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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향 님의 서재입니다.

동쪽의 새벽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종이향
작품등록일 :
2016.10.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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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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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0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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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은 갓끈을 고쳐 매며, 의관을 단정히 했다. 민영환(閔泳煥)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비록 그가 명성황후를 앞세운 세도정치(勢道政治)로 국정을 농단한 민씨 일파의 후손이었지만, 명성황후 사후에 관직에서 물러나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제국을 개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이상설은 이미 그가 을사조약(乙巳協約)에 개탄하면서 조병세(趙秉世)와 함께 을사조약 반대상소를 수차례 올렸음을 알고 있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당시 이상설은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 현재의 국무조정실장 등에 해당)이었지만, 조약을 체결하는 회의장에는 일본 헌병에 막혀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에 이상설도 벌써 두 차례나 을사조약 반대상소를 올렸다.


황제폐하에게 사직(社稷)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을사조약을 반대할 것과 이완용(李完用), 이근택(李根澤), 이지용(李址鎔), 박제순(朴齊純), 권중현(權重顯)의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단하고, 모든 참정대신(參政大臣) 이하 각 대신이 순국(殉國)의 각오로 어떠한 사태가 닥쳐도 일제의 요구를 거절하고 을사조약을 파기해야한다고 호소하였다.


또한 이상설은 각 대신들을 찾아다니면서 을사조약의 체결은 곧 국망(國亡)이고, 우리 민족이 일제의 노예가 되는 것이라 역설하면서 순국 반대의 결의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이미 을사오적과 그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조정에는 넘쳐나고 있었고, 일제에 의해 둘러싸여있는 황제폐하에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상설은 원래부터 의지(意志)가 굳건하고 조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아무 때나 나서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민영환의 자결이후에 이대로 소극적인 행동만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민영환과 같은 그런 의기를 보여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을 하는 수많은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의 충정(忠情)어린 상소와 순절(殉節)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상설은 목이 메어왔다.

이미 매국노(賣國奴)들과는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상설은 이미 관직도 내려놓은 참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했다. 이 목숨 하나를 버려서 황제폐하와 여러 대신들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백성들의 의기를 일깨울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목숨 하나쯤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복장(服裝)을 가다듬은 이상설은 그대로 일어나 작성한 상소문(上疏文)을 들고 집을 나섰다.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면서 바삐 걸음을 종로거리로 향했다.


이미 종로거리에선 벌써 민영환의 순절(殉節)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비통한 마음과 나라의 걱정으로 일제와 친일매국노들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고 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이상설은 잠시 거리를 살펴보다가 종로거리 한쪽에 놓여있는 디딤돌 위에 올라섰다. 의관을 단정히 하고 비장한 표정의 이상설의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다시 마음을 다잡은 이상설은 눈을 뜨고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둘러보았다. 그들 모두 고단한 삶에 치친 모습 속에서도 나라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상설은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이상,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는 이 나라는 결코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더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민중들의 의기를 깨우쳐야 하리라. 그래야만이 국권회복(國權回復)을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리라 생각했다.


상소문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상소문을 집어넣은 이상설은 그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큰소리로 소리쳤다.


“.... 우리 정부(政府)의 여러 대신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아직도 구차한 삶을 누리려는 망상을 갖겠소. 이러한 때를 당하여 나라가 자립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보호 하에 들어간다면 종사가 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족 또한 멸망하리니 우리 동포 형제는 깊이 생각하라. 지금 민 보국(輔國, 민영환의 호)의 말일(末日)이, 즉 우리 국민이 죽을 시기이다. 내가 민 보국 한 사람을 위해 곡하는 것이 아니요, 실로 우리 전국의 동포를 위하여 통곡하는 것이니라....”¹⁾


온힘을 다한 연설이었다. 이상설이 하는 말마다 비통한 마음이 넘쳐나서 통곡(慟哭)과 함께 한 연설이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했었고,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나라를 잃어간다는, 잃어서는 안 된다는 비통함과 결의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상설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연설이 종로거리에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졌기를, 자신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연설을 마쳤다.


이상설이 연설을 마쳤을 때,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비분강개(悲憤慷慨)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상설과 마찬가지로 통곡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눈시울을 적시며 비통함에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연설을 마친 이상설은 올라선 돌에서 내려서서는 갓을 벗어서 놓고는 와서 황제폐하가 계신 곳을 바라보며 절을 올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아~ 어린 백성들을 두루 살피소서. 하늘이여, 이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


이상설은 그 말을 끝마친 뒤에 자신의 서 있던 종로 거리의 디딤돌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그대로 자결하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했지만, 연거푸 머리를 디딤돌에 찧었다. 순간 온통 이마가 피범벅이 되었다.


