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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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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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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지오 디 오리진 -42화-

DUMMY

“신도시?”

“3기 신도시와 재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난다 긴다는 건설사는 전부 뛰어들었습니다.”


장원상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토지개발이 다 그렇듯 작은 정보만으로도 투기판이 열립니다. 판이 벌리면 온갖 잡상인이 다 찾아오죠.”


돈 있는 놈만 어슬렁거릴까? 아니다. 도리어 없는 놈이 뭐 하나 주워 먹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작년과 비교해 강도와 주거침입 등 강력범죄는 네 배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실종은요?”

“실종은... 스무 배 이상입니다.”


2,000%! 내 주식이 그렇게 올랐으면 기쁨의 환성을 질렀겠지만 안타깝게도 범죄가 20배 가까이 폭증했다면 거긴 슬럼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이 부족한가요?”

“그보다는 의지가 없는 겁니다. 지역을 장악한 게 다름 아닌 상태파라는 조폭이거든요. 두목은 안상태, 현진종합개발 회장이자 시의원이기도 합니다.”

“조폭이 시의원이라... 가관이네. 그래서요?”

“돈과 사람이 몰려드니 외부세력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상태파는 전국구엔 미치지 못합니다. 여기에 끼어든 곳이 극동관광입니다. 회사 간판은 위장이고 김두진이란 인물이 조직한 연안극동파가 본쳅니다.”

“전국구?”

“경찰이 발표하는 조직범죄 현상수배자 열 명 중 매년 빠지지 않고 선정되는 놈입니다. 그쪽에선 독사라고 부릅니다.”


독사는 정말 특징 없는 별명이다.


“우리도 신도시에 뛰어들었습니까?”

“물산에서 움직이는 걸로 압니다.”


성조물산은 대한민국 도급 1위에 빛나는 대형건설사다.


“정확히 어느 부서에서 맡은 겁니까?”

“잠시만... 기획 3팀입니다.”


인트라넷으로 뭔가 확인한 장원상이 답했다.


“기획 3팀장은 오현우 이삽니다.”

“오 씨라면?”

“작년 물산 부사장으로 영전한 오석현의 동생입니다. 명예회장님 친동생인 오장군 부회장의 손자죠.”


오석현은 오장군의 장손이다.

오천명도 그렇고 오장군도 아들놈들보단 손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가보다. 30줄의 젊디젊은 놈이 성조물산 이사라니, 역시 로열패밀리는 딴 세상에 살았다.


“오현우는 어떤 인물입니까?”

“전형적인 재벌 엘리틉니다. 성격은 모나지 않은 편이고 여성편력이나 마약, 알콜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경영능력과 사교성 모두 장손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가정교육을 꽤 잘 받았다.

아니면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든가.


“재정은?”

“미리 상속받은 재산이 제법 많습니다. 대충 900억대?”


지오는 휘파람을 불었다.

아들도 아니고 둘째 손자한테 900억대 자산을 상속할 정도면 오장군의 재산이 얼마일지 감도 안 잡힌다. 역시 성조! 대한민국 No.1 재벌의 위용에 감탄했다.


“기획 3팀을 근접 관찰하세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차장님.”


지오는 대답 대신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오현우와 함께 찍힌 사람이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속 사람.


“누군지 알아보겠습니까?”

“...정태석.”


경일가家 차남 정태석, 이 패배한 개새끼는 도통 포기할 줄 모른다.

오지은의 부탁을 받은 지오는 동네를 둘러보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금싸라기.’


대한민국 재계 10위 안에 드는 재벌 가운데 건설사가 없는 대기업은 없었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첨단반도체를 만들고 산만큼 거대한 배를 만들어도 옛날에는 다 땅장사, 물장사, 설탕장사로 시작했다.

성조도 건설이 없었다면 오늘의 왕국을 세우진 못했을 것이다.


“정태석의 마크가 느슨해진 겁니까?”

“...”

“수석에게 전하세요.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알겠습니다.”


장원상은 소태 씹은 얼굴로 돌아갔다.


-놈이 오현우와 왜 만났지?

-확인 중... 둘은 원래 친분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친분 때문에 끈 떨어진 놈을 만나준다고?

-심층분석 중... 둘째 오현우는 첫째 오석현의 부사장 승진에 불만이 많습니다. 물산 입사는 오현우가 더 빠릅니다. 밑에서부터 실적을 쌓아왔는데 형이 갑자기 부사장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셈이죠. 주인공이 아니라 제 형과 아비에게 유감이 있습니다.

