위험공역을 피해 날아가니 20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전세기라 덜 걸린 편이다. 인천을 떠난 뒤 22시간 만에 가나에 도착했다.

가나 외교부와 주가나 대한민국대사관에서 공동환영식을 개최했는데 역시나 유명한 연예인 위주로 돌아갔다. 지오와 강선아는 일반인 직원으로 위장해 먼저 공항을 빠져나갔다.

따로 고용한 가이드의 안내로 도착한 호텔은 여느 관광지 5성급 호텔과 비교하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지오는 가이드와 벨맨 셋에게 넉넉한 팁을 줬다. 며칠은 적응이 필요하니 호텔 근처를 벗어날 맘이 없다.


“아구구.”


화장을 대충 지운 강선아는 요상한 신음과 함께 침대와 한몸이 됐다. 잠에 빠져든 그녀를 확인하곤 짐을 정리했다.


-장을 봐야겠어. 마트가 있나?

-네.


불어를 많이 쓰는 주변국과 달리 가나는 영어를 썼다. 그렇다고 막 친영이나 친미는 아니었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듯 사회 전반이 부패했고 가나 경찰은 가나 국민도 믿지 않았다.

대충 장을 보고 돌아오던 중 이제야 호텔로 들어오는 봉사단을 보았다. 봉사단장은 성조물산 전무인 장태섭이다. 내년에 부사장 승진이 유력한 그는 인사고과 봉사점수 관리 겸 서아프리카 건설시장을 순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프리카 인프라 인스트럭쳐 부서장을 맡게 될 겁니다.

-결정된 거야?

-본사 이사회에서 밀어주는 장학생 중 한 명이니까요. 차후 언론에 배포할 수 있는 커리어를 만들어주는 거죠. 상류사회로 진입하려면 기부나 봉사는 필숩니다.

-미래의 사장단 후보군.


성조 서아프리카 주재원들은 봉사단 관리하랴 미래의 물산 사장님께 아부하랴 부패한 가나 경찰과 공무원들 비위 맞추랴 아주 바빴다.

장태섭 전무 아래 부장 그 아래 팀장의 줄을 잡은 대리 이현영은 봉사단 일정과 명단을 체크하다 갸웃거렸다.


“과장님. 이건 이상한데요?”

“뭔데?”


김종환 과장은 이현영이 건네는 파일을 받았다.


“기조실?”

“이상하죠? 기조실이 끼었으면 공문을 진즉 받았을 텐데...”

“잠깐.”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 김종환은 탄성을 흘렸다.


“모른 척해.”

“네?”

“그냥 모른 척하라고.”


김종환은 더 할 말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일단 알겠다 답하고 물러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눈치 보던 동기가 다가왔다.


“뭔데?”

“기조실 직원이 있거든. 근데 프리야.”

“프리? 행사 참여 안 하는?”

“응. 더 웃긴 건 비용도 프리야.”


마지막 말은 작게 속삭였다.


“비용 프리면... 로열패밀리?”


신용카드 한도가 없는 그 Free다.


“오 씨긴 해.”

“로패 맞네. 보자. 오지오? 기조실장님 이름이랑 똑같네.”

“아닐 걸? 실장님 본인이었으면 난리 났지. 아니야. 이름만 같아. 직급도 차장이고.”


본사 기획조정실장은 말만 실장이지 사장단에 속했다.


“그러네. 근데 맥스 카드라고? 과장님은 뭐래?”

“모른 척하래.”

“더 궁금해지잖아.”


여권을 복사한 파일철엔 화제의 기조실장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남자가 있었다.


“유부남이네.”

“응. 부인이랑 같이 왔어.”

“와. 부인이 강선아네.”

“알아?”

“포토그래퍼 강선아 몰라?”


이현영이 고개를 흔들자 김주아는 폰을 꺼내 SNS에 접속했다. 강선아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는 200만이 넘었고 요즘 유행하는 인플루언서로 불려도 틀리지 않았다. 마이애미 프린스호 이후 그녀의 SNS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아, 프린스호. 알아.”

“로맨틱 프러포즈로 난리였잖아. 그 주인공이 이 사람이네.”

“진짜 로열패밀린가?”

“오 씨잖아. 가능성이 있지. 근데 유부남이라 아쉽다.”


정리를 끝낸 이현영은 이제 쉴까 하다 김종환 과장의 호출을 받았다.