자신의 한 목숨을 버려서 황제폐하와 대신들, 그리고 대의를 알리는 일이었다. 이상설은 머리를 박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설은 이 자리에서 죽음으로써 민영환처럼 민족의 정신과 의기를 일깨우는 밀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었다.


갑작스런 이상설의 행동에 멍하니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급하게 그를 만류했다.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이상설을 붙잡고 그의 행동을 막았을 땐, 이미 이상설의 이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된 후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명주저고리 앞섶을 온통 불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상설의 외침에도 자살시도를 저지한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통곡하는 그를 붙잡아서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 인력거(人力車)에 태웠다. 이상설은 인력거에 태워지는 순간에도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대로 두시오. 내 이 목숨을 내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겠소. 이 비통함을 하늘에 알리겠소.”


인력거에 태워진 이상설은 병원에 가는 도중에 비통한 마음과 이마에 입은 상처로 인해서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축(縮)난 몸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昏絶)하고 말았다. 그가 떠난 종로거리의 디딤돌 위에는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가 흘린 피가 붉게 남아있었다.


--------------------


백범(白凡) 김구(金九)는 민영환의 자결 소식을 듣고는 몇몇 동지들과 같이 민영환 댁에 가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다들 의분(義憤)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며 큰 도로에 나왔을 때였다.


나이가 사십 안팎쯤 되어 보이는 어떤 한 사람이 흰 명주저고리에 갓 망건도 없이 맨 상투 바람으로 핏자국이 얼룩덜룩한 채 여러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인력거에 실려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크게 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김구는 놀라서 주변의 사람에게 물었다. 이상설의 실린 인력거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 사람이 돌아보며 대답해주었다.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이라는 분인데, 조금 전에 종로 거리에서 을사조약을 비난하고는 자결을 하시려다가 사람들의 만류로 못했다고 하는군요.”

“어허~~”


의정부 참찬이었다면, 고위 관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김구는 나라를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소위 말하는 고위관료들이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나랏일이 날로 잘못 되어 감을 보고 의분을 못 이겨 자살까지 하려던 생각 있는 사람이었다.

진정 나라를 위하는 이들이 목숨을 잃어가는 현실에 직접 민영환의 조문을 다녀오는 길이였기에 더욱 마음이 쓰라렸다.


김구는 이내 깊은 한숨을 쉬면서 동지들과 발걸음을 돌렸다.

캄캄한 조국의 앞날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우중충한 하늘도 대한제국의 앞날을 나타내는 듯해서 저절로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하늘이여, 이 나라를 보우(保佑) 하소서.’²⁾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바람을 담아 마음 속으로 외치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


이상설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병원에 도착한 그날 늦은 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는 자신의 자결이 실패했음을 알고 다시 통곡을 했다. 자신이 죽지 못했음을 스스로 자책(自責)하면서 한탄 하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급하게 의사가 왔지만, 다행히 심신이 지친 것이 심한 탓에 다시 혼절한 것이어서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많은 피가 흘린 이마의 상처도 잘 봉합해 둔 상태였다.


얼마 후 다시 깨어난 이상설은 다시 한탄을 했지만, 때마침 노복이 급하게 알려온 소식에 더욱 큰 충격을 받고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의 오래된 친우인, 매산(梅山) 서남우(徐南優)³⁾의 부고(訃告) 때문이었다.


“자네가.... 자네가.... 어허~~~”


이상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남우는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학당을 다니면서 친교를 나누었던 사이였다. 그러다, 이상설이 한양(漢陽)에 올라오면서 헤어졌는데, 상동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그곳 여러 일에 참여하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해후(邂逅)를 한 것이 채 반년이 되지 않았다.


비록 오랜만에 본 것이지만, 중간 중간에 서신도 교환하면서 계속 친밀한 교분을 나누었기에 금세 다시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이상설은 근 4~5년간 연락이 되지 않아서 내심 그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게 되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하지만 사실 이번에 볼 수 있게 된 것도 서남우가 부인을 병으로 잃은 후에 한양에 올라오게 되면서 만나게 된 것이라,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미안함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물론 서남우는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그렇게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금세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럴 만큼 두 사람은 둘도 없던 친우였다. 그런데 오늘 그런 친우의 부고를 듣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이럴 수가.... 자네가 죽다니....”


이상설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상설은 친우인 서남우와 함께 5일 전에 있었던 덕수궁(德壽宮) 대안문(大安門)앞에서 열린 을사조약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사이였다. 하지만, 갑자기 이상설에게 일이 생기게 되면서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서남우는 혼자서라도 참석한다는 말을 전해왔었다.


