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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냥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 속의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선물냥
작품등록일 :
2021.08.08 10:16
최근연재일 :
2022.01.11 18:56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10,420
추천수 :
271
글자수 :
387,708

작성
22.01.06 21:18
조회
34
추천
1
글자
7쪽

101. 다른 이의 미소

DUMMY

“그만... 제발 그만...”


마왕은 다시 한번 그녀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둔탁한 음과 함께 그녀는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입에서 새어나오는 침은 주체할 수 없었다. 명예든 체면이든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절박함. 울음으로 뒤범벅된 그녀의 목소리는 마왕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자비가 남아있다면 진작 그만두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묵직한 발이 그녀의 허리를 밟았다.


-우두둑-


갈비뼈가 부러졌다. 절단된 발목에서 피가 넘쳐 흐르고 가슴은 부어올랐다. 그녀는 절망의 비명을 끊임없이 질러댔다. 목이 쉬어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이 미친놈아! 개새끼야!‘


그녀는 온갖 욕짓거리와 함께 저주의 말을 퍼부었지만 이것 모두 약자의 발악일 뿐이었다.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계속해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아무도 자신을 내려다보지 않는 것. 열등감에서 헤어나와 복제품이 아닌 신으로 우뚝 자리매김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용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프린시피아가 남긴 마지막 희망. 그것이 자신에게도 희망이 되리라 믿었다.


이방의 용사 그리고 최초의 용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는 멀리 떨어져 관망하는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조금씩 알려준다면 그 누가 이기든 결국 자신의 승리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사실은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주변 사람들은 도구이자 이용수단. 말그대로 그저 재미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냥개는 주인을 물지만 체스말은 사용자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것이 수녀의 생각이었다. 모두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체스말로 삼고 싶었다. 큰그림을 위한 계획.


하지만 애들의 소꿉장난 그 이상도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뭘 그렇게 잘못했나고!“


악에 받친 표정.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말투. 그녀는 잘린 발목을 질질 끌면서 앞으로 기어나갔다. 바닥 위에 핏자국이 그녀를 따라 길게 남았다.


마왕은 그녀의 다리를 잡고 자신 쪽으로 세게 잡아당겼다. 끌리지 않으려고 손톱으로 땅바닥을 긁어댔지만 소용없었다. 손톱이 깨지고 빠졌지만 계속해서 발악했다.


”이제 진짜로 그만하자.“


마왕은 검을 높이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끝내야만 했다. 이 바퀴벌레 같은 질긴 인연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를 막는 것은 다름 아닌 레아의 부름이었다.


”용사!“


그녀는 애타게 용사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마왕은 그 흙먼지 속에서 들려오는 간절한 목소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것은 수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레아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희망!‘


곧이어 수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마왕은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곧바로 검을 내리쳤다.


붉은 피와 함께 수녀의 머리가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붉은 피가 세찬 물길처럼 콸콸 쏟아졌다.


”끝났어.“


그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마지막 여정이 이렇게 끝이 났다. 결국 남은 것은 손에 적신 피뿐이었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저 멀리 흙먼지 속에서 레아의 실루엣이 보였다. 붉은 긴 머리에 하얀 얼굴. 이제야 그녀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커다란 분홍 눈동자가 마왕을 담고 있었다.


레아는 마왕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왔다.


’진짜 말 안듣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쓴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그의 머리가 그녀의 품 속에 파묻혔다. 편안함이 마왕의 온 몸을 감쌌다. 그의 차가운 심장마저 녹아버릴 것 같은 따스함.


그녀가 너무 그리웠다.


”수고했어요. 용사님.“


’용사님?‘


순간 들린 이질적인 단어에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레아가 한번이라도 용사님이라는 단어를 붙힌 적이 있던가?


그녀는 레아가 아니었다.


마왕의 옆구리에 단검이 깊숙이 박혔다. 신음소리도 낼 새 없이 레아는 그를 발로 밀쳐냈다.


