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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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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95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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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외전1-181.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1)

DUMMY

<외전1. 신병(神病)> - 일월선녀 편




예로부터 영매(靈媒)라 함은 ‘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산자와 죽은 자를 매개해주는 사람’을 뜻했다.


보통 접신(接神)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귀신이 꼬이기 마련인데, 잡귀나 역신들이 그들의 몸에 깃들곤 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 보통 조상신과 같은 수호령들이 그들의 몸에 강림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보통 착한 선신(善神)들이 자신을 받아들이라며 영매를 설득하기 위해 무당에게 신병을 내린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신병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귀신들은 ‘목두기’ 혹은 ‘허주’라고 불리는 잡귀신들이 대부분이다.


무당들도 경전에 따라 신을 분류하며 구분하는데, 죄 없는 이들을 괴롭히며 고통을 안겨주는 시점에서 그것은 신령(神靈)이라 칭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의 전통 무교(巫敎)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무속인들은 지나치게 무속적인 행위에 의존하거나 매몰되면 영(靈)적인 세계에 노출되어 귀신들이 들어오기 쉬운 빈집과 같은 상태가 되기 쉽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들 한다.





***





은은한 향냄새가 서서히 좁은 신당 안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회색빛 연기는 조금씩 일렁이더니 이윽고 촛불 사이 곳곳을 누비며 어느새 종적을 감췄다.


고개를 가지런히 숙여 두 손을 모아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는 일월선녀의 두 손은 자글자글한 잔주름이 가득 져 있었다.


경건한 자세로 앉아 기도를 올리는 그녀의 손바닥에는 험한 바닷 일이라도 한 것인지, 이상하게도 날카로운 칼이나 낚싯바늘에 찔리고 긁힌 것 같은 흉터가 가득했다.


조그마한 신당 안에서 육십의 나이가 넘은 노쇠한 일월선녀는 다시한번 정갈하게 향초 하나를 꺼내어 정성스럽게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딸 연희와 딸과 함께하는 재호를 떠올리며 그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악독하고도 집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목신(木神) 그슨대가 언제고 여래아((黎崍阿)로부터 돌아와 그들을 노리고 있을지 몰랐다.


그립고 그리운 딸 연희의 희고 고운 얼굴을 떠올리며 일월선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또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 속 너머로 어느새 그녀의 기억은 저 멀리 푸른 바다 욕지도 위에 서 있었다.




***




‘철썩 철썩’ 거리면서 일렁이는 푸른 바다는 소금기 가득한 짠내로 코 끝에 서렸다.


철마다 통영 욕지도 앞 푸른 바다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내주곤 했다.


짙은 남색 파도가 바다 위에 넘실거렸고, 무심한 듯 갈매기 한 마리가 돌 바위 위로 올라와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바다 속으로 들어간 정숙은 수 없이 봐온 바다 속 풍경을 둘러보며 오늘은 부디 씨알이 굵은 전복을 가득 땄으면 하는 생각으로 머릿 속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서너시간이 흘렀을까.


욕지도 동항해수욕장 입구에서는 배를 타고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너른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해녀들이 보였다.


정숙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모래사장 위에 앉아 철썩이는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새 배를 타고 다녀온 물질은 4시간이 흘러 있었다.


욕지도 앞바다는 바닥이 자갈로 덮여있어 흙먼지 하나 없이 맑았다.


물 속에 들어가 있노라면 정숙은 그녀의 고향 제주의 품에 안겨있는 듯 포근하고 따뜻했기에 정숙은 물질을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의 옆에는 목포에서 열 다섯 나이에 시집온 목포댁이 면장갑과 낡디 낡은 붉은색 고무장갑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내던지며 한껏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오늘은 영 꽁 쳤네!”


분에 겨운지 씩씩 거리며 철퍼덕 모래사장에 앉은 목포댁은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리며 정숙의 망사리를 흘끗 쳐다보았다.


망사리는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그물로 된 자루를 말했다. 그 옛날 해녀들은 지푸라기를 엮어 사용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주황색 나일론 줄을 꼬아 사용했다.


목포댁이 바라본 정숙의 망사리 안에는 손바닥만한 섭 서너 알과 수북히 담긴 성게가 보였다.


그녀의 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잔뜩 커져 정숙을 향해 말했다.


“아니! 연희 엄마는 어찌 그리 잘 딴대? 남들이 보면 제주댁이 ‘대상군’인줄 알겠어?”


목포댁의 말에는 부러움 반, 질투와 시기 반이 섞여있어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대상군은 물질을 하는 해녀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고 기량이 뛰어난 해녀를 말하는데 보통 대상군이 해녀들의 우두머리를 맡곤 했다.


