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그림자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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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칠흑의 옥좌에 앉은 채 턱을 괴고 전장을 관망하고 있었다.
성국 아이리움이 자랑하는 화이트 나이츠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는지,
끝없이 도열해 있는 팔라딘과 프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마치 거대한 빛의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대륙 최강의 기사단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내는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이 사내의 앞으로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
노인의 청색 안광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주인이시여, 감히 진언드리건대, 화이트 나이츠에 맞서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합니다. 부디 훗날을 도모하시는 게···.”
“그만.”
사내는 손을 들어 노인의 말을 제지했다.
“로슈포르. 방법을 제시하라고 했지, 그런 말이나 하라고 그대를 만들어 낸게 아닐 텐데.”
“·········.”
노인이 말없이 침음을 흘리는 사이,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도 없이 손잡이부터 가드까지만 있는, 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기괴한 형태의 검이었다.
“그렇게까지 불안해한다면야, 슬슬 시작해볼까. 「섀도우 인챈트」 (Shadow Enchant).”
사내가 검에 마력을 불어넣자 약간의 스파크와 함께 검신이 비어있던 자리에 칠흑의 칼날이 나타났다.
마치 밤의 일부를 베어내어 벼린다면 저런 새까만 색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어둠의 색을 가진 블레이드였다.
“아르카나.”
“네, 주인님!”
사내의 부름에 흑발, 흑안에 칠흑의 고딕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마치 그녀의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양손 가득 마력을 모았다.
“범위는 전장 전체.”
“네! 섀도우 필드 (Shadow Field), 시전합니다!”
소녀의 영창이 끝나자 성국의 군대와 사내가 대치하고 있던 전장 일대의 대지가 묵빛으로 물들었다.
이변을 감지한 성국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으나, 과연 백전연마의 용사들인지 전열이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사내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전장을 훑어보고는, 검을 가볍게 들어 땅에 꽂아 넣었다.
“「사상지평」 (事象地平, Event Horizon).”
고유 결계 마법을 영창함과 동시에 어둠에 물든 땅의 경계선을 따라 룬 문자가 새겨지더니, 이윽고 전장을 둘러 완전한 원을 이루었다.
곧이어 새파란 하늘의 색상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세피아빛 천공에서 새까만 태양이 어둠을 비추는 괴이한 현상에 제아무리 성국의 신성기사라 할지라도 동요하지 않을 수는 없는 듯,
화이트 나이츠는 전열을 크게 흩트리더니 이내 통제를 잃고 무분별한 돌격을 시작했다.
사내는 그 치태를 비웃으며 가볍게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거대한 어둠의 칼날이 쏘아져 나와 성국의 군대를 도륙내었다.
그러나 일부 프리스트들이 이미 사상지평에 당해본 적이 있는 듯, 신성결계를 펼쳐 그 검을 막아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사내는 짐짓 놀라며 미소를 지었다.
"과연 성국의 나이츠는 다른데? 그렇다면, 나도 물량전을 해볼까. 「섀도우 라이즈」 (Shadow Rise).”
사내가 만들어 낸 그림자에서 솟아 나온 새까만 풀 플레이트의 수백 명의 기사가 안광을 빛내며 나타났다.
기사들은 각각의 장병기를 세워 주군에 대한 충절을 표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일어난 수많은 그림자의 병사가 검은 평야를 가득 메웠다.
그 수는 순식간에 수십만에 이르러, 이윽고 평야의 절반이 넘실거리는 어둠에 먹혀들었다.
"전군."
사내는 검을 높이 들어,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는 가벼웠으나 그 행동에 따라 진격하는 군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돌격."
수십만의 빛과 어둠이 맞부딪치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쏘아대고, 신관들이 결계를 펼치며 검과 창이 맞부딪치는 짜릿한 전장을 지켜보던 사내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동시에 수많은 묵빛의 쐐기가 지면에서 튀어나와 근방의 팔라딘과 프리스트를 두동강 내었다.
사내는 호기롭게 검을 내세우며 외쳤다.
"자, 다음 희생자는 누구?"
빙긋 웃으며 검을 늘어뜨리는 사내의 도발에 따라 수십의 백기사가 그를 둘러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다음 먹잇감을 향해 칼끝을 내세웠다.
사내에게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현실로 바꿀 힘이 있었다.
훗날 이 전투는 성국 아이리움을 상대로 단신으로 전쟁을 걸어온 사내가 전신(戰神)으로 대륙 전체에 그 명성을 떨치는 시작점이 된다.
···이 이야기는 그림자의 주인, 섀도우 메이커 (Shadow Maker) 김진우가 세계의 정점에 서기까지의 발자취이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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