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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무명배우, 천만배우로 거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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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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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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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4

DUMMY

1997년의 새해가 밝았다.

1997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경제위기의 해’ 정도가 될 것이다.

알다시피 1997년은 IMF 구제 금융이 있었고,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어마어마한 경제위기가 시작된 해였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1950년에 발생한 6·25를 제외하면 이때가 가장 큰 위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루 아침에 부도를 맞고 일자리를 잃어버린 가장들이 거리로 나가 노숙자가 되었고, 많은 가정들이 풍비박산이 났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나라의 주요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채 계속 승승장구했다.

죽어 나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힘없는 서민들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새해가 됐어도 별로 기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유독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아버지였다.


“연후야! 주식은 언제 사냐? 이사는 언제 가고?”


작년에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눈은 욕망으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좀 기다리셔야 돼요. 가을쯤 되면 시기가 옵니다. 11월쯤에 주식을 사시고 한 2년쯤 뒀다가 파세요. 최소 4배에서 5배는 올라요.”

“그게 사실이냐?”


아버지의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다 못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두 배도 아니고 네, 다섯 배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럴 만했다.


“그냥 믿으세요. 괜히 딴 생각하지 마시고요. 11월까지 기다려서 사시고,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겁먹으시면 안 돼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흡족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다가도 마음 한구석으로 꺼림칙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알려 주었다가 아버지가 나만 보고 아무것도 안 하실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작년이야 배우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다짐한 나는 오랜만에 극단에 나가기 위해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저 극단에 좀 나갔다 올게요.”

“그래. 어여 갔다 와.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거 있으면 애비한테 꼭 말하고.”


우려했던 일이 너무도 빠르게 현실로 나타났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빠르고 단호하게 차단했다.


“아버지! 저는 이것밖에 몰라요. 앞으로는 아버지가 알아서 하세요. 대신 배우 생활 열심히 해서 아버지께 효도할게요.”

“이런 거 몇 번만 더하면 되는데, 그깟 배우 해서 뭘 하게?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정말 이것밖에 모른다니까요. 저는 배우로 성공할 거니까 다른 건 바라지도 마세요.”

“저··· 저 말하는 거 하고는···.”


아버지가 뒷목을 잡으려 할 때 나는 얼른 방을 빠져 나왔다.

옥수동 언덕배기에 아침 햇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새해 아침에 어울리는 그런 햇살이었다.




“오! 이 배우. 오랜만이야!”


극단에 들어서자 희연이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나도 희연이 정말 반가웠다.


“잘 있었냐?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희연은 내가 영화 촬영 때문에 공연에서 빠지게 되자 내가 하던 역할을 대신했다.

아직 신입 배우가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또 공연까지 하려니 꽤 힘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넉살 좋게 대답했다.


“괜찮아. 너 없으니까 강윤성이가 덜 갈궈서 오히려 편했지.”

“그래!! 하하!!”


우리 둘은 서로를 보며 한참 동안 깔깔댔다.

그러다 희연이 아주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야! 너 황성규하고 채민석은 만났냐?”

“만났다 뿐이냐. 술 한잔 먹고 형,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지.”


술을 먹은 건 사실이나 형, 동생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분위기 좋게 마셨으니 그 정도의 과장은 뭐.


“정말? 존나 부럽다!”


희연은 가질 수 없는 걸 갈구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자 더 뻐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뭐가 부럽냐. 너도 곧 그렇게 될 텐데.”

“정말 그렇게 될까?”

“당연하지. 형님만 믿고 따라와라.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희망에 부풀었던 희연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녀석은 팔을 치켜들고 나를 때리려고 했고, 나는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우리 둘의 유치한 장난은 단장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연후 왔냐?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단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달려가 인사했다.


“잘 지내셨어요? 단장님.”

“그래. 잠깐 단장실로 와라.”


단장이 먼저 단장실로 향했고, 난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희연은 내가 사라질 때까지 분노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단장이 앞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 영화 촬영은 재밌냐?”

“네. 다들 잘해 주셔서 재밌게 찍고 있습니다.”

“분량은 얼마나 남았지?”

“이제 마지막 씬만 찍으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삼인자’의 촬영도 중반부를 넘어서고 있었다.

내 촬영분은 거의 모든 배우가 출연하는 카페의 난투극 씬만 남겨 두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단장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너 임미현 때문에 힘들었다며?”

“네? 누가 그런 말을?”

“김 감독이 그러던데···. 아니야?”

“네. 조금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죠.”


단장 입으로 그 말을 들으니 지나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시비를 걸던 임미현.

임미현을 그렇게 만들었던 치사한 강윤성 그 새끼까지 말이다.


“김 감독은 네가 잘 극복했다고 그러던데.”

