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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몰락한 천재헌터는 폐급의 헬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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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공룡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2
최근연재일 :
2023.08.14 23:5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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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3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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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6,226

작성
23.05.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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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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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회귀(3)

DUMMY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어리는 무시하고 우선 한정된 시야에서 보이는 숲을 살폈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주변을 살피자 다시 푸른 문구가 떠올랐다.


『스킬 : 상기(想起) 발동』


10년 전, 고작 고블린 따위나 존재하는 F급 균열 속에서 나타난 악마에게 5명의 사람이 학살당한 사건.

균열 속에서 헌터나, 짐꾼이 죽는 경우는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고작 F급 균열에 악마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건이었다.


비밀출구를 통해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헌터가 모험담처럼 소문을 퍼뜨렸던 게 한몫했었지.


악마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헌터협회에서 조사 의뢰가 들어왔었다. 최지환과 함께 균열에 들어섰을 땐 이미 악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생존자가 말했던 비밀출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두께가 5미터는 될 법한 나무의 뿌리가 들려 만들어진 땅굴.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10초”


다행히 땅굴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다만, 땅굴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저 땅굴을 눈에 담지도 않는다.


제발 좀!


‘말 좀 듣고 땅굴로 들어가!’


“어?”


그저 답답한 마음에 몸뚱어리한테 외친 목소리였다. 여전히 목청이 울리는 감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내 목소리에 반응한 몸뚱어리의 시선이 땅굴을 향했다.


땅굴 앞에 선 몸뚱어리는 끝도 모를 정도로 새까만 어둠을 바라보며 발을 멈췄다.


갈팡질팡하는 고민이 내게로도 전해진다.


“1초”


‘그냥 뛰어!’


“하······. 모르겠다.”


몸뚱어리가 눈을 감고 땅굴 속으로 뛰어들자 뒤통수로 뭔가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칼트의 공격이었을 거다.


“으아아아악!”


쿵!


“억!”


‘억!’


둔부를 통해 둔탁한 통증이 전해졌다.

꽤나 끔찍한 통증이 온몸을 울리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제야 좀 알 것도 같다.

아무래도 몸이 죽으며 빠져나온 영혼인지, 정신인지는 모를 무언가가 다른 몸에 깃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둔탁한 통증이 이렇게 끔찍하게 느껴질 리가 없다.


“······죽는 줄 알았네.”


마치 내가 말하는 것처럼 목청이 울리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부터 누구세요? 저 살려주신 거 맞죠? 잠깐, 설마······.”


내 목소리가 바깥으로 전해지진 않는 것 같지만 몸의 주인에게는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어째서? 죽기 전에 발현된 특성 때문인가?


“이게 각성인가? 들은 거랑 좀 다른데······.”


어째서 남의 몸에 기생하게 됐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몸의 주인이 하는 소리를 듣고 조금은 기운이 빠졌다.


몸을 골라도 하필······.


“······아닌가? 아직 멀었나보네.”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폐급이 몸을 일으켜 정면에서 흘러나오는 녹빛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꼭 동굴 같은데······.”


폐급의 심리상태가 마치 내가 느끼는 것처럼 전해진다.

불안감을 느끼는 탓에 괜스레 혼잣말을 내뱉는 것 같지만 폐급이 하는 말이 맞다.


분명 들어선 곳은 땅굴이었지만 실제로 이곳은 동굴이다.


간혹 균열 속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공간이 존재하곤 한다.

흔히 이중균열이라 불리는 이런 공간들은 희귀한 아이템이나 보스 마물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다분하다.


『스테이터스』


이름 : 차재현


나이 : 35


레벨 : 164


특성 : 불안정한 회귀자(N)


보유 스킬 : (상기(想起) Lv.0), (마력감지 Lv.M)


폐급이 문제없이 걸어가는 걸 확인하고 상태 창을 열자 역시나 머릿속에 때려 박힌 듯이 상태창이 떠올랐다.


불안정한 회귀자? 스킬은 또 뭐야?


분명 죽기 직전에 ‘회귀’라는 특성 적용에 실패했다는 문구가 계속 발생했었다. N이라는 처음 보는 등급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불안정한’이라는 수식어는 말 그대로 불안감을 내비치게 만들었다.

마력도 있는 힘껏 끌어올려 봤다. 분명 마력이 흐르는 감각은 느껴지지만 이 감각이 폐급한테까지 전달되는지는 의문이었다.


폐급이라 알 수가 있어야지.


“와······. 저게 뭐야······.”


그리 깊지 않은 동굴의 끝에 다다른 폐급이 감탄을 내뱉었다.

그곳엔 마치 영웅만이 뽑을 수 있다고 알려진 전설의 검처럼 커다란 바위에 꽂힌 장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손톱만 한 녹색 마석 하나가 손잡이에 박힌 장검은 바위 바깥으로 드러난 날카로운 검날이 살짝만 스쳐도 뭐든 잘라낼 수 있을 것처럼 번뜩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 앞에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남자도 하나 보였다.