-정태석은 왜 끼는데?

-정태석에겐 오래전 상속받은 땅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신도시군.

-대략 대지 2만 2천 평, 현재 가격으론 평당 150만 원이니 약 360억 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지오는 속으로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시발! 뭐만 하면 억이다.


-오현우는 실적을 올려 제 형에게 도전할 생각인가보네. 그럼 정태석은 땅을 빌미로 뭘 요구할까?

-당장 요구하진 않을 겁니다. 혹시라도 오현우가 물산을 차지하는 미래라면 모를까 지금은 몸을 낮추는 게 살길이죠.

-감시등급을 올려.

-끈 떨어진 정태석이 위협이 되겠습니까?

-주인공놈에겐 아니겠지만 만약 윤소희와 헤어지면 그녀를 노릴 가능성이 있어. 덩달아 지인인 선아도 위험해지겠지.


그 꼴은 못 본다.


-그건 그렇고, 우리 지은이의 언니 오빠들을 어떻게 한다?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하책이야.


오지은의 말 대로 동네에서 언니 오빠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거기에 심각한 범죄는 없었다.

가출팸

가출한 사람끼리 가족을 만들었다. 진짜 가족이 싫어 가출했는데 또 가족에 들어가다니 아이러니였다.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대가 주를 이뤘다.

미국에 있는 에이프릴 일행을 가출팸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도 이 가출 문제가 심각했는데 전국에 4만 명 가까운 청소년이 집을 떠나 길거리를 전전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신도시와 재개발 소식으로 들뜬 지역에 돈과 사람이 몰리자 왠지 모르게 가출하는 청소년이 급증했다. 왜? 망가진 가정은 도시보다 시골에 더 많고 더 심각했다. 남겨지고 방치된 아이들은 꿈도 희망도 없다. 10대 청소년의 허세와 울분을 가볍게 여기면 곤란했다.

이 충동적인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지금은 분노에 가득 차 이성적 판단이 어려웠다.

오길강 원장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원생 몇 명도 보육원을 나와 가출팸에 합류했다. 오길강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경찰은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장이 뭔가 잘못했으니 애들이 가출한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베이비시터가 내 운명인가보다.

오랜만에 찾은 읍내는 정말 많이 변했다.

상가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복덕방이 줄지어 늘어섰다.

음식점인지 유흥주점인지 모를 가게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밤을 밝혔다. 한 움큼의 땅이라도 가진 노인네는 투기꾼의 사탕발림과 눈웃음치는 아가씨들에 홀려 눈탱이를 맞을지도.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허름한 지하 당구장이다.

실내금연 따윈 개나 준 담배 냄새와 하모니를 이룬 건 짜장면 냄새다. 당구에 짜장면 내기가 빠지면 섭섭하다. 계산대 앞에 앉은 주인장은 지오를 보더니 갸웃거렸다.

동네 건달과 발랑 까진 중고딩만 손님으로 받았는데 한눈에 봐도 비싼 양복을 입은 사내는 처음이다. 체격만 봐도 물근육인 양아치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런 사람이 당구나 치러 왔을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쭤볼게 있는데 말입니다. 혹시 이런 친구들을 본 적 있습니까?”


지오는 사진 사이에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슬쩍 끼웠다. 주인장은 누가 볼까 얼른 현금을 챙기곤 활짝 웃었다.


“어디 보자아아. 음.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이름이 뭐더라...”


지오는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더 꺼냈다.


“원식이, 맞아요. 강원식이 패거립니다.”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무려 5만 원 권 열 장을 꺼냈고 상대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말했다.


“나가셔서 왼쪽으로 한 백 미터쯤 걸으시면 성삼모텔이라고 있거든요. 거기가 걔들 아지틉니다.”

“감사합니다. 번창하세요.”

“안녕가십시오!”


주인장은 재신을 영접한 사람처럼 깍듯이 인사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지오가 사라지자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폰을 꺼냈다.


“어, 저 당구장 최 씹니다. 여기 양복쟁이가 하나 찾아와 원식이를 찾네요. 네. 생긴 게 경찰 같진 않고요. 네. 네. 체격이 아주 좋습니다. 양복이요? 아주 비싸 뵈던데...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주인장은 당구삼매경에 빠진 건달 한 놈을 불렀다.


“야! 찬호. 이리 와봐.”

“아이, 왜 불러요?”

“새끼가! 어른이 오라면 올 것이지!”


