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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의 서재

세상이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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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냥이
작품등록일 :
2018.08.04 15:36
최근연재일 :
2018.09.29 15:52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081
추천수 :
26
글자수 :
80,787

작성
18.09.08 19:00
조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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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화 : 꿈에서 반복되는 그날의 기억

DUMMY

저녁 8시, 퇴근 이후 식사를 하는 많은 사람으로 식당 거리가 붐볐다.

오늘도 옌은 순댓국집에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여기, 소주 한 병이요~”


“사장님, 김치 좀 더 주세요.”


오늘따라 순댓국집은 사람들로 넘쳤다.

근처 공사 현장에 일하는 사람들의 회식이라도 있는 건지, 현장 근무 복장의 손님들이 많았다.


“옌, 3번 테이블에 이 머리 고기 한 접시 드리고, 저기 7번 테이블에는 빈 술병 좀 치우고 반찬 리필 좀 해줄래?”


“네, 사장님.”


옌은 능숙한 솜씨로 쟁반에 빈 술병을 담아 치웠고, 손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확인하여 반찬이 더 필요해 보이면, 가득 찬 반찬으로 교환해주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가 많이 바쁘네요. 사장님.”


“아, 바쁘면 좋죠. 하하하.”


“냉장고에서 나 막걸리 한 병 가져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금테 안경을 낀 점잖아 보이는 노인은 순댓국집 사장에게 말하고선 막걸리 한 병을 꺼내 자리로 돌아갔다.


“자, 한 잔 더 받아.”


“허허허, 덕분에 막걸리는 원 없이 마시는구먼.”


안경 낀 노인은 오씨 노인의 잔을 채워주었다.


“정 사장, 우리가 얼마 만에 보는 거지?”


“글쎄 한 1년 됐나?”


“시간이 금방 가버리는군···.”


“내가 자네를 좀 보려고 해도, 올 때마다 자네가 없어.

휴대폰이라도 좀 들고 다녀 이 사람아.”


“필요 없어···. 어차피 연락도 자네랑 만 할걸?”


오씨 노인이 유일하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는 하는 사람은 ‘정 사장’이라 불리는 노인이었다.

둘 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었으며, 같은 부대에서 동료로 지냈고 귀국 이후 지금까지 친구로 지냈다.


“가족이랑 연락은 좀 해?”


정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씨는 막걸리 한 잔을 다 비우고 고개를 숙였다.


“나 같은 버러지가 가족에게 무슨 낯짝으로 연락하겠나.”


“어허, 버러지라니.

아무도 자네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자넨 그저 가족을 위한 선택을 했지만, 그것이 잘 못되었을 뿐이야.”


정 사장은 오씨의 잔에 막걸리를 더 따르며 말했다.


“빈 병 치우고 깍두기 더 가져다 드릴게요.”


옌은 정 사장과 오씨의 테이블에 있는 두 병의 빈 막걸리 병을 치우며 말했다.


“고향이 어디 신가? 사투리가 섞인 것 같은데?”


“아, 저 베트남에서 왔어요.”


정 사장이 옌의 고향을 물었고 옌은 베트남인인 것을 알려주었다.


“이야~ 한국말이 너무 유창하네.

난 그저 사투리 조금 섞인 줄 알았어. 허허허.”


“아가씨 고향이 베트남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정 사장과는 달리 오씨는 어두운 표정을 보이며 옌에게 물었다.


“네, 베트남···.”


오씨는 옌을 잠시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내가 미안해요.”


오씨는 뜬금없이 옌에게 사과하기 시작했고, 옌은 당황하며 오씨를 말렸다.


“할아버지 많이 취하셨나 보네요. 깍두기랑 물도 더 가져다 드릴게요.”


옌이 자리를 떠나자 정 사장은 오씨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 꿈, 꾸는가?”


“그래도 요즘은, 몇 달에 한 번 꾼다네.”


“그때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질 않은가.

멍청한 중대장 놈이 잘못한 거야.”


“폭파 레버를 돌린 건 나라네.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정 사장과 오씨는 옛 생각이 났는지 서로 말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오씨가 참전한 베트남전 당시, 그는 중대장의 명령으로 폭파 레버를 돌려 다리를 무너뜨렸었다.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작은 다리를 없앤다고 전략상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베트콩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다리를 파괴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다리를 파괴하려 할 때 민간인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한 명의 노년 남성과 두 명의 부녀자, 한 명의 아이였다.

평소 포악한 성격의 중대장을 무서워했던 오씨는 중대장의 명령으로 레버를 돌리려 했고, 민간인을 발견하자 머뭇거렸다.

머뭇거리는 오씨를 향한 중대장의 발길질을 견디지 못한 오씨는 레버를 돌려버렸고, 큰 폭발과 함께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씨는 그때 중대장이 한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놈이 내게 말했어.

우린 명령대로 다리를 폭파했고, 풀숲에 가려져 민간인이 오는 건 몰랐다고···.”


“아이고···. 이 심약한 친구야.

그래, 저 베트남 아가씨한테 사과하니 좀 풀리는 것 같은가?”


“조금은···. 조금은 풀리는구먼.”


“한 잔 더 하게.”


정 사장은 오씨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아가씨, 베트남에서 왔어? 동남아? 뿅뿅~”


깍두기를 가져오던 옌을 잡고 몇 명의 중년 남자들이 희롱을 하는 것 같았다.


“아가씨, 몇 살이야?”


“27살이요.”


“이야~ 딱 맞네. 나랑 결혼할까? 잘해줄게~”


“야이 미친놈. 네 나이가 50이다.”


“이런 애들 원래 우리 나이 남자랑 결혼하고 그래, 어차피 돈으로 팔려오는 건데 뭐.”