“깜짝이야! 뭐야, 너 어떻게 살았어?”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턱을 괴고 검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자는 멀뚱히 서 있는 나. 아니, 폐급을 향해 소리쳤다.


멀쩡한 남자의 모습을 본 폐급의 감정은······.


분노.


분명 분노를 느끼고 있다.


“박민재! 그렇게 혼자 살아남으니까 만족해?”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폐급이 혼자 던전에 들어왔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F급 균열에 갑자기 나타난 악마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박민재라는 저 남자가 짐꾼을 버리고 도망간 것 같다.


어? 이 상황.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스킬 : 상기(想起) 발동』


F급 던전에 나타난 악마. 녀석에게 죽은 다섯 명의 헌터. 탈출구를 발견해 홀로 살아남은 헌터. 그리고 내가 조사했던 이중균열의 배경.

10년 전, 그 날의 사건과 너무나 동일하다.


널브러진 시체는 네 구였지만, 원래 폐급의 시체도 섞여 있었어야 했겠지.


회귀.


‘상기’라는 스킬이 지금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인지라도 시켜주는 듯 머릿속의 기억을 마구잡이로 뒤엎었다.


근데 왜 다른 사람 몸에, 그것도 폐급이냐고.


“네가 사람들을 묶어놓고 도망가는 바람에 다 죽었어! 그런 짓만 하지 않았어도 몇 명은 더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폐급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고, 어찌저찌 도망쳤다 해도 칼트의 관심이 폐급에게 쏠리지 않았다면 저 녀석도 여기에 있진 못했을 거다.


“폐급 주제에 어디서 소리를 쳐? 미쳤어? 살아남은 걸로 감지덕지 하진 못할망정.”


“각성해서 너 같은 쓰레기가 될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여전히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던 박민재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커다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오냐, 그래. 그럼 내가 죽여줄게.”


착지와 동시에 달려든 박민재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팀 단위로 고작 고블린이나 나오는 균열에 있던 걸 보면 등급이 낮다는 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몸을 살짝만 틀어도 수십 가지의 카운터를 먹일 수 있는 빈틈투성이의 공격.


우선 몸을 조금 틀어서······.


퍽!


“크헉······!”


‘억!’


분명 인지했고, 머릿속에서 가장 적절한 카운터까지 그렸다.

하지만 내 생각을 따라주지 않는 폐급의 몸은 그 하찮은 공격을 허용했고, 심지어 아프다.


박민재가 날린 주먹이 얼굴로 꽂히자 하찮은 폐급 몸뚱어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안 그래도 기분 더러웠는데 잘됐네.”


고작 하급 헌터가 허공에 팔을 휘휘 저어가며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리고 저 하찮은 주먹에 이런 통증을 느껴야 한다는 것도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일어나.’


“뭐야! 당신 누구야!”


“뭐? 이 새끼가 겨우 한 대 맞고 정신이 나갔나?”


폐급이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박민재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오른쪽으로 한 발.’


“어?”


턱!


“커헉······!”


‘억······!’


다시 날아든 주먹이 어깨를 때렸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몸짓을 가지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폐급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정신 나갔다고 봐주는 거 없다!”


‘그냥 내 말에 집중해. 지금이야. 숙여!’


붕.


‘일어서!’


퍽!


“컥!”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숙였다 일어선 폐급의 정수리가 박민재의 턱으로 꽂혔다.


폐급의 공격 따위가 각성자에게 대미지를 주긴 힘들겠지만 박민재는 턱을 꽤나 정통으로 맞았는지 뒤로 나자빠졌다.


“쓰읍. 머리야······.”


‘저 검으로 달려가!’


“에? 어어, 네!”


내 말에 따라 일이 풀린다는 걸 느꼈는지, 폐급이 힘껏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 망할 새끼가······.”


“으아악!”


금세 일어선 박민재가 마력을 모으자 바닥의 틈새로 얇은 덩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폐급의 발목을 잡고 허공으로 힘껏 던졌다.


‘낙법이던, 방어던, 뭐라도 좀 해 봐!’


쿵.


“컥······.”


무리한 부탁인가.

허공에 붕 떠올랐던 폐급은 그대로 곤두박질쳐 바위에 내다꽂혔다.

덕분에 바위에 꽂힌 검 앞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정상이 아닌 폐급의 몸뚱어리로 검을 쥐어봤자 의미는 없다.


검은 포기하고 각성 먼저 시켜줄 걸 그랬나.


하지만 폐급은 몸 곳곳의 뼈가 으스러진 고통 속에서도 검을 향해 천천히 기어갔다.


“······어떻게 한 각성인데······. 이렇게 죽을 순 없지······.”


아. 각성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먼저였구나.


