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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 재벌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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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8
최근연재일 :
2024.08.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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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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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2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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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DUMMY

오늘 나의 본연의 임무는 아바타, 혹은 그림자 그 자체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경기에서 드러내야 하지 않는 심판처럼 무리하게 나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지 않도록 입에 자물쇠를 채우기로 했다.


“기정님, 안녕하세요. 간만의 라운딩입니다.”


이 기정과 서영도는 서로 익숙한 듯 가볍게 악수를 했다.


“저희가 먼저 도착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이성우 기정은 서영도 앞에서 제법 친절한 말투를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깨뽕이 한껏 오른 서영도에게 기가 눌린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하긴, 짬이 얼마인데.


이 기정은 공장장 라인이다. 그리고 공장장라인이라는 건 또 사장님 라인이라는 거고.

거기다 아버지가 하나 케미칼을 인수했을 때의 초창기 멤버가 바로 이 기정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공장 내 끼치는 그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하나 케미칼에 계속 몸 담고 있는 게 가끔은 신기할 정도다.

근 25년이나 헌신해 온 이 바닥 전문가였기에 그를 데려오려는 기업들이 드물지 않았다. 저 나이에 은퇴를 고집해도 되지 않을 만큼 이미 연줄이 있는 업체 사장들도 많았고, 이 기정 말 한마디면 어느 정도 거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업체들도 적잖았다.

그러니 서영도도 이 기정 앞에서라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이성우 기정은 즉, 우리 파티라인의 구심점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은 저번처럼 또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닌 서영도에게 하는 경고성 내포의 언질이었다.


순간 서영도의 얼굴로 음영이 졌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앙당그리는 모습이었다.


“뭘 말입니까?”

“오늘 강 사장님 따님도 오시는 자리입니다. 저번처럼 무리해서 캐디가 해야 할 일을 직접 해주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강 사장님 입장에서도, 따님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고 여기서 일하는 캐디 입장에서도 곤란하니까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회귀를 했다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관심도 없던 서영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전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회귀 전 디테일을 전부 알았더라면, 난 지금 벌써 불과 몇 주 만에 코인으로 수억,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세계적인 부자가 돼있을 것이다.


“기정님도 참.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강 사장님에게 점수도 좀 따고 그러려고 한 거지, 그걸 곡해하시면······.”

“그때 강 사장님과 강윤아 씨 얼굴을 못 보셨죠? 제가 아마 강 사장님 입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따님이 여자 분이시니 주조로 추천해주는 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굳이 캐비티백 아이언 열거해가며, 단조 들고 하겠다는데 사사건건 참견하시는 건 어른 입장에서도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강 사장님 따님이 골프 처음 배우러 온 수강생은 아니잖습니까.”


난 부러 이성우 기정의 눈에 안 띄려고 뒤로 슬그머니 다가가 섰다. 이 기정이 혹시라도 내가 있어서 더 말을 가려 해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사사로운 걱정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 케미칼에서는 별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런 불편한 상황에 아래 과장인 내가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기정은 역시 이 기정이다. 존재감 자체가 남다르다.

이 순간 이후로 확신했다. 이성우 기정에게 눈 착하게 뜨자고.

하나 케미칼의 태양 아래 존재인 서영도마저도 일방적으로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걸 이이제이라고 해야겠지.’


나와도 결이 맞지 않은 이성우 기정은, 서영도에게도 상극이었던 모양이다.

역시나 내가 곁에 있으니 소리를 낮추라는 듯 서영도의 표정이 슬며시 굳어져갔다.


“기정님. 듣는 귀도 있는데 말씀을 좀······.”


가려서 해달라는 의미였다.

내 입에서 소리 없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건 이 기정을 자극시키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는데.


“사장님이 앞에 계신다고 해도 제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

녀석이 기어이 분별력을 상실했구나.

서영도가 잔대가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은 맞았다. 그래도 사립 4년제에 진학한 끗발은 있었으니까.

억대의 사교육 판에서 정예로 거듭난 것이 서영도였다.

그러니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다만 너무 예쁨만 받으며 컸던 탓에 눈치가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무리수를 남발한 서영도가 앞으로 몇 겹의 굴욕을 더 당하고 나서야 눈이 풀릴지에 대해 내심 고민해 봤다.


‘하필 사이코패스 앞에서.’


가볍게 나무라며 끝내려고 할 때 그냥 알았다고만 하면 되지.