옌을 희롱하던 남자는 옌의 허리를 붙잡으며 무릎에 앉히려고 행동을 했다.

이에 놀란 옌이 일어나며 소주병이 넘어졌고, 소주가 옌을 희롱하던 남자의 다리로 흐르고 말았다.


“에이! 미친년이, 개지랄을 떨어서 옷을 더럽혔네. 이거 어떡할 거야!”


적반하장이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았다.

남자는 옌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남자들은 말리려고 하지 않아 보였다.


“거, 아저씨. 적당히 하고 밥 먹읍시다.”


오씨가 말했다.


“뭐여? 시비거는거여? 노친네 오늘 죽고 싶은가?”


“꼬락서니를 보니 같이 늙어가는구먼, 그렇게 추하게 늙는 거 아니다.”


“이 영감탱이가!”


순댓국집 사장이 달려와 옌을 희롱하던 남자를 붙잡아 말렸다.


“손님, 진정하세요. 손님.

그리고 우리 직원은 이미 한국 젊은 남자랑 결혼도 했고, 베트남에서 우리나라 서울대 같은 대학도 다녔어요.

여기선 그냥 아르바이트하는 겁니다. 여기 CCTV도 다 있는데, 우리 직원이 독한 맘 품고 신고라도 하면 손님 어쩌시려고···.”


사장은 은근히 먹이는 말투로 남자를 말렸다.


“뭐여? 시펄! 내 가방끈 짧다고 저 까무잡잡한 년한테도 무시당해 싸단 말이야?”


“야! 말은 바로 해라. 까무잡잡하진 않다. 딸꾹!”


“저놈은 저거 동남아면 다 까무잡잡이지 뭐···.”


“뭐야! 이 새끼들이~!!”


남자는 같은 테이블의 동료마저 자신을 조롱하자 더욱 흥분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아저씨, 내 친구가 부탁을 했던 것 같은데.

조금만 진정하시고, 식사하시지요.”


정 사장이 말했다.


“이건 또 뭐여? 양복 입고 머리에 기름칠 좀 하셨다 그건가?

그래 시벌, 내 오늘 사고 한번 저지른다.”


남자가 정 사장의 머리로 소주병을 내려치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남자의 팔을 잡아 소주병을 빼앗았다.

건장한 체격의 중위 계급장을 단 군인이 남자를 제압했고, 다른 군인 한 명은 정 사장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장군님.”


“아, 괜찮네. 자네들한테 괜한 불편을 줬구먼.”


“행사 덕분에 저희도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CCTV도 있으니, 저 사람은 저희가 조용히 잘 타이르고 보내겠습니다.”


“고맙네. 중위.”


정 사장은 예비역 중장으로 오씨와는 달리 계속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근처에 군 후배가 초대한 행사에 왔다가 오씨를 만났으며, 행사 뒤풀이를 하던 후배의 부대원들이 같은 순댓국집에 있었던 것이다.

건장한 군인 두 명에 의해 끌려가듯 나가는 남자를 동료로 보이는 중년 남자들이 당황하며 따라갔다.


“아휴~ 신세 졌네요. 막걸리 한 병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순댓국집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오씨와 정 사장은 서로의 잔을 채웠고, 둘은 옌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며 웃었다.

옌도 웃으며 답하고 깍두기를 새로 담아 가져다주었다.


“아니, 난 그 사람이 장군인지 몰랐다니까···요?”


“선생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셨으니 경찰을 부를까 합니다.

어떠십니까? 아니면 그냥 댁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권장해 드릴까 합니다.”


“아휴~ 우리 군인 아저씨들도 나 땜시 힘들 테니 집에 가야지.

경찰들도 이런 일로 왔다 갔다 하면 힘들어~”


가게 밖에서는 군인들의 설득(?)으로 술 취한 남자의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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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3화 : 술과 함께 쓸려내려간 상처 18.09.29 97 0 7쪽
23 22화 : 용기를 낸다는 것 18.09.28 38 0 8쪽
22 21화 : 평범한 일상의 한 걸음 18.09.27 62 0 8쪽
21 20화 :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18.09.22 42 0 8쪽
20 19화 : 그녀의 가족 18.09.21 84 0 7쪽
19 18화 :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것 18.09.20 36 1 8쪽
18 17화 : 이런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18.09.19 76 0 8쪽
17 16화 : 같은 곳 다른 세계 18.09.18 78 0 9쪽
16 15화 : 강물에 비친 달은 잡히지 않는다. +1 18.09.17 70 1 7쪽
15 14화 : 시간에 따라 먹고, 시절에 따라 살아간다. 18.09.15 98 0 8쪽
14 13화 : 누군가에게 주고받는 도움 18.09.14 49 0 8쪽
13 12화 : 후회와 함께 찾아온 기억들 18.09.13 62 0 8쪽
12 11화 : 악의 없는 배려와 상처 18.09.12 76 0 8쪽
11 10화 : 정말 잔인한 나의 가까운 사람 +1 18.09.11 76 1 7쪽
10 9화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눈물을 만들 때 +1 18.09.10 90 1 8쪽
» 8화 : 꿈에서 반복되는 그날의 기억 +1 18.09.08 121 1 9쪽
8 7화 : 후회는 잊었을 때 찾아온다. +1 18.09.07 75 1 7쪽
7 6화 : 잃거나 부족하거나 +1 18.09.06 94 2 8쪽
6 5화 : 18세, 동철 +1 18.09.05 81 3 8쪽
5 4화 :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 +1 18.09.04 113 3 8쪽
4 3화 : 오 씨 노인 +1 18.09.03 88 3 8쪽
3 2화 :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1 18.08.13 128 3 7쪽
2 1화 : 그는 어린 시절이 싫었다. +1 18.08.09 154 3 7쪽
1 프롤로그 +1 18.08.04 191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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