“현영 씨. 505호에 이것 좀 전해주고 설명해줄래요?”

“알겠습니다.”


수정된 일정표를 받아든 이현영은 승강기에 오르자마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505호는 방금까지 정체를 궁금해하던 인물의 방이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프로필에서 본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봉사단 지원팀 이현영 대립니다.”

“아, 들어와요.”


지오의 손짓에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벌써 그리우면서도 익숙하면서 냄새를 맡았다.


“한 그릇 하실래요?”

“가, 감사합니다.”


고국을 떠난 지 하루 사이에 라면이 그리워졌고 그 참을 수 없는 유혹에 굴복했다. 집 떠난 한국인에게 커피믹스는 무적이요 신라면은 신이다. 강선아는 삼양파고 지오는 진순을 좋아하니 신라면으로 타협을 본 것이다.


“현영 씨는 어떤 라면을 좋아합니까?”

“다 좋아하는데... 굳이 꼽자면 팔도 도시락?”


사도다! 사도!


“수정된 일정표에요. 차장님.”

“음. 리셉션은 뭐죠?”

“가나 외교부에서 진행하는 건데 참석 안 하셔도 됩니다.”

“소아병원 방문?”

“아, 그건 언론 브리핑 때문이고요. 역시 참석 안 하셔도 됩니다.”

“예배?”

“참석 안 하셔도 됩니다.”

“회식?”

“그건 가능하면 참석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케이.”


봉사단이니까 봉사만 할 리 없다. 본래 이런 행사는 친목도모가 주목적이다. 성조가 엮어준 또는 성조와 엮인 인맥은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니까. 성조를 중심으로 한 인맥네트워크는 점점 확장됐다.

이현영을 보내자 강선아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깼어?”

“누구야?”

“수정된 일정표 전해주러 왔어. 라면 먹을래?”

“응.”


신라면을 맛있게 끓여 대령했다.


“신라면이네.”

“삼양은 안 팔더라.”


사실 삼양도 팔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안 샀다. 라면으로 부부싸움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김치도 팔아?”

“호텔에서 주더라.”


김치는 주재원들이 준비했다. 봉사단 지원팀에 요리사를 배정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먹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다. 심지어 생수도 전세기 화물칸에 실어 가져왔다.

라면을 한 사발 하고 다시 침대 누운 강선아는 두어 시간쯤 지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샤워하고 메이크업하는 그녀를 멀뚱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디 가?”

“저녁에 세라랑 보기로 했잖아? 어, 내가 말 안 했나.”

“어.”

“쏘리. 당신도 준비해.”


참 빨리도 말해준다. 아는 사람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해 따로 뭉쳤다. 김세라의 객실은 톱스타답게 크고 넓었다.


“안녕.”

“어서 와요. 언니. 안녕하세요. 지오 씨.”


강선아와 볼키스를 나눈 김세라는 지오와 악수했다. 안쪽이 시끌시끌한 걸 보니 찾아온 사람이 꽤 많나보다. 이번 봉사에 참여한 연예인은 총 9명, 개중 톱스타급은 김세라를 포함하면 셋이고 나머지는 근래에 알음알음 알려진 신인급이다.

강선아만 환영하던 일행은 지오의 배경을 들은 순간 안면을 싹 바꿔 친근하게 굴었다. 이 얼마나 속물적인 인간들인가. 하지만, 탓하거나 비웃을 맘은 없었다.

세상살이가 다 그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당연했다.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캐슬 엔터 대표 이승댑니다.”


지오에게 깍듯하게 구는 중년인은 김세라가 소속된 캐슬 엔터테인먼트 대표였다. 누가 봐도 40은 넘어 보이는데 젊은 사람에게 굽실거리는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캐슬 엔터는 중견에도 못 미쳤다. 왜냐면 내세울 스타가 김세라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대표님이 직접 현장을 뛰십니까?”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대성조의 행사 아닙니까.”

“제게 아부해봐야 나올 건 없습니다.”

“우리 세라 잘 부탁드립니다.”


이 새끼 이거 뭔가 심각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이승대를 기점으로 눈치만 보던 매니저가 하나둘 지오를 찾았다. 대성조의 핵심부서인 기획조정실 임직원이란 명패는 그가 느끼는 것보다 한국인에겐 더욱 특별했다. 신인 남자배우 몇 놈은 노골적으로 호형호제를 바랐다.

