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카날 (10)
“콰과광~!!”
하지만, 이런 이창근 소위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함선을 향해 직진한 어뢰는 이윽고 큰 물보라를 일으키고 말았다.
함선 전체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한쪽으로 기우는 모습이 이창근 소위의 눈에 들어왔다.
“젠장~~!!”
위험을 무릅쓴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군 함선이 어뢰에 피격당하는 모습에 이창근 소위는 저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지막 뇌격 순간 이창근 소위의 공격으로 어뢰의 괴도가 선미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점이었다.
당장은 선체가 큰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추가 폭발이 없다는 점과 잠시 기울었던 선체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피해는 생각보다 적어 보였다.
아니,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당장 침몰할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 말인즉 앞으로의 상황은 이제부터 더 중요하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한발의 어뢰라도 더 맞는다면, 아마도 저 중순양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이창근 소위는 안도의 한숨도 잠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모험이었다. 이대로 더 이상 함대에 피해가 생기게 두는 것은 지금의 모험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노력까지 모두 빛 바라게 하는 것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이창근 소위의 다짐과는 달리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푸덕푸덕~~ 툴툴~~!!!”
이번 일본군 뇌격기를 잡느냐고 무리하게 아군의 대공포 사정거리 안에 접근한 탓에 아군 대공포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이창근 소위의 귀에는 조금 전부터 자신의 크루세이더가 내는 심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런 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자신의 크루세이더가 잘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만약 아까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닥친다면 이번에는 버틸 거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요크타운으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함대도 함대지만, 아직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작전을, 모험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창근 소위는 마음을 다잡았다. 조명탄이 유일한 불빛인 상황에서 적과 아군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적기를 잡기 위해서는 뇌격에 들어가는 일본군 뇌격기를 찾아 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까와 같이 모험만이 현재로서는 일본군 뇌격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낮이었다면, 아군 대공포에 기대여 좀 더 수월한 작전을 펼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었고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아군 대공포가 더 큰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크루세이더가 다시금 버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제발 버텨주기를~~~”
타오르는 조명탄의 불빛 사이로 다시 급강하에 들어간 일본군 뇌격기를 발견한 이창근 소위는 다시 이를 악물며 기수를 돌려 뒤를 쫓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기펜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일본군 뇌격기의 야간 공습을 잘 막아내었다. 야간이라는 조건은 수비하는 입장에서 최악의 조건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중순양함 시카고가 두 발의 어뢰에 피격당하는 대파에 가까운 피해 입고 구축한 한 척이 대파되었다는 점에서 기습, 그것도 함재기의 기습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피해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었다.
비록 최초로 야간 공습을 받은 함대로 역사에 기록되는 수모를 얻게 되었다지만 말이다.
사실 기펜 제독의 함대가 이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창근 소위를 비롯한 맹호군 파견대의 목숨을 건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날 출격한 맹호군 파견대가 떨어뜨린 일본군 뇌격기는 이창근 소위가 격추한 5대를 포함해서 모두 20대가 넘었다. 물론 야간이라는 점과 맹호군 파견대를 견제하는 이들에 의해서 모두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기펜 제독의 함대를 수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이창근 소위의 크루세이더가 요크타운으로 귀환했을 때, 그의 기체를 보고 모두가 기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는데, 기체의 반 이상이 너덜너덜한 상태였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어떻게 귀환했는지 의문을 표할 정도였다.
더불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맹호군 파견대의 대부분의 크루세이더들은 크고 작은 피해로 너저분해진 상태였기에 얼마나 결렬한 전투였는지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별다른 피해 없이 도착한 다른 요크타운 요격기들로 인해 맹호군 파견대의 너덜너덜해진 크루세이더는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런 눈에 띄는 활약상은 요크타운 승조원과 지휘부를 통해 미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까지 전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맹호군 파견대, 더 정확히는 이창근 소위에게 훈장을 수여하기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진주만 공습 당시 전함 웨스트버지니아의 취사병이었던 도리스 밀러가 기관총 사수가 전사한 틈에 직접 기관총을 잡아 일본군 전투기 두 대를 격추시킨 데다가 이후 위험에 빠진 함장과 동료들을 솔선수범하여 구출한 공로로 해군 십자(Navy Cross) 훈장을 받은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정상적이었다면 도리스 밀러 상병 정도의 전공이라면 명예 훈장이 가능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의 장벽은 두터웠기에 해군은 명예훈장를 수여하기보다는 최초의 흑인 수훈자라는 찬사와 함께 한 등급 아래인 해군 십자 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절충한 것이었다.
물론 이를 통해서 흑인 모병과 흑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얄팍한 속내가 있는 결정이기도 했다.
이창근 소위도 해군 십자 훈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선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전방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한인들을 독려함과 동시에 이들의 배후에 있는 재임에 보여주기 위한 숨은 뜻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이창근 소위는 최초로 미군의 훈장을 받는 한인이 되었고 이후 한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와는 무관하게 안타깝게도 이창근 소위와 맹호군 파견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중순양함 시카고는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후퇴하던 도중 다시 가해진 일본군 함재기의 어뢰 공격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투에서 야간 전투의 피해가 극심했던 맹호군 파견대는 출격하지 못했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보여진 차이는 이후 크루세이더가 다시 한번 주목받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해전은 태평양 사령부에 경각심을 주었고, 앞으로 과달카날에 대한 일본군의 대대적인 대공세를 예상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과달카날에는 방어진지를 증축하고 보강하는 등 대규모 공격에 대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미군이 일본의 대공세를 대비해서 삽질을 하는 사이에 일본 17군은 은밀히 과달카날에 남아있던 일본군을 탈출시킬 수 있었다.
모두 3차례의 걸친 철수작전은 2월 7일이 되어서 완료되었는데, 그동안 조명탄을 터뜨리고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등 일본군의 지속적인 위장 공격으로 미군은 철수 작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결국, 2월 9일 오후가 되어서야 일본군이 모두 철수한 것을 파악한 패치 소장은 과달카날의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이는 사실상 미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올린 최초의 지상전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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