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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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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21 21:10
연재수 :
1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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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38,873

작성
23.12.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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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5. 추적 1

DUMMY

1.


안개가 예사롭지 않았다.


걷고 있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걸 느낀 건 운천만이 아니었다.


정철 역시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걸 느꼈는지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운천이 정철과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른 법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멈춰라! 방어진이 쳐있다. 주변에 부적이 붙어있나 잘 봐라.”


스승의 말에 법사들은 다소 놀란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정철도 스승의 곁에서 주변 사물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면서 정철은 생각했다.


건우가 법사들의 어깨너머로 틈틈이 익혔다던 도술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또 그 어린 것이 변변한 연습도 없이 펼칠 수 있는 도술의 최대치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일지를.


십여 분이 지날 즈음이었다.


“부적입니다!”


한 법사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들렸다.


정철이 선 곳에서 열한 시 방향 쪽.


철산 법사였다.


철산은 청운당에서 제법 잔뼈 굵은 중견급 도사다.


일성이나 정철만큼은 아니어도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이며, 특히 ‘천라지망’이라고 하는 원거리 감지 능력은 단연 최고이다.


철산은 그의 동글동글한 얼굴처럼 성격도 모나지 않은 사람이다.


누구와도 잘 어울렸고, 법당 내에서 딱히 그를 싫어하는 이도 없는 편이었다.


또 후계자 문제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일성이나 정철과도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철산은 그의 큰 눈을 부라리며 한 나무를 향해 팔을 뻗었다.


호리호리한 몸이 앞으로 수그러들 때였다.


정철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만지지···.”


하지만 철산의 손은 이미 나무에 붙은 부적을 건드린 후였다.


그의 사지가 천천히 굳어가더니 눈동자가 맥없이 풀려버렸다.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


이를 지켜보던 정철은 낭패감에 얼굴이 구겨진다.


그런데 그때,


“아잉~ 법사니이임~ 왜 이러시와요오옹~ 어딜 자꾸 만지시나요옹~!”


나무와 바위 사이 어딘가에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젊은 여인의 음성이었다.


요상한 목소리에 이어 나뭇가지 한 무더기가 철산의 팔을 감아 당기기 시작했다.


“아니··· 너, 넌 대체 뭐 하는 년이냐?”


철산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나뭇가지를 밀쳐내려 애썼다.


“네 이 요망한 것이···.”


그 옆에 선 다른 동료 법사 유정이 철산을 도우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철산의 팔에 감긴 나뭇가지에 붙들리더니 눈앞이 흐릿해지고 만다.


급기야는 무릎을 꿇은 채 나뭇등걸 가운데 얼굴을 처박고 마는 유정.


“어머~ 어머~ 어머 어머~ 망측해라, 우리 법사님! 지금 어디에 입을 대시옵니까?”


귓전을 간질이는 여인의 음성이 더욱 자극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소리는 울리는 데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안개 속에서 한 여인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앙칼진 목소리로 교태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


정철은 또 다른 법사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서려는 것을 보고는 얼른 그를 막아선다.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물러서시오. 이러다가는 다들 큰일 나겠소이다.”


부적이 붙은 나무에 닿기만 하면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된다.


이러다가는 법사들이 전부 다 진에 걸려들어 꼼짝달싹도 못 할 것이다.


정철은 나머지 법사들을 향해서도 한쪽 팔을 들어 흔들면서 접근을 막았다.


“정신을 잃지 마라!”


이를 지켜보던 운천이 나뭇가지에 붙들린 법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미혼술··· 그리고 혼동술이라! 부적에 의존한 거치고는 꽤 단단하구나.’


운천이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붙이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운천의 손가락이 서로 단단히 붙으면서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파번술의 수인이었다.


(* 파번술(破煩術): 감각을 마비시키는 번잡스러운 술수를 깨뜨리는 도술)


동시에 그의 입술이 꿈틀대면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제법 묵직하기까지 한 주문의 파장이 공기 중을 흔들었다.