훗! 그러나 난 쉬운 남자가 아니다.


“자기이이.”


강선아의 부름에 얼른 자리를 옮겼다.

사실 마누라에게만은 쉬운 남편이다.


“우리 자기가 말이야.”


밑도 끝도 없는 남편자랑이 질릴 법도 하지만 강선아의 연설을 듣는 그녀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술자리는 금방 파했다. 오랫동안 비행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으니 다들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다.

지오만 빼고 말이다.

동터오는 새벽 눈이 번쩍 떠진 그는 발코니로 나왔다. 메가빌딩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도시. 아프리카에선 그나마 잘사는 나라 축에 끼는 가나 수도치곤 솔직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봉사단이 도착한 이후 호텔 반경 50km 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대상 범죄는 총 37건입니다. 그중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3건입니다.

-납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는 없었습니다.

-시도는?

-모의나 시도는 현재... 9건입니다.


부패한 경찰이 활보하는 가나 수도권의 치안 수준은 이곳이 아프리카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도와 납치는 꾸준한 편이다.

남자든 여자든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삐! 봉사단에 대한 키워드가 발견됐습니다. 추적 중... 분석 중... 확인! 알아스카라 해방전선에서 봉사단에 대한 납치모의를 확인했습니다!

-알아스카라?

-니제르와 부르키나파소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반군입니다.


망막디스플레이에 상황이 떴다.


-알아스카라 얀살 지부의 몇몇 간부가 통신을 통해 봉사단 납치를 언급했습니다만 실행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모의 단계에서 끝난다면 상관없다.

팝의 여왕 캐서린 화이트의 경우 하루에도 수백 통의 협박편지와 e메일을 받고 수십 건의 납치위협과 팬인지 안티인지 모를 성범죄자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 다크웹에선 그녀를 대상으로 망상하는 음란물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저작권 따윈 존재하지 않는 역겨운 창작물이 인터넷에 널렸다.


-주시해.

-감시등급을 2단계로 변경합니다.


모의를 넘어 준비하는 단계로 들어가면 모를까 그전에는 굳이 많은 자원을 할당할 필욘 없었다.

봉사단의 오늘 중요 일정은 가나 외교부에서 주최하는 리셉션이다. 이쪽은 보통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을 중심으로 단장인 장태섭 위주로 돌아간다. 같은 봉사단이라고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진 않았다. 그건 비효율적이다.

오늘 우리 부부의 일정은 호텔 근처 탐방이다.

외국인이 많이 오가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만 돌아다닐 계획이다. 현지인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도착한 브런치 가게는 그럭저럭 괜찮다. 구걸하는 아이를 몽둥이로 패는 경찰만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너무하네.”

“어쩔 수 없어.”

“자기는 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행위 자체만 보면 비윤리적이긴 해. 하지만, 아이라서 순진할 거란 고정관념은 버려.”


어린애니까 착하고 순진하리란 생각으로 다가갔다간 팬티까지 뺏길지도 모른다. 굶주림에 익숙한 아이에게 남은 건 악과 깡뿐이다.


“인권은 언제나 상대적이었어.”


전쟁통에 벌어지는 그 참혹한 유린들,

인권은 분명 문명의 총아지만 지구 곳곳에는 여전히 야만이 가득했다. 애초에 사회운동은 문명국의 특혜다. 뉴욕 한가운데서 트랜스젠더권리시위를 벌여도 누구도 죽거나 다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중동에서 그랬다간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거나 참수, 화형당할지도 모른다.

마약과 전쟁 중인 아메리카 특히 중남미 마약조직은 공권력 따윈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어떤가? 극소수의 관광지를 빼곤 건장한 남성도 혼자 돌아다니기 힘든 위험지역이었다.

가나에서 기념품을 사자는 강선아의 말에 가나 초콜릿을 언급했다가 한심하단 눈빛을 받았다.


-아니, 솔직히 재미있잖아? 나만 재미있어?

-게임도 고자에 개그도 고잡니까?

-...


인간연구의 결과물이 쌓일수록 어째 건방져지는 느낌이다.


“와!”


오후에는 동물원을 찾았다.

아프리카 동물 하면 흔히 사자나 코끼리를 떠올리지만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고양이다. 아프리카 태생 고양이들, 수십 종에 이르는 이 교배종은 밀수가 성행할 만큼 수요가 많았다.

