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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냥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 속의 용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선물냥
작품등록일 :
2021.08.08 10:16
최근연재일 :
2022.01.11 18:56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10,421
추천수 :
271
글자수 :
387,708

작성
21.12.09 20:08
조회
34
추천
2
글자
9쪽

82. 단 한마디.

DUMMY

용사의 검이 보라색 불꽃으로 타올랐다. 사악하게 일그러진 불길이 갈증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이번에 용사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갈증이 용사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남은 빛마저 사라지고 그의 머리는 차가워졌다. 오로지 냉정함만이 그의 가슴을 채웠다.


레아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베라의 말대로 용사가 아니었다. 흡사 그들이 두려워하던 마왕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비참함 속에서 그녀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이미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이다.


그녀는 용사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제발 가지마.’


그녀의 외침. 하지만 그것이 용사에게 들릴리 없었다. 그가 걸어가면서 남긴 불꽃들만이 레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르고스와 베라는 하늘에서 뒤엉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가로스는 그런 그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드래곤들의 전투.

그들의 단순한 공격도 모두 마나를 담은 치명타. 그 치열한 전투 속에서 가로스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룡. 다르고스. 그녀에게 베라의 불꽃은 어둠 속의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강한 마력을 담는다 해도 다르고스의 마력 앞에는 그저 사그라들 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다르고스는 베라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에는 처절함이 없었다. 그녀의 어느 공격에도 마나를 담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베라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으며 다르고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째서?’


가로스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 다르고스는 죽기 위해 싸우는 전투였다.

다르고스의 마음을 알아챈 건 오로지 용사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속죄. 베라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것이 자신의 속죄라 굳게 믿고 있던 것이다.


‘아니야.’


하지만 용사는 그런 속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베라와 다르고스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다르고스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다르고스가 베라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 죽음은 용서가 아니었다. 깊은 침묵으로 자신의 죄를 피해가는 것이다.


용사의 불길은 거세졌다. 그가 성검에 붙은 불꽃을 손으로 잡자 마치 줄처럼 그것은 길게 뽑아져 나왔다.


”베라!“


그의 울부짖음에 베라는 용사를 노려보았다. 보라색 불꽃. 악마와도 같은 모습에 그녀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내뿜는 어둠은 드래곤마저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녀가 움츠러든 순간 용사는 불꽃으로 만든 줄을 던졌다. 베라의 붉은 목에 그 불꽃은 칭칭 감겼다. 비늘 사이로 불이 옮겨붙으며 그녀는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뭐하는 짓이야?]


다르고스는 이 싸움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용사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거라 믿고 있었다. 그토록 수많은 대화 속에서 용사는 진심으로 자신을 공감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속죄의 기회를 날리려고 하고 있었다.


[대체...?]

”죽는 건 속죄가 아니야!“


용사는 팽팽해진 불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진심으로 속죄하고 싶다면 죽지 마! 그리고 베라한테 사과해! 진심으로 말이야!“


그는 있는 힘껏 불꽃을 잡아당겼다. 용사의 힘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 폭주한 드래곤은 다시 한번 땅에 고꾸라졌다. 머리가 땅에 부딪치며 먼지가 일렁였다.


머리가 멍했다. 베라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을 막으려는 것일까? 마치 모두가 그녀를 괴물처럼 대하고 있었다. 진짜 나쁜 것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마룡과 어둠의 힘을 가진 용사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변엔 서로를 믿는 동료들이 많았다.


[어쨔서...?]


베라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복수심이 아닌 자신의 처량함 때문에. 뿌연 먼지가 뒤섞인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녀의 비늘 사이사이로 불꽃보다 뜨거운 눈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라색 불꽃이었다. 그것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최초의 용사.


악마가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더 이상 두려워할 힘도 남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마무리되길 원했다. 차라리 다른 세상에서 자신의 부모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검은 하늘 아래 갈가리 찢긴 부모의 시체. 그리고 먼 하늘에서 그녀가 본 것은 악의로 울부짖는 마룡이었다. 어릴적 그 마룡의 모습은 너무도 커보였다. 그녀도 죽을 것이다. 그 무기력함은 베라의 마음을 한구석을 텅비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야.“


모든 드래곤이 그렇게 말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준 건 드라고니우스였다. 따뜻함. 다른 종족임에도 그는 베라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제 아무것도 없구나.]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서늘한 검이 바로 앞에 있었다. 최초의 용사는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몇 분 뒷면 자신도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복수는 상관없다. 그저 모든 것이 끝나길 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용사는 자신을 베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검을 땅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투구 깊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슬픈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왜?...그런 시선으로 보는거야?]


