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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돌아온 불꽃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06
최근연재일 :
2023.07.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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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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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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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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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53화 : 서쪽으로

DUMMY

“비싸다고?”


남우석이 식당 벽을 슥 쳐다봤다.

써붙여둔 가격표에는 ‘한그릇 5천원!’이라고 형광색 글씨로 요란하게 적혀있었다.


“5천원이라고 적혀있는데?”


“너희들한테는 바가지좀 씌우려고.”


“바른 생활 실천 위원회라더니. 결국 그저그런 인간이었나?”


“남의 집에 불지른 놈이 누구한테 잔소리야?”


빈정대는 남우석을 가뿐히 받아쳤다.


“일단 앉아. 먹고 생각하라고. 내가 뭐 돈 욕심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래요. 식사부터 합시다.”


박병기가 꼬로록 소리나는 배를 움켜쥐었다.

그를 데려온 최기욱이 한숨을 푹 쉬고 자리를 잡았다.

바로 박병기가 옆자리에 앉고, 맞은편에 남우석이 앉았다.


“뭐 먹을래?”


“뭘 파는 식당이지?”


“국밥.”


한장짜리 단촐한 메뉴표를 식탁에 내려놨다.

남우석은 메뉴표를 집어들고 뒤집어 봤다.


“그게 다야. 돼지국밥 아니면 순대국밥.”


“그럼 돼지국밥으로.”


“저도 돼지국밥하나.”


“알았어. 돼지 둘. 너는?”


박경기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저는 순대국밥이요!”


“알았어. 돼지 둘, 순대 하나. 금방 나온다. 야! 돼지 둘에 순대 하나!”


부엌에서 국밥 뜨는동안 나도 의자를 드륵 잡아당기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너넨 어떻게 찾아왔어?”


“소문 듣고 왔습니다.”


최기욱이 대답했다.


“대단하네. 근데 너네 철혈 길드 버려두고 여기 있어도 되는거냐?”


“근처에 게이트도 많이 닫았고 도로도 청소해서 괜찮습니다.”


“그게 전부 내 작품이지.”


“그럼요.”


최기욱과 박병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를 감당못해서 파산 직전이었던 철혈 길드 꼴이 눈에 선했다.

지금은 잘 살고 있는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편했다.


“근데 누가 내 소문을 벌써 거기까지 퍼뜨렸대?”


“나다.”


남우석이 대답했다.


“쌍두마차에 아직 살아있는 정보통들도 많으니까.”


“그래? 둘 다 악착같이 잘 버티고 있구만?”


“네 덕분이지.”


주방에서 뜨거운 국밥이 세그릇 나왔다.

스텐레스 쟁반에 국밥을 받쳐들고 와서 맨손으로 덥썩덥썩 붙잡아 식탁에 내려놨다.


“뜨겁지도 않아요?”


“별로.”


“하긴. 넌 툭하면 손에 불부터 붙이고 봤으니까.”


남우석이 숟가락을 들고 먼저 한술 떴다.


“맛있냐?”


“평범하다.”


“그럼 됐다. 근데 너네들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


“부당 채무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미안하다고 먼저 찾아오더라고요.”


최기욱이 끼어들었다.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보니까, 어째저째 친해졌습니다.”


“대단한 술이었나봐?”


“그냥 흔해빠진 소주죠 뭘. 안그러냐 병기야?”


“예?”


그새 박병기는 그릇을 싹 비웠다.

하기야, 말도 안하고 먹기만 했으니까.


“아니다 병기야.”


“어찌저찌 친해진게 아니라, 길드 운영에 관한 조언을 들으러 찾아갔다.”


남우석이 국밥을 크게 한술 퍼넣고 우물거렸다.


“주변 길드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길드가 철혈 길드니까.”


“어련하겠어. 그래도 다들 살만한가봐? 얼굴에 살 붙은거 봐라. 나는 고생한다고 있던 살도 쪽쪽 빠지는데.”


“유제혁 마스터는 그동안 잘 지냈어요?”


한참 국밥만 퍼먹던 박병기가 말했다.


“똑같지 뭐. 몬스터 잡고, 게이트 닫고.”


“잘 지내셨네요.


“그런 셈이지. 아무튼 다들 먹었냐?”


슬슬 식사가 마무리됐다.

박병기가 먼저 수저를 놓자, 나머지 둘도 수저를 탁탁 내려놨다.


“다 먹었지?”


“그래. 잘 먹었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유제혁 마스터.”


“저도요! 국밥 맛 좋네요.”


“그럼 이제 계산해야지.”


남우석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아니. 지갑 꺼낼 필요 없어. 니들한테는 다른걸로 받을 생각이니까.”


“뭐?”


“야. 너희들. 나랑 같이 서쪽으로 가자.”


식당에 유령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조용했다.

부스럭부스럭 달그락거리던 주방조차 조용했다.


“뭐라고?”


“뭘 그렇게 놀라? 우석아. 같이 서쪽으로 가자고.”


