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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돌아온 불꽃망나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06
최근연재일 :
2023.07.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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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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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5화 : 커다란 게이트를 향해서

DUMMY

크허억—


커허억—


푸슈—쌔액—푸슈—쌔액—


선잠에서 깨고 보니 공기부터 퀴퀴했다.

반쯤 뜬 눈으로 어두컴컴한 방안을 둘러봤다.

바른생활 실천 위원회. 줄여서 바르미 길드원들이 서로 뒤엉켜 쿨쿨 자고 있었다.

거기다가 빈 소주병에서 올라오는 알코올 냄새.

제대로 안 씻은놈 몸에서 나는 냄새까지.

여기가 지옥인가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게 밖에서 마시자니까 이걸 꼭. 에휴.”


방구석에 빈 소주병이 탑처럼 쌓여있고, 먹다 버린 과자 봉투. 쓰레기들. 그것들과 뒤엉켜 자는 녀석까지.

갓 스무살된 대학생도 아니고.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짓인지 한숨만 나왔다.


“그래.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일단 머리에 핑핑 도는 취기부터 어떻게 해야지.

잠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내 몸속의 마력에 술기운을 실어 밖으로 뿜어냈다.

가습기처럼 알코올 섞인 마력을 한동안 뿜어내고 나자 머리가 개운했다.

하지만 좁은 방 안에는 술기운이 한층 짙었다.

뿜어냈을 뿐이지, 사라진게 아니니까.

그게 조금 미안해서 창문을 살짝 열었다.


“잘도 자는구만.”


세상 모르고 잠든 놈들 못난 얼굴좀 구경하다가 대충 옷을 입고 숙소를 나섰다.

어젯밤에는 모처럼 회식을 했다.

바르미 길드의 서울 도착과 신입 환영회를 겸해서.

게이트 때문에 매일같이 죽네사네 전전긍긍하며 사는 녀석들이니까, 가끔 이렇게 축제도 벌여줘야 한다.

하지만 그걸 꼭 좁아터진 숙소에서 했어야 할까.

가방끈 짧은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서 안심해야 할지, 한숨 쉬어야 할지 헷갈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숙소를 나왔다.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볕이 거리에 깔려있었다.

일단 가까운 목욕탕으로 갔다.

뜨거운 물로 몸을 지졌더니 절로 탄식이 나왔다.


‘나도 그새 늙어버렸나.’


쪼글쪼글해진 손바닥을 문득 들여다봤다.

진짜로 내가 늙었나 깜짝 놀라 일어섰다.

물에 푹 담궈서 쭈그러 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아이고. 술이 문제긴 문제네.’


속으로 헛소리를 하며 도로 몸을 풍덩 담갔다.

그렇게 한시간동안 야무지게 씻고 나왔다.


“그래도 그렇지. 3만원은 너무하네.”


땅을 구하면 식당 옆에 목욕탕도 하나 차려야겠다.

진지하게 괜찮은 생각 같았다.

머릿속으로 조감도를 그려보고. 계획도 짜 보고.

딴생각을 하며 걷다가 아무 식당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제법 있는걸로 봐서, 맛집인가 했다.

하지만 맹물이나 다름없는 콩나물 국밥을 먹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서울 사람들은 이딴걸 먹고 사나?’


내가 모르는 무슨 맛이 있는건지.

아니면 이런거라도 감지덕지 먹고 사는건지.

아무튼 바르미 길드의 사업이 유망해 보였다.

적어도 이것보단 훨씬 맛있게 할 자신 있으니까.

그렇게 대충 배를 채우고 나왔더니, 아침이었다.

모처럼 상쾌한 서울의 아침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 다음.

약속 장소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


317번 게이트가 어떤 곳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 이 시기에는 문일상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바깥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고, 애초에 들리는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뭐. 이번에는 좀 더 일찍 해치웠지만.’


문일상 생각이 난 김에 잠깐 옛날 일을 떠올렸다.

전생이랑 비교하면 이번 생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랑 같이 노예로 묶여있던 가르덴 길드 애들도 풀어주고.

불우이웃 철현 길드에 손수 찾아가 게이트도 닫아주고.

깡패들 거느리고 도로를 불법 점거한 쌍두마차도 박살내고.

헌터 협회 협회장의 직속 의뢰를 벌써 두 개째 받지 않나.


‘나 성공했네.’


새삼 헛웃음이 피식 터졌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바르미 길드도 자리를 못 잡았고, 전생에 나를 죽인 허동우는 찾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협회장도 문제였다.


‘그 영감은 날 죽이려는건지. 살리려는건지.’


