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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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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28 21:10
연재수 :
1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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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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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749,166

작성
23.12.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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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25. 손님맞이 2

DUMMY

4.


일성은 총소리가 난 곳까지의 거리를 얼추 헤아려 보았다.


보통 걸음으로 한 시간.


축지술을 쓰면 십여 분이면 도달할 거리였다.


“잠시 다녀오겠소. 법당을 잘 지키고 계시오. 허헛···.”


일성은 청운당을 나서면서 말했다.


그러자 초가 마루에 앉아 합체된 닭 뼈가 걷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몸뚱이가 일성을 돌아보았다.


시커멓게 죽은 눈, 반쯤 벌어진 입 사이로 슬쩍 삐쳐 나온 혀.


더운 날씨 때문에 벌써 구석구석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피부.


게다가 가슴팍에는 일성이 쓴 부적을 붙이고 있는··· 몸뚱이!


그건 다름 아닌 일성이 죽인 송담이었다.


일성이 사라지자 송담의 시신은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몸은 합체된 닭 뼈와 함께 마당을 걷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느릿느릿 닭 뼈와 발을 맞추기도 하고.


간혹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게 제법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일성은 점점 속력이 붙는 자신의 움직임에 신이 났다.


게다가 서서히 몸이 가벼워지기까지 하는 기분이라니.


휑- 하니 나뭇가지를 스치며 지나갈 때 팔뚝이 간질거리자 일성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우우우! 오늘은 어찌 이리 떠오를 것만 같단 말인가?”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걸 넘어 몸 자체가 깃털처럼 뜨는 느낌.


일성은 이대로 조금만 더 용을 쓰면 축지술로 구름을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명 운보법(雲步法)!


축지술에 있어서 신선의 경지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운보법!


수없이 시도했으나 결국 다다를 수 없었던 바로 그 운보법!


자신의 실력이 용보법(용의 걸음걸이)의 거의 마지막 단계일 때였을 것이다.


발은 빠르지만 몸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있던 일성.


이런 제자를 보고 스승 운천은 호통을 쳐댔다.


‘몸과 마음이 탁하고 어지러워서 그렇다!’


당시 스승의 말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보통 도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겠거니 생각하고는 그냥 그렇게 단념해 버리고 말았었다.


동시에 그의 축지술도 거기서 그렇게 멈춰버렸다.


하지만 지금의 이 느낌을 확인하자 그때 너무 쉽게 포기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몸과 마음이 탁하고 어지러워서라고?’


일성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술에 고기까지 잔뜩 먹은 내가 아닌가?’


탁하고 어지럽기로 치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늘.


탁하고 어지러워진 몸이 어찌 이리 비눗방울처럼 떠오르려 한단 말인가?


‘다 거짓말이었어!’


일성은 그간 스승이 자신에게 해왔던 말들을 곱씹으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렇게 의심이 자라기 시작한 마음의 한 자리는 걷잡을 수 없이 어두워져만 갔다.


자기 혼자 신선이 되기 위해 몰래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는 스승.


그리고 그 스승이 청운당의 후계자라 점찍은 정철에게만 몰래 고기와 술을 먹이는 모습.


이런 기가 막힌 장면이 연상되자 일성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나도 고기 좀 더 먹고 신선이 되어야겠다!”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가벼운 일성의 몸이 휙 하니 지나갔다.



5.


청운당에서 멀지 않은 산기슭.


“야, 이 병신새끼야! 트리거 락 걸라니까!”


(*트리거 락: 방아쇠 잠금장치)


한 남자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엽총을 떨구는 걸 본 또 다른 남자는 눈이 뒤집혔다.


넘어진 남자의 이름은 철민.


눈이 뒤집힌 남자는 길수다.


둘은 친구 사이다.


길수는 조금 전의 오발 사고가 또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저놈은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잡아놓은 사냥감이 꽤 되기 때문에 그냥 꾹 참고 있는 거였다.


‘제발 더 이상 사고 치지 마라.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다.’


이런 무언의 압력에 무안했던 걸까.


철민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들고 있던 반자동 엽총의 트리거 락을 채우는 손은 여전히 불안했다.


“소음기도 다시 잘 끼우라고!”


