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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돌아온 불꽃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06
최근연재일 :
2023.07.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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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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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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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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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4화 : 녹색 지옥

DUMMY

게이트가 온 국토를 휩쓸면서, 우리나라도 참 많이 달라졌다.

한강 이북은 무슨 불지옥처럼 변해버렸다.

반 농담삼아 지옥불 반도니 뭐니 지껄이던 놈들은 진짜 지옥을 보더니, 쥐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그 꼴로 봐서는 아마 북한도 진작에 망했을거다.


그리고 서울 서쪽, 그러니까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 방면도 게이트에 정통으로 직격당했다.

활짝 열린 게이트는 몬스터만 토해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장을 토하는 해삼처럼 게이트 내부를 토해버렸다.

게이트 안에 갇혀있던 기괴한 환경과 식생, 생태가 현재의 서울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해안 일대는 녹색 지옥이 펼쳐졌다.

난생 처음보는 풀과 독, 벌레와 짐승 등등이 점령해버렸다.


“아이고. 덥다 더워.”


서쪽으로 가는 길은 무더웠다.

이제 곧 여름이 오려나? 아니, 지금이 가을인가?

원체 바쁘게 살다보니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곧 여름이면 태풍이 올라오려나.

그래도 서울쪽은 태풍 피해는 적으니까, 바르미 길드 애들도 알아서 잘 버텨낼 것이다.


“목말라 죽겠네.”


간단한 가방 하나만 달랑 매고 무작정 서쪽으로 갔다.

가방에도 500ml생수통만 잔뜩 넣어뒀다.

밥이야 가는 길에 몬스터 잡아먹기로 했고, 잠도 대충 이슬만 피하면서 자기로 했으니까.

전생에 자주 해본 일이라서 별 부담도 없었다.


“어우. 시원하다.”


물로 목을 축이고 지도를 꺼내 펼쳤다.

배범준이 넘겨준 지도 원본이라는데, 암만봐도 복사본이었다.


“자식. 원본이니까 꼭 돌려줘야 된다더니.”


복사본 지도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그냥 살아돌아오라고 하면 될 걸. 하여튼 남자가. 쯧.”


어쨌든 지도를 보면서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

하나는 한강을 따라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내륙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한강을 따라가는 길이 훨씬 편하다.

문제는 물과 가깝다는 것.

불의 마력을 가진 나와 물은 상극이다.

물에 사는 몬스터 대부분은 일단 불에 강하고, 적극적으로 물을 갖다 뿌리는 놈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특히나 재수없게 무슨 정령이니, 인어니, 세이렌 같은거라도 만나면 그날 잠은 다 잤다고 복창해야 된다.


“남자라면 역시 정면돌파지.”


그래서 내륙을 뚫고 가기로 했다.

말이 좋아 내륙이지, 사실상 몬스터 둥지 한 가운데를 돌파하는 루트다.

아니, 애초에 길이 아니니까 루트라고 부를수도 없다.

말하자면 삽 한자루 달랑 들고 터널을 파면서 산맥을 뚫고 가는 꼴이다.


“그래도 해 봐야지. 뭐랬더라, 우공이산? 진짜로 산 옮긴 할배가 있지 않나?”


지도를 주섬주섬 집어넣고 배낭끈을 단단히 조였다.

손에 물 한병 달랑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쪽으로 걸어갔다.


**


서쪽은 지옥이다.


본격적으로 녹색 밀림이 펼쳐기도 전에 모기떼가 기승을 부렸다.

무슨 몇 걸음 갈 떼마다 한마리씩 앵앵대며 달라붙었다.

더 끔찍한건, 그 모기가 무슨 자전거보다 크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한마리 만날 때마다 아까운 마력을 낭비해야 했다.


화르르륵!!


커다란 모기가 불 속에서 타들어갔다.

순식간에 바싹 타서 숯이 되버린 모기 시체를 콰직 밟았다.

떨어지는 마석이래봤자 쥐꼬리만큼이다.

그렇다고 뜯어먹을 데가 있나? 없다.

온갖 더러운 역병을 몰고다니는 위험한 몬스터인데, 기껏 잡아도 남는게 없으니 허탈할 뿐이다.


“에이씨. 이거 벌써부터 고생길 훤한데?”


모기를 한 서른마리쯤 잡았나.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 강을 따라갈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결국 누가 언젠가는 청소해야할 땅이다.

내가 안 하면 다른 누가 모기랑 싸울거다.

그러다가 재수없이 물릴테고, 그럼 무슨 좀비처럼 변해버리겠지.


“쯧. 결국 나밖에 할 사람 없구만.”


애꿏은 생수만 벌컥벌컥 마셨다.