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어둠이 사그라들며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머리 위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안해. 베라.“


그는 단지 이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그 어떤 변명도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베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미안하다는 말로 부모님은 살아돌아오지 않았다. 그 무엇도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용사의 한마디가 이토록 슬픈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다.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속에 진심으로 다가왔다.


[절대.. 용서 못해.]


베라는 울먹이며 말했다. 마룡과 용사. 아직도 그들이 미웠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움은 없었다. 오히려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심장만이 두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복수는 사라졌다. 그녀 눈동자 속에 일렁이던 불꽃도 사그라들었다.


”우리를 영원히 미워해도 돼.“


다르고스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용사의 곁에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베라를 쳐다볼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었다.


”나는...나는...“


다르고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잊고 있었던 마음 속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나를 용서하지마.“


결국 그녀가 울먹이며 내뱉은 말. 영원한 죄의 고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복수가 복수를 낳았다. 하지만 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용사가 아니었다면 그 죄의 고리는 베라에게 옮겨갔을 것이다. 그녀 하나면 충분했다.


레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르고스와 베라는 서로를 향해 울고만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용사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다시 자신이 알던 용사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어둠은 너무도 섬뜩했다. 분명 언젠가 그를 잃고 말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옥죄는 불안감은 쉽게 떨쳐 낼 수 없었다. 언젠가 그도 이방의 용사처럼 차가운 존재로 뒤바뀔지 모른다.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손에 쥔 검. 지금 자신의 손으로 이 어둠을 끊어낼 수 있을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다시 최초의 용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용사였다.


‘절대 못 해!’


레아의 손이 풀리면서 검이 땅 아래로 떨어졌다. 결국 운명을 받아들여야하는가? 그녀는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레아님! 레아님!“


벡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왜 그래?“

”저... 저기 위를 보세요!“


무언가 새까만 것이 하늘 위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실루엣.


붉은 마녀.


그것들은 모두를 노리고 있었다.


”피해!“


레아는 용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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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99. 죽음 앞에 선 사람들 22.01.03 34 1 8쪽
101 98. 압도적인 승리 21.12.31 34 1 8쪽
100 97. 돌아갈 수 없는 선택 21.12.30 34 2 7쪽
99 96. 최후의 순간 21.12.29 35 2 7쪽
98 95. 각자의 길 21.12.28 33 2 8쪽
97 94. 죽음의 안식처 21.12.27 33 2 8쪽
96 93. 어둠의 땅 21.12.24 36 2 8쪽
95 92. 신세계의 마왕 21.12.23 38 2 9쪽
94 91. 진실 속의 편견 21.12.22 39 2 7쪽
93 90. 전설의 존재 21.12.21 41 2 7쪽
92 89. 새로운 욕망 21.12.20 35 2 7쪽
91 88. 어둠의 장작 21.12.17 37 2 7쪽
90 87. 여신의 집착 21.12.16 37 2 8쪽
89 86. 신이 만든 괴물 21.12.15 36 2 7쪽
88 85. 타들어가는 갈증 21.12.14 37 2 8쪽
87 84. 마지막 진실 21.12.13 37 2 8쪽
86 83. 무기력한 존재 21.12.10 35 2 8쪽
» 82. 단 한마디. 21.12.09 35 2 9쪽
84 82. 빛은 사라졌다. 21.12.08 38 2 8쪽
83 81. 진실과 계획의 설계 21.12.07 36 2 9쪽
82 80. 목적을 위한 수단 +1 21.12.06 40 1 9쪽
81 79. 눈 뜨고 코 베이기 21.12.03 40 2 8쪽
80 78. 의심의 싹 21.12.02 40 2 8쪽
79 77. 어둠의 쐐기 21.12.01 3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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