아프리카에서 반군이나 테러단체를 빼고 제일 강한 집단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밀수조직을 꼽을 것이다. 그들은 마약을 밀수하지 않는다. 희귀한 광물과 동식물, 곤충을 밀수했다. 전 세계 동식물밀수시장의 7할 이상이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귀여운 동물을 보고 밀수를 먼저 떠올리다니 사용자의 감성은 정말 메말랐군요.

-제국군이 행성을 점령할 때마다 군이 제일 먼저 조사하는 게 해당 식민지의 자연생태계야. 제국의 상류층들, 수집가들은 뭔가 신기한 게 발견된다 싶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든.


물론 불법은 아니다. 행성발전기금에 막대한 기부금을 냈으니까. 그래도 밀수가 이뤄지는 이유는 순전히 식민행성총독부의 방관에 가까웠다.


“판다는데?”


동물원을 나와 걸어가는 중에 잡상인이 붙었다. 우락부락한 남성이라면 가이드 겸 경호원이 밀어냈겠지만 깜찍한 꼬마 계집애의 부탁에 이끌려간 강선아는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냈다.

지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에에.”

“떼써도 안 돼.”


어디서 코 먹는 소릴! 귀여움에 섹시 한 스푼을 담은 치명적인 공격을 어렵게 받아넘겼다.

강선아가 품에 안은 건 고양이다.

그것도 그녀와 똑같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새끼고양이.

윽!

심장에 안 좋다.


“이렇게 귀여운데? 진짜 안 돼?”


새끼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지오를 올려다봤다.

허락 안 하면 나만 나쁜 놈이 될 분위기다. 하, 졌다. 지오는 여심을 공략할 줄 아는 영악한 어린 장사치에게 값을 치렀다. 웃긴 건 고양이보다 케이지 값이 더 비싸다. 이게 그 상술이란 걸까? 호구 당했다는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다.

호텔 직원은 고양이를 데려온 우릴 보고는 컨시어지를 통해 입양절차를 밟아주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강선아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보다.

가나 정부는 동식물 밀수를 강력히 규탄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동식물과 곤충 등은 중요한 수출상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이 밀수기업을 운영했다. 현대 아프리카 부족들을 부시맨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을 확률이 높은 마약이나 인신매매와 달리 동식물과 곤충 밀수는 동물보호단체 등의 소소한 저항뿐이다. 뉴욕에서 입으로 시위할지언정 아프리카로 찾아올 용기는 없었다.

봉사단이 나름의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우린 동물병원을 찾았다. 고양이 건강검사에 무려 3500달러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강선아는 마루라고 이름 붙인 새끼고양이를 옆에 끼고 살았다.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자 추종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언니! 드디어 냥냥펀치에 굴복하셨군요♥’

누구는 반려동물이라는데 지오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려는 무슨! 애완이지!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매장당할 겁니다. J.


먹고 싸고 자는 모든 걸 주인에게 의존하는 동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마음의 위안뿐이다. 물론 그것이 누구에겐 삶의 기쁨이자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나 상황에서도 동물의 권리가 사람 위에 있을 순 없었다.


‘뭐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


마루는 관심 없는 척하니 옆에 와서 치댔다.

누가 밥줄을 쥐고 있는지 귀신 같이 안다고 해야 할까.


“검역이랑 행정절차는 마무리됐어. 근데 어려서 장거리 비행을 견딜까 모르겠네.”

“어쩌지?”


강선아의 마음은 이미 봉사단에서 떠났다. 지오는 이현영을 통해 봉사단과 일정을 조정했다. 어차피 출정명단을 수정하는 건 일도 아니다. 홍보를 위한 겉치레행사는 물리치고 꼭 필요한 일정만 챙겼다.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의료와 교육 등 진짜 봉사에만 참여했다.

트러블이 없진 않았다. 외국인에게 친절한 원주민이 있으면 혐오와 증오로 가득한 사람도 있다. 제일 무서운 상대는 종교를 앞세워 화내는 이들이다. 이 종교적 광신자에겐 연민도 망설임도 없다.


-J. 몇몇 납치모의가 매우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철수를 권고합니다.

-반군인가 뭔가 하는 것들?

-갱단도 있고 반군도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지?

-72시간 내로 공격이 예상됩니다.

-취약점 분석.

-분석 중... 확인!


