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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의 서재

세상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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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
작품등록일 :
2018.08.04 15:36
최근연재일 :
2018.09.29 15:52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073
추천수 :
26
글자수 :
80,787

작성
18.09.10 20:15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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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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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9화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눈물을 만들 때

DUMMY

일요일 봄날 햇살이 볼을 따스하게 비추고 공기도 좋은 소풍을 나가기에 좋은 날이지만, 옌에게는 핑곗거리가 없는 날에 불과했다.

5살 아들은 어디든 놀러 가고 싶었고, 어딜 놀러 가도 돈이 들기 때문에 옌은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엄마, 소아네 집은 오늘 놀이공원 간데.”


“그래?”


“응, 찬규는 걔네 아빠랑 야구장 간다고 했어.”


“···동진이는 어디 가고 싶은데?”


옌은 어떤 핑계가 좋을지 생각하며 동진에게 물었다.


“나는····. 공원 산책!”


“산책?”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장소에 조금 놀란 옌은 빨래 정리를 멈추고 동진을 바라보았다.


“산책가면 아이스크림도 팔고, 강가에 물고기랑 새도 구경하잖아.”


“동진이는 그게 좋아?”


“응~”


아이가 벌써 엄마를 걱정하는 걸까?

옌은 늘 돈 걱정을 하던 자신의 모습이, 동진에게 어떤 식으로 비쳤을지 조금 불안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뛰어놀며 어리광도 부릴 나이에, 돈 걱정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은, 그거대로 비참한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엄마 빨래만 정리하고 나갈까?”


“응, 할머니도 같이 나가자.”


원룸 건물에서 옌과 동진, 동진의 할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조금 200m쯤 걸어가면 작은 강이 있었고, 잘 정돈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옌과 옌의 어머니는 동진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엄마, 오리!”


동진은 강을 떠다니는 야생 오리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러게, 물고기도 있네.”


동진은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오리와 물고기를 구경했다.

옌은 동진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계속 산책로를 걸었고, 동진은 걸음이 느린 할머니의 보폭에 맞추어 걸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동진이 엄마.”


동진과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의 엄마가 옌을 보자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동진이도 나왔구나? 안녕?”


“안녕하세요. 찬규 어머님.”


“호호호! 얘 봐라. 인사 하나는 똑 부러지네.”


동진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얕은 물가에서 놀기 시작했고, 옌과 찬규 엄마는 따로 떨어져, 말 그대로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진이 엄마, 다음 주에 어린이집 소풍을 간다던데, 동진이 보낼 거야?”


“보내야 하지 않나요?”


“아니, 소풍 간다는 곳이 일종의 놀이 실습장이라는데, 다른 어린이집은 소풍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가는 시설이래.”


“그래요?”


“어어. 아무리 민간 어린이집이라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소풍 회비로 2만 원씩 받는다고 하던데, 그 돈이면 그냥 내가 데리고 가는 게 낫겠더라구.”


“그러고 보니 흙장난치고 노는 놀이 카페도 만원이면 되긴 하네요.”


“내 말이~ 그래서 난 안 보낼까 하는데, 동진이 엄마도 잘 생각해봐.

차라리 엄마들끼리 돈 모아서 애들 끼고 놀러 가는 게 더 낫겠어.”


찬규 엄마는 윙크하며 옌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마도 자기 생각에 동조해달라는 의미일 것이었다.


“저도 생각해 볼게요.

이 기회에 어린이집 원장님께도 건의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런 걸로 다른 어린이집과 차별되면 서로 피곤하니까.

어쨌든 함께 하는 거다? 응? 동진이 엄마.”


찬규 엄마는 옌과의 대화를 끝내자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옌의 어머니가 베트남어로 물었다.


“어린이집 이야기, 별것 아니에요.”


옌은 어머니에게 베트남어로 설명하고, 동진의 손을 잡았다.


“이제 들어갈까? 벌써 두 시간 넘게 놀았네.”


“응, 엄마. 배도 고프다.”


“아이스크림 먹고 배가 고파? 우리 동진이 살찌겠네?”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러는데, 잘 먹어야 빨리 큰데.”


세 가족은 아까처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 골목에 도착했을 때, 옌은 낯익은 SUV 차량을 발견했다.

운전자와 눈이 마주친 옌은 어머니와 동진을 먼저 들여보내고 SUV 차량을 향해 걸었다.

옌이 운전석 앞에 서자 창이 열렸고,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타거라.”


남자의 말에 옌은 아무 말 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탑승했다.


“어쩐 일이세요? 아버님.”


남자는 옌의 시아버지였다.


“며느리 보러 왔다가, 사부인이랑 손주도 같이 봤구나.”


“산책··· 다녀왔어요.”


“동진이가 놀러 가자고 하지 않던?”


“산책하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손주 녀석은 다행히 제 어미를 닮았군.”


“····.”


옌은 말이 없었다.

사라져버린 남편을 욕하는 시아버지 앞에서, 할 수 있는 말도 생각나질 않았다.