기껏해야 이제 막 ‘중군’에 속한 정숙은 민망한 듯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내가 무슨...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지...”


서둘러 수경 안에 양은 주전자에서 물을 벌컥벌컥 부어 모래사장 위로 휙 뿌린 정숙은 다시 잠수 안경 안에 물을 부어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두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잠수를 했더니 정숙의 입가는 목이 말라 바싹 말라있어 갈증이 심했던 것이다.


쉴 새없이 물을 벌컥 들이키는 정숙의 옆에는 그녀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흰색 강아지 한 마리가 부리나케 달려와 정숙의 밭 밑에 앉아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눈부신 하얀색 털이었을 법한 털빛은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인지 누렇게 때가 끼어 꼬질꼬질했다.


“어이구! 제주댁! 삼월이가 또 마중 나왔네! 좋겄어!”


정숙이 집에서 키우는 흰색 삽살개의 이름은 ‘삼월이’였다.


그 개를 바닷가 근처에서 구해주고 키우기 시작한 날이 3월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삼월이라 지었다.


삼월이는 정숙이 물질을 하러 나갈 때면 정숙의 집에서부터 늘 동항 입구 선착장 앞까지 졸졸 따라와 그녀를 배웅을 하고는, 정숙이 배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망부석처럼 그대로 앉아 넋을 놓고 바다만 바라보곤 했다.


마을 주민들은 삼월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개가 참 대견하다고들 칭찬 일색이었지만, 정숙은 그런 삼월이의 행동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굴었다.


꼬리를 살랑이며 정숙을 반기는 삼월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영웅의 엄마 나주댁이었다.


어느 틈엔가 다가온 군산댁이 옆에서 시샘이 가득 찬 눈빛으로 정숙을 바라보는 목포댁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으이구! 목포댁! 저거 저 뿔난 거 좀 봐라! 연희 엄마가 착하니까 용왕 님이 살펴주시는 거 아녀? 그만 질투하고 얼른 앉아서 정리나 혀!”


군산댁은 그리고는 슬며시 정숙을 바라보고 살짝 웃어 보였다.


군산댁은 정숙의 딸 연희와 가장 친한 친구인 재호의 엄마였다.


지금 너른 해변에 앉아 숨을 고르는 해녀들은 남편이 아닌 바다와 결혼을 했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친 세월을 이 바다에 의지해 살았다.


힘든 바다 생활을 하며 잠녀(潛女)로 살아온 탓일까. 이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지만 한 핏줄로 나고 자란 형제 오누이들보다도 사이가 돈독했다.


마을 아낙네들은 서로를 부를 때, 이름이 아닌 자신의 고향 이름에 ‘댁’을 붙여 부르곤 했다.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 틈에 섞여 서러운 시댁살이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자식밖에 없는 그녀들에게 있어 그것은 고향을 잊지 말고 그리워하자는 무언(無言)의 표식이었다.


“와서들 식사하세요!”


마을의 젊은 여자들이 준비한 새참을 가지고 바윗가에 쳐 놓은 천막에서 분주하게 무언가 상을 차리고 있었다.


아직 물질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해녀로 활동하기 이른 ‘하군’아이들과 그나마 물질 기량이 나은 ‘애기상군’ 몇몇이 음식을 하고 있었다.


잽싼 몸놀림으로 그녀들에게 음식을 받아 상을 차리고 있던 것은 나주댁의 하나뿐인 아들 영웅이었다.


영웅이는 바닷가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해녀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어여 식사들 하세요!”


검은색 잠녀복을 벗고, 면장갑을 탈탈 털어 해안가 너른 바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중년의 여인 하나가 영웅이의 목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휘적휘적 천막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다른 해녀들 역시 일제히 ‘대상군’ 대장을 따라 천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낡디 낡아 구멍이 송송 뚫인 검정색 차광막으로 쳐둔 차양 천막 위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었다.


너른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아낙네들은 십시일반으로 서로 모아놓은 말린 홍합으로 끓인 홍합탕과 성게, 그리고 밀가루가 대부분인 허접한 해물전을 허겁지겁 입 속에 우겨 넣었다.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말린 조갯살 서너알을 넣은 게 다인 해물전은 고단한 잠녀 일을 끝내고 막 뭍으로 올라온 그녀들에게 있어서 달디 단 꿀처럼 느껴졌다.


“영웅이는 오늘 배 안 탔냐?”


“예! 오늘 ‘동백호’ 엔진 점검 받습니더! 집에서 놀면 뭐합니꺼! 나와서 어무이 도와야죠! 저라도 거들면 좀 낫지요!”