주인장이 성을 내자 건달은 어기적거리면서 다가왔다.


“왜요?”

“너 지금 원성 가서 외지인이 원식이 찾는다고 전해.”

“강원식이요?”

“어.”

“그 새끼는 또 뭔 병신 짓을 저질렀대요?”

“쓰읍! 잔소리 말고 빨리 안 가?”

“알겠다고요.”


주인장이 손을 올리자 건달은 줄행랑쳤다.

지오는 건물 밖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사내를 봤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J.

-시골 당구장은 예로부터 지역범죄사관학교 같은 곳이니까.

-이 시대를 살지도 않았잖습니까?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


지역범죄는 일반적인 범죄와는 다르다. 시골 특유의 폐쇄성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지역 전체가 알게 모르게 동조하는 경향이 짙다. 본인들은 그걸 의리로 칭송하지만 밖에서 보면 지역이기주의의 끝판왕이었다.

사내의 뒤를 쫓아 당도한 곳은 읍내 끝자락에 위치한 판자촌과 비닐하우스가 뒤섞인 이상한 곳이었다. 컨테이너도 얼기설기 엮여 마치 미로를 방불케 했다. 미관상 절대 좋다고 보긴 어렵지만 나부끼는 현수막들을 보니 뭐하는 곳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주민생존권 절대보장!』

『지자체와 시공사는 폭거를 멈춰라!』

용역이 꼭 서민을 핍박하는 쪽에 서지는 않았다. 요즘엔 오히려 드러눕는 반대시위에 더 많이 동원됐다. 전문시위꾼들의 존재를 쉬쉬하지만 그들은 분명 존재했다.


“명지 아재. 당구장 최 사장이 원식이 보고 잠수 타래요.”

“와?”

“몰라요. 뭔 외지인이 원식이를 찾는다대요.”

“외지인? 누구?”

“양복쟁이던데... 한가락 하게 생겼던데?”

“야! 강원식이 어디 갔나?”

“원식이요? 즈그 애들이랑 명촌초에 나가 있을 걸요?”

“명촌초는 와?”

“아, 그거 있잖아요. 무슨 철거반대연합횐가 뭔가에서 연설한다고 거기 이바구로 동원됐죠. 와요?”

“이 새끼는 뭔 짓을 하고 돌아댕기는데 외지인이 찾아다녀? 너 뭐 아는 거 있냐?”

“강원식이... 그거 가출한 애들 모아서 대장짓 하던데?”

“하, 이 새끼! 미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야. 일단 숨으라고 해.”

“외지인이 누군지 안 알아보고요?”

“그건 천천히 알아봐. 형님한텐 내가 연락드리마.”

“알겠소.”


조명지는 폰으로 가득한 상자를 뒤적이다 하나를 꺼냈다.


“어, 안녕하십니까. 종철 형님. 다름이 아니라 원식이 때문에 그라는데. 네. 연락받으셨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애들 시켜서 숨기겠습니다. 네. 나중에 소주나 한잔 사시우.”


전화를 끊은 조명지는 사람을 불렀다.


“강원식이 어디 제주도나 일본으로 보내.”

“심각하요?”

“거 양복쟁이놈이 뒷배가 있나보던데?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서울서 내려온 놈 같대.”

“아따, 이 새끼는 누굴 건드린 겨. 하여튼 지 애비나 자식새끼나 계집년에 환장해서는, 쯧쯧!”

“말조심해라. 종철 형님 아직 안 죽었다.”

“언제 적 종철 형님이유?”


강원식의 부친 강종철은 한때 이 동네를 주름잡던 주먹이었다. 지금이야 나이 들어 골골한다지만 지금 은퇴자를 예우하지 않으면 자기들도 늙어서 똑같은 꼴을 당할까 두려웠다.


“애들 시켜서.”


쾅-

컨테이너 문짝이 부서질 듯 열리며 누군가 굴러들어왔다.


“억!”


조명지 아래 잡일하던 덩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져 신음했다. 지오는 엉거주춤한 조명지를 보며 씩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조 사장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죠?”

“외지인?”

“외계인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농을 건넸지만 썩 재미있는 반응은 없었다.


“너 이 새끼! 누군데 함부로 주둥이를, 컥.”


호기롭게 나선 졸개는 울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옵니다. 사장님.”


지오가 컨테이너 창문을 두드리자 뿌옇게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수많은 양복쟁이가 보였다. VG-베스타 글로벌에 요청한 지원군이다. 덩어리 물근육들이 아니라 진짜 싸울 줄 아는 베테랑이었다.

