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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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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0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2.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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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당랑거철 螳螂拒轍

DUMMY

산전수전을 겪어온 타호조차 이 어린놈의 반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른, 그중에서도 고수라고 할수 있는 타호가 자신의 허리춤에도 키가 닿지 못한 꼬마로부터 반격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과연 할 수 있겠는가.

그 창졸간에 타호는 머리를 굴렸다.

아마도 쓰러진 진가라는 놈의 자식일 터.

제 아비가 쓰러진 것을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든 천둥벌거숭이일 것이다.

하지만 타호는 보통의 어른들과는 달랐고, 그게 꼬마에겐 불행이었다.

어린아이라고 사정을 봐준 적이 없는 타호이기도 하고,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고 나중에라도 후환이 될 일을 두지 않는다는 게 스스로의 신념 같은 것에 이어서 한 번의 발길질로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타호였다.

그러나 어린아이라고 딱히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가볍게 발차기를 날린 것이 실수라면 실수.

놀랍게도 꼬마는 이화 접목의 묘리를 이용하여 타호의 거센 발길질을 흘려보내면서 타격권을 벗어나고, 바로 지체 없이 달려들어 타호의 비어있는 틈인 하체로 공격을 해 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타호조차 흠칫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제아무리 무공을 배웠다곤 해도 나름 무공의 경지에 이른 데다가, 온갖 실전에 단련이 된 어른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꼬마가 타호의 낭심을 공격하려 한 것은 적절한 공격 방법이긴 했다.

어린아이가 일 푼의 힘으로도 성인 남성을 공격하기에 가장 적절한 높이와 가장 취약한 약점이었으니까.

그러나 타호는 바로 우수(右手)를 가차 없이 내려찍어 꼬마의 좌측 어깨를 부서뜨렸다.

십단금 초식 중 하나. 쇄겸수(碎鐮手) 였다.

“악!” 비명을 지르며 아이가 주저앉았다.

아마 어깨의 빗장뼈와 왼쪽 팔 상부가 부서졌으리라.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아홉 명의 비적들이 산촌의 젊은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이미 앞서 진가의 싸움 이라고 할 것도 없는 드잡이를 보고 기가 죽어 있던 무리들은 일방적으로 당했고, 이어서 비적들은 마을로 불을 지르러 뛰어갔다.

언덕 너머 마을 여기저기서 어찌 된 일일까 궁금해하던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의 비명이 낭자하게 울려 퍼졌다.


타호는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어깨를 붙잡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꼬마를 보았다.

덜렁거리는 왼팔을 붙든 채로 아이는 매서운 눈으로 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통의 꼬마들이라면 저 정도로 중상을 입으면 기절하거나 울며불며 기어 다녀야 옳았다.

그런데 그 꼬마는 앓는 소리를 한번 냈을 뿐 벌떡 일어나 찌를듯한 눈길로 타호를 노려본다.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일방적인 학살에 심드렁해진 타호에겐 작은 재밋거리가 생긴 셈이다.


“ 야, 꼬마. 저기 뒈진 게 네 아비냐? ”

꼬마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타호를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어쩌면 팔이 잘린 고통보다 더 힘들 것인데.

부서진 어깨뼈와 팔뼈들이 신경과 근육을 사정없이 찔러대어 기절할 만도 한데,

아이는 분노에 불타는 눈길로 볼뿐이다.

타호는 점점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 본래 오늘 이놈의 마을에서는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지금 바뀌었다. ”

타호는 말 옆에 놓여있는 바위에 걸터앉으며 히죽거렸다.

“ 네 놈이 그리도 나를 죽이고 싶다면 기회를 주지.

어차피 네 놈의 왼팔은 내 한수로 완전한 불구가 되었다.

뭐 무공 같은 걸 배우기엔 아주 최악의 상태가 된 것이지.

전설에는 외팔이 검객? 이런 게 등장하곤 하지만 다 웃기는 이야기야.

그렇잖아. 모든 무공의 기본은 중심 잡기다.

그런데 양팔의 균형이 안 맞으면 검법 수련조차 어렵다는 거지.

무공은 고사하고 네 놈은 이제 비렁뱅이 노릇이나 해야 할 거야.

아니, 거지 떼들인 개방에서조차 너처럼 아예 무공수련이 불가능한 놈은 거지로도 안 받아줄지 모르지.

그러니, 이 어르신이 오늘 흔쾌하게 네 놈을 보내주마.

네 놈이 그 모습으로 비럭질을 해서 근근이 살아가든,

아니면 절치부심(切齒腐心)해서 무공을 배워 내게 복수를 하러 오든 나는 상관 않겠다.

다만, 두 번째 길을 선택하기 바란다.

그래야 나도 재미있지 않겠느냐? 보람도 있고.

좀 그럴듯하게 크게 자란 놈을 죽이는 게 좀 더 재미있겠지.

난 광풍 십걸의 맏이. 타호라고 한다. 잘 기억해 둬라. 그리고 꺼져라.

만약 당장 꺼지지 않거나, 우리가 하산하는 길에 네 놈을 다시 마주한다면 아마 아우들이 네놈을 산적 구이로 만들어 먹으려 할 거다.