단지 오늘 일이 나와 상관없길. 그리 믿고 싶었다.


이 기정이 궁예처럼 서영도를 쳐다보았다. 마치 다 꿰뚫고 있다는 듯이.


“오히려 사장님 앞에서 이러는 게 더 도련님을 위할 거 같은데요.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이 기정 입에서 도련님이라는 호칭이 나오다니.


기가 찼다.

여태 서영도를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건가? 그리고 서영도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고?

이 기정은 계속 말하고 있었는데, 목소리에도 그림자가 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께서 도련님이 강 사장의 사위로 들어가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보내시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전 그걸 모르지 않고요. 그런데 다 된 밥에 재 빠뜨리는 게 매번 도련님 때문이라는 걸 사장님도 알고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이유요? 글쎄요. 사장님이 도련님을 하나밖에 없는 친아들이라고 편애하셔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전 당최···.”

“솔직히 답답합니다. 왜 사장님이 저렇게 도련님을 감싸고도는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인데, 또 그러신다고 하니 전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를 불러 그러시더군요. 이건 좀 아닌 거 같다고. 그 순간 느꼈죠. 도련님이 정말 예쁨이 아닌 ‘예쁨만’ 받으며 자랐구나.”


돌려 까고 있다는 걸 여기 모인 모두는 모를 수 없다.

조금 전보다 서영도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내심 감탄했다.


“사장님. 얼마나 발로 뛰는지 모르실 겁니다. 도련님은 사장님이 증여해주시는 송도 아파트가 전부 당연할 거라고 여기고 사시지만, 글쎄요. 삼성SDI에 붙은 건 다행이지만 앞으로 효도 많이 하셔야 할 겁니다. 효도라는 게 별 게 없어요.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규범과 지침 정도만 정립을 하시면 되는 거지, 별 게 아닙니다.”

“이 기정···.”

“오늘 하나만 머리에 새겨두시는 겁니다. 상대는 강 사장이다. 그리고 강 사장은 우리 사장님과 동등한 입장이 아니다. 즉, 더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다. 모르시지 않겠죠?”

“···.”


역시나 촌철살인.

저렇게 할 말 못 할 말을 내뱉는 능력도 이성우 기정이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공장 내 고위직이라고 해도 사장님 아들에게 이토록 채찍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알겠어요. 조심하겠습니다. 됐습니까?”

“시원하게 말씀하시니 좋습니다.”


이성우 기정이 순순히 인정하자 서영도가 불만스럽게 입을 달싹이다 곧 조개처럼 다물어버렸다.


그리고 약 10분 후.


마침내 강 사장 부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서 걸어오는 한 여자도.


강윤아였다.

긴 머리카락에 컬을 내고 골프복장 차림인 채로 나타난 그녀는, 어떻게 보더라도 부잣집 따님 같아 보였다.

골프 잡지 1면에 나와도 될 정도로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이성우 기정이 먼저 인사를 하고 서영도와 내게로 살짝 눈짓을 주었다. 이제 그만 가만히 뻗대지 말고 인사를 하라는 거였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윤아 씨도 오랜만에 보네요.”

“안녕하십니까. 서우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같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 이 사실은 또 처음 알았다.

강 사장 부부에게 대고 아버님, 어머님이라···.

서영도의 능구렁이 같은 면모에 박수를 쳐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도 씨도 반갑고, 그동안 못 보던 사람이 와있네. 차남이었던가?”


묻는 강필수 사장의 눈길이 여간 곱지 않다.


“예. 맞습니다.”


종잇장보다 가벼울 수도 있는 내 존재를 그래도 머리에 새겨두고는 있었나 보다.


“가끔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


무슨 얘기였을까.


“영도 씨가 자네에 대한 말을 많이 하더라고.”


역시나.


‘나를 지금 이렇게 곱지 않는 눈으로 쳐다보는 게 전부 서영도 때문이었구나.’


인생 1회 때도 지금도 어차피 내 부모가 사기꾼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후에 내가 벌인 전적도 전적일 거고.

나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얼굴빛이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그때의 나는 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도 나다.

강 사장 부부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다. 오늘은 아버지를 위해 나온 자리였으니까.

단지 서영도가 나에 대해서 더 이상 괜한 억측을 만들어내지 못하게끔 약을 올려줄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십니까. 잘됐네요. 혹시 영도 형은 본인 얘기를 하던가요?”


