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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뫼의 서재

달마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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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뫼
작품등록일 :
2024.05.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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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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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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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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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52화. 칼질과 검짓

DUMMY

천성검문의 취객청(聚客廳).

간단한 술상을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문주인 백천극은 조금 떨어진 곳에 두 호법과 함께 찻잔을 놓고 앉아 두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술 한 잔을 들이켠 야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제가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답을 주시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이지!”


설군옥은 흔쾌히 대답했다.


“조금 전, 소제는 형님이 어떻게 저의 위치를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비밀입니까?”

“글쎄··· 비밀이라면 비밀일 수도 있지만, 별것은 아닐세!”


설군옥은 왼손바닥을 쫘악 펴 보였다.


“이 손안에 해답이 있네!”


야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소제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순진한 듯한 그의 표정에 설군옥은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토록 순진무구한 녀석이 어떻게 그 많은 고수들과 사나운 비무를 벌였으며 승리했는지, 또한 어떻게 패배자의 목을 거침없이 베었는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군옥은 갑자기 동문서답 같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소형제의 주 무공은 검공인가?”

“그··· 렇습니다만?”

“내가 조금 전에 보니까, 소형제는 검법을 펼침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네!”

“네에? 그··· 럴 리가······”


야랑은 고개를 천천히 저은 후 도전적인 눈빛으로 설군옥을 바라봤다.


“저에게 검을 가르치신 검사부께서는 저 정도면 어디에 가서도 검으로는 쉽게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조금 전에 결과는 어떻게 된 것인가? 나를 꺾었나?”


야랑의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니요. 그래서 지금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럽습니다.”


설군옥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검이란? 손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발끝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발끝에 혼백을 담아. 그러면 검 스스로가 목표를 찾아 움직이지!”

“발··· 끝이라구요?”


야랑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설군옥의 얼굴을 빤히 건너다봤다.


“좀 심한 말 같지만, 소형제가 하는 것은 검법이 아니야! 칼질이지. 그것은 소, 돼지를 잡는 백정들도 할 수 있는 일이야!”


심한 모멸감을 느낀 듯 야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설군옥은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칼질이 아닌 검짓을 할 때에야 비로소 검을 다룰 줄 안다는 소릴 듣게 될 걸세!”


야랑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편,

한쪽에 앉아 있던 백천극과 두 명의 호법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놀란 눈으로 설군옥을 바라봤다.


‘칼질이 아닌 검짓을 해야 한다고? 허허, 검문에 몸을 담은 지 수십 년이 되었거늘 그 평범한 검리(劍理)조차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백천극은 자신을 자책하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군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동작이라도 끊임없이 반복하면 거기엔 공(功)이 쌓이는 법이지.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무의미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깊은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에 그 공능(功能)이 일 할도 못 미치고······!”


야랑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몽롱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검을 뽑아 들고는 몇 가지 동작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동작이었으나 조금 전과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얼마 동안 검을 휘두르던 야량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며 신음처럼 기이한 소릴 흘려냈다.


“오오! 이것이었어! 내가 그토록 간절히 찾고 원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구!”


그의 얼굴에는 흥분으로 인한 열기가 떠올랐다.

무인들은 이런 경우를 일러 ‘벽(壁)을 깨뜨렸다.’ 혹은 ‘넘어섰다.’고 표현한다.

야랑은 격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갑자기 설군옥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형님! 소제의 절을 받으십시오!”


설군옥은 당황했다.


“소형제! 왜 이러나 갑자기. 심히 당혹스럽네.”

“와하하하··· 소제는 아직까지 부친과 사부 외에는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사람도 없었구요. 군사부일체라지 않습니까? 하하하, 형님은 사부님과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열기를 담고 격동으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형님은 바로 검사부님과 마찬가지라구요.”

“내가?”

“하하하, 사부가 따로 있습니까?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방향을 바꾸게 하면 그게 사부이지요.”

“후후후, 잠시 후 나랑 다시 대결하게 되면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를 텐데?”


야랑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결이요? 무슨 대결이요. 여기서 더 이상 무슨 대결이 더 필요합니까? 이미 소제는 마음속으로부터 형님에게 깊이 승복을 했는데요.”


야랑의 얼굴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뜨더니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소제에겐 소위 천재 소리를 듣는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저는 그분의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가끔 그 형님과 검을 들고 마주 섭니다. 물론······ 제가 항상 패하지만요.”

“흐음! 그의 이름이 천웅이라고 하지?”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뇌천웅(雷天雄)이 바로 저의 그 잘난 형님입니다. 제가 무슨 질문만 하면 언제나 대답은 똑같지요!”

“······?”

“그것도 모르느냐? 너는 검보다는 도가 더 어울려, 차라리 무기를 바꾸는 게 어떻겠니? 늘 이런 식으로 비아냥대지요.”

“하하하··· 검과 도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야. 쓰임새에 있어서는 같거든, 다만 사용법이 조금 다를 뿐이지.”

“형님!”

“응? 말하게.”

“형님은 조금 얄밉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어째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거 같습니다? 마치 제 누님을 보는 듯합니다.”

