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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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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04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15 12:10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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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외전1-188. 신병(神病)- 바보 똥환 (2)

DUMMY

흔히 ‘바다의 불로초’라고도 불리며 좋은 영양성분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바다내음을 지니고 있어 호불호가 강한 것이 바로 ‘톳’이었다.


재호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연인 연희가 좋아죽는 톳 무침을 슬며시 집어 입 안 가득 담겨있는 쌀밥 안에 우겨넣었다.


사실 재호는 톳 무침을 그리 썩 좋아하지 않았다.


거친 바다 뱃일을 해온 사내라면 자고로 평생 바다냄새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익숙한 터였다.


그래서일까, 입 안에서조차 바다내음을 맡고 싶진 않았다.


- 이게 뭐가 그리 맛있다고 연희는 맨날 없어서 못 먹는대? 참나... 이게 그리 맛나나?


오독오독 씹히면서 새콤한 맛을 내는 어머니가 무친 톳 무침을 씹으며 재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서둘러 재호는 그 옆에 놓인 고등어구이에 젓가락을 가져다 댔다.


“저기...재호 아부지... 혹시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


무심한 듯 툭 내뱉는 아버지는 어느새 식사를 다 마친 것인지 숟가락을 밥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니... 아까 마을 사람들하고 볼락 다듬어서 말리고 있는데... 저기... 그게... 나주댁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지 뭐에요.”


“어이고... 어쩌다가? 평소에 어디가 아프셨나?”


재호의 엄마가 건넨 숭늉이 담긴 그릇을 받아들고 후루룩 마시며 재호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주댁 아버지가 무슨 건설 현장인가에서 막노동을 하나본데... 일하다가 철근이 떨어져서.... 글쎄 거기에 맞아서 목이 부러져서.... 죽었대요. 그래서 나주댁이 울고 불고... 거의 기절하다시피 쓰러져서 우는 걸 영웅이가 다독거리고 겨우겨우 진정시켜서... 내일 아침에 첫배 타고 나주로 간대요...”


재호의 엄마는 마치 자신의 가족 일처럼 자신의 웃옷자락을 끌어올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먼 타지에서 낯선 욕지도로 시집와 친정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저 소식만 전해들은 채, 부모가 죽어서야 고향에 갈 수 있는 욕지도의 여자들은 다 똑같은 심정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느꼈던 것일까, 재호의 아버지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재호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숟가락을 입안에 넣은 채 빼지도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 헐.... 그럼 똥환이 형 말이 맞았던 거야? 뭐야 이거?


재호는 놀랍기보다는 소름이 끼쳐 팔뚝에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재호가 숟가락을 입 안에 넣은 채, 바보같은 표정으로 가만히 밥상 앞에 앉아있자 재호의 엄마 군산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는 서둘러 주먹을 작게 쥐고 아들 재호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아얏! 왜 이러셔?”


재호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숟가락을 잡고 말하자 재호의 엄마가 말했다.


“영웅이도 내일 첫배 타고 나주간대! 그러니까 농땡이 치지 말고 이따가 간독 가서 고등어 좀 꺼내서 영웅이네 갖다 주고 와!”


“와! 울 엄니, 말 한번 섭섭하게 하시네! 내가 무슨 농땡이를 피운다고 그래요?”


눈을 흘기며 서운하다는 듯이 말하는 아들 재호를 향해 군산댁이 말했다.


“허참! 웃기고 앉아 있네! 맨날천날 밤마다 연희 보러 간다고 쪼르르 가면서! 나나 니 아부지가 그걸 모를까봐? 연희랑 그만 좀 놀고 아부지한테 뱃일이나 잘 배워!”


“에이... 참!”


“그나저나.... 십년 넘게 못간 고향을... 아부지 장례 치르러 가는 나주댁 마음이 어쩔런지... 에휴..... 빈손으로 가게 둘 순 없는데... 줄 거라고는 고등어 밖엔 없으니...”


또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지 눈가를 훔치는 엄마 군산댁을 지켜보던 재호가 아버지가 남긴 숭늉을 자신이 마저 들이마시며 마음 속으로 홀로 조용히 생각했다.


- 괜히 말했다가... 바보 똥환이 형만 난감해지지 뭐... 그냥 우연히 맞춘 거겠지, 뭐... 그나저나 이따가 연희도 고등어 좀 갖다 줘야겠다! 히힛!