철민은 길수의 이런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가 거슬렸다.


하지만 조금 전 그가 저지른 오발 실수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미등록 불법 총기에 역시 불법인 소음기까지 장착이라.


수렵 허가는 당연히 받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러는 게 걸린다면 당연히 쇠고랑이다.


건장한 외모에 사제 군복 바지와 전투화.


그리고 제법 근사해 보이는 헌팅 조끼에 슈발리 모자까지 갖춰 입은 길수.


그의 표정은 조금 전 오발 사고 시점부터 굳어서 좀처럼 풀어지지 않고 있다.


반면 안경을 쓴 빈약해 보이는 외모.


거기다 싸구려 트레이닝복을 대충 걸친 철민은 자꾸 히죽대면서 진을 뺀다.


“여기 좀 쉬었다 가자! 술 한잔하면서 잡은 것들 구경도 좀 하고!”


철민의 말에 길수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강행군을 하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두 사람은 큰 나무 아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길수는 쉬면서도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철민은 소풍이라도 온 양 연신 싱글벙글이다.


배낭에서 양주를, 자루에서 사냥감들을 하나하나 꺼내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그때였다.


그들의 뒤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엽사님들, 많이들 잡으셨네요!”


놀란 길수가 몸을 돌리면서 본능적으로 총을 겨누었다.


철민은 그냥 멍한 표정이었다.


“워- 워- 워- 왜 이러십니까?”


총구가 자신에게 향한 걸 본 일성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일성의 시선이 두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이어서 바닥에 펼쳐진 술과 사냥감으로 떨어졌다.


일성은 이렇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잡는 법은 두 가지!


하나는 직접 다니면서 잡는 법이고, 또 하나는 잘 잡는 놈을 시켜 잡는 법.


직접 잡는다면야 사냥의 묘미도 제법 느끼고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날이 이리 더운데 수고롭지 않겠는가?


아무리 도술을 쓴다 해도 말이다.


해서, 조금 전 총소리를 들었을 때 바로 두 번째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누구요?”


길수는 묘한 차림의 남자가 수상했다.


승복 비슷한 걸 입고 있는데 긴 머리로 봐서는 스님은 아닌 것 같고.


얼핏 산에서 약초를 뜯어 팔며 사는 사람 같기도 한데.


어찌 되었든, 단속반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사냥철도 아닌데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느슨해지려던 긴장감이 순간 다시 팽팽해졌다.


일성의 말은 총을 쥔 길수의 손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너 이 새끼 단속반이야? 내가 여기 지구대 넘버원하고 잘 알아. 허락받고 왔다고.”


일성은 남자의 눈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흥분하고 있었다.


남자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일성은 다시 남자를 자극하는 말을 이어갔다.


“아까 총소리에 제가 모시던 귀신이 놀라 달아나셨습니다. 다시 불러 모시게 제사상에 올릴 고기 몇 점 좀 얻어 가야겠습니다.”


부처처럼 인자한 얼굴만 아니었으면 주먹이 날아올 만큼 건방진 말투였다.


아니나 다를까.


길수는 총을 거꾸로 세워 들더니 식식대며 일성에게 다가왔다.


“뭐라고?”


그러자 일성은 기다렸다는 듯 한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기합을 넣었다.


길수는 앞으로 다가서다 뭔가에 막힌 듯 멈춰 섰다.


이어 총을 놓친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크허어엌-!”


길수가 공중에서 자기 목을 부여잡고 몸부림을 쳐댔다.


일성이 손에 힘을 주자 길수는 숨이 막히는지 더욱 거세게 발악했다.


이 모습을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던 철민은 바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잡은 고기를 놔두고 가면 누가 다 들고 가라고?”


일성은 바지 주머니에서 부적을 하나 꺼내더니 철민을 향해 날렸다.


부적은 제 주인을 만난 듯 그의 등에 철썩하고 달라붙었다.


철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다시 일성이 주머니에서 또 하나의 부적을 꺼내 던졌다.


이번 목표는 공중에 떠서 발악하는 길수.


역시 부적이 몸에 붙자 그의 몸도 기운을 잃으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 이제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


일성은 바닥에 떨어진 양주와 토끼 한 마리를 주워 들더니 앞장섰다.