협회장 의뢰로 찾아간 연구소에서 죽을뻔했다.

그러니까, 이번 의뢰도 제법 위험할게 분명하다.

아마 앞으로 주는 의뢰들도 대충 비슷하겠지.


‘이번 일까지만 하고 거리를 둬야겠는데.’


남의 영웅으로 살다가 일찍 죽을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내 꿈을 한번 펼쳐보고 죽어야지.


“그나저나. 아무도 안 왔네.”


317번 게이트 원정대 집합 장소는 한산했다.

그곳은 여의도의 도심 외곽의 정류장이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인기척도 거의 없었고, 자동차 소음보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도롯가의 갓길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잡초의 녹색 울타리 너머는 거친 풀밭 뿐이었다.

멍하니 땅 구경을 하다가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서울에 땅이 이렇게 많은데. 내 땅이 없네.”


괜히 풀밭으로 들어가 화풀이하듯 바닥을 밟았다.

그러자, 땅이 흔들리고 거대한 두더지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그놈의 머리를 발로 찍고 연이어 짓밟았다.

뭉개져 죽은 두더지 입에서 마석이 흘러나왔다.


“에이씨, 몬스터 있었네.”


주인 없는 땅에는 이유가 있었다.

죽은 두더지를 끄집어내 거꾸로 붙잡고 탈탈 털자 마석이 좀 더 나왔다.

한놈 뽑아내고 두리번거리니까, 땅 여기저기가 울룩불룩 솟아있었다.

아무래도 두더지가 한마리가 아닌 모양.

내친 김에 몸이나 풀겸 두더지좀 잡을까 하고 소매를 걷어부쳤다가, 멀찌감치서 인기척을 느끼고 제자리에 돌아왔다.

조금있다가 도로를 따라 누가 걸어왔다.

등산이라도 가는 것처럼 큰 배낭을 멘 헌터였다.

맹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걸 보니 초짜 같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약도를 꺼내 보고, 주변을 한번 보고, 다시 약도를 본 다음, 오른손을 들어 손목시계도 한번 봤다.

그러고도 뭐가 불안한지 계속 두리번거리다 유제혁과 눈이 마주쳤다.


“저, 저기요. 혹시 317번 게이트······.”


“예.”


“아, 감사합니다.”


초짜 헌터는 생글생글 웃고 벤치 반대편 끝에 앉았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 누가 걸어왔다.

이번에는 트렌치코트를 걸친 사내였다.

그는 걸을 때마다 절그럭절그럭 소리가 들렸다.


‘저건 또 뭐야?’


사내는 정류장을 슥 보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미묘한 기류를 타고 놈의 마력이 느껴지는데, 아까 도착한 초짜보다는 실력있어 보였다.

그리고 또 시간이 제법 흐른 뒤.

이번에는 여성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책가방 정도 크기의 배낭을 맨 사람인데, 척 보기에 관록이 묻어났다.


‘고수인가?’


느껴지는 마력 양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현장에 오자마자 주변을 슥 둘러보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환경을 파악하고, 주변 인물도 파악하고.

그러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여성 헌터는 유제혁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시선이 조금 어긋난걸 보니, 아마 내가 가진 마력 양에 깜짝 놀란것 같았다.

그렇지만,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래서 고개만 한번 까딱하고 치웠다.

그 헌터는 초짜 헌터 옆에 가 앉았고, 곧 두 사람이 뭐라 종알종알 잡담을 늘어놨다.

슬쩍 엿들어 봤는데, 알맹이라곤 하나도 없는 순 잡담이었다.


‘슬슬 출발 안하나. 심심한데.’


마침 저쪽에서 봉고차가 털털털 달려왔다.

봉고차는 정류장에 정확히 멈춰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헌터 협회 완장을 찬 직원이 풀쩍 뛰어내렸다.

그는 정류장에 모인 사람들을 슥 둘러보고 손에 들고있는 종이를 보며 말했다.


“317번 게이트 원정대 맞으시죠?”


“예.”


유제혁이 혼자 대답했다.

그는 어색하게 다른 사람들을 슥 돌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네. 그럼 출석만 한번 확인할게요. 코르보 길드에서 오신 양은서씨?”


“네.”


여성 헌터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무소속 피현태씨?”


코트 남자가 조용히 손을 슥 들었다.


“네. 그럼 페어리테일 길드에서 오신 오수빈씨?”


유제혁이 귀를 쫑긋 세웠다.

페어리테일 길드?


“아, 예! 저에요!”


초짜 헌터가 손을 불쑥 들고 대답했다.

페어리테일 길드에서 나온 헌터라.

안그래도 그쪽 길드하곤 만나고 싶었다.