그러니 잘 피하는 게 좋을걸. 하하하! “


아이는 타호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하더니, 타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타호에 고개를 꾸벅 숙여 절을 하더니,

팔을 붙들고 미친 듯 산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꼬마의 반응이 의외였던 타호는 비탈을 뛰어 내려가는 꼬마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쯤 아마 거의 기절할 듯한 통증이 온몸을 지배할 것이었다.

가뜩이나 심각한 부상인데 걷기도 어려울 것을 뛰고 있으니 수십 개의 칼날로 어깨와 상체를 찔러대는 고통이 있을 텐데도 꼬마는 이를 악물고 뛰고 있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게다가, 제 아비의 원수이자 자신에게 큰 부상을 입힌 타호를 보고 절을 했다.

죽일 듯이 사타구니 아래로 뒹굴며 덤벼들던 놈이 말이다.

짐작건대, 앞서 노여움은 노여움이고 지금 당장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준다는 데 대한 인사일 것이었다.

그건 새카맣게 어린놈이 나름의 사리 분별과 소름이 끼칠 만큼 냉정함을 지녔다는 말이다.

이건 좀 좋지 않았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저 정도로 냉철함을 유지하는 꼬맹이란 뭔가 작은 가시처럼 거슬린다.

타호는 잠시 그냥 암기(暗器)를 날려 놈을 죽여 버릴까 생각했다.

비적에게 있어서 약속은 무엇이며 체면이 무엇이냐고 늘 생각하고 실천해 온 게 그였으니까.

타호는 늘 칼 위에 서서 살아온 인생에서, 비열함이나 신의 없음 같은 것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단 한 번의 발걸음이 생사를 가르는 강호에서 무슨 도의와 신의냔 말이다.

어쩐지 자신의 잔인한 장난질이 어쩌면 후환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실 오늘내일의 운명을 점칠 수 없는 게 강호(江戶) 아니던가.

저 온전치 못한 몸이 된 꼬마가 그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자신이 당장 칼날 위를 걷는 비적 생활을 하며 살아남을 확률보다도 작았다.

지금 당장 산에서 내려가더라도 어깨뼈가 부서진 상태로 저토록 뜀박질하다간 부러진 뼈가 장기를 찔려 죽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게 아니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상처가 안으로부터 곪아 죽을 것이다.

어차피 온전한 아이들조차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난세였다.

명이 국가를 통일했다곤 하지만 변방의 이민족들과 늘 충돌이 있었다.

실제로 중앙에 가까운 곳을 제외한 지방들은 어느 시대이건 거의 지역의 패자(霸者)들이 다스리곤 했었다.

과거에도, 먼 고대에도 늘 중원의 패자들은 수시로 바뀌었었지만,

누구로 바뀌든 지방의 토호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중앙정권에서 머나먼 지방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중원 천지는 넓었다.

한때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했다고는 하지만 아주 잠깐 이었을 뿐,

광대한 대륙을 한 정권이 온전하게 다스려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나라가 무엇으로 바뀌건 대대손손 권력을 이어온 지방의 토호들이 각 지역의 패자였으며,

그들과 관련이 있는 소수의 귀족과 문벌들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타호처럼 중앙의 법 테두리를 벗어난 비적이나 녹림의 도적 정도 되어야만 세상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관인이나 병사들이란 좀도둑이나 동네의 강도 따위들을 잡는 정도는 몰라도 지역에서 힘으로 군림하고 있는 도적 떼는 오히려 그 지역의 보이지 않는 질서유지자 정도로 인식이 되는 망할 세상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보통의 백성, 민초란 늘 수탈의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였다.

그러니 저토록 생산성 없고 온전치 못한 아이라는 건, 때때로 드물게 등장하는 인육 시장 말고는 달리 쓸데가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남창(男娼)으로 쓸모가 있을지도, 란 생각을 하며 타호는 싱긋 웃었다.


언덕 너머에서 아우들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는 여남은 명의 여인들이 혼절한 채 모피처럼 걸쳐져 있다.

한동안 그녀들은 무리의 희롱 거리로 지내다가, 도성을 만나면 매춘 굴로 팔려나갈 것이었다.

그도 아니면 함께 끌려다니다 지쳐 죽거나.

오랜만에 피 맛을 본 사내들은 희희낙락하며 맏형 타호에게 돌아왔다.

변경의 작은 마을이란 뺐고 불을 지를 것조차 넉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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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5 520 4 11쪽
14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4 516 4 12쪽
13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3 534 4 9쪽
12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2 572 5 9쪽
11 맹룡과강 (猛龍過江) +2 20.02.29 636 6 9쪽
10 맹룡과강 (猛龍過江) 20.02.27 664 4 8쪽
9 잠룡출도(潛龍出道) +1 20.02.26 712 6 12쪽
8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5 710 3 8쪽
7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4 744 4 8쪽
6 나려타곤 懶驢打滾 20.02.21 760 4 9쪽
5 약육강식 弱肉强食 20.02.20 817 5 8쪽
» 당랑거철 螳螂拒轍 20.02.19 902 9 9쪽
3 허허실실 虛虛實實 20.02.18 936 10 8쪽
2 첩첩산중 疊疊山中 20.02.17 1,061 8 8쪽
1 서장 20.02.14 1,4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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