기왕 이렇게 된거, 자원 봉사자의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한 5분동안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화딱지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여긴 모기밖에 없어?! 대체 뭐하는 동네야!”


애꿏은 소리만 버럭버럭 질렀다.

그러자, 갑자기 시커먼 모기떼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깜짝 놀라서 보호막처럼 불을 펼쳤다.

나한테 멋모르고 날아오던 모기 수백마리가 그대로 타 버렸다.


“아, 이거 느낌 좀 쎄한데······?”


애애애애앵—


기다렸다는듯 건물 폐허 뒤에서 초대형 모기가 나왔다.

시커먼 눈알은 내 머리통보다 컸고, 활짝 편 날개는 도로 폭보다 넓었다.

크기는 또 지랄맞게 커서 건물 2층 높이는 됐다.


애애애애앵—!!


난데없는 초대형 모기를 보고 졸도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불을 뿜었다.

오히려 정신차리고 보니까 잘 만났다 싶었다.

계속 모기한테 시달리던 울분을 갚을수 있으니까.

나는 왼손으로 불꽃을 광선처럼 뿜으면서, 오른손으로는 불덩이를 만들어 던졌다.


화르르륵!!


콰콰–아앙!!


불줄기로 모기를 몰아넣고 불덩이로 터뜨린다.

단순해 빠진 작전인데, 그게 의외로 잘 먹혔다.

날개에 구멍이 뻥 뚫린 모기는 불세례에 도망치려다가 뚝 떨어졌고, 그대로 불덩이의 먹잇감이 돼 버렸다.


“이야. 잘 탄다 잘 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모기의 몸뚱이가 오그라졌다.

마른 장작을 잔뜩 넣은 모닥불처럼, 내 불꽃이 탐욕스레 모기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때 가서야 깨달았다.


“근데 난 대체 언제 밥 먹는대?”


망연히 고개를 서쪽으로 돌렸다.

빌딩숲의 반절을 잠식한 빽빽한 녹색 밀림이 보였다.

저기도 먹을거라고는 하나도 없을텐데.


“에이씨, 도시락이라도 하나 챙겨올걸.”


이제와서 뭐 어쩌겠나.

돌아갈 수도 없고.

대충 툭툭 털고 일어나서 서쪽으로, 지옥같은 녹색 밀림으로 걸어들어갔다.


**


하루 왠종일 밀림을 돌아다녔다.

만나는 몬스터마다 불로 태우고 지져버렸다.

커다란 벌레, 독두꺼비, 반쯤 썩은 웅덩이에 바글거리는 애벌레 떼거지.

하나같이 체력보다 정신력을 먼저 갉아먹는 악질적인 몬스터 뿐이었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가 풍겼다.

더운 공기가 빽빽한 나무숲에 갇혀서 못 빠져나가고 그대로 썩어버렸는데, 한여름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어젖힌 기분이다.

한 마디로, 고역이다.


“와. 진짜 내가 왜 서쪽으로 가겠다고 그랬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모닥불을 향해 중얼거렸다.

초대형 귀뚜라미 다리를 분질러서 장작처럼 쌓고 불을 피웠는데, 덕분에 불에서 이상한 구린내가 풍겼다.


“그냥 서울에서 살걸.”


하루 종일 다녔는데 먹을것도 결국 못 구했다.

아니, 먹을거야 여기저기 있긴 했다.

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상한 과일이라든가.

고인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든가.

하지만 먹고 멀쩡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내버려뒀다.


‘하루 굶는다고 죽는것도 아니니까.’


정 배고프면, 그때 가서 잡아먹어도 될 것이다.

전생에도 그렇게 버텨봤으니까.

하지만 일단 지금은 먹기 싫었다.


“아이고. 지친다 지쳐.”


불 옆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여기서는 드러누워도 하늘이 보이지도 않았다.

게이트가 온 천지 사방을 박살낸 뒤로, 밤하늘의 별 보기가 참 쉬워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밤에 별구경도 못한다.

아니, 애초에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헷갈린다.

우거진 밀림을 뚫고 비쳐드는 햇볕이 워낙 적은 탓이다.

말이 좋아 숲이지, 무슨 미궁이랑 똑같다.


“이런데 사는 사람이 있을까?”


굳이 서쪽으로 건너온 이유는 단순하다.

허동우를 찾으려고.

전생에 나를 죽인 원수같은 놈이고, 다시말해 그놈만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나는 안 죽는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찾는 이유야 더 있다.

헌터를 녹여 현자의 돌을 만들려는 그 계획도 마음에 안 들고, 너머의 손님들이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자꾸 그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위험한 놈이라서 꼭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선 이놈의 흔적을 못 찾았다.

그래서 혹시 여기 있을까 싶어서 서쪽으로 온 것이다.


“근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딴데 숨어있진 않겠지?”


