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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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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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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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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873

작성
23.12.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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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9. 딸기잼, 포도잼 2

DUMMY

4.


사무실 벽시계를 한 번 돌아본 신 기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회사 건물을 벗어나니 바로 땀이 솟았다.


더위 때문인지 길거리에는 행인들이 많지 않았다.


신 기자는 스나이퍼 박을 만나기로 한 길 건너 카페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주 앉던 창가 쪽 자리는 비어있었다.


이런 날씨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건 고역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천년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내리쬐는 햇볕에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었고, 내뿜는 열기는 아지랑이로 올랐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났다.


신 기자는 그새 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으며 뒤편 골목 그늘로 잠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퍽-!


“어헠···.”


뒤통수에 강한 충격과 함께 눈앞이 번쩍했다.






신 기자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낯선 곳이었다.


가까이는 풀숲이 제법 보이고, 저 멀리에 아파트 단지가 조그맣게 보였다.


또 멀리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흐릿한 정신으로 대체 여기가 어딜까를 추리해 보았다.


“어··· 이게···.”


그런데 황당한 일이 신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 보려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사지가 부자연스러운 걸 확인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뭐··· 뭐야?”


턱을 앞으로 힘껏 당겨서 눈을 내리깔아 보았다.


“하, 이··· 이런!”


신 기자는 자신의 몸이 머리만 빼고 전부 땅에 묻힌 상태인 걸 확인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어?”


스나이퍼 박이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힘껏 고개를 틀어보았다.


4시 방향.


역시 머리만 빼고 몸이 땅에 묻힌 상태인 그가 눈을 끔뻑였다.


“여기가 어디죠?”

“서울하고 경기도의 경계 부근쯤에 있는 한 야산 같아.”


위치가 확인되었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거죠?”

“나도 그게 궁금해. 그래서 이렇게 자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우리가 대체 왜 이렇게 있는 거지?”


신 기자가 궁금해서 먼저 물어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렇게 되물으면 난감하기만 할 뿐이다.


신 기자는 눈을 뜨기 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난 박 선생님 만나러 나가고 있었다고요. 그 카페요!”


그리고 보니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뭔가에 얻어맞았던 것 같다.


신 기자는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한 걸 느끼며 몸을 꾸물대 보았다.


혹시라도 바닥에 균열이 생기면 몸을 빼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어림없었다.


어찌나 단단히 묻혔는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이마에 땀만 삐질삐질 흐를 뿐이었다.


그러면 그 땀내를 맡은 풀숲의 벌레들이 좋다고 달려들었다.


“나도 길을 걷다가 머리를 얻어맞고 끌려온 거 같아.”


스나이퍼 박도 기운 없이 말했다.


“우리··· 납치된 거 맞죠?”


아무리 떠올려 봐도 ‘납치’라는 단어 외에 이 상황에 맞는 단어는 없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들이 왜 납치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줄리 한쪽에서 이런 건가? 아니면 예전에 우리한테 당했던 놈들이 작정하고···.”


스나이퍼 박은 아무 말이나 던지고 있었다.


평소 이미지를 생각해 보건대, 줄리 한은 이런 일을 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 얼치기들이 그랬다?


우리가 ‘보험’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무모한 짓을 한다고?


신 기자는 스나이퍼 박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느리게 떨어지던 해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여기서 밤을 맞을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 위에 앉아있던 해가 거의 다 사라지고 있었다.


신 기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5.


저벅저벅!

저벅저벅!


잠깐 잠이 들었던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이 깜짝 놀라 동시에 눈을 떴다.


발소리!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해는 이미 넘어갔지만, 국도변 가로등과 아파트 불빛 덕분에 암흑은 아니었다.


야산의 한복판, 두 사람이 묻힌 곳까지 단숨에 다가온 발소리가 드디어 멈춰 섰다.


신 기자는 귀를 쫑긋 세워 움직임을 헤아려 보았다.


대충 예닐곱 명 정도!


감격과 두려움의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


두 사람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그들의 앞으로 손전등이 확 켜졌다.


“어··· 어···!”


두 사람은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시커먼 그림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의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불빛에 익숙해지자 신 기자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두운 정장과 검은 구두의 사내 여섯이었다.


신 기자가 용기를 내어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이번에는 차 소리가 들렸다.


세단이었다.


고급 엔진이 부드럽게 진동하는 소리.


손전등 빛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야산 저 아래에서 검은 세단 세 대가 차례로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세 사람이 내렸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법 경사진 야산을 구둣발로 잘도 올라왔다.


세 사람이 다가오자 남자들은 그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셋 중 한 사람이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땅에 묻힌 둘 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신 기자, 해 넘어가는 거 잘 봤어? 참 멋지지?”


신 기자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사력을 다해 외쳤다.


“저, 저, 저, 정 의원님···!”


공포에 질린 목소리.


죽음을 목전에 둔 절박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아니, 우리를 너무 띄엄띄엄 보시는 거 아닌가? 물건 집어 가는 거 다 봤는데 안 받았다니. 그렇게 돈만 챙겨서 몰래 도망가려고? 세상에··· 사진도 그거 다 합성 아닌가?”


느릿느릿 숨통을 조이는 듯한 박 의원의 목소리는 음산하기까지 했다.


“의원님! 그게 무슨···. 오해입니다. 우리는 정말···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스나이퍼 박의 절규가 야산에 메아리쳤다.


“아! 모른다··· 그러시겠지. 얘들아, 석양에 이분들 얼굴이 좀 타셨나 보다. 마스크팩 좀 해드려라!”