마치 음속을 돌파하는 전투기의 진동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는 듯한 떨림이 사방으로 번져갔다.


운천의 뒤편으로 물러서 있던 법사들은 그 파장이 몸으로 느껴지자 한 발을 뒤로 빼며 중심을 잡았다.


스승의 바로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철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고자 두 손을 가만히 모았다.


여차하면 자신도 수인으로 스승을 거들 태세였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아무것도 듣지 마라!”


운천의 몸에서 퍼져나가는 기운이 주위를 압도했다.


그 기운에 밀린 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줄기가 비틀리고 뿌리가 뽑히는 소리도 요란하게 울렸다.


“아이~ 법사님~ 이러시면··· 아야 아파라··· 아··· 아···.”


이어서 좀 전의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낙엽 부서지는 소리에 묻혀갔다.


여인의 교성이 사라지자 법사들의 팔을 휘감은 나뭇가지도 곧 힘을 잃었다.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져 버린 나뭇가지는 곧 움직임을 멈췄다.


틈이 생기자 정철이 붙들린 두 법사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한 손의 엄지와 검지로 권총을 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나무에 붙어있던 부적을 가리켰다.


영력을 쏘는 자세였다.


이어 입에서는 이를 가는 듯한 소리의 주문이 새어 나왔다.


나무에 붙어있던 부적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네 귀퉁이가 조금씩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정철이 손가락에 기운을 집중해 힘을 주었다.


부적 표면에 작은 불꽃이 일더니 불이 붙었다.


불길은 확 타올랐다가 다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불이 붙은 부적은 급기야 재로 변하더니 허물어져 버렸다.


“그 아이가 제법이구나. 웬만한 법사들까지 속일 정도니···.”


운천은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들면서 말했다.


“남은 것들은 한꺼번에 치워야겠다. 모두 비켜라!”


이어지는 운천의 말에 법사들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양손 검지와 중지가 엇걸리더니 새로운 수인이 맺어졌다.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던 운천.


깊고 굵은 외마디 기합을 내뱉자 바닥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남아있던 안개가 빨려 올라갔고, 나뭇가지가 비틀렸고, 바위도 흔들렸다.


한차례 요동에 나머지 부적들은 격하게 펄럭이다가 더는 붙어있지 못하고 전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번에도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철이 그것들을 향해 영력을 쏘아 재로 만들어 버렸다.


방어진이 흩어졌다.


숲 사이로 새벽하늘이 드러났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법사들은 참았던 긴 한숨을 터뜨렸다.


재로 변한 부적이 바람에 흩어지는 걸 끝까지 지켜보던 정철도 땀에 젖은 이마를 훔쳐냈다.


그러나 장애물이 사라지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대체, 어떤 놈이냐?”


뜬금없이 운천의 일갈이 날아들었다.


법사들은 모두 놀라 다시 스승을 돌아보았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허리를 굽혀 뭔가를 집어 든 운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검은 새의 깃털이었다.


깃털의 크기로 보아 작은 새는 아닐 듯싶었다.


“대체 어떤 놈이 그 어린것에게 변신술까지 가르쳤더냐?”



2.


당황한 법사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변신술이라면 고난도에 속하는 도술이다.


술(術)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깨끗해야 제대로 된 변신이 가능하다는 바로 그 변신술!


비록 수련이 경지에 오르더라도 마음이 검은 자가 이를 강행하면 몸이 기형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는 무서운 경고까지.


다들 수없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청운당에서 변신술이 능숙한 법사라면?


수련의 시간이나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할 수 있는 스승 운천과 정철, 그리고 일성 정도일 텐데.


스승님과 정철이 그랬을 리는 없고.


아니, 그렇다면···.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한 사람에게 날아가 꽂혔다.


저만치 뒤에서 모두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일성 법사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무안함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듯했다.


운천은 이런 일성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동안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너는 대체 내 말을 뭐로 들은 것이냐?”


추상같은 낯.