허동우도 사람이다.

아무리 막나가는 놈이라도 그렇지.

이딴데 숨어 살것 같지는 않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고 나서 생각하자.”


벌떡 일어나서 웃에 묻은 풀들을 툭툭 털고 가볍게 불을 화륵 쑀다.

그 잠깐 새에 무슨 잡스런 벌레가 붙었을지 모르니까.

그런다음 바람을 타고 나무위로 풀쩍 뛰어올라서, 가지를 몇개 우둑우둑 꺾어 들고 내려놨다.

꺾은 가지를 얼기설기 쌓아 벽을 만들고.

우거진 잎은 혹시 모를 벌레를 탈탈 털어낸 뒤, 지붕처럼 덮어씌웠다.

여기다가 공기 드나들 바람구멍도 몇군데 뚫었다.

이걸로 임시 텐트를 만든 다음, 안에서 두 발 뻗고 드러누웠다.


‘답답하네.’


대충 만든 텐트 안은 답답했다.

게다가 더웠다.

뜨거운건 잘 참아도 더운건 참기 힘들었다.


“나도 얼음 마력이었으면 오죽 좋아.”


뒤척거리면서 생각했다.

암만 생각해도 불보단 얼음이 나은데.

불꽃은 요즘 세상에 당췌 쓸모가 없었다.

모조리 태워버리고 부숴버리니까.


‘......잠깐만.’


드러누워 자려다가 말고 눈이 반짝 뜨였다.

뚜껑처럼 덮은 나뭇가지를 손으로 휙 던지고 일어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빽빽한 밀림.

내가 가진 마력은 화염의 마력.

그러면, 이 숲을 모조리 불태워버리면?


“......될 리가 없지.”


태우기에 너무 큰 숲이다.

전에 게이트를 불태운거랑 사정이 다르다.

그리고 태울거면 바깥에 나가서 태워야지, 여기서 불 붙였다간 나까지 타 죽는다.


“그냥 잠이나 자야지 어쩌겠어.”


임시 텐트로 들어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자려고 눈을 질끈 감았떠니, 이번에는 소리가 거슬렸다.

나뭇잎에 바람 이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려왔다.

거기다가 풀벌레가 찌륵찌륵 우는 소리.

밤새가 음산하게 우는 소리.

조그만 짐승인지 몬스터인지가 타탓 뛰는 소리.

야밤에 왠 시끄러운것들이 이렇게 많은지.


‘확 다 태워버려?’


하지만 이 밤에 불질을 시작했다가는 잠도 못 잘게 뻔했다.

밤에 설치는 놈들은 불빛에 좋아 죽으니까.

오히려, 온 숲에 사는 몬스터란 몬스터는 죄다 불러모으겠지.

그러니까, 그냥 포기하고 자자.


‘자자. 자자. 잠좀 자자. 제발. 얘들아. 내가 뭐 잘못했냐? 나무 좀 꺾었다고 거 더럽게 시끄럽네. 잠좀······에취!’


그만 재채기가 터져나왔다.

콧물을 슥 닦고 두리번거렸다.


“뭐야. 갑자기 왜이렇게 추워.”


그리고 귀에 거슬리던 소리가 모조리 사라졌다.

꼭 한겨울처럼 모든것이 조용했다.


“대체 뭔······.”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뚜껑을 치우고 일어서려다가, 그대로 엉거주춤 몸이 굳어버렸다.

진짜로 놀라면 사람이 얼어버린다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내 앞에 게이트가 있었다.


움직이는 게이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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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5화 : 찾았다 23.07.01 41 1 11쪽
» 54화 : 녹색 지옥 23.06.30 42 0 11쪽
53 53화 : 서쪽으로 23.06.29 40 0 12쪽
52 52화 : 첫 손님 23.06.28 47 0 12쪽
51 51화 : 영업 개시 23.06.27 55 0 12쪽
50 50화 : 싱겁게 끝나버렸다 23.06.24 51 1 12쪽
49 49화 : 예언자와 구세주 23.06.23 51 0 12쪽
48 48화 : 검은돌 하얀돌 23.06.22 55 0 12쪽
47 47화 : 공장 탈환 작전 23.06.21 59 0 13쪽
46 46화 : 의외로 제법 모략가 23.06.20 59 0 12쪽
45 45화 : 쓸모있어서 살려준거야 23.06.19 63 0 11쪽
44 44화 : 너 그놈이랑 무슨사이야 23.06.18 7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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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 일 한 만큼 먹어보자 23.06.16 7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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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 우리중에 있다. 23.06.13 6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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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 커다란 게이트를 향해서 23.06.09 81 0 12쪽
34 34화 : 땅은 많은데 내땅은 없다 23.06.08 8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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