“극복하고 말 것도 없었어요. 임미현 선배가 저 잘되라고 그런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잘했다. 우리나라야 어딜 가나 선후배 관계가 그렇잖아. 되도 않는 걸로 군기 잡으려고 하는 게 임미현이 하나뿐이겠냐. 그럴 때마다 싸우고 그러면 너만 피곤해져. 어쩔 때는 지고 가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알아야 돼.”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럴 때보면 단장은 정말 아버지 같은 면이 있었다.

진심으로 나를 아껴 주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는 모습들을 보면.

아침에 봤던 진짜 아버지의 이글거리는 눈빛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던 단장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연후야! 너 영화 하나 안 할래?”

“영화요? 무슨 영화를요?”

“예고괴담이라고. 시나리오가 재밌는 것 같아서 우리 극단에서 너하고 강윤성이를 추천할까 하는데···.”


예고괴담.

예고에서 한을 품고 죽은 여학생이 귀신이 되어 복수한다는 학교 공포물이었다.

학교의 부조리, 왕따 등을 소재로 삼아 98년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으로 속편이 무려 5편이나 제작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여학생과 여교사가 메인인 작품이었다.

남자 배우의 역할은 한정적이어서 얼굴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주목으로 받기는 어려웠다.


“네. 감사합니다. 시나리오 주시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단칼에 자를 수는 없었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갖고 있던 시나리오를 건넸다.


“이거 받아라. 스토리는 재밌을 거야.”

“네. 단장님.”

“어서 가서 일 보고, 결정되면 알려 줘.”


나는 인사를 하고 단장실을 나왔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오랫동안 극단에서 주연을 했던 강윤성과 나를 동급으로 대해준 단장의 마음은 너무나 감사했다.

단장실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나는 희연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들고 있던 시나리오에서 펄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대기실로 들어서자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눈에 띄었다.

강윤성이었다.


“연후씨! 어디 갔다 와?”

“네. 단장님께 인사 좀 드리고 왔습니다.”

“영화 촬영한다고 극단 일도 안 하고. 희연씨가 혼자서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요?”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건가.

지가 언제부터 희연이를 챙겼다고 이런 말을 하는지 정말 아니꼬왔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희연이한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은 희연씨 쉬라고 하고, 연후씨가 극장 청소하면 되겠네.”


강윤성은 조롱하듯 미소를 날렸다.

너무 대놓고 저러니 기분이 상하지도 않고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윤성은 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뭐야? 웃어?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우스워?”

“아니. 아니에요. 그냥 다른 생각이 나서요. 선배님 때문에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바로 정색을 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빌미도 강윤성에게는 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영화 하나 찍더니 스타가 된 것 같아요? 극단 선배는 우습다 이거지?”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오해는 무슨 오해? 그건 또 뭐야?”


강윤성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가리켰다.

순간 이 시나리오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하게 그려졌다.

윤성은 내가 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가져가더니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 시나리오 아냐. 또 영화 출연하기로 했어요? 극단은 그만둘 건가?”

“아뇨. 이 영화 단역 뽑는다고 단장님이 말씀해 주셔서 시나리오 보고 결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제에 시나리오 보고 결정한다고?”


강윤성의 말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 했으나 막말을 듣고 있자니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단역이라도 시나리오는 봐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 맞아. 시나리오 보고 결정해야지. 근데, 보는 눈이라도 있어?”

“아직 없습니다. 가르쳐 주실래요?”


강윤성의 시비에 나도 이죽거리며 대응했다.

내 반응에 강윤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누구 하나라도 좀 더 나가면 말싸움이 아니라 주먹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상황.

옆에 있던 희연이 상황을 진정시키려 끼어들었다.


“선배님. 연후 일 시킨다면서요? 저도 같이 할 테니까 말씀하세요.”


희연의 말에 강윤성이 진정하기 위해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윤성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 오늘 극장 물청소 좀 해. 깨끗하게 했나 안 했나 내가 직접 체크할 거니까. 알았어?”

“네.”


나와 희연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극장 물청소는 몇 사람이 붙어서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희연과 내가 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강윤성은 괜히 우리에게 큰소리를 쳤다.


“얼른 시작해!!”


나와 희연은 강윤성의 지시에 따라 청소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청소 도구를 챙겨 무대로 가기 전 나는 강윤성을 보며 한마디 했다.


“선배님. 임미현 선배님이 안부 전해달라고 그러십니다.”

“뭐라고? 미현 누나가?”

“네. 선배님이 임미현 선배한테 제 얘기 잘 해주셨다고 그러던데요. 감사합니다.”


물론 임미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또한, 강윤성이 임미현에게 내 얘기를 했는지 확인한 적도 없었다.

내 말에 강윤성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강윤성이 임미현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희연과 함께 극장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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