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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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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21 21:10
연재수 :
1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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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873

작성
23.12.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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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8. 딸기잼, 포도잼 1

DUMMY

1.


예스패치 사무실.


기사 정리로 밤을 새운 유 기자가 기지개를 켰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찬 땀 때문에 기분이 찜찜한지 금세 얼굴이 구겨졌다.


밤 11시만 넘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에어컨.


그때부터 사무실은 한증막으로 변한다.


짬이 좀 찬 선배 기자들이야, 여기저기 시원한 곳으로 접대받으며 잘도 다니던데.


자기 같은 초짜 기자는 아직 그런 걸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


‘병아리 3년은 지나야 사람 되지···.’


선배 기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


구박과 질타와 모욕과 멸시와···.


또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차는 땀을 참아내면서 말이다.


유 기자는 필통에서 칫솔과 치약을 뽑아 들었다.


의자 등받이에 걸쳐 있던 수건을 목에 두르고 일어섰다.


수건에 스며있던 퀴퀴한 냄새가 목을 타고 올라와 코를 찔렀다.


화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무거웠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누렇게 때가 낀 세면대 앞 거울에 물을 한번 끼얹었다.


흐릿하던 거울에 유 기자 자신의 얼굴이 드러났다.


많이 자란 스포츠형 머리에, 게슴츠레한 눈, 그리고 삐죽삐죽 돋은 수염까지.


아직 이십 대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다.


형편없는 자신의 몰골을 보자 기운이 빠졌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국장처럼 변하는 건 아닌가?’


국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배불뚝이에 M자형 탈모’가 떠오르자 소름이 돋았다.


칫솔에 치약을 짜 올리는데 배가 사르르 아파져 왔다.


유 기자는 새벽에 먹었던 설익은 컵라면이 생각났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익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먹었더니만···.’


들고 있던 치약과 칫솔을 세면대 위에 내려놓고서 첫 번째 좌변기 칸 문을 당겨 열었다.


순간, 게슴츠레 반쯤 감겨 있던 유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허어어어어엌~!”


웬 남자 하나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게 아닌가.


유 기자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자살?’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곧바로 동료 기자거나 이 건물에 입주한 다른 회사 직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바로 이어졌다.


끔찍함에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그런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옷차림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게다가···,


“드르르어엉~ 네, 예스패치에 신 기자입니다, 푸우우··· .”


목소리까지도 낯설지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 기자는 얼른 달려들어 신 기자를 일으켰다.


“선배님, 일어나세요!”


신 기자의 얼굴이 들어 올려졌다.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얼굴에는 잔뜩 피가 쏠려있었다.


그리고 얼굴의 바깥 테두리를 따라 난 변기 커버 자국도 선명했다.


“선배님,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신 기자는 눈을 떴다.


뿌옇던 눈앞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유 기자··· 너 뭐냐? 여긴 어디야?”


눈앞의 낯선 환경과 예상치 못한 얼굴이라!


이상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두통이 밀려오는지 몸을 일으키면서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신 기자는 유 기자의 부축을 받으면서 화장실을 벗어났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젯밤이 일이 퍼즐 조각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줄리 한···.”


입술을 깨물면서 중얼거리는 말에 유 기자가 고개를 돌리면서 묻는다.


“네? 뭐라고 하셨나요?”


유 기자의 몸에 기댄 채 걷고 있던 신 기자는 “아니야!”라고 짧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 분명, 자신은 어젯밤 블루 호텔에 있었다.


김 지배인을 따라 5층 커피숍 매장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잠시 후 도착한 줄리 한 일행과 만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도 같았는데.


맞다!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다음엔···.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눈앞이 핑 돌았다.


신 기자는 이마를 양손으로 감싸면서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렸다.


“선배님, 커피 한잔하세요! 어제 술을 많이 드셨나 봐요?”


유 기자가 책상 위에 커피를 올려놓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신 기자가 아무 대답이 없자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지잉~ 지잉~ 지잉~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얼른 손을 집어넣어 꺼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신 기자는 핸드폰에 충전기를 연결하면서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 신 기자라는 분인가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오랜 기자 생활로 체득한 감에 의하면 분명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다.


“네, 그런데요.”


이럴 땐 신 기자 자신의 목소리가 잔뜩 방어적으로 변한다.


- 박종팔··· 아니, 자기 말로는 스나이퍼 박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신 기자는 “아-!”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또 어젯밤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분명, 스나이퍼 박은 자신과 함께 있었다.


블루 호텔에서.


그런데··· 왜?


“네, 그런데요?”


- 여긴 서울숲 지구대인데요, 이분이 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셨어요. 보호자 분께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이분이 연고가 하나도 없다면서 그쪽을 말씀하셨어요.


머리가 또 아파지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스나이퍼 박이 왜 서울숲 지구대에 가 있나?


서울숲이면 한강 근처 아닌가?


신 기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네에, 그래요?”

- 실례지만 두 분이 어떤 관계 신지?

“저는 연예 신문사 기자고요. 그 사람은 우리한테 사진 제공해 주는 사진 기자입니다. 잘 아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 네, 확인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귀가 조처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화면에 뜬 미수신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 기자는 유 기자가 놓고 간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면서 문자를 열어 보았다.


[갑자기 그렇게 박차고 나가버려서 유감이야. 앞으로 협상은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앙드레였다.


신 기자는 눈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우리가 박차고 나갔다고?’


핸드폰을 책상 위에 던졌다.


PC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또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도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니 기분은 좀 개운해졌다.


다시 한 모금을 삼키려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던 신 기자는 멈칫하고 만다.


계란만큼 커진 눈이 모니터 바탕화면에 고정된 채 파르르 떨렸다.