그들 앞에 쓰러져 신음하는 이는 전부 조명지 부하들이다.


“원하는 게 뭐요?”

“강원식.”

“원식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정심보육원 아십니까?”

“정심? 아, 문천초 옆에 있는 거기? 설마...”


지오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조명지는 헉! 했다.


“당신...”

“거기까지! 뭐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진 마시고요. 저는 강원식을 원합니다.”

“그라지 말고 종철 형님께 먼저 연락하는 게 어떻겠소?”

“자식놈을 반병신으로 만들 거라고 알려주라고요?”

“아따! 그 사람 참. 대체 뭔 일인지나 압시다.”

“그건 저분이 더 잘 설명해줄 것 같네요.”

“잉?”


지오의 턱짓에 이제 막 고통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사내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진기야? 이게 뭔 소리고?”

“아... 그게 말입니다. 형님.”


조명지는 아까 전 보였던 반응을 곰곰이 되새김질했다.


“야! 이 새끼야! 너 아까 전에 지 애비나 자식새끼나 계집년에 환장했다고 말했지? 맞아. 너 분명 그렇게 말했어. 너 뭐 아는 거 있지? 그치?”

“아, 형님. 그게...”

“똑바로 말해! 새꺄!”


조명지가 야구방망이를 쥐자 상대는 급해졌다.


“말하겠습니다! 말해요!”

“빨리 말해!”

“아! 진짜! 전 성원이한테 부탁받은 거뿐입니다!”

“성원이? 상태파 그 김성원이?”

“네.”

“하, 시발!”


조명지는 인상을 팍 쓰더니 야구방망이를 내던졌다.


“설명해!”

“상태파가 지금 극동이랑 기싸움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성원이가 수를 냈어요. 애들을 이용해 거 뭐시냐 공권력 좀 동원하자고요.”

“어떻게?”

“그니까 술 취한 극동새끼들이 미자들 데리고 놀다가 그... 있잖습니까.”

“미성년자 약취, 폭행.”


마지막 말은 지오였다.


“맞습니다! 그거! 미자 관련 범죄는 거 법새들이 안 봐준다고 카던데?”

“지구대 윤 소장도 관련됐구먼?”

“윤 소장이 안 회장님께 받아먹는 게 많잖습니까.”

“회장님은 무슨! 시발! 양아치새끼지.”

“그래도 안상태 그 양반이 고향 발전에 많이 이바지했지요.”

“좆같은 소리 말고! 강원식이 데려와.”

“종철 형님은?”

“야!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얼른!”

“알겠심더.”


지오의 눈치를 보던 사내가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나자 VG 직원 두어 명이 따라붙었다. 그래도 여전히 컨테이너를 둘러싼 양복쟁이는 많았다.

지오는 넘어진 철제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 종철 형님이랑 별 사이도 아닌 거 같은데 왜 아들놈을 보호합니까?”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오.”

“깡패의 의리?”

“이 바닥이 아무리 좆같아도 우리도 언젠간 늙지. 늙으면 뭐 수발 들어줄 자식새끼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어디서 오셨소? 서울 계보요?”


지오는 대답 대신 명함을 건넸다.


“성조? 하, 내가 아는 그 성조?”

“맞습니다.”

“명년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될 뻔했구먼! 하하.”


조명지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성조다. 성조. 대한민국 전 국민이 다 아는 그 성조였다. 안상태든 강종철이든 누구든 납작 엎드려서 빌어야 할 상대다.


“조 사장, 뭔 일이요?”


사람들이 몰리니 당연히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했고 주름진 얼굴의 제복경찰이 다가왔다. 쓰러져 신음하던 덩치들은 진즉 치워졌다.


“윤 소장이요. 뭐 하러 오셨소?”

“뭐 하러 오긴! 신고 받고 왔지. 근데 이분들은...”

“내 손님이요.”

“손님... 맞아? 아닌 거 같은데.”

“거 시빌 걸 거면 그냥 가소.”

“안녕하십니까. 조명지 사장님을 뵈러 왔는데 사소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지오는 경찰에게 명함을 주었고 윤오중은 깜짝 놀랐다.


“성조요?”

“네.”

“내, 내사마! 바쁜 일이 있어서... 조 사장도 고생하소!”


뭐 얻어먹을 것 없을까 기웃거리던 욕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줄행랑쳤다.