”커헉.“


바닥에 떨어지며 몸 안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는 몸에 박힌 단검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와 이번에도 아슬아슬했어요. 그쵸?“


그녀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이 멍청한... 아니지 착한 년이 이렇게 직접 와주다니.“


마왕은 아무말 없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검은 피가 계속 흘러내렸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장... 개짓거리 그만둬.“


마왕은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데 어떡하죠? 전 그럴 생각이 없는데? 하필이면 용사님이 끔찍이 아끼시는 레아의 몸이니... 함부로 건들지도 못하고. 크크크크크.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


”닥쳐.“


마왕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수녀는 레아의 몸으로 자신을 농락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이성적으로 변했다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분노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곧이어 그의 어깨를 뚫고 빛의 마법이 날아갔다. 고통으로 다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보세요. 감정을 주체 못하니까 다시 약해지는 거잖아요? 이 정도쯤은 그냥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조롱하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도 분명한 레아의 얼굴 때문에 마왕은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을 조절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의 어둠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도 그의 내면에서 어둠은 계속 부르짖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레아의 죽음. 그건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마왕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런 개같은...“

한 대.


”쓰레기가...“


다시 한 대.


”병신 새끼!“


계속해서 그를 향해 무차별한 폭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마왕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몸에 단 하나의 생채기도 낼 수 없었다.


그녀가 헐떡거릴때까지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라왔다. 잠시 후 주먹질을 멈춘 수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러니까 깝치지 말았어야죠. 말했죠? 행운은 제편이라고.“


그녀는 두 손으로 마왕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마치 불쌍하다는 듯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이제 좀 얌전하네요. 진작 좀 이러지.... 이렇게 버리기는 아까우니까.. 평생 제 노예로 살아가는 건 어때요? 이 얼굴도 영원히 볼 수 있고....“

레아의 얼굴에 수녀의 가식적인 미소가 나타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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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 속의 용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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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마지막화 새로운 세계 22.01.10 76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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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1. 멸망의 발판 22.01.05 30 1 7쪽
103 100. 인간다운 선택 22.01.04 36 1 7쪽
102 99. 죽음 앞에 선 사람들 22.01.03 34 1 8쪽
101 98. 압도적인 승리 21.12.31 34 1 8쪽
100 97. 돌아갈 수 없는 선택 21.12.30 34 2 7쪽
99 96. 최후의 순간 21.12.29 35 2 7쪽
98 95. 각자의 길 21.12.28 33 2 8쪽
97 94. 죽음의 안식처 21.12.27 33 2 8쪽
96 93. 어둠의 땅 21.12.24 36 2 8쪽
95 92. 신세계의 마왕 21.12.23 38 2 9쪽
94 91. 진실 속의 편견 21.12.22 39 2 7쪽
93 90. 전설의 존재 21.12.21 41 2 7쪽
92 89. 새로운 욕망 21.12.20 35 2 7쪽
91 88. 어둠의 장작 21.12.17 37 2 7쪽
90 87. 여신의 집착 21.12.16 37 2 8쪽
89 86. 신이 만든 괴물 21.12.15 36 2 7쪽
88 85. 타들어가는 갈증 21.12.14 37 2 8쪽
87 84. 마지막 진실 21.12.13 37 2 8쪽
86 83. 무기력한 존재 21.12.10 35 2 8쪽
85 82. 단 한마디. 21.12.09 34 2 9쪽
84 82. 빛은 사라졌다. 21.12.08 38 2 8쪽
83 81. 진실과 계획의 설계 21.12.07 36 2 9쪽
82 80. 목적을 위한 수단 +1 21.12.06 40 1 9쪽
81 79. 눈 뜨고 코 베이기 21.12.03 40 2 8쪽
80 78. 의심의 싹 21.12.02 40 2 8쪽
79 77. 어둠의 쐐기 21.12.01 3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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