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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의 서재

세상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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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
작품등록일 :
2018.08.04 15:36
최근연재일 :
2018.09.29 15:52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079
추천수 :
26
글자수 :
80,787

작성
18.09.06 23:00
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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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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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화 : 잃거나 부족하거나

DUMMY

비 내리는 어느 날

윤호와 민정은 방에 앉아 노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자기야, 우리 이번 달은 문제 없겠지?”


“어, 그럴 거야.”


“나가볼게, 늦겠다.”


“어, 우산 챙기고. 점심 꼭 먹어.”


민정은 우산을 들고 원룸 건물을 나섰다.

그녀는 최근 8개월간의 짧은 계약직 일을 끝내고, 취업을 준비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시립 도서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윤호는 컴퓨터를 켜 인터넷뱅킹에 접속했다.


‘잔액 22,000원’


그것이 윤호가 가진 통장의 돈이었다.

윤호는 만원을 민정의 통장으로 이체한 후, 인터넷뱅킹 창을 닫았다.

만원이면 민정이 점심을 먹고, 커피라도 하나 사 마실 수 있을 것이었다.

민정은 전철로 15분 거리인 시립 도서관에 늘 걸어 다녔다.

차비라도 아끼고 먹을 돈이라도 아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윤호는 원래 사업장을 가진 업체 대표였으나,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며, 지금은 그저 컴퓨터 한 대로 하던 일을 유지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벌고 있었다.

한 달에 8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상태지만, 이거라도 없으면 아내와 반려견은 굶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월세 50만 원과 빚진 돈을 갚으려면 한 달에 180만 원은 필요했지만, 80만 원에서 월세를 빼면 30만 원이 겨우 남았기에 윤호의 신용등급은 신용불량이 된 지 오래였다.


‘XX 대부금융 변제금 8,900,000원’

‘XXX 저축은행 변제금 2,980,000원’

‘XX 카드 변제금 880,000원’


이외에도 몇 개의 업체에서 돈을 갚으라고 난리였다.

당연히 갚아야 할 돈이고 윤호도 갚으려 노력했다.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들은 이미 대부업체에서 채권을 사, 대부업체의 이름으로 추심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권이 아닌 개인적으로 빌린 돈을 합치면 1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윤호는 밀려오는 억울함에 몸을 떨었다.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윤호는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증오하면서···


같은 시각, 아름은 다른 학생들보다 빨리 학교에 도착하고 있었다.

조별 과제 발표를 위해 조원들보다 먼저 도착해 파일을 정리하고, 빔프로젝터에 켜보고 실험하며 확인했다.


“아름아! 너 벌써 왔니?”


“왔어? 우리가 순번으로 2번째니,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 없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어차피 적당히 해도 A 아니면 A+ 주겠지. 이런 과목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니야?”


“얘는···. 교수님 들으면 성나시겠다.”


“교수는 무슨, 강사지.

아름아, 교내 편의점이나 가자. 나 배고파.”


“····그래. 가자.”


아름은 친구와 함께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운 다음, 강의실로 돌아갔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된 아름의 발표는 철저한 준비를 해서인지, 관련 실무자들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완벽한 자료와 발표였다.


“서아름 학생, 수고했어요. 조원들도 고생했습니다.

다음, 조 발표하세요.”


아름과 조원들은 신이 나 자리로 돌아갔고, 다음 조의 발표가 준비되고 있었지만, 발표자는 머뭇거리며 진행을 늦추고 있었다.


“3조,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요. 조원 한 명이 아직 도착을 못해서요.”


“저런···. 지각이란 소린데.”


그 순간.


“늦어서 죄송합니다···.”


강의실 뒷문에서 한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들어오며 말했다.


“음···. 강소연 학생 맞죠? 거의 한 시간을 지각했네요.

사유가 있나요?”


“그게···. 차량 접촉사고가 있어서요.”


“접촉사고? 택시를 탔나요?”


“아니요. 제가 몰다가요.”


“가벼운 접촉사고면 보험 부르고 금방 끝날 텐데, 제법 오래 걸렸네요?”


“페라리라 보험사와 이야기가 좀 길어졌고, 피해자분한테 보상을 하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페라리? 그 고급차 말하는 건가요?”


“네···.”


“그렇다 해도 너무 늦었어요.

적절한 사유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지각으로 인한 개인 벌점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발표자는 어서 발표하세요.”


소연이란 이름의 여학생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빈자리로 향했다.


“강사님,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벌점이야기는 그냥 없던 걸로 하시죠?”


“작더라도 교통사고인데 너무 하십니다.”


한 남학생과 여학생이 말했다.


“그러니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겁니다.”


강사는 흐트러짐 없는 말투로 대답해 주었고, 몇 명의 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강사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강소연 학생이 SY그룹 사장님 딸이지요?

상류층답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꼭 실천하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줄 잘 서는 게 군대만 있는 건 아니라지만, 대학에서 그럴 줄은 몰랐네요.

3조, 발표 안 합니까?