“쯧쯧! 토박이만 아니면.”

“아직도 남강 쪽은 윤 씨 세상입니까?”

“그렇지요. 사돈의 팔촌까지 죄 불러 모아 면장이든 읍장이든 군수든 다 해먹으니 그 권세가 어디 가겠소. 칼만 안 들었지 안상태랑 다를 거 없소. 그건 그라고, 어디 친구얘기 좀 해보소. 누가 어디 전쟁 가서 죽었다 카던데? 다 헛소문이었구먼.”

“전쟁을 하러 가긴 했죠. 죽진 않았지만.”

“그라요? 하긴 동네최고박투쟁이가 쉽게 뒤질 리 없지요. 나이는 내보다 어려도 내사마 존경하고 있소.”


컨테이너 내부를 둘러본 지오는 한마디 했다.


“보상금이 짭니까?”

“기업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요. 거기다 남강새끼들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시장이란 작자가 말을 바꾸더이다. 아주 거저 먹을라고 카데.”

“언론을 이용해보진 않고요?”

“기레기들? 첨엔 내도 방송국에 전화하고 그랬지. 근데 내려온 놈들이 이상한 짓을 많이 하데? 딱 보니 시공사 돈을 처먹은 기지.”

“어디가 제일 문젭니까?”

“어디긴...”

“성조군요.”


대한민국 건설도급 1위란 말은 제일 많은 파이를 가졌단 뜻이다. 지오는 폰을 꺼냈다.


“이 수석.”

“차장님.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고향방문에 왜 어깨를 동원한 겁니까?”

“그보다 여기 문제가 많아.”

“문제라면... 물산이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중이거든.”

“보고는 받았습니다.”


장원상을 통해 오현우와 정태석의 만남이 이택기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 입장은?”

“오현우는 오씨일갑니다.”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일단 둘 다 손 좀 봐줘야겠어.”

“어쩌려고요?”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그치?”

“...”

“허락한 걸로 알지.”

“끊습니다.”


지오는 입을 벌린 채 굳어진 조명지를 보곤 싱긋 웃었다.


“조 사장님. 우리 같이 일이나 하나 합시다.”

******




강원식은 금방 붙들려왔다.


“읍읍!”


입을 막고 팔다리가 결박된 채 의자에 묶였다. 지오는 조명지와 함께 강원식을 찾아왔다.


“강원식 씨. 이분이 누군지 알죠?”

“원식아. 와 그랬어. 그냥... 깜에 맞게 소일거리나 하지.”

“읍읍!”

“쯧쯧!”


조명지는 발악하는 강원식을 보며 혀를 찼다.

강종철이 도착한 건 한 5분 뒤였다. 부친을 보자 살길이 보였는지 강원식은 더욱 격렬히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무릎 꿇는 아버지의 행동에 산산이 깨어졌다.


“살려주십시오!”

“강종철 씨. 일어나세요.”

“살려주십시오! 조 사장, 도와주게.”


지오에게 무릎 꿇는 한편 조명지에겐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형님. 이건 내 손을 떠났습니다. 형님 자식새끼를 도우려다 내도 죽다 살았다고요. 이해 좀 해주소.”


조명지는 질색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내가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자식이 한 명뿐입니까?”

“...아니오.”

“그렇죠? 무려 아들이 셋에 딸도 셋이나 더 있지 않습니까? 한 명쯤은 없어도 뭐... 티도 안 나겠네요.”

“내가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남은 자식이나 잘 건사하면 됩니다.”

“내가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선생.”


자존심인지 아니면 진짜 부정父情인지 잘 모르겠다.


“강종철 씨. 내 이름은 오지옵니다.”


지오는 진심으로 아무 유감이 없었다.


“기억하십니까?”

“...음. 기억합니다.”

“거의 20년 전이군요. 그때 제가 여덟 살이었죠. 정심보육원이 이 동네에 들어설 때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보육원은 누가 뭐래도 혐오시설이다. 진실이 아니라 대중의 인식이 그렇다. 요즘은 임대아파트를 혐오시설로 부를 지경이니 보육원에 대한 불호不好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참 웃기지 않나요? 그때는 원장님과 아이들이 무릎 꿇고 빌었는데 오늘은 당신이 무릎 꿇고 빌고 있군요. 세상사가 요지경이에요.”


20년 전 강종철은 한창 때였다. 지금의 안상태와 비슷한 위상으로 이 동네를 주름 잡았다.


