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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78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13 18:1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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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외전1-185.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2)

DUMMY

심신이 지치고 고단해서였을까. 저 멀리 푸른 바다가 거친 암석에 부딪히는 파도소리에 뒤섞인 ‘숨비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휘이---이! 휘---이---이!’


제주도 해녀들이 잠수를 마치고 내쉬는 호흡소리를 마치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돌고래가 구슬피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을 하다 숨을 쉬기 위해 바다 위에 얼굴을 내밀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일종의 생존을 위한 호흡이었다.


정숙은 지금 당장이라도 크고 깊은 숨비소리를 내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 왜 지금 오세요!”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 앉아 연신 발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삽살개 삼월이와 이런저런 발장난을 하고 있는 열일곱 연희를 보자 정숙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눈가에 서린 눈물이 흘러 넘치려하자 서둘러 텅 빈 망사리를 평상 옆 수돗가에 거칠게 던져놓고 수돗가에 철푸덕 앉는 정숙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딸 연희가 엄마 정숙을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어멍! 뭐하멘? 폭싹 속았수다! (엄마! 뭐해?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남편 병철은 연희가 일곱 살 때 바다에서 죽었으니 정숙의 딸 연희는 아버지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 후로 거친 바다 생활을 그리고 험난한 욕지도 생활을 정숙은 하나 남은 자신의 딸 연희를 ‘남편’ 이자 ‘아버지’ 그리고 ‘친구’로 여기며 의지하고 살았다.


분명 힘든 물질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자신의 애달픈 마음을 눈치 챈 딸 연희는 자신의 고향 제주도 말을 하면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을 뒤에서 세게 끌어안은 쪼물딱한 연희의 작은 하얀 손가락을 내려다본 정숙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딸 연희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배고프냐?”


딸 연희의 저녁을 걱정하는 정숙은 이내 딸 연희가 자신을 향해 베시시 웃으며 그가 눈짓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찌그러지다 못해 다 긁혀 색이 회색으로 변해버린 낡은 양은 세숫대야 위는 자줏색 고무대야로 뚜껑처럼 덮어 놓았다.


“무사?(왜?)”


이상하다는 듯이 한껏 동그래진 눈으로 연희를 바라보자 연희가 천천히 다가와 고무대야를 들어올렸다.


그 안에는 커다란 자줏빛 문어가 꼼지락 거리며 순식간에 다리를 들어 올려 수돗가 밖으로 빠져나와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돌문어가 꼼지락 거리자 흰 삽살개 삼월이가 다가와 경계하듯이 으르렁 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메께라! (어머!)”


깜짝 놀란 정숙의 입에서 외마디 제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자 연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꺄르르’ 웃으며 엄마 정숙의 어깨를 다정히 어루만졌다.


“엄마! 아부지 제사상 때문에 심란혔지? 우리 재호가 울 아부지 드시라고 문어 실한 놈으로 한 마리 주고, 장어도 하나 줬어! 나 배고파! 우리 얼른 저녁 먹어요!”


한껏 신이 난 어린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딸 연희의 얼굴은 희고도 고왔다.


정숙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수돗가에 앉아 멍하니 꿈틀대는 문어를 바라보았다.


바다 깊은 곳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어 생활하는 문어를 보고 옛날 사람들은 ‘양반 고기’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곤 했다.


그래서일까, 남해 지역에서는 집안의 큰 행사 때는 문어를 꼭 음식으로 내놓곤 했다.


문어를 쓰지 않으면 집안에 큰일을 치렀다고 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식자재였다.


통영 지역 제사상에는 그래서 큰 문어를 올리기 위해 설이나 추석 때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명절마다 시장에서 문어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하면 ‘어시장에 문어보다 사람이 개락이다(많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을까.


정숙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따뜻하고 몽근한 것이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듯 그녀의 마음을 살살 간지럽혔다.


“너 말이여....”


진지한 정숙의 목소리에 연희는 몸을 흠칫 굳히며 얼굴에 띤 장난스런 미소를 지우고 말없이 엄마 정숙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재호가 그리 좋쑤과? (재호가 그리 좋더냐?)”