깨끗하게 초기화된 바탕화면이었다.


“어? 이게 뭐야···!?”


신 기자는 한동안 멍하니 얼이 빠진 것처럼 바탕화면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흔들어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손을 뻗어 더듬더듬 책상 서랍을 열었다.


얼굴을 들이대 그 안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어라? USB 스틱이···!?”



2.


정 의원의 사무실.


정 의원은 신 기자와 통화가 연결되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니, 자넨 도대체 어딜 갔기에 전화를 그렇게 안 받나?”


정 의원의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했다.


누가 보더라도 오랜 시간 뭔가를 고민하거나 기다린 흔적이었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여도 그렇지, 이 사람아!”


정 의원은 신 기자가 늘어놓는 변명을 단박에 잘랐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자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어제 사과는 잘 받았나? 자네가 말한 거기다가 우리 애가 세 개 놓고 왔는데?”


사과 얘기를 할 때 정 의원은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담배 필터를 힘껏 빨았다가 내뿜었다.


“뭐라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마 타지도 않은 장초를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 껐다.


깜짝 놀란 보좌관이 목을 쭉 빼면서 정 의원을 돌아보았다.


정 의원은 보좌관을 보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내가 확인하고 다시 연락할게!”


정 의원은 사무실 전화를 끊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 한쪽 구석에 손을 밀어넣자 차명 폰이 닿았다.


차명 폰을 꺼내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정 의원은 황급히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행인들을 피해 한동안 길을 걸으면서 주소록에서 한 번호를 찾아냈다.


번호를 누르자 통화는 금세 연결되었다.


“어, 땡초야!”


정 의원의 목소리에서 흥분을 꾹 참고 있는 게 느껴졌다.


“너 어제 배달 제대로 했냐?”


말이 끊어질 때마다 코에서 거친 바람이 터져 나왔다.


“못 받았다는데?”


정 의원은 혹시라도 누가 듣는지 주위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들고 가는 거 봤다고?··· 세 개 전부?··· 확실해?”


가로등이 서 있는 골목길 안으로 몸을 들인 정 의원은 잠시 멈춰 섰다.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더니 바닥에 침을 탁, 하고 뱉었다.


“하아··· 이 새끼들 봐라, 야, 안 되겠다. 전국구 칼잡이들 몇 놈 올려보내라.”



3.


다시 예스패치 사무실.


“알았으니까, 일단 사무실 앞 카페로 빨리 와요. 도착해서 전화해요.”


잠이 덜 깨서 웅얼거리는 스나이퍼 박의 목소리를 듣는 게 짜증이 났나 보다.


신 기자는 곱지 못한 말투로 그를 윽박지르더니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책상 위에 있던 식은 커피는 단숨에 비워 버렸다.


신 기자는 기를 써서 어제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모아 보았다.


어젯밤 줄리 한을 만나러 나가기 전 분명 이런 계획이었다.


1. 블루 호텔에서 협상 (결렬될 게 뻔하니까 2차 대응 준비)

2. 정 의원이 보낸 사과박스, 호텔 분리수거장에서 찾아오기

3. 다음날 경찰 간부 김정팔과 행복은행장 오대윤 접촉

4. 다음 주 화요일, 예정대로 모자이크된 사진 먼저 풀기

5. 줄리 한과 2차 협상

.

.

.


그런데, 줄리 한을 만나 몇 마디 나눈 직후부터 아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앙드레가 보낸 문자에선 우리가 바로 박차고 나갔다는데.


‘박차고··· 나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초기화되어 버린 PC에.


또 USB 스틱은 어디로 사라진 거란 말인가?


그리고 한강에서 불쑥 나타난 스나이퍼 박의 말은 또 얼마나 황당한가?


드론이 없어졌다니!


신 기자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오전에 정신을 차린 후 사과박스가 생각나서 호텔에 다시 찾아갔었다.


호텔 분리수거장은 사과박스를 받기 위해 정 의원과 은밀히 약속했던 장소!


그런데 있어야 할 사과박스가 그 자리에 없는 게 아닌가.


분명, 호텔 폐업 날까지는 분리수거 차량은 들어오지 않기로 되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혹시 정 의원 측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거니 해서 전화로 막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전화를 먼저 한 건 정 의원이었다.


그러면서 대뜸 하는 말이 “어제 사과는 잘 받았나?”라니.


그럼 누군가가, 그날 밤, 그 시각에.


사과박스 세 개가 몰래 들어오는 걸 미리 알고 있다가 귀신같이 훔쳐 갔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여버린 걸까?


설마, 지금 몰래카메라 같은 걸 하는 건가?


생각이 극단적 망상으로까지 번지자 신 기자는 입가에 쓴웃음이 피었다.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더 지났다.


커피를 연거푸 넉 잔이나 마신 신 기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이 사람··· 왜 이렇게 안 오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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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9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41 1 11쪽
21 021. 봉인술 2 23.12.20 41 1 12쪽
20 020. 봉인술 1 23.12.19 47 1 11쪽
19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38 1 11쪽
»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50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51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53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9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51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55 2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63 2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61 2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71 2 11쪽
9 009. 건우, 드디어 2 23.12.07 77 2 11쪽
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82 2 11쪽
7 007. 추적 3 23.12.05 83 2 11쪽
6 006. 추적 2 23.12.04 90 2 12쪽
5 005. 추적 1 23.12.03 98 2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30 3 11쪽
3 003. 떨어진 곳이 하필 1 23.12.02 187 1 11쪽
2 002. 야반도주 2 23.12.01 238 3 11쪽
1 001. 야반도주 1 23.12.01 38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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