“건장한 남정네들이 찾아와서 깽판을 치기 일쑤였죠. 이유는 그냥... 심심하니까 놀러왔어요. 남들이 다 화내니까 자기들도 화풀이해도 된다고 믿었죠.”


이게 건달인지 양아치인지 동네주민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냥 이 동네 사는 인간들 대다수가 보육원을 싫어했다.


“그때 다짐한 게 있어요.”


보육원 남자 원생은 밖으로 나갔다 얻어터지기 일쑤고 여자 원생은 희롱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맞아서 어딘가 부러진 아이도 많았고 심지어 자살한 원생도 있다.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에 조직적으로 괴롭힘 당하면 멘탈이 쿠크다스처럼 바사삭! 부서졌다.

21세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염전노예가 괜히 튀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폐쇄성은 상상할 수 없이 어둡고 깊었다.


“사람새끼가 안 될 것들은 몽둥이가 약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조 사장님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동네 체면과 동향 찬스도 있으니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지오의 턱짓에 2m에 가까운 거구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가왔다.

♡사랑의 매♡

야구방망이 표면에 음각된 글씨다.


“어디 보여주세요. 강종철 씨.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엇나간 아들을 교화할 수 있다는 걸. 짐승을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아니면... 지도교사를 초빙해드릴까요?”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던 덩치가 빙글 웃었다.


“내가... 내가 하겠습니다.”


각오를 굳힌 강종철은 사랑의 매를 넘겨받았다.


“읍읍!”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는 부친을 보는 강원식은 더욱 발악했다. 지오는 의자를 끌어다 아주 잘 보이는 일등석에 앉았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녹화해. G.

-Got it.


애들한테 보여줘야지.


“읍읍”


공포에 질린 저 비루한 모습을.

좁디좁은 시골바닥에서 으스대는 거지왕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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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디 오리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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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지오 디 오리진 -56화- +7 22.05.31 4,870 162 29쪽
55 지오 디 오리진 -55화- +5 22.05.31 4,521 176 17쪽
54 지오 디 오리진 -54화- +4 22.05.31 4,486 171 20쪽
53 지오 디 오리진 -53화- +7 22.05.31 4,654 173 26쪽
52 지오 디 오리진 -52화- +7 22.05.31 4,554 168 17쪽
51 지오 디 오리진 -51화- +6 22.05.31 4,518 164 17쪽
50 지오 디 오리진 -50화- +4 22.05.31 4,615 173 23쪽
49 지오 디 오리진 -49화- +8 22.05.31 4,568 164 20쪽
48 지오 디 오리진 -48화- +23 22.05.31 4,611 188 11쪽
47 지오 디 오리진 -47화- +220 21.09.01 6,359 213 16쪽
46 지오 디 오리진 -46화- +11 21.09.01 5,111 182 25쪽
45 지오 디 오리진 -45화- +6 21.09.01 4,972 176 18쪽
44 지오 디 오리진 -44화- +7 21.09.01 5,059 172 24쪽
43 지오 디 오리진 -43화- +15 21.09.01 5,053 193 18쪽
» 지오 디 오리진 -42화- +45 21.04.20 6,239 212 22쪽
41 지오 디 오리진 -41화- +8 21.04.20 5,262 177 10쪽
40 지오 디 오리진 -40화- +10 21.04.20 5,270 181 14쪽
39 지오 디 오리진 -39화- +4 21.04.20 5,359 176 16쪽
38 지오 디 오리진 -38화- +7 21.04.20 5,349 178 21쪽
37 지오 디 오리진 -37화- +4 21.04.20 5,343 180 12쪽
36 지오 디 오리진 -36화- +9 21.04.20 5,325 175 14쪽
35 지오 디 오리진 -35화- +5 21.04.20 5,358 180 11쪽
34 지오 디 오리진 -34화- +7 21.04.20 5,487 169 13쪽
33 지오 디 오리진 -33화- +9 21.04.20 5,646 200 15쪽
32 지오 디 오리진 -32화- +17 21.03.19 6,156 211 17쪽
31 지오 디 오리진 -31화- +4 21.03.19 5,692 207 19쪽
30 지오 디 오리진 -30화- +9 21.03.19 6,048 188 26쪽
29 지오 디 오리진 -29화- +6 21.03.19 5,940 185 16쪽
28 지오 디 오리진 -28화- +22 21.02.27 6,524 214 17쪽
27 지오 디 오리진 -27화- +9 21.02.27 6,177 20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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