“누님? 려군이라는?”

“하하하, 형님은 제 가족까지 훤히 꿰고 계시는군요. 이토록 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찾아오셨는데 제가 이길 수가 있나요? 하하하···”


설군옥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 정도 준비도 안 하고 소형제를 찾아왔겠나? 이것은 병법을 들먹일 것까지도 없이 일상의 기본이 아닌가? 상인들도 누굴 만날 때는······”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야랑은 입을 삐죽거렸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짓궂은 소년에 불과했다.


설군옥은 이 야랑이라는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순진무구하고 솔직담백한 저 아이는 궤계보다는 직선적으로 뚫고 나가는 유형이다.

음모와는 거리가 먼 성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야랑의 중원비무행에는 누군가가 배후에서 그의 이런 성격을 이용했을 수 있다.

야랑은 그런 것도 모르고 단순히 비무행을 하는 것이고······

갑자기 머리가 혼란해졌다.


‘세상을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네.’


설군옥은 뒤엉킨 생각을 털어내듯이 크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처음 질문에 답을 할 차례로군.”

“그렇습니다. 어떻게 강기막으로 가린 저의 위치를 찾으셨는지요?”


설군옥은 다시 좌장을 야랑의 눈앞에 쫙 펴 보였다.


“이 손으로 기를 쏘아내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온기를 가진 존재는 다 찾아낼 수가 있지. 즉 아무리 많은 허상을 만들어도 그것에 속지 않고 실체를 정확히 잡아낼 수가 있단 말이네.”

“······?”

“물론 평상시에는 상단전에서 기를 발출하면 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손의 감각이 더 민감하지. 기감(氣感)은 사용할수록 더 예민해지는 것일세.”

“하지만, 그게 아무나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가능하지. 물론 상당한 내공의 수준이 필요하지만 말일세. 내공이 부족한 사람도 특별한 훈련을 받으면 가능하기도 하고.”

“허 참!”


야랑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님은 괴물입니다.”

“하하, 이 구천십지에 얼마나 많은 기인이사가 있겠나. 나 같은 정도야 그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


그는 슬쩍 야랑의 눈치를 살폈다.

이는 중원에는 수많은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정말 순진한 녀석이군.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을 보니,’


설군옥은 내심 짚이는 인물이 있었다.

뇌려군(雷麗珺)!

바로 야랑의 누이이자 북서맹의 여군사(女軍師)인 그녀였다.

설군옥은 다소 굳어진 표정으로 야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계속 비무행을 할 생각인가?”


야랑은 그 질문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의 얼굴에서도 짓궂은 웃음이 사라졌다.


“만약, 제가 계속하겠다면 형님은 저를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수는 없을 걸세. 자네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도 승리자로서 그 목을 떼어내야 하지 않겠나? 그 결정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겠지.”


설군옥은 마치 금방이라도 손을 뻗칠 듯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야랑은 흠칫했다.


그는 설군옥의 눈 속에서 가공할 기운을 느꼈다.

저것이 폭발되면 설사 자신의 형인 뇌천웅일지라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소제는 이만, 중원비무행을 접겠습니다.”


그의 비무행은 이렇게 서안 직전인 함양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작가의말

53화 ⇒ 오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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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깊어지는 혈전 24.06.19 23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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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화. 벽파산 전투 24.06.18 217 3 12쪽
76 76화. 공동산의 혈투 24.06.18 222 5 13쪽
75 75화. 무슨 축지술(縮地術)도 아니고 24.06.17 237 5 12쪽
74 74화. 특급 조련사 24.06.17 239 4 12쪽
73 73화. 습격받은 의혈단 24.06.16 268 5 12쪽
72 72화. 새벽에 피어오르는 연모지정(戀慕之情) 24.06.16 275 5 12쪽
71 71화. 싹트는 연심(戀心) 24.06.16 292 5 13쪽
70 70화. 단봉문(丹鳳門)의 출현 24.06.15 294 5 12쪽
69 69화. 죽음의 거미줄 24.06.15 296 5 12쪽
68 68화. 이것밖에 안 되나? 24.06.15 294 5 12쪽
67 67화. 만마총련의 고수들 24.06.15 288 5 12쪽
66 66화. 만마총련 총단 24.06.14 299 4 12쪽
65 65화. 뜨거운 출정식 24.06.14 304 4 13쪽
64 64화. 원공검법(猿公劍法) 고수와의 대결 24.06.14 309 4 13쪽
63 63화. 구출작전 24.06.14 325 4 12쪽
62 62화. 염라호접표의 활약 24.06.13 333 4 13쪽
61 61화. 위기의 동원표국 24.06.13 360 5 13쪽
60 60화. 과거 편린(片鱗) (2) 24.06.13 334 5 11쪽
59 59화. 과거 편린(片鱗) (1) 24.06.13 342 4 12쪽
58 58화. 소공(小公)의 귀환 24.06.12 354 4 13쪽
57 57화. 몽중(夢中)에 밝혀지는 과거(2) 24.06.12 332 5 12쪽
56 56화. 몽중(夢中)에 밝혀지는 과거(1) 24.06.12 359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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