미끼를 던져도 별 반응도 없고.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이었는데.

저 녀석이 돌파구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무소속 유제혁씨? 오셨습니까?”


“접니다.”


“네. 그럼 한분 빼고 다 오셨네요. 조금만 기다렸다가 출발하죠.”


“아니. 지금 출발하자.”


으르렁거리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다들 눈을 돌렸다.

시커먼 정장 차림의 남자가 봉고 뒤에서 슥 나타났다.

협회 직원이 그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배 반장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도착했어. 다들 모였으니 출발하자.”


유제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남자를 봤다.

그에게서는 마력이 전혀, 요만큼도 안 느껴졌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각성 못한 사람들도 미량의 마력은 품고 있으니까.


‘기척을 지운 헌터라고?’


몸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마력을 차단하다니.

전생에 수배범 신세로 쫓겨다닐 때, 몇번 정도 시도했다.

하지만 끔찍하게 피곤하고 비효율적이라 금방 때려쳤다.

그런데, 저 남자는 지금 그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배범준입니다.”


남자가 유제혁을 발견하고 말했다.


“유제혁이요. 당신은 어디 소속인데요?”


“협회 치안유지반 소속입니다.”


배범준이 악수라도 하자는듯 손을 내밀었다.

새까만 가죽 장갑의 광택이 무시무시했다.


“사람들은 주로 감찰과라고 부르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맺혔다.

헌터 협회 감찰과.

전생에 유제혁을 끝까지 몰아붙인 놈들이다.


“예. 뭐, 잘 부탁드립니다.”


배범준과 불편하게 악수했다.

전생에 날 죽이려던 인간과 같은 원정대가 되다니.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


봉고차에 올라타서 도로를 달려갔다.

헌터 협회 인근 도로는 그럭저럭 매끄러웠다.

협회 직원의 지루한 설명도 끝을 맺자,

차 안에는 털털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싸 왔어요?”


양은서가 오수빈에게 말을 걸었다.

오수빈은 허둥대며 대답했다.


“보급품이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어디 이사가는줄 알았어요.”


그녀가 운을 떼자, 줄곧 점잖은체 하던 피현태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초짜들이 흔히 하는 실수지. 그러다가 배낭에 깔려 죽을걸.”


“아, 죄송해요. 제가 실전 경험은 짧거든요.”


“아니, 현태씨?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못미더운 오수빈 대신에 양은서가 화를 냈다.

피현태는 씨익 웃고 시선을 휙 피해버렸다.

한편, 뒷좌석에 앉은 유제혁은 질식할것 같았다.

옆에 앉은 배범준은 입 꾹 다물고 한 마디도 안했다.


“날씨 좋네요.”


배범준은 대답은커녕 반응도 없었다.

혹시 귀가 먼 사람인가 싶어 수화를 시도했다.


‘근데 나 수화 할줄 모르는데.’


내가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산(山) 뿐이었다.

안하느니만 못한 짓이라서 관두기로 했다.


“감찰과에서 오셨다고요.”


배범준은 들은체만체 했다.


“그럼 헌터 제법 잡아 봤겠네요. 오히려 게이트는 처음이신가?”


배범준은 끝까지 말이 없었다.

이쯤되자 나도 오기가 들었다.


“근데 감찰과가 게이트도 닫으러 갑니까? 거기서 무슨 범죄자라도 나온대요?”


배범준이 이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설마 싶어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나?”


“아, 도착했습니다!”


협회 직원이 때마침 알려왔다.


“317번 게이트에요. 다들 내리시죠!”


봉고차가 털털털 언덕을 올라가 멈춰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헌터들이 우르르 내렸다.

재잘거리던 말소리가 조용히 잦아들었다.

헌터들 모두가 입을 벌린채 어딘가를 응시했다.

유제혁도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경악했다.


높이 10m는 족히 넘어보이는 타원형 게이트였다.


게이트를 바라보는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건 유제혁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너무 큰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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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화 : 서쪽으로 23.06.29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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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 영업 개시 23.06.27 55 0 12쪽
50 50화 : 싱겁게 끝나버렸다 23.06.24 51 1 12쪽
49 49화 : 예언자와 구세주 23.06.23 51 0 12쪽
48 48화 : 검은돌 하얀돌 23.06.22 55 0 12쪽
47 47화 : 공장 탈환 작전 23.06.21 59 0 13쪽
46 46화 : 의외로 제법 모략가 23.06.20 59 0 12쪽
45 45화 : 쓸모있어서 살려준거야 23.06.19 6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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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 갑자기 인기폭발 23.06.17 6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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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더라 23.06.15 7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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