계속 발표를 늦추고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면 이번 과제는 F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3조 학생이 발표를 시작하고,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소연은 그냥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주변의 학생들이 더 성을 내며 감싸주는 분위기를 보던 아름은 이 상황을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화가 난다고 해야 할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오후 6시, 윤호는 인력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본업이 있더라도 다시 일으키려면 큰돈이 필요했기에, 기본 생활을 하려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저한테 맞는 일이 없나요?”


“죄송한데··· 없네요. 사무직은 여직원을 구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나이에 걸리시고 현장은···.”


“공사 현장은요?”


“현장도 자리가 없네요.”


“·····.”


“저···. 몇 군데 가보시고 온 거예요?”


“하아···. 여기가 네 번째입니다.”


인력사무소 직원은 윤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윤호가 다가오자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 외국 애들 보이죠?”


윤호는 직원이 가리키는 사람들을 보았다.


“네. 몇 명 앉아있네요.”


“다른 지역은 모르겠는데, 이쪽 현장에선 초짜 인력으로 저런 사람들을 주로 원해요.

우리 같은 한국 사람은 돈 조금 줘도 아무 말 않고 하거나, 경력이 되면 부르긴 하는데, 저기 쟤들은 그냥 하루 5만 원 준다고 하면 하거든요.”


“네? 8~9만 원에서 소개비 빼면 7만 원 가져가는데 5만 원을 준다고요?”


“어허, 조용히. ···불법체류자니까.

5만 원에 소개비 만원 빼도 쟤들은 아쉬울 거 없다니까.”


“그렇다면···.”


“그냥 연락처 주고 가요. 혹시 자리 나면 내 바로 연락해줄 테니까.”


윤호는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고 인력사무소를 나왔다.

비가 내려서 인지 저녁이 금방 다가오는 것 같은 오늘, 윤호는 비가 내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맑고 화창했으면 더 비참할 것 같았으니까···.


원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 들른 윤호는 저녁을 먹기 위해 라면을 몇 개 사고, 6개 3,000원 하는 생수를 샀다.

휴대전화가 울리며 문자가 왔음을 알렸고, 윤호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관소입니다. 이삿짐을 너무 오래 맡겨두시는데 보관료도 밀리시면 곤란해요. 서둘러 입금 바랍니다.]


윤호는 잊고 있었다는 듯 머리를 쳤다.


“아, 잊고 있었네. 아이고····.”


“잊으신 게 있나 봐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름이 물었다.


“아아···. 알고 있어도 돈이 없어서 못했을 겁니다.

빨리 처리하긴 해야겠죠. 하하.”


윤호는 허탈하게 웃으며 체크카드를 건넸다.


“그러게요···. 돈이 없으면, 사람 힘이 빠지는 세상이더라고요.

저도 오늘, 조금은 느꼈어요.”


“그래도 힘내야겠죠. 그럼,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아름은 언제나 먼저 인사를 해주고 밝아 보였던 손님의 어두운 얼굴을 봐서인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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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술과 함께 쓸려내려간 상처 18.09.29 97 0 7쪽
23 22화 : 용기를 낸다는 것 18.09.28 38 0 8쪽
22 21화 : 평범한 일상의 한 걸음 18.09.27 62 0 8쪽
21 20화 :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18.09.22 42 0 8쪽
20 19화 : 그녀의 가족 18.09.21 84 0 7쪽
19 18화 :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 18.09.20 36 1 8쪽
18 17화 : 이런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18.09.19 76 0 8쪽
17 16화 : 같은 곳 다른 세계 18.09.18 78 0 9쪽
16 15화 : 강물에 비친 달은 잡히지 않는다. +1 18.09.17 70 1 7쪽
15 14화 : 시간에 따라 먹고, 시절에 따라 살아간다. 18.09.15 98 0 8쪽
14 13화 : 누군가에게 주고받는 도움 18.09.14 49 0 8쪽
13 12화 : 후회와 함께 찾아온 기억들 18.09.13 62 0 8쪽
12 11화 : 악의 없는 배려와 상처 18.09.12 76 0 8쪽
11 10화 : 정말 잔인한 나의 가까운 사람 +1 18.09.11 76 1 7쪽
10 9화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눈물을 만들 때 +1 18.09.10 90 1 8쪽
9 8화 : 꿈에서 반복되는 그날의 기억 +1 18.09.08 120 1 9쪽
8 7화 : 후회는 잊었을 때 찾아온다. +1 18.09.07 75 1 7쪽
» 6화 : 잃거나 부족하거나 +1 18.09.06 94 2 8쪽
6 5화 : 18세, 동철 +1 18.09.05 81 3 8쪽
5 4화 :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 +1 18.09.04 113 3 8쪽
4 3화 : 오 씨 노인 +1 18.09.03 88 3 8쪽
3 2화 :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1 18.08.13 128 3 7쪽
2 1화 : 그는 어린 시절이 싫었다. +1 18.08.09 154 3 7쪽
1 프롤로그 +1 18.08.04 190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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