“드디어 미쳤나? 서쪽에 가자고? 거긴 무법 천지다.”


“여기도 비슷한데 뭘.”


“차원이 달라. 동네 양아치가 자리잡은 뒷골목이 마피아 세력권이랑 어떻게 같아?”


“야. 그러고보니까 쌍두마차는 정보통도 많다면서. 서쪽 소식도 좀 알겠네?”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남우석은 더이상 듣기싫다는듯 지폐를 꺼내 탁자에 내려놨다.


“먼저 나간다. 밥 잘 먹었다.”


일단 한명은 실패.

남아있는 최기욱과 박병기를 쳐다봤다.

최기욱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철혈 길드 하나로도 벅찹니다.”


“병기 너는?”


“예? 저요? 저도 서쪽은 좀······.”


“쯧. 알았다. 싫다는 놈들 강제로 끌고갈수도 없고. 밥은 맛있던?”


“예. 괜찮던데요. 좀 더 가까운데 있었으면 매일 먹으러 왔을걸요.”


“마음에도 없는 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어쨌든 둘 다 그만 가 봐. 서울 온 김에 구경하든가, 바로 내려가든가. 만나서 반가웠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그래. 살아서 또 보자고.”


최기욱과 박병기도 식당을 나갔다.

줄곧 조용히 있던 배범준이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서쪽에 가려고?”


“그럼 없는말 지어냈을까봐?”


“서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강 이북 만큼은 아니더라도, 게이트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곳이니까.”


“도와줄거 아니면 관둬. 뭐 이놈이고 저놈이고 초치는 놈들 뿐이야?”


배범준이 어흠 헛기침했다.


“서쪽에 꼭 가겠다면.”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릴 하나 기다렸다.


“지도 정도는 빌려줄 수 있지.”


“지도를 갖고 있어?”


“일부분 뿐이지만. 협회도 몇번 서쪽 탈환을 시도했으니까, 그 때의 기록정도는 남아있다.”


“그래? 뭐, 없는것보단 훨씬 낫겠지. 복사해서 좀 빌려줘.”


“안돼.”


배범준이 딱 잘라 말했다.

방금전까지 빌려주겠다고 분위기 잔뜩 잡더니?

누굴 놀리나 싶어 한소리 하려는데, 그가 말했다.


“지도는 전략자산이다. 함부로 복사할순 없지. 원본을 빌려줄테니까, 대신 꼭 반납해라.”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원본을 직접 빌려주겠다는건 날 믿는다는 뜻.

그리고 꼭 반납하라는 건······.


“그래. 꼭 살아 돌아올게.”


“출발은 언제 할거지?”


“한 일주일 뒤? 나도 준비할게 좀 있으니까.”


“그럼 그때까지 자료를 정리해두지.”


**


“서쪽으로 가려고.”


바르미 길드원들은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총무 겸 서기 겸 부마스터를 담당하게된 조제철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나도 몰라. 가 봐야 알아.”


“거기서 눌러앉을 생각은 아니시죠?”


“왜?”


“길드 마스터잖아요.”


“에이 뭐, 나 없이도 이제 잘 돌아갈텐데 뭘. 그리고 민종욱? 종욱이 어딨어?”


민종욱이 후다닥 뛰어왔다.


“그래 종욱아. 나 없는동안 사고치지 말고.”


“예.”


“검도는 배울만하냐?”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민종욱의 검도 성과는 놀라웠다.

이놈의 온 몸과 머리를 지배하던 그 지긋지긋한 사춘기를 드디어 집어던졌으니까.

옷도 깔끔, 머리도 단정하고, 말투도 차분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가르치는건데.”


“예?”


“아니다. 어쨌든 잘 들어라 다들. 난 서쪽으로 간다. 근데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서쪽은 지옥같은 땅이다.”


여기서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언제 돌아올지, 살아 돌아올지 어떨지도 몰라.”


하지만 의외로, 길드원들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쇼.”


“그래. 너희들도 조심해라. 여의도라고 꼭 안전한것도 아니니까.”


“언제 출발하십니까?”


“한 일주일쯤 있다가. 나도 준비좀 하고 가려고.”


내가 입을 다물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괜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다가 조제철이 조심스레 말했다.


“술 사올까요?”


나는 웃으며 조제철의 뒤통수를 탁 쳤다.


“술은 무슨. 돈 있으면 너네 먹을 고기나 사.”


**


그 뒤로 어영부영 1주일이 흘러갔다.

첫번째 날에는 무려 늦잠을 잤다.

전생, 현생 통틀어 마지막으로 늦잠잔게 언제더라.

전생에는 긴 노예생활 끝에 지명수배범 신세였다.

노예든 수배범이든 마음놓고 푹 자는건 무리다.

이번 생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푹 쉴 여유가 없었다.

그런 차에, 모처럼 늦잠을 잤더니 잠이 꿀처럼 달콤했다.

느지막히 일어난 다음에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협회장이 다녀가서 그런가, 의외로 손님이 종종 있었다.

식당은 기분좋을만큼 부산스러웠다.