테러는 보통 모의단계에서 그친다. 한 1만 개의 테러계획이 시작되면 9999개는 실행되지 않았다. 왜? 자금도 사람도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라고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광신자는... 두려움이 적지.’


공포가 없지는 않다. 대신 적은 것이다. 본인들의 성서와 규칙을 외며 끊임없이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달려가는 공포를 이길 수 없었다. 매년 낭떠러지에서 죽는 사람이 왜 나올까? 낭떠러지가 위험한 줄 몰라서? 아니다. 자기는 멍청한 다른 이들처럼 떨어지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믿음!

그러므로 광신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었다.

믿음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본인들에게 천국의 삶이 기다린다고 믿었다. 황제를 신으로 믿는 제국도 똑같았다. 신과 악마가 싸우는, 아니 누가 신이고 악마인지 모를 우주대전에서 제국군은 오로지 황제의 깃발을 앞세워 깊고 깊은 심연으로 나아갔다. 두려움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 두려움을 광신으로 밀어냈다.


-주요목표는... 유명인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연예인이군.

-제일 쉽고 가치 있는 목표죠.


작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 성조그룹은 주재원의 경호 겸 감시를 강화했다. 해외에 나간 성조 임직원이 납치당할 경우 그 피해는 단순히 금전에서 그치지 않는다.

봉사단장인 물산 장태섭 전무는 호인好人으로 알려졌다.

실적을 위해 부하를 쥐 잡듯 잡는 임원 대다수는 배경이 약했다. 왜냐면 같은 사장단도 자산과 인맥에서 수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돈이 돈을 벌고 잘사는 사람은 계속 잘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학생이 꼭 가난하리란 고정관념은 버려라.


“안녕하세요. 차장님.”

“바쁜데 미안합니다. 이 대리.”


이현영은 이제는 거의 우릴 전담했다.

고양이와 노는 강선아를 일별한 그녀는 지오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갈 때 한 박스 가져가세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처음의 감사가 의례적이라면 두 번째는 진심을 담았다.

아프리카산 원두가 어쩌고저쩌고 해봐야 한국인의 입맛에는 스틱 커피가 딱이다. 스타벅스도 나라마다 호불호가 갈렸다.


“내일부터 코이카와 합동봉사가 있습니다.”

“코이카면? 정부?”

“네.”


코이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 대외무상협력사업 즉 봉사단이다. 성조그룹 봉사단도 원칙적으론 코이카의 협력을 받아 활동했다. 아무리 대大성조라도 국가의 대외신인도와 견줄 순 없었다.


“내륙으로 깊이 들어가진 않을 예정이고요. 가나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낫다 해도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아크라와 멀지 않은 볼타호 인근까지만 들어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잘했네요.”

“참여하실 건지...”

“마지막 행산데 참여해야죠.”

“알겠습니다. 아, 사모님께 사진작업을 요청해도 될까요?”

“자기?”

“할게.”


지오의 부름에 강선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었다.


“페이는.”

“됐어요. 봉산데.”

“어... 괜찮겠습니까?”

“그럼 재능 기부한다고 계약서를 만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현영은 돌아보지 않는 강선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떠났다. 그는 새끼고양이와 여전히 장난치는 아내 옆에 앉았다.


“왜케 쌀쌀맞아?”

“여우야. 여우.”

“여우? 고양인데?”


지오는 강선아의 손짓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마루를 바라봤다.


“아니, 걔 말이야. 걔.”

“걔? 이 대리?”

“어, 여우라니까.”

“왜?”

“딱 보면 알아.”


지오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사체를 찍었을까? 포토그래퍼는 어쩌면 현대적 관점의 관상가일지도 모르겠다.


“나쁜 여자 같진 않던데?”

“성격이 나쁜 건 아니야. 그냥... 본인의 장점을 잘 이용하는 거지.”

“소문이 돌아?”


커뮤니티의 소문은 굉장히 빨랐다. 폰을 끼고 사는 그녀들의 정보 전파속도는 실시간이나 마찬가지다. 봉사단이 결성됐을 때 그날 바로 그녀들만의 기간한정 단톡이 생성됐다.

어쩌면 남자들보다 여자들 조직이 서열에 더 민감하지 않을까 싶다. 강선아는 의외로 사내연애반대파였다.


“사내연애는 시작은 좋을지 몰라도 끝은... 별로야. 우리 스튜디오도 사내연애는 금지였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아?”

