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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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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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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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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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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중경삼림 (重慶森林)

DUMMY

“ 이봐요!”

낯선 여인의 음성에 표국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던 소룡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연녹색 경장 차림의 여인.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남방지역 여인답게 갸름한 얼굴에 흰 피부. 꽤 예쁜 이목구비.

그렇지만 해남 파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여인에게 별달리 관심을 둔 적도 없고,

의무적이던 결혼생활 말곤 달리 무공수련밖엔 모르던 소룡이 처음 방문하는 중경에 외간 여인을 알 터가 없다.

여인은 눈꼬리를 치켜 올린 채, 가타부타 말이 없는 소룡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소룡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 서슬이 마치 맹수가 서서히 몸을 돌이키는 모습 같이 느껴져서 남궁숙은 순간 움찔했다.

“ 표사 면접에 합격했으니 표국으로 들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참 이었소만.

어떤 무사가 이 길로 따라가서 갑급 표사로 합격했다고 말하면 된다고 합디다. ”

여인은 소룡의 말에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목격 한 일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 자신이 말을 건넸을 때 보통의 남자들이란 일부러라도 웃음을 지어가며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답을 하는 법이었는데,

이 외팔이의 낭인은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여자, 그것도 꽤 예쁜 여자라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여인은 성큼성큼 소룡의 앞으로 걸어가 두어 걸음 앞에 서서 소룡의 위아래를 훑어본다.

그건 대단히 무례라고 할 법하였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히 남궁숙에게 무례하다거나 건방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개의치 않는다.

“ 근데, 당신은 무기도 뭣도 없이 특별히 무공을 보여 준 적도 없는데 왜 고 노대가 당신을 합격시켰죠? 혹시 고 노대와 구면인가요?”

소룡은 지그시 여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여인은 순간 세상의 허무를 다 넣은 것 같은 사내의 눈길에 잠시 멍청해졌다.

“ 그런데······.그걸 묻는 소저는 뉘신지 먼저 밝히는 게 순서 아닐까 합니다만.”

여인의 얼굴이 순간 홍당무가 되었다.

“ 쳇. 뭐 그렇긴 하네요. 난 이곳 중경 표국의 딸. 남궁숙이라 해요.

이번 표행에 참여를 하고 있기도 하죠. 자, 그럼 당신은 어디서 온 누군가요?”

사내는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가슴 높이에서 주먹을 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본래 무림인들 간의 포 권이란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 보이는 것.

자신의 손에 무기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왼팔이 없는 소룡의 포 권은 마치 소림승들이 반장을 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저는 남해에서 올라온 진소룡 이라 합니다.”

“ 아. 진 소협이군요. 그런데, 대체 고 노대에 따로 무슨 말을 한 건가요? ”

소룡은 한숨을 낮게 쉬었다.

부잣집 고명딸로 보이는 여성이 굳이 표사로 채용된 낭인을 따라와서 다짜고짜 채용에 합격이 된 연유를 묻는다.

그게 대충 어떤 시선과 생각에서 비롯되었을지는 소룡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뭐니 뭐니 해도 강호 초행은 아니며, 오히려 세상의 인심이란 인심은 충분히 맛보던 시절들이 있었으니까.

남궁숙 이라는 여인이 소룡을 바라보는 눈빛은 지극히 익숙하다.

과거, 스승을 모시고 반쯤 걸인처럼 중원 종단을 할 때도 늘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 남궁 숙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어떻든 상대방은 모처럼 기회를 잡은 장거리 표행 주인 딸.

철이 없어 보인다고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소룡은 말없이 오른손 검지를 세워서 그들이 서 있는 통로의 석벽을 찔렀다.

손을 뒤로 젖힌 것도 아니고, 기합을 넣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손짓으로.

단단한 석벽에 아무 저항 없이 마치 두부라도 되는 듯 소룡의 손가락이 꽂혔다.

안 그래도 커다란 여인의 눈동자가 더 할 수 없이 커졌다.

“ 설마 금강지(金剛指)? 당신은 소림의 제자인가요?

소림무술. 남해....그리고 외팔이······.소룡. 당신 혹시 광룡? ”


소룡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 그렇게 불리던 시절이 있었지.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을 거라 생각한 별명인데 새삼스럽게 젊은 여인의 입에서 그 별호를 듣자, 소룡은 과거 비무행을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젠 지룡으로 불린다는 것도 주변 지인들을 통해 들었던 바가 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숙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한때는 청년 무인들 사이에서 전설로 불리던 사람.

대륙을 종단하며 명문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비무행을 하던 외팔이 남자.

모든 비무에서 이겼으나 상대방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든 적은 없다는 소문.

스승이던 광승의 별호를 따라 광룡이라 불리긴 했지만, 그건 스승처럼 괴팍하고 정사를 가리지 않고 아무나 시비가 걸리면 죽였다고 해서 붙은 별명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죽이지 않는 그런 심성으로 온천지의 무파들과 비무를 벌이는 행위에 대한 조롱이었다.

세간에는 그 이유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릇 비무행 이라는 것이 대개 자신의 무위를 알려 유명해짐을 노리거나,

유명세를 업고 무관을 세운다던가 지지세력을 만들어 문파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불분명한 낭인이 목숨을 걸고 가는 곳마다 비무행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미친 짓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었다.

본인은 무술 행각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유명세가 있는 문파일수록 자신들의 패배를 숨기려고 하는 법이다.

소룡도 그런 속사정으로 인해 당당히 비무에 이기고도, 그 세력들이 소룡의 입을 막으려 집단으로 공격해오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보통의 무인들이 보기에 이유도 소득도 없는 비무행을 목숨 걸고 위태롭게 하는 외팔이 권사는 나름의 유명세와 더불어 우러르는 젊은 무인들도 생겨났었다.