“원규 그놈은 아직도 연락이 없더냐?”


“····네.”


“난 나이 50에 며느리가 생기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내가 늙었다는 기분이 싫었으니까.

한국에서 원규와 네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사라지고 착한 며느리가 생기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구나···.”


“아버님···.”


“너희 인생이니 관여하기 싫었지만, 이제 관여해야 할 것 같다.

네 시어머니가 원규와 너의 이혼을 생각하는 것 같아.”


“네? 그게 무슨···.”


“책임도 못 지는 놈이 이혼하고 다른 여자랑 잘도 살겠다고 생각한 나는 반대를 하고 있지만, 따로 원규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남편이 원하면···. 그렇게 되겠죠.”


“억울하지도 않니?”


“전 동진이를 얻었으니까 괜찮아요.”


“네가 그러니까 원규 그놈이 더 저러는 것일 수도 있어.

네 남편한테 화가 나면 화를 내란 말이다.”


옌은 남편인 원규를 처음에 그랬듯 지금도 믿는 것 같았다.

아니, 믿고 싶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옌의 시아버지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네 생일이지?”


“네? 어떻게 그걸···”


“동진이 생일이랑 비슷해서 기억하기 쉽다.

자, 많이는 못 넣었지만, 생일선물이라 생각해라.”


시아버지는 옌에게 봉투를 건넸다.

얇은 봉투에는 20장의 5만 원짜리 지폐가 들어있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받을 수 없어요.”


“받아라. 부담스러워 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

그저 내 손자인 동진이 생일 선물을 직접 해 줄 용기가 없으니 너를 통해 하려는 것뿐이야.

동진이 사고 싶어 하는 거 있으면 이번 기회에 부담 없이 사 주거라.”


“그래도 너무 많아요. 아버님.”


“너도 옷이나 한 벌 사고, 사부인도 선물 하나 사서 드리렴.

젊은 애가 화장품도 좀 사서 꾸미기도 해라. 얼굴이 이게 뭐니?”


시아버지는 옌의 얼굴을 안쓰럽게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촉촉하게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 못난 아들놈 때문에···.”


“아버님, 전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


옌은 당황하며 손수건을 꺼냈다.


“흠! 흠, 별꼴을 다 보이는구나.

이제 들어가서 저녁 먹으렴.”


“저희랑 같이 식사하세요. 아버님.

동진이도 좋아할 거예요.”


“아니다. 다음에 다 같이 먹자꾸나.

지금은 내가 손자와 사부인 볼 면목이 없구나.”


옌의 시아버지는 그렇게 차를 몰고 동네를 떠났다.

떠나가는 차 뒤에서 옌은 허리를 숙여 시아버지에게 인사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남편 때문에 한국을 사랑했고, 남편 때문에 한국이 밉기도 했지만, 다른 좋은 사람들 때문에 정들어버린 한국을 옌은 쉽게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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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술과 함께 쓸려내려간 상처 18.09.29 97 0 7쪽
23 22화 : 용기를 낸다는 것 18.09.28 38 0 8쪽
22 21화 : 평범한 일상의 한 걸음 18.09.27 62 0 8쪽
21 20화 :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18.09.22 42 0 8쪽
20 19화 : 그녀의 가족 18.09.21 84 0 7쪽
19 18화 :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 18.09.20 36 1 8쪽
18 17화 : 이런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18.09.19 75 0 8쪽
17 16화 : 같은 곳 다른 세계 18.09.18 78 0 9쪽
16 15화 : 강물에 비친 달은 잡히지 않는다. +1 18.09.17 70 1 7쪽
15 14화 : 시간에 따라 먹고, 시절에 따라 살아간다. 18.09.15 98 0 8쪽
14 13화 : 누군가에게 주고받는 도움 18.09.14 49 0 8쪽
13 12화 : 후회와 함께 찾아온 기억들 18.09.13 62 0 8쪽
12 11화 : 악의 없는 배려와 상처 18.09.12 75 0 8쪽
11 10화 : 정말 잔인한 나의 가까운 사람 +1 18.09.11 76 1 7쪽
» 9화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눈물을 만들 때 +1 18.09.10 89 1 8쪽
9 8화 : 꿈에서 반복되는 그날의 기억 +1 18.09.08 120 1 9쪽
8 7화 : 후회는 잊었을 때 찾아온다. +1 18.09.07 75 1 7쪽
7 6화 : 잃거나 부족하거나 +1 18.09.06 93 2 8쪽
6 5화 : 18세, 동철 +1 18.09.05 80 3 8쪽
5 4화 :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 +1 18.09.04 113 3 8쪽
4 3화 : 오 씨 노인 +1 18.09.03 88 3 8쪽
3 2화 :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1 18.08.13 128 3 7쪽
2 1화 : 그는 어린 시절이 싫었다. +1 18.08.09 153 3 7쪽
1 프롤로그 +1 18.08.04 190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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