희고 고운 연희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재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밥상을 들어 올려 부엌에 가져다놓고는 집 마당 뒤켠에 작게 지은 ‘고등어 간독’으로 향했다.


고등어 간독은 일제 강점기 시절 고등어의 주산지였던 욕지도에서 오랜 세월동안 고등어를 조업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대형 창고였다.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죽기 마련인 고등어는 소금에 절여 다행 독 안에 보관해야만 했다.


불과 20년 전인 198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고등어 간독에다가 고등어를 굵은 소금에 절여 간제를 해놨다가 봄철이 되면 안동이나 하동으로 팔러가곤 했다고 들었다.


배 수십 척이 앞판장부터 마을 끝까지 한 줄도 아닌 두 줄로 꽉 차 있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2000년도를 코앞에 둔 지금은 아무도 젊은 사람들이 뱃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욕지도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모두 욕지도를 떠나 뭍으로 그것도 서울로 가고 싶어 했다.


- 나도 연희랑.... 서울 가서 살까... 그러면 엄청 좋을텐데... 제주댁 아주머니도 뭍에 가서 산다고 하면 반대 안 하실 거고.... 우리 어무이 아부지가 문제지... 보내주실 리가... 없겠지...? 바닷놈은 바다에서 죽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아부지니까...


분명 바닷일을 해야하는 뱃놈인 자신이 서울 뭍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면 자신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할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친구 병철 아저씨의 하나뿐인 딸 연희를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연희 대신 자신의 뺨을 후려칠 것이 뻔했다.


욕지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가 죽어서야 욕지도를 찾곤 했으니 자신이 연희와 서울에 가서 살겠다고 한다면 이대로 생이별을 한다며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재호는 연희만 생각하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뭉근한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것처럼 두근두근 설레고 좋았다.


처음 연희에 대한 자신의 연심(戀心)을 알게 된 것은 열두살 무렵이었다.


처음 배를 타고 아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호되게 맞은 날이었다.


재호 자신이 그렇게까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개새끼야! 아부지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자신의 뺨을 수차례 때리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엎어져 울고 있는 자신을 여러번 질겅질겅 발로 밟아대는 아버지의 거친 폭력에 결국 아버지를 밀쳐내고 도망간 것이 연희의 집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신 왼쪽 눈이 잔뜩 부어 한치 앞을 볼 수 없을만큼 팅팅 부었던 그 때, 갑자기 재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보조개가 깊게 서린 하얗고 하얀 연희의 동그란 얼굴이었다.


연희의 방에 숨어들어 재호는 아버지에게 맞은 것이 아프고 서러워 꺽꺽대며 펑펑 울고 있었다.


그러자 재호의 두 눈에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걱정스런 얼굴을 한 연희가 여리고 여린 하얀 손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연희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재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정돈해주었다.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하는 재호를 토닥이던 연희는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터져버린 재호의 입술에 타고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고이 닦아 주었다.


재호는 자신을 그리 알뜰히 다독거리는 연희의 하얀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순간 재호는 자신도 모르게 연희의 분홍빛 입술에 입을 맞추고야 말았다.


재호는 자신의 어머니 군산댁이 연희가 해녀로서는 영 꽝이라며 평소에 혀를 끌끌 차며 말할 때마다 속이 더부룩하고 무언가 가슴에 얹힌 것처럼 답답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죽은 병철 아저씨가 바닷일하는 뱃놈에게 절대로 자신의 딸 연희를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한 말 역시 재호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재호의 눈에는 마을 그 여느 이쁜 처녀보다도 연희의 얼굴이 희고 곱디 고와 사랑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로 연희 역시 재호와 같은 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 날로 재호와 연희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었다.


훗날 뱃일에 익숙해지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재호는 그날 열 두살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향해 아버지가 왜 그토록 심하게 매질을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뱃일을 할 때 몇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다.


금기라 하는 것들 대부분은 자칫 험한 뱃일을 하는 도중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큰 행위들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재호는 절대로 닻줄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어기고 바닷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예인용 닻줄이 신기해 그 앞을 서성였던 것이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아버지는 그대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 잡아끌며 앞쪽으로 내달렸다.