심란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향해 별처럼 반짝이는 연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연희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엄마...미안해... 근데..... 재호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육지 남자랑 혼인하라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요.... 나... 재호랑 결혼해서 육지로 가서 산다는 소리도 안할게. 그러니까 억지로 뭍으로 보내서 결혼시키려고만 하지마. 그냥 나 엄마랑 단둘이 살아도 되니까 육지로 보내지만 마요!”


연희 역시 자신의 엄마 정숙이 자신을 뭍으로 보내 육지 남자와 결혼을 시키려는 것을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주댁 아주머니의 아들 영웅이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 제일 친한 친구인 줄만 알았던 영웅이는 얼굴이 바알갛게 물들어서는 늦은 저녁에 연희를 집 앞으로 불러내곤 했다.


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말없이 자신이 막 잡은 옥돔이나 전복을 연희 가슴팍에 안겨주고는 총총걸음으로 자기 집으로 사라지곤 했으니 영웅이가 연희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딸 연희의 눈빛을 본 정숙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내 정숙은 아무런 말 없이 수돗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문어의 몸통을 쥐고 고무대야에 넣은 뒤 옆에 두었던 작은 단지에서 굵은 소금을 꺼내어 박박 씻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자신의 엄마 정숙의 행동을 지켜보던 연희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부엌으로 향해 아궁이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연희 엄마! 잠깐만 나와 봐요!”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한 연희집의 정적을 깬 것은 마당 입구에서 서성이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영웅의 엄마 나주댁과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었다.


그녀들은 작은 소쿠리와 채반을 쥐고 있었는데 아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정숙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지? 연희 아부지 가신 날?”


나주댁이 묻자 군산댁이 그녀의 옆구리를 슬며시 팔꿈치로 치며 굳이 뭐하러 말하냐는 듯 한 눈치를 주었다.


“네, 맞심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정숙을 보며 옅은 한숨을 쉬던 나주댁과 군산댁이 서로 말없이 평상 위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녀들은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위에 각자가 가져온 것들을 조심스럽게 펼쳐놓기 시작했다.


영웅의 엄마 나주댁은 알록달록한 한과와 약과들을 보자기에서 조심스럽게 꺼냈고, 재호의 엄마 군산댁은 얇게 저민 고기 산적 세 덩어리와 간단한 나물들을 채반에 담아왔다.


깜짝 놀란 정숙의 눈이 한껏 커지자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아니. 글쎄 영웅이 엄마가 아침 댓바람부터 어찌나 들들 볶던지. 연희 엄마 힘들다고 이거라도 돕자고 말이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니까!”


“어머! 내가 언제 그랬대! 재호 엄마야 말로 재호 아부지가 새벽부터 군산댁보고 준비하라고 닦달을 했다며? 재호 아버지가 돌부처 같아도 연희 아부지 제사라면 이렇다니까? 안달은 재호 아버지가 더 났지?”


군산댁과 나주댁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웃겨 죽겠다며 깔깔대고 웃는 가운데 정숙의 얼굴에 눈물이 맺히려 했다.


순간 갑자기 마당 바깥 쪽에서 ‘험험’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세 여인이 모두 일제히 고개를 돌려 대문 쪽을 바라보자,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뒤통수 머리를 긁적이며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목포댁의 얼굴이 보였다.


“아니... 저... 혹시 과일 필요 없나 해서. 우리 집 사내놈들이 과일을 도통 안 먹어서... 다 썩어 버리게 생겼지 뭐야... 버리면 아깝잖아요. 얼른 이거 받아요. 팔 아파 죽겠네!”


어색한 말투로 입술을 삐죽 내민 목포댁이 들고 온 바구니 안에는 사과며 배를 비롯한 과일이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항상 물질에 나서면 정숙의 망사리를 엿보며 그녀를 향해 시기와 질투를 서슴없이 내뱉으며 비꼬며 조롱하던 목포댁이었다.


“아구아구! 우리 목포댁이 철들었나봐! 어구 기특해!”


“그러게요! 목포댁 오늘따라 이뻐 죽겠네! 이렇게 착한 양반이 평상시에는 제주댁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래?”