6.


청운당.


일성은 노릇노릇 잘 구워진 토끼 다리를 베어 물다가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시바스 리갈을 한잔 삼켰다.


술은 두 사냥꾼이 가져온 거였다.


“캬-! 이게 옛날에 박통이 즐겨 마셨다는 그 술인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싸한 느낌과 향이 싸구려 소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도술에도 등급이 있는 것처럼 술에도 등급이란 게 있구나!’


일성은 술병의 라벨을 내려다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나도 이제 양주를 마셔야 하는 등급 아닌가? 흐흐흐!”


한 잔을 더 따라 마시려고 할 때였다.


바스락-!


귓전에서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영력을 불어넣은 나뭇잎을 진입로 초입부터 뿌려두었었다.


그럼, 누군가가 방금 그곳을 지나갔다는 얘기다.


일성은 술병을 초가 마루에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드디어 오신 모양이다. 누굴까? 법사님들 중 하나인가, 아니면 스승님이 직접? 흐흐흐···.”


먼 산을 바라보면서 일성이 중얼거렸다.


음산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무겁게 걸렸다.


“지금 방어진의 초입에 들어섰으니까··· 여기까지 찾아오려면 꽤 걸리겠구나. 한 삼일? 아니지 그래도 명색이 청운당의 도사들인데 하루 반? 하하핫!”


술이 올라 발그레한 일성의 눈가에서 흥이 느껴졌다.


그의 눈은 다시 빨랫줄에 나란히 걸려있는 사냥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오늘은 토끼를 먹었으니 내일은 저 꿩이나 먹어야겠다. 가만있자! 스승님이 오시면 저 새끼 멧돼지를 구울까?”


백화점에 진열된 명품을 둘러보는 것처럼 일성은 점점 신이 나나 보다.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래, 그렇지! 여기까지 오시느라 많이 시장하실 텐데 그게 좋겠어. 술도 좀 남겨 둬야겠구나, 하하핫!”


일성은 다시 초가 마루에 앉아 술병의 마개를 닫았다.


고개를 돌리더니 초가의 뒤편을 향해 소리 질렀다.


“얘들아! 손님 모실 준비해라. 아주 귀한 분들이니까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테다. 넉넉하게!.”


초가 뒤편에서 시커먼 그림자 둘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그 그림자들은 다름 아닌 길수와 철민!


몸에 부적을 하나씩 붙이고 있는 두 사람은 마당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삐그덕!

삐그덕!


뻣뻣하고 생기 없는 걸음걸이였다.


사냥물이 널린 마당의 중간쯤에 선 두 사람은 어깨에 걸고 있던 반자동 엽총을 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탄띠에서 실탄을 하나하나 빼더니 총에 장전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연속해서 이어지는 장전 소음이 제법 위협적으로 들렸다.


장전이 완료된 엽총 총구의 가늠쇠가 햇볕에 빛났다.


엽총은 여차하면 바로 발사라도 될 것처럼 팽팽한 긴장을 품고 있었다.


일성은 문 앞을 어슬렁거리는 송담에게도 당부를 했다.


“식구들이 돌아오나 보네. 혹시 그새 길이라도 잃었는지 모르니 그 앞에서 잘 보고 있다가 안내라도 해드리게나. 으하하하하핫-!”


잠시 멈춰 일성의 말을 들은 송담은 다시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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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손님맞이 1 23.12.23 44 1 12쪽
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43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43 1 11쪽
21 021. 봉인술 2 23.12.20 42 1 12쪽
20 020. 봉인술 1 23.12.19 48 1 11쪽
19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40 1 11쪽
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52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53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56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50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53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56 2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64 2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62 2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74 2 11쪽
9 009. 건우, 드디어 2 23.12.07 79 2 11쪽
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83 2 11쪽
7 007. 추적 3 23.12.05 84 2 11쪽
6 006. 추적 2 23.12.04 91 2 12쪽
5 005. 추적 1 23.12.03 100 2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31 3 11쪽
3 003. 떨어진 곳이 하필 1 23.12.02 191 1 11쪽
2 002. 야반도주 2 23.12.01 243 3 11쪽
1 001. 야반도주 1 23.12.01 396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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