시원하게 껄껄 웃어 보이며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영웅은 서둘러 음식을 날랐다.


그런 영웅의 모습을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제주댁! 연희 이제 시집 보내야 하지 않어?”


입 안 가득 홍합탕에 있는 굵직한 홍합 한 알과 부침개를 넣고 우물거리며 씹던 재호의 엄마 군산댁이 정숙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정숙을 향해 제주댁이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정숙의 고향이 제주도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정숙을 그렇게 불렀다.


재호의 엄마인 군산댁은 말하면서도 시선만큼은 열심히 홍합탕 국물을 국사발에 퍼 해녀들에게 건네주고 있는 영웅을 향해 있었다.


영웅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한 홍합 건더기를 가득 담아 고생한 마을 아주머니 해녀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제주댁 정숙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톳무침을 올린 해물전 한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천천히 씹고 있었다.


자신의 그릇에 덜어둔 해물전 끝자락을 살며시 뜯어 자신의 발밑에 앉아 있는 삽살개 삼월이를 향해 던져주자 삼월이가 허겁지겁 그것을 주워 먹었다.


그런 정숙을 영웅이 국자를 든 채 슬며시 흘끌 흘끗 바라보고 있었다.


영웅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고 어느덧 나이가 17살이 되어 장가를 가도 되는 어엿한 사내가 되었다.


군산댁의 아들 재호와, 나주댁의 아들 영웅, 그리고 제주댁 정숙의 딸 연희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절친한 동무들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아삼육’으로 통했다.


정숙은 영웅이가 품고 있는 자신의 딸 연희를 향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었다.


영웅이는 연희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제일 쓸 만한 사내가 자신의 딸을 연모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숙의 마음은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정숙은 옅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고개를 돌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너른 푸른 바다를 쳐다 보았다.


‘철썩철썩’소리를 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바다를 보면서 정숙은 자신의 고향 푸른 제주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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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외전1-193.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1) 24.01.17 16 1 12쪽
192 외전1-192. 신병(神病)- 허주 (3) 24.01.17 17 1 13쪽
191 외전1-191. 신병(神病)- 허주 (2) 24.01.16 15 0 12쪽
190 외전1-190. 신병(神病)- 허주 (1) 24.01.16 14 1 12쪽
189 외전1-189. 신병(神病)- 바보 똥환 (3) 24.01.15 16 1 11쪽
188 외전1-188. 신병(神病)- 바보 똥환 (2) 24.01.15 15 1 12쪽
187 외전1-187. 신병(神病)- 바보 똥환 (1) 24.01.14 14 1 11쪽
186 외전1-186.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3) 24.01.14 15 1 12쪽
185 외전1-185.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2) 24.01.13 17 1 11쪽
184 외전1-184. 신병(神病)- 이어도의 전설 (1) 24.01.13 15 1 12쪽
183 외전1-183.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3) 24.01.12 16 1 11쪽
182 외전1-182.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2) 24.01.12 18 1 12쪽
» 외전1-181. 신병(神病)- 푸른 곳간, 욕지도 (1) 24.01.11 18 1 12쪽
180 챕터9-180(완).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2) 24.01.11 19 2 12쪽
179 챕터9-179. 화마 봉인- 사랑하는 그대에게 (1) 24.01.10 20 2 11쪽
178 챕터9-178.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4) 24.01.10 17 2 12쪽
177 챕터9-177.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3) 24.01.09 15 2 11쪽
176 챕터9-176.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2) 24.01.09 14 2 12쪽
175 챕터9-175. 화마 봉인- 진인사대천명 (1) 24.01.08 17 2 12쪽
174 챕터9-174. 화마 봉인- 모두 안녕 (5) 24.01.08 17 2 11쪽
173 챕터9-173. 화마 봉인- 모두 안녕 (4) 24.01.07 16 2 11쪽
172 챕터9-172. 화마 봉인- 모두 안녕 (3) 24.01.07 16 2 11쪽
171 챕터9-171. 화마 봉인- 모두 안녕 (2) 24.01.06 16 2 11쪽
170 챕터9-170. 화마 봉인- 모두 안녕 (1) 24.01.06 16 2 11쪽
169 챕터9-169.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2) 24.01.05 16 2 11쪽
168 챕터9-168. 화마 봉인- 양양 낙산사 (1) 24.01.05 16 2 11쪽
167 챕터9-167.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2) 24.01.04 16 2 12쪽
166 챕터9-166. 화마 봉인- 드러난 진실 (1) 24.01.04 16 2 11쪽
165 챕터9-165.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4) 24.01.03 15 2 11쪽
164 챕터9-164.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3) 24.01.03 1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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