영웅의 엄마 나주댁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짖궂게 말하자 옆에 있던 군산댁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


목포댁은 어느새 정숙이 키우는 삽살개 삼월이가 그녀 발 밑에 서서 목포댁을 올려다보며 으르렁거리며 짖으려는 낌새를 눈치 채고는 대문 입구 쪽에 과일바구니를 슬쩍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목포댁은 절래절래 손사레질을 하며 바쁘다는 말만 남긴 채, 총총 걸음으로 휭 하니 사라져 버렸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목포댁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정숙은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선 채로 정신없이 울고 있는 정숙의 손을 평상에 앉아있던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 맞잡고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영웅의 엄마 나주댁 역시 자신의 옷자락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훔치며 서둘러 연희의 이름을 부르며 연희가 있는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 버렸다.


햇수로 10년 전 남편을 잃고, 제주댁 정숙이 이 통영 어촌 마을에서 여리디 여린 딸 연희 하나만 의지하여 살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리도 따뜻한 마을 사람들의 정(情) 때문이리라.


정숙은 고맙고 미안한 마음 때문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느지막히 제사상을 차리고 정갈하게 검정색 옷으로 갈아입은 연희가 제사상을 향해 절을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재호와 재호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어무이! 저 왔심더!”


활짝 웃으며 정숙을 바라보고 말하는 재호의 양손에는 양조장에서 막 받아온 듯한 막걸리 한 병과 제사상에 올릴 청주 한 병이 들려있었다.


“얼른 오래두! 왜 이리 오래 걸렸어요?”


아들 재호에게서 막걸리와 청주를 냉큼 받아들고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기는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 남편을 향해 말했다.


아내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대청마루에 반쯤 몸을 걸터 앉고는 한숨만 한번 푹 내쉬었다.


형제나 다름없었던 가장 절친한 동무를 떠나 보내고 그의 제사에 참석한 마음이 오죽하랴 싶었던 재호의 엄마 군산댁은 서둘러 자신의 아들 재호를 향해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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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외전1-193.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1) 24.01.17 16 1 12쪽
192 외전1-192. 신병(神病)- 허주 (3) 24.01.17 17 1 13쪽
191 외전1-191. 신병(神病)- 허주 (2) 24.01.16 14 0 12쪽
190 외전1-190. 신병(神病)- 허주 (1) 24.01.16 14 1 12쪽
189 외전1-189. 신병(神病)- 바보 똥환 (3) 24.01.15 16 1 11쪽
188 외전1-188. 신병(神病)- 바보 똥환 (2) 24.01.15 15 1 12쪽
187 외전1-187. 신병(神病)- 바보 똥환 (1) 24.01.14 14 1 11쪽
186 외전1-186.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3) 24.01.14 15 1 12쪽
» 외전1-185.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2) 24.01.13 17 1 11쪽
184 외전1-184.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1) 24.01.13 15 1 12쪽
183 외전1-183.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3) 24.01.12 16 1 11쪽
182 외전1-182.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2) 24.01.12 18 1 12쪽
181 외전1-181.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1) 24.01.11 17 1 12쪽
180 챕터9-180(완).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2) 24.01.11 19 2 12쪽
179 챕터9-179.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1) 24.01.10 20 2 11쪽
178 챕터9-178.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4) 24.01.10 17 2 12쪽
177 챕터9-177.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3) 24.01.09 15 2 11쪽
176 챕터9-176.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2) 24.01.09 14 2 12쪽
175 챕터9-175.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1) 24.01.08 16 2 12쪽
174 챕터9-174. 화마 봉인- 모두 안녕 (5) 24.01.08 17 2 11쪽
173 챕터9-173. 화마 봉인- 모두 안녕 (4) 24.01.07 16 2 11쪽
172 챕터9-172. 화마 봉인- 모두 안녕 (3) 24.01.07 16 2 11쪽
171 챕터9-171. 화마 봉인- 모두 안녕 (2) 24.01.06 16 2 11쪽
170 챕터9-170. 화마 봉인- 모두 안녕 (1) 24.01.06 16 2 11쪽
169 챕터9-169.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2) 24.01.05 16 2 11쪽
168 챕터9-168.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1) 24.01.05 16 2 11쪽
167 챕터9-167.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2) 24.01.04 1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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