칼칼한 목소리의 서 의원이었다.


뒤에 있던 두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들고 온 쇼핑백에서 병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다시 바지 주머니에서 빼낸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병에 든 내용물을 퍼냈다.


철벅!

처벅!


그러고는 그걸 그대로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의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어푸··· 어엇!”

“어··· 어흡··· 퉤퉤!”


신 기자의 얼굴엔 딸기잼, 스나이퍼 박의 얼굴엔 포도잼이 발렸다.


잠시 후, 단내를 맡은 개미 떼와 벌레들이 두 사람의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두 사람의 울부짖음이 야산에 메아리쳤다.



6.


다음날.


경기도 외곽, 정 의원의 비밀 아지트.


정 의원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땡초가 어젯밤 급히 전화하지 않았다면 일을 크게 그르칠 뻔했다.


“씨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 의원은 땡초의 차에서 나온 블랙박스 영상을 수십 번째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때 마침, 땡초가 철문을 밀치며 들어왔다.


다시 문을 닫으면서 조심스레 바깥을 다시 한번 살핀다.


그런 세심한 모습은 그의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의원님!”


땡초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정 의원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퉁명스럽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좀 알아봤어?”


100킬로는 넘어 보이는 거구의 땡초는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땡초는 흐르는 땀을 소매로 대충 닦고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네! 그 호텔에서 일하는 지배인이랍니다. 어제는 주변이 어둡기도 했고, 기자 놈이랑 생긴 게 비슷해서, 제가 헷갈렸습니다.”


땡초가 말을 잠시 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정 의원은 책상 옆 간이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땡초의 두툼한 손이 그걸 덥석 받아 들었다.


“새끼들 서로 짜고 그러는 거 아니야?”


정 의원이 뱀눈을 하고 땡초를 노려보았다.


“아닌 거 같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보신 대로, 만약 서로 잘 아는 사이고 내용물이 뭔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굳이 박스를 거기서 그렇게 열어볼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답답해 보이는 체구와는 달리 날카로운 눈썰미와 빠른 판단력.


정 의원이 땡초를 매우 아끼는 이유다.


“흐음!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빨리 찾아야 할 거 아니냐?”


정 의원도 박카스를 하나 꺼내 마시면서 다시 물었다.


꿀꺽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꽤 시원하게 들렸다.


“말씀하신 칼잡이는 스탠바이 시켜뒀고, 여기저기서 후배들을 한 스무 명 정도 불렀습니다.”


땡초의 두툼한 손이 박카스의 마개를 비틀어 땄다.


“그놈 그거,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신고하거나 그러지는 않을까?”


정 의원은 의심과 불안이 반씩 섞인 표정이다.


땡초의 눈을 잠시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닐 겁니다. 신고할 놈이었으면 발견한 그 자리에서 바로 했을 겁니다.”


땡초가 박카스를 한 번에 원샷 하더니 빈 병을 휴지통에 조용히 버렸다.


“하긴, 그나저나 저놈들은 어쩌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묻어버릴 뻔했으니.”


정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담배를 하나 빼 물었다.


그러자 땡초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바로 정 의원의 앞으로 들이댔다.



7.


정 의원의 비밀 사무실과 연결된 공간.


한 스무 평정도 됨직하다.


천장에는 흐린 형광등 하나가 달랑 걸려있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는 두 남자가 손이 뒤로 묶인 채 바닥에 엎어져 있다.


두 사람 다 흙과 오물, 그리고 잼으로 범벅이 된 몰골.


그래도 용케 살아있는지 가끔 꿈틀거리기는 한다.


철문이 열리면서 정 의원이 들어오자 두 남자가 고개를 힘겹게 들었다.


“어이, 그 호텔 지배인 잘 알아?”


매캐한 담배 연기가 공간 안에 퍼지자 시야는 더 뿌예졌다.


“기, 기, 김 지배인··· 말인가요?”


신 기자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 이름이 김 지배인인가? 그놈이 돈을 가져간 모양인데.”


정 의원은 담배를 입술로 문 채로 계속 말했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은 너무 놀라 멍한 표정이었다.


“딱 한 번만 물을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정 의원은 살기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희들, 짜고서 이러는 거지?”


정 의원의 눈에서는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다.


까딱하면 단숨에 상대의 눈을 파버리겠다고 벼르는 것처럼.


“아, 아, 아닙니다. 절대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합창을 했다.


정 의원은 한동안 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일단, 진짜인지 아닌지 좀 지켜보겠어. 그동안 다음 주 화요일에 터뜨리는 거나 잘 준비해.”


정 의원의 말에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은 서로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 의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왜 그래? 사진도 돈처럼 사라졌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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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23. 사라진 것들 2 23.12.22 39 1 11쪽
22 022. 사라진 것들 1 23.12.21 41 1 11쪽
21 021. 봉인술 2 23.12.20 41 1 12쪽
20 020. 봉인술 1 23.12.19 47 1 11쪽
»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39 1 11쪽
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50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51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53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9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51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55 2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63 2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61 2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71 2 11쪽
9 009. 건우, 드디어 2 23.12.07 77 2 11쪽
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82 2 11쪽
7 007. 추적 3 23.12.05 83 2 11쪽
6 006. 추적 2 23.12.04 90 2 12쪽
5 005. 추적 1 23.12.03 98 2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30 3 11쪽
3 003. 떨어진 곳이 하필 1 23.12.02 188 1 11쪽
2 002. 야반도주 2 23.12.01 238 3 11쪽
1 001. 야반도주 1 23.12.01 38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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