간신히 기어간 폐급이 검 손잡이를 쥐고 몸을 지탱해 일어서자 푸른 문구가 안구에 박히듯 떠올랐다.


『칼리부르누스의 잔해』


등급 : E급 희귀(습득 시 귀속)


공격력 : 15


특수능력 : 봉인(특정 조건 달성 시 활성화)


아이템 총평 : 영웅의 전설이 담긴 검의 잔해. 사용자에 따라 그 진가가 달라진다.


내가 기억하던 아이템 설명과 동일하다.

등급치곤 나쁘지 않은 공격력이라 생각해 뽑으려 들자, 꿈쩍도 하지 않아 함께 왔던 최지환의 비웃음을 샀었다. 하지만 나를 비웃던 최지환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 검을 뽑아내지 못해 바위 자체를 부수려 들던 걸 막아섰었다.


“흡!”


스르릉.


“뭐, 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아. 폐급!”


검 손잡이를 쥔 폐급이 조금 힘을 주자 바위 속에 숨겨졌던 검의 영롱한 자태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조건이 충족되어 아이템 : 칼리부르누스의 잔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이템 : 칼리부르누스의 잔해가 사용자에게 귀속됩니다.』


『조건 : 비각성자』


애초에 조건이 비각성자다.


나나 최지환이 뽑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박민재도 폐급은 아니니 애초에 뽑을 수 있는 조건에 충족하질 못한 거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폐급은 이미 검을 휘두를 몸 상태가 아니다.


‘폐급.’


“쿨럭······!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아니. 쿨럭! 잠깐만. 각성해서 들리는 목소리, 쿨럭! 아닌가? 근데 왜 폐급이라 부르지?”


다 죽어가는 마당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바위 밑에 돌 더미 보여?’


폐급의 시선이 바위 아래 아무렇게나 쌓아올려진 자갈들을 향했다.


“예······.”


‘거기서 제일 번들번들한 거 주워.’


“예? 아, 예.”


폐급은 기껏 뽑아 든 검을 바닥에 질질 끌어가며 바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바위 틈새로 기어 나온 덩굴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 뽑았는지 몰라도 아무튼 잘 했다. 이제 죽어.”


덩굴은 동굴 천장에 닿을 듯이 높게 솟아오르더니 폐급 몸뚱어리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이렇게 또 죽는다고?


쾅!


그렇게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동굴을 울리는 굉음이 울렸다.


“켁······.”


바닥을 향해 힘껏 곤두박질치던 덩굴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추더니 이내 힘을 잃으며 누렇게 시들어갔다.


턱!


“크헉······.”


덕분에 허공에서 떨어진 폐급의 몸뚱어리가 바닥을 기며 죽어갔다.


“크아아악!”


심지어 조금 전 굉음을 울렸던 장본인이 소리치며 아주 희미한 희망까지 짓밟았다.


간혹, 특정 조건이 맞춰지면 나타나는 보스 마물이 종종 있다.

그 조건은 가지각색이라, 보스를 공략할 높은 등급의 헌터들이 토벌대를 형성하여 짧으면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을 수행하곤 했다.


검을 뽑는 게 조건이었나 본데.


보스가 자주 나타나는 이중균열 속에 폐급이 발을 들인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어째서 균열 속에 폐급을 기준으로 한 검이 꽂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수십. 아니, 평생이 지나도 뽑힐 일이 없었을 거다.


저 녀석은 나 아니었으면 평생 나올 일도 없었겠네.


최소 4미터는 될 듯한 덩치의 고블린이 각종 뼛조각을 이어 만든 양날 도끼로 박민재를 단번에 날려버리고서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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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악마출현(1) 23.05.24 136 3 12쪽
23 칠성길드(3) 23.05.23 150 2 13쪽
22 칠성길드(2) 23.05.22 152 3 11쪽
21 칠성길드(1) 23.05.21 159 3 15쪽
20 만물상(5) 23.05.20 153 3 13쪽
19 만물상(4) 23.05.20 166 3 12쪽
18 만물상(3) 23.05.19 173 3 13쪽
17 만물상(2) 23.05.18 177 3 14쪽
16 민물상(1) 23.05.17 193 3 13쪽
15 사막의 주인(5) 23.05.17 194 4 18쪽
14 사막의 주인(4) 23.05.16 197 4 14쪽
13 사막의 주인(3) 23.05.15 204 4 13쪽
12 사막의 주인(2) 23.05.14 226 4 16쪽
11 사막의 주인(1) 23.05.13 263 4 15쪽
10 성장의 발판(6) 23.05.13 263 7 13쪽
9 성장의 발판(5) 23.05.12 283 7 14쪽
8 성장의 발판(4) 23.05.12 324 8 16쪽
7 성장의 발판(3) 23.05.11 342 7 14쪽
6 성장의 발판(2) 23.05.11 378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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