카운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할머니가 살아있을 시절의 꿈을 꿨다.

식당은 번창했고, 손님들도 하나같이 예의가 발랐다.

게이트 같은건 열리지도 않았다.

나도 무려 반에서 1등을 한 모범생······.


“에이씨, 꿈이네.”


터무니없는 헛것을 보고 잠이 번쩍 달아났다.

개꿈도 이런 개꿈이 다 있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똑바로 살라는 가르침일까?


둘째 날부터는 식당이 잘 돌아가는지 멀찍이서 확인했다.

아직까지는 다들 긴장을 유지해서 문제가 없었지만, 원래 사고는 방심할 때 터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놈들 군기를 잡기도 그렇고.

내가 바짝 군기 잡아봤자 풀릴 나사는 풀린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다.

뭐, 다들 어른이고. 내가 평생 책임져줄 수도 없으니까.


넷째 날에는 은행에 들러 남은 돈을 확인했다.


“계좌에 남은 금액을 확인하고 싶으시다구요?”


“예. 얼맙니까?”


“잠시만요. 총 2억 1천 364만 1121원 되겠습니다.”


“많네. 그 돈 전부 이쪽으로 송금해 주시죠.”


내 개인 재산을 모조리 바르미 길드 계좌에 옮겼다.

돈 많아봤자 쓸데도 없고, 서쪽에서 사고라도 터지면 훨훨 날아가버릴 돈이니까.

차라리 이 돈으로 맛있는것도 사먹고, 좋은 옷도 해 입고, 잘때 푹신한 침대도 들이라는 뜻으로 기부해버렸다.


‘나중에 제절이가 알면 눈 뒤집히겠네.’


벌써부터 그녀석이 호들갑떠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렇게 남은 며칠도 밍기적대면서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그것도 일주일째 되는 날에는 지루해 죽는줄 알았다.

어쨌든 바르미 길드는 무사히 자리를 잡았다.

여의도 바깥이긴 했지만, 널찍한 곳에 건물도 세우고.

식당 주차장도 넓어서 차로 오가는 손님도 제법 있었다.

헌터 협회와도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

무려 그 협회장이 우리 식당 단골이니 말 다 했지 뭐.

식당 귀퉁이에는 잊지 않고 협회장 감사패를 세워뒀다.

감사패 때문인지. 협회장 때문인지.

진상부리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건드릴것도 없네.’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가서, 오히려 내가 방해는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제 서쪽으로 떠날 사람이니까.

떠나는 사람 발목 붙잡는 대신, 우리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무언의 인사를 하는것 같아서.


“유제혁 헌터.”


시커먼 차에서 배범준이 내렸다.

그는 갈색 서류봉투를 내게 건네줬다.


“약속한 지도.”


“잘 쓸게.”


“잃어버리지 말고, 유출될것 같으면 그냥 소각해버려.”


“고맙다. 그럼 나 이제 간다. 잘 지내고. 협회장님한테 안부 전해주고.”


배범준은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 차로 돌아갔다.

그의 차가 오른쪽으로 꺾어 여의도로 멀리 사라졌다.


“오자마자 또 떠나네.”


나는 한번 피식 웃어넘기고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옥불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태양이 내게 손짓했다.

서쪽에선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생에 흉흉한 소식밖에 못 들었다.

현생에는 그 소문조차도 한번도 못 들었고.

그만큼 서쪽은 미지의 땅이고, 공포의 땅이다.

서울에 없던 허동우가 서쪽에 있을까?

그 짜증나는 너머의 손님들의 본진은 어떨까?

무슨 게이트에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까?

내 손으로 예절을 주입해줄 녀석은 얼마나 많을까?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기대감에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그럼 한번 가 보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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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 영업 개시 23.06.27 55 0 12쪽
50 50화 : 싱겁게 끝나버렸다 23.06.24 51 1 12쪽
49 49화 : 예언자와 구세주 23.06.23 51 0 12쪽
48 48화 : 검은돌 하얀돌 23.06.22 55 0 12쪽
47 47화 : 공장 탈환 작전 23.06.21 59 0 13쪽
46 46화 : 의외로 제법 모략가 23.06.20 59 0 12쪽
45 45화 : 쓸모있어서 살려준거야 23.06.19 63 0 11쪽
44 44화 : 너 그놈이랑 무슨사이야 23.06.18 70 0 12쪽
43 43화 : 갑자기 인기폭발 23.06.17 67 0 12쪽
42 42화 : 일 한 만큼 먹어보자 23.06.16 70 0 11쪽
41 41화 :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더라 23.06.15 70 0 12쪽
40 40화 : 결국 밥그릇 싸움 23.06.14 75 0 12쪽
39 39화 : 우리중에 있다. 23.06.13 69 0 11쪽
38 38화 : 게이트에서 푹 잤다. 23.06.12 7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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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 시작부터 삐그덕 23.06.10 80 0 12쪽
35 35화 : 커다란 게이트를 향해서 23.06.09 8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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