하지만, 다음 날 이상설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서남우가 전날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게 되었다. 급하게 여기저기 수소문(搜所聞)해보니, 어제 집회가 일본 헌병에 의해서 강제로 해산 당하면서 많은 이들이 체포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노심초사(勞心焦思)한 이상설이 더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자신도 일본 헌병들에게 알게 모르게 위험인물로 표적이 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일을 알아보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친우의 생사에 대해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민영환의 순절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민영환의 순절소식은 이상설에게 무척 큰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서 친우에 대한 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자살이 실패로 끝나고 병원에서 부고를 듣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기는 내가 결심하였는데, 자네가 죽었구먼....”


한참을 통곡을 하던 이상설은 그제야 그 집에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급한 마음에 친우의 집에 노복(奴僕)을 보내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늦게 돌아온 노복이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친우인 서남우는 그 집회가 강제 해산 당하는 상황에서 일본 헌병에 의해서 체포가 되었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본 헌병에게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사흘 만에 나타났을 때는 온몸에 심한 고신(拷訊)을 당한 흔적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심지어 이웃들이 집 앞에 쓰러진 사람을 간신히 집안으로 데리고 가 눕혔다고도 했다. 그렇게 눕혔지만, 친우는 그대로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집의 어린 아들이 혼자서 상주(喪主)노릇을 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어허~ 어허~~”


이상설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죽고자한 사람은 살고, 살아야할 사람이 죽은 이 상황에서 이대로 병원에 있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이마의 통증으로 어지러움을 느껴 제대로 서지를 못했지만, 노복의 도움으로 간신히 인력거를 타고 친우의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상설이 서남우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6살 난 아들이 홀로 친우의 주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상설은 왈칵 눈물이 나왔다.


“자네가.... 자네가 이렇게 가다니.... 이렇게 가버리면 어쩌나? 이 사람아~~아이고~~”


이상설은 친우의 주검 앞에서 통곡을 했다.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만큼 처절한 울음이었다. 통곡과 이마 상처로 인한 열이 머리에 차오르자, 그만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상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쓰러진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친우의 어린 아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연신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울먹이고 있었다.


누워있는 이상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바탕 통곡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친우의 주검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친우의 아들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아버님의 서신입니다. 나리가 오신다면,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필체(筆體)를 보니 서남우의 서신이 맞았다. 이상설은 멍하니 서신을 바라보며, 서신을 잠시 쓰다듬다가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서신 안에는 급하게 쓴 듯 한 글이 한 장 들어 있었는데, 힘겹게 쓴 듯, 글씨가 온통 떨려있었다. 이상설은 새삼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눈을 닦아내고는 차분히 서신을 읽었다.


“....어미를 잃은 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한(恨)이라네. 내 자네에게 염치(廉恥)없는 부탁을 하나만 해야겠네. 내 아들을 부탁하네. 어미 없이 자란 후, 아비의 따뜻한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일세. 그래도 제법 영특하니, 조금만 보살펴 준다면 능히 한 사람의 몫은 해낼 걸세. 부디 자네가 거둬주길 바라네. 죽을 때가 되어가니, 나라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혼자 남게 될 아들에 대한 걱정도 지울 수가 없구먼. 이런 부탁을 하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해주시게. 그저 내 핏줄이 한없이 가여울 뿐이니, 자네가 돌봐주기를 바라네. 그리고 ....”


나라걱정과 자식걱정이 반반인 서신이었다. 역시 친우의 호인 매산(梅山)처럼 꼿꼿한 절개가 들어난 편지였다.

하지만 그도 아비인지라 아들에 대한 걱정도 가득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친우와 아비를 잃어버린 아들의 모습이 이상설의 마음을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파왔다.


“어찌하면 좋을고, 이를 어찌하면 좋을고.... 이보게, 이 무정한 사람아. 이렇게 나한테 아이를 맡기고 가면 어쩌란 말인가. 아비인 자네가 있었어야지.”


이상설이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이상설의 말을 들었는지, 친우의 아들도 연신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사실 이상설도 친우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간간히 들었지만, 만나는 반년 동안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 그렇게 꽁꽁 숨겨두었는지, 간간히 아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친우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이었다.

이상설은 재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냥 귀엽기만 할 나이에, 슬픔을 꾹 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가련하기만 했다. 이 어린 것이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을 보니, 이상설은 슬픔으로 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자의 이름은 서재임(徐材林)이라 하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렇게 구슬플 수가 없었다.


이상설은 삼일을 그렇게 아이와 함께 보냈다. 이미 가세(家勢)가 기운데다가 따로 연락할 친척들도 없는 탓에, 이상설이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나서야 간신히 친우를 작은 상여(喪輿)에 나마 태울 수 있었다.

더군다나 따로 장지(葬地)로 삼을 선산도 없었기에 근처 가까운 산에 묻어야만 했다. 그 사실이 이상설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친우를 묻으면서 이상설은 또 한바탕 울었다. 한바탕 울어재낀 후 친우를 가슴 깊이 묻고 일어난 이상설은 무덤가에 서서 같이 울고 있던 아이의 손을 잡았다.