만일 자신이 뭣도 모르고 당당해지는 닻줄 앞에 서 있었다면 배의 균형을 잡으면서 늘어져있던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그대로 그 줄에 얻어맞고 죽었거나 반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어선에서도 줄을 잘못 만지거나 팽팽해진 줄에 얻어맞아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뿐인 아들인 자신이 자칫 줄에 의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아버지가 그렇게 자신을 때리고 윽박질렀다는 사실을 훗날 재호는 뱃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 이후부터 재호는 아버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랐다. 재호에게 있어 자신의 아버지의 말은 법(法)이자 신(神)의 말과 같았다.


그런 아버지가 연희와 함께 서울로 가서 살고 싶다는 자신의 말을 듣는다면 절대로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확인사살을 당하고 연희와 헤어질 바에는 지금처럼 몰래 연애하는 편이 나았다.


재호가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고등어 간독에서 제일 실하고 좋은 고등어를 골라 노끈으로 정성스럽게 묶기 시작했다.


그는 서둘러 영웅의 집에 들러 고등어를 전해주고, 연희의 집에도 고등어를 실한 놈으로 골라 가져다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재호가 고등어 간독에서 고등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연희의 집에서는 연희가 자신의 엄마 제주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엄마!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좀 차려 봐요!”


연희는 떨리는 손끝으로 엄마 정숙에게 살며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휙 돌렸다.


연희의 눈에 비친 것은 휘뿌옇게 무언가 잔뜩 낀 듯 뿌연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엄마였다.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어 부엌에서는 밥 준비라도 하는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희는 서둘러 자신의 방에서 나와 엄마 정숙을 도와 저녁상 차리는 것을 거들 요량이었다.


부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달그락 거리면서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는 이제 신경질적인 숟가락질 소리로 바뀌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소리는 마치 더 이상 음식이 담겨있지 않아 빈 그릇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대는 것 같은 소리로 바뀌었다.


“어멍? (엄마?)”


조심스럽게 제주도 사투리로 엄마를 불러도 연희의 엄마 정숙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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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외전1-193.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1) 24.01.17 16 1 12쪽
192 외전1-192. 신병(神病)- 허주 (3) 24.01.17 17 1 13쪽
191 외전1-191. 신병(神病)- 허주 (2) 24.01.16 15 0 12쪽
190 외전1-190. 신병(神病)- 허주 (1) 24.01.16 14 1 12쪽
189 외전1-189. 신병(神病)- 바보 똥환 (3) 24.01.15 16 1 11쪽
» 외전1-188. 신병(神病)- 바보 똥환 (2) 24.01.15 16 1 12쪽
187 외전1-187. 신병(神病)- 바보 똥환 (1) 24.01.14 14 1 11쪽
186 외전1-186.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3) 24.01.14 15 1 12쪽
185 외전1-185.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2) 24.01.13 17 1 11쪽
184 외전1-184.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1) 24.01.13 15 1 12쪽
183 외전1-183.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3) 24.01.12 16 1 11쪽
182 외전1-182.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2) 24.01.12 18 1 12쪽
181 외전1-181.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1) 24.01.11 18 1 12쪽
180 챕터9-180(완).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2) 24.01.11 19 2 12쪽
179 챕터9-179.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1) 24.01.10 20 2 11쪽
178 챕터9-178.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4) 24.01.10 17 2 12쪽
177 챕터9-177.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3) 24.01.09 15 2 11쪽
176 챕터9-176.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2) 24.01.09 14 2 12쪽
175 챕터9-175.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1) 24.01.08 17 2 12쪽
174 챕터9-174. 화마 봉인- 모두 안녕 (5) 24.01.08 17 2 11쪽
173 챕터9-173. 화마 봉인- 모두 안녕 (4) 24.01.07 16 2 11쪽
172 챕터9-172. 화마 봉인- 모두 안녕 (3) 24.01.07 16 2 11쪽
171 챕터9-171. 화마 봉인- 모두 안녕 (2) 24.01.06 16 2 11쪽
170 챕터9-170. 화마 봉인- 모두 안녕 (1) 24.01.06 16 2 11쪽
169 챕터9-169.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2) 24.01.05 16 2 11쪽
168 챕터9-168.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1) 24.01.05 16 2 11쪽
167 챕터9-167.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2) 24.01.04 16 2 12쪽
166 챕터9-166.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1) 24.01.04 16 2 11쪽
165 챕터9-165.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4) 24.01.03 15 2 11쪽
164 챕터9-164.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3) 24.01.03 1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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