난 서영도의 표정이 아까 전 이성우 기정에게 하던 것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당혹스러워하는 걸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 말에 압도라도 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서영도가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여기까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


평상시의 포썸 플레이와는 다르게 오늘은 스트로크 플레이로 18홀을 운용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어차피 골프는 기본적으로 개인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난 홀을 돌 때마다 박 기장의 말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아이언을 제법 효과적으로 운용했다.


‘턱을 위로 들어주면 스윙 때 왼쪽 어깨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다.’

‘천천히 매끄럽게 어웨이하면 일정한 스윙 템포를 구축할 수 있다. 천천히, 부드럽게.’


좋은 자세가 곧 유연한 셋업으로 이어진다.

척추는 똑바로 펴서 엉덩이에서부터 앞으로 기울이고, 양발은 늘어뜨린 채로 훅.

머리의 위치를 점검해 턱을 숨이지 말고 위로 들어주며 정타를 한방에 훅!


“자네는 파워 히터가 어울리겠구만.”


강 사장에게 칭찬 같은 말을 듣고 나서 잠깐 기분이 묘해졌다.


“하지만 이런 힘이 긴장을 유발해 샷거리와 정확도를 떨어뜨릴 수 있지. 지금처럼 말이네.”


아차.

박 기장이 그리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립을 강하게 잡았다.

서영도를 위시해 의욕에만 앞섰던 거 같다.

녀석은, 볼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고인 물이었다.

자그마치 이 기정과 비슷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기에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수.

어쩌겠나. 내 입장에서도 최대한 녀석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잘 치는 모양새라도 유지해야지.

그럼에도 중상급자가 치는 작은 헤드는 나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실력이나 선호도에 따라 캐비티나 하프캐비티 등등 헤드 형태를 먼저 고르게 되는데. 난 아무리 시도해도 안 되니 결국 초보자용 아이언으로 녀석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낑낑대기만 했다.

대개 강 사장이나 이 기정, 서영도 같이 골프 좀 치는 사람들은 상대의 골프클럽만 보고도 금방 감이 온다고 한다. 즉, 내가 초보인지 아닌지를 쉽게 구별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강윤아가 골프를 저렇게 잘 쳤었나?’


강윤아는 서영도를 실력으로 발라버릴 정도였다.

서영도가 봐주는 건지. 그도 아니면 정말 강윤아가 더 잘 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를 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다행히 내가 열심히 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하는 게 눈으로 보이기는 했는지 강 사장 부부의 반응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7번 아이언 거리 기준으로는 그라파이트 샤프트가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건 여자 분들이 많이 쓰는 거 아닙니까?”

“초보시잖아요. 그리고 남자들도 요즘은 그라파이트 많이 써요. 경량 스틸로 가셔도 되고요. 뭐, 자신만의 선택이겠지만요?”


강윤아가 종종 내 옆에 붙어 은근하게 추천을 해준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숨겨왔던 장미 샴푸 향이 진하게 후각을 마비시켜 왔다. 바로 강윤아의 샴푸 향이었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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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뜻밖의 자장면 +4 24.05.25 6,372 10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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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투자의 맛 (1) +3 24.05.24 6,504 101 13쪽
32 투자는 필연이다 +3 24.05.23 6,533 108 13쪽
31 실현수익 +4 24.05.23 6,560 109 14쪽
30 코인 협잡꾼 +4 24.05.22 6,398 10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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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잖습니까 +4 24.05.20 6,479 10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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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공적인 곳에서는 과장님이라고 불러야지 +2 24.05.18 7,052 110 12쪽
21 못 받아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 24.05.17 7,152 116 16쪽
20 하루 만에 2억이 벌린다 +6 24.05.17 7,345 123 12쪽
19 할 수 있습니다 +5 24.05.16 7,257 120 14쪽
18 우리 부서는 베타테스트 집단이 아닙니다 +6 24.05.16 7,336 109 15쪽
17 솔직히 난 배 아픕니다 +5 24.05.15 7,545 113 15쪽
16 그런 태도로 일해라 +4 24.05.15 7,677 124 14쪽
15 5부서의 지랄견 +5 24.05.14 7,831 123 12쪽
14 형수님은 아십니까? +6 24.05.14 8,075 128 11쪽
13 어긋난 규칙 +7 24.05.13 8,114 13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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