그러다 어쩐 연유인지 해남 파에 비무행을 가서 엉뚱하게도 데릴사위가 되었다던 풍문.

그리고 아내가 뭔가 온전치 않음에도 모종의 거래로 인해 해남 파에 들었다는 소문까지.

결국, 한때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의 증거 같던 인물이긴 했지만,

역시나 거기서 얻어진 작은 명성으로 유명 문파에 혈연을 맺었다는 그렇고 그런 소문들.

그리곤 잊혔던 이름이었다.

“ 그런데 왜······.이런 표행에 당신이?”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질문이었다.

남궁숙 스스로 ‘이런 표행’ 이라 한 것은 자신의 표국에서 하는 일을 맞춰 말함은 아니다.

다만 남해 검문 같은 거대 문파, 게다가 과거이긴 하지만 중원에 비무바람을 몰고 왔던 광룡이,

어떻게 표국의 표사에 지원했는가를 함축적인 의미로 묻는 것이었다.

소룡의 낮은 목소리가 회랑을 울리며 이어졌다.

“ 당신이 눈치를 챌 정도면 아마 면접관도 한눈에 알아보았을 거요.

그래서 따로 증명하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그냥 합격시켜 준 걸 거고.

그러면 되었지 않소?

표사에게 사연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말을 잠시 멈춘 소룡의 눈길이 서늘하게 변하며 남궁숙의 눈망울을 쏘아 보았다.

“ 안전한 표행을 바란다면 소문은 내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삼 년 전까지 나는 여기저기 비무행을 많이 해서, 당시 내게 원한을 맺은 무리도 적지 않소. 나는 그들이 두렵진 않소만, 시끄러운 표행이 되길 바라진 않겠지요? 아가씨? ”


사내의 무서운 눈길을 마주한 남궁숙의 낯빛이 하얘졌다.

“ 췌. 알겠어요. 그런 건 말 않아도 알만큼 나도 잘 알고 있다고요.

뭐 그리 무섭게 말을 해요? 그래 봬도 고용주의 고명딸인데. 흥!”

말을 마친 남궁숙이 빠른 걸음으로 뒤로 돌아 사라졌다.

그녀의 발걸음을 지켜보던 소룡이 다시 낮은 한숨을 쉬었다.

“ 관음보(觀音步···.아미파 (峨嵋派)의 속가 제자로구나.

하지만 공력이 아직은 얕아서 긴 표행을 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체로 표국에서 장거리 표행에 함께 할 표사를 뽑는 이유는 단순했다.

표물을 지키는 진짜 표사들은 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표국에서 지원을 하는 문파가 있었다.

그 문파란 대부분 무림 정파였고, 표국의 주인 혹은 자제들이 그곳에서 속가제자로 배우고,

그 대가로 일정 부분 문파에 상납과 같은 형식의 재물을 올리는 식이었다.

그럴 때 대형 표행에는 표국의 요청에 따라서 문파의 고수들을 지원해 주는 것이 관례 이었다.

중경 표국은 주인 남궁 민은 남궁 세가 의 방계이긴 했지만,

본인도 자식들도 남궁세가의 무술보다는 아미파의 속가제자라는 특성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표행은 제법 덩어리가 크고 큰돈이 걸려있는 데다 오래 걸리기도 할 표행이라,

아미파에서도 두 명의 고수를 파견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서역으로 가는 길목은 길도 멀고, 국경 가까이 변방으로 갈 수록 치안도 취약했다.

그래서 그들의 무력 이외에 다수의 낭인을 표물 외곽에 포진시켜서 세 과시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표행용 표사들을 따로 뽑은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강자, 광룡이 표사에 지원한 것이다.

표행을 책임지게 된 남궁 민의 장남 남궁 훈은 고 노대로부터 따로 광룡에 대해 보고를 받고. 처음에는 그와 같은 이름난 고수가 표사로 지원한 것에 대해 뛸 듯이 기뻐했으나,

가만히 표행을 이루는 고수들을 헤아리다 보니 조금 염려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 광룡이 아미파에도 비무를 결했던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누가 이기고 진 것은 잘 몰랐지만, 당시 젊은 무인들 사이에 떠돌던 소문이 있었다.

‘ 광룡 무적 狂龍無敵 ’ 광룡이 숱한 비무행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소문.

그랬던 광룡을 초빙된 아미파의 고수들이 모를 수 있을까 싶었던 것.

그러나 그런 것을 이유로 표사 자리를 놓치기엔 광룡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컸다.



● 아미파(峨嵋派)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아미산, 그중에서도 주봉인 금정봉(金頂峰)에 세워진 사찰 복호사(伏虎寺)다. 아미산이 보현보살의 성지로서 중국의 불문 사대 성지일 뿐더러 불교 사찰이 근거지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미파 또한 불교계 문파로, 구파일방의 하나로 꼽히는 명문정파다.

● 노대 (老大) 노인을 공경하여 붙이는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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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3 535 4 9쪽
12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2 572 5 9쪽
11 맹룡과강 (猛龍過江) +2 20.02.29 637 6 9쪽
10 맹룡과강 (猛龍過江) 20.02.27 664 4 8쪽
9 잠룡출도(潛龍出道) +1 20.02.26 712 6 12쪽
8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5 710 3 8쪽
7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4 744 4 8쪽
6 나려타곤 懶驢打滾 20.02.21 760 4 9쪽
5 약육강식 弱肉强食 20.02.20 817 5 8쪽
4 당랑거철 螳螂拒轍 20.02.19 902 9 9쪽
3 허허실실 虛虛實實 20.02.18 936 10 8쪽
2 첩첩산중 疊疊山中 20.02.17 1,062 8 8쪽
1 서장 20.02.14 1,42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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