이글대는 눈빛.


대쪽을 쪼개는 것 같은 거침없는 목소리.


게다가 뼈대만 남은 노인의 체구는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청운당에서 운천이 이렇게까지 노여워한 적은 없었다.


분위기를 살피던 법사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일성 곁에서 스승의 뜨거운 시선을 같이 받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괜히 화만 입을 테니까.


“너는 법사의 자격이 없다. 당장 돌아가서 근신해라! 법당에서 나오지 마라!”


운천의 입에서 마치 숨통을 끊어 놓을 것 같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일성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뭐라 변명을 하려 했으나,


“뭘 우물쭈물하느냐? 당장 돌아가라니까!”


운천은 더는 할 말이 없고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 냉정하게 쐐기를 박는다.


운천이 휙 돌아서 걷자 법사들도 스승의 뒤를 따랐다.


한동안 그렇게 홀로 남겨진 채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일성.


발소리가 멀어져 가는 걸 듣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벌겋던 일성의 얼굴은 이제 제법 멀쩡해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식의 일방적인 질타는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그것도 법사들이 다 같이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말이다.


그간 여러 차례 스승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긴 했지만, 그때마다 일성은 속으로 헤아렸었다.


이게 다 자기 제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리라.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듯, 매서운 꾸지람은 다 관심의 표현이리라.


하지만 조금 전 스승의 그 표정은, 정말이지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벌레 한 마리를 보는 듯한 경멸의 표정.


저놈 때문에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다고 원망하는 듯한 표정.


“아니, 그 어린놈 하나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일성은 달아난 건우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다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도술을 가르쳐 준 것도 없었다.


“미혼술에 혼동술··· 가벼운 장풍에, 기초적인 부적을 사용하는 법. 흐음 또 뭐더라···.”


그 외에는 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가르쳐 준 것보다도 도사들이 수련 과정을 들킨 일이 더 자주 있지 않았던가.


건우, 그놈이 호기심이 많아 자주 훔쳐보니 조심하라고.


폭포 수련할 때 고급 도술은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방어진을 펼치는 것이나 변신술은 다 폭포수련 때 하던 것들 아닌가.


“정철···! 그렇게 내 말을 안 듣더니만.”


정철의 얼굴이 떠오르자 일성은 살짝 억울한 감정이 치밀었다.


“쳇!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일성은 흙바닥을 거칠게 한 번 차더니 돌아섰다.


청운당으로 다시 돌아가려니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그보다도 부끄럽고 민망한 감정 때문에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일성은 힘겹게 다리를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청운당에서 짬밥이 몇 년인데. 초보도사들이나 하는 근신이나 하라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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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20. 봉인술 1 23.12.19 47 1 11쪽
19 019. 딸기잼, 포도잼 2 23.12.18 39 1 11쪽
18 018. 딸기잼, 포도잼 1 23.12.16 50 1 11쪽
17 017. 살인부적 2 23.12.15 51 1 11쪽
16 016. 살인부적 1 23.12.14 53 1 11쪽
15 015. 협상 2 23.12.13 49 1 11쪽
14 014. 협상 1 23.12.12 51 1 11쪽
13 013. 취중진담 2 23.12.11 55 2 11쪽
12 012. 취중진담 1 23.12.10 63 2 11쪽
11 011. 일거양득 2 23.12.09 61 2 11쪽
10 010. 일거양득 1 23.12.08 7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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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08. 건우, 드디어 1 23.12.06 82 2 11쪽
7 007. 추적 3 23.12.05 83 2 11쪽
6 006. 추적 2 23.12.04 90 2 12쪽
» 005. 추적 1 23.12.03 99 2 11쪽
4 004. 떨어진 곳이 하필 2 23.12.02 130 3 11쪽
3 003. 떨어진 곳이 하필 1 23.12.02 188 1 11쪽
2 002. 야반도주 2 23.12.01 238 3 11쪽
1 001. 야반도주 1 23.12.01 38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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