“오늘부터는 앞으로 나와 함께 하자꾸나.”


재임은 잠시 눈물 가득한 눈으로 이상설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데리고 산을 내려오다가 이상설은 친우의 무덤을 돌아보았다.


‘내가 이 아이를 내 아들처럼 보살피겠네. 이만 편히 쉬시게나. 나중에 저승에서 보세.’


그렇게 산을 내려온 그날부터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작가의말

1)이상설의 을사조약 반대 상소문 

-박은식, ‘한국통사’(), 박영사, 1988, 7~8.


2)김구의 이상설에 대한 이야기 

-도진순 주해.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 (개정판) 돌베개, 2002, 195~196.  


3)이상설의 친우인 매산(梅山) 서남우(徐南優)와 그의 아들은 서재임(徐材林)은 가상의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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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9

  • 작성자
    Lv.99 AgentJ
    작성일
    16.10.05 00:34
    No. 1

    건필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6.10.05 10:08
    No. 2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핫바맨
    작성일
    16.10.07 12:33
    No. 3

    재밌을 것 같아요 ㅎㅎㅎ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6.10.07 23:10
    No. 4

    기대에 부응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37 Nahus
    작성일
    16.11.15 20:44
    No. 5

    요즘에 나오는 대체역사물 중에는 의외로 괜찮은 작품들이 간간히 보이는 것 같네요
    이작품처럼요^^

    찬성: 3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6.11.17 17:10
    No. 6

    응원에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부응을 해야할텐데....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고민 중이랍니다.
    계속해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4 l살별l
    작성일
    17.01.17 20:46
    No. 7

    추천글을 보고 이제 읽기 시작합니다. ^^
    (그런데 을사늑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1.23 15:32
    No. 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을사늑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을사늑약으로 불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쓰인 말들은 그 당시의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맨닢
    작성일
    17.01.18 11:34
    No. 9

    재미있습니다
    쓸데없는 한자사용이 많네요
    이름, 호, 직위, 동음이의어 외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쉬운 단어나 사자까지 한자로 적으셔서 별로입니다
    목적하신 바가 옛 글 느낌이라도 과한듯 합니다

    찬성: 5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1.23 15:33
    No. 10

    처음에는 실제의 역사와 재임의 이야기를 구분해보려고 사용햇지만, 조금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처음만 그렇고 뒤로 갈수록 한자의 사용의 거의 없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4 | 반대: 1

  • 작성자
    Lv.85 서울대산신
    작성일
    17.01.18 15:38
    No. 11

    서재임? 미국이면 서재필과 관련이 되나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종이향
    작성일
    17.01.23 15:34
    No. 12

    흠.... 저도 잘 모르겠네요. ^^;;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전개될지는 현재로써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진행되어갈 지 지켜봐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99 옳은말
    작성일
    17.04.06 05:09
    No. 13

    주인공은 그냥 울기나 할 줄알고 완전 무능력자 꼬맹이. 같은 일행을 독살하는 것도 뻔히 보고만있는 멍청이. 바로 눈앞에 증거를 주인공에게 보여주면서도 억지로 답답한 전개를 끌어가는 작가.....

    찬성: 2 | 반대: 1

  • 작성자
    Lv.95 혼연무객
    작성일
    18.02.15 11:05
    No. 14

    스포성 이야기네요.

    어린아이 잖아요.

    무슨 어린 아이가 천리안을 가졌나요.
    그쪽 대사관도 없는 상태였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0 똘이똘이
    작성일
    18.03.14 21:52
    No. 15

    을사조약을 체결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미 망한 조선인데 뭘 더 망할건지 ㅋㅋ.... 일본이 안뺏었음 러시아가 뺏었을거고. 러시아가 안뺏엇음 중국이 뺏었을 것... 그 원인은 조선.. 헬조선. 그것도 무능한 지도자가 원인

    찬성: 6 | 반대: 7

  • 작성자
    Lv.99 물물방울
    작성일
    18.05.26 19:49
    No. 16

    대단한 글입니다. 늦었지만 연재 시작을 축하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8.07.17 16:10
    No. 17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Minervaa
    작성일
    19.07.16 01:33
    No. 18

    다 좋은데 감정이입도 안되고 답답하기만한 꼬맹이때가 너무 보기 힘들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st******..
    작성일
    20.03.09 23:47
    No. 19

    근데 궁금한게요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온갖 억압과 폭정을 일삼던 그 당시 사대부 기득권자들과 쪽바리랑 얼마나 달랐을까요? 조사한번 해주시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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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 헬캣 (6) +12 20.03.18 1,185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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