“맞아. 무슨 인격권 침해라고 듣긴 했는데... 난 내 직원들에게 연애를 권장하지만 공사를 구분하는 건 아주 중요해. 같은 직장에 연인이 있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집중력이 흔들리면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


회사에서 연애한다? 뭐 할 순 있다.

문제는 그로 말미암은 업무능력저하나 잦은 실수는 바로 고과에 반영될 것이다. 반대로 업무 능률이 오른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머릿속이 꽃밭인데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차라리 눈에 안 보이면 참을 수 있겠지만 바로 옆자리 혹은 같은 건물 안에 있으면 어떻게든 만날 기회만 노릴 것이 뻔했다.


“물론 사내연애를 금지할 순 없어. 그건 범죄니까.”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데 그걸 물리력을 동원해 떼어놓을 순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폭력이 된다. 그러나 조직사회에서 개인은 철저한 을이니 본인의 평판이 깎이는 건 감수해야 했다.

‘회사에서 연애질이나 하는 놈.’

일 잘하는 평판을 가진 직원의 실수는 실수로 웃어넘기지만 만약 회사에서 연애질이나 한다는 평판을 가진 직원이 실수하는 순간 엄청난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이 대리에게 과거가 있어?”

“어. 같은 부서 직원이랑.”


단순히 사내연애를 했다고 이현영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불륜.”


막장드라마의 불륜 스토리가 억지처럼 보여도 현실은 더 시궁창이다. 도리어 순화됐다. 수많은 불륜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벌어질 것이다. 불륜커플이 과연 불륜이 옳지 않다는 걸 모를까? 아니다. 그들은 알면서도 저지른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러니까 남자들이 껌뻑 넘어가지.”

“소문이나 의심뿐이야 아니면 팩트가 있는 거야?”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

“나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게 아니면 믿지 않아. 끝까지 들어.”


욱하려는 강선아에게 강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내게 당신에 대한 험담과 루머를 말해도 난 믿지 않아. 왜냐면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강선아란 사람을 믿어 의심치 않아.”


반발하려던 강선아는 목구멍으로 올라온 말을 삼켰다.


“다시 물을게. 이 대리가 정말 불륜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어?”

“음...”

“소문뿐이구나.”

“하지만, 여럿이 똑같은 말을.”

“그만.”


지오는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자기가 남의 허물만을 들추는 용렬한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아. 당신은 존경받는 사진예술가이자 경영자야. 내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멋진 여자지.”


강선아는 자연스럽게 지오에게 안겨왔다.


“미안.”

“설마 이 대리랑 나 사이를 질투한 건 아니지?”

“아니거든!”


지오의 가슴팍을 밀치다 그가 당기자 모른 척 다시 안겼다.


“나 늙었지?”

“아니.”

“귀국하면 관리 빡세게 받으려고.”

“지금도 예쁘다니까.”

“아니야. 아니야.”


언제부턴가 강선아는 연상이란 것에 콤플렉스를 가졌다.

서로를 품에 안고 우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강선아는 어렸을 때 고양이를 키웠다고 한다. 어쩐지 마루를 대하는 모습이 어설프지 않았다.

고양이별로 떠난 걔 이름도 마루였다.

그러니 이놈은 마루 2호기인 셈.

동물이라 그런지 감각이 좋다. 자길 예뻐하는 사람 곁을 맴돌 뿐 내 근처에는 아예 안 왔다. 난 동물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애정을 쏟을 만큼의 관심은 없을 뿐. 그래도 나와 친해지려는지 하루 서너 번은 다가와서 치댔다.

영역표시를 하듯 몸을 비벼댔다.


“마루. 엄마 없어도 잘 지내야 해.”


강선아는 마루에게 얼굴을 마구 비볐다.

아니, 겨우 하루 못 보는데 영영 이별할 것처럼 아쉬워했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인 줄 알겠어.”

“자기 혹시 댕댕이파야?”

“댕댕이? 개? 아니, 굳이 따지면 난 관상파지.”

“관상파?”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아.”


동물은 귀엽다.

한두 시간 데리고 노는 거야 누가 못 하겠는가. 문제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 보기보다 만만찮다는 것이다.


“우리 마루 잠시만 안뇽! 사랑해! 쪽쪽!”


뭔가 고양이새끼한테 패배한 기분이 든다.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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