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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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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5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3.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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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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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음마투전(飮馬投錢)

DUMMY

소룡이 해남파에 데릴사위로 몸을 의탁 한 지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딱히 정이 없더라도 부부 사이에 몇 번이 안 되던 정분으로 아이가 태어났다.

자손이 귀했던 남해 파의 장문인은 뛸 듯이 기뻐하였으나 태어난 아이는 여아였다.

소룡 역시 자신의 자식이 태어났음을 기뻐했으나,

아버지 어머니의 정을 받아보지 못해 서투른 아비였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금 시화, 아이의 엄마는 애를 낳고서도 앵속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아이는 유모의 손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행여나 아이가 엄마의 중독 때문에 잘못되었을까 걱정하던 장문인과 소룡의 우려에도 아이는 잘 자라났다.

다행히 아이는 총명했고, 처음 손녀라는 것에 조금 실망했던 장문인도 곧 손녀딸의 재롱에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어찌 보면 부모 사이의 큰 정도 없이 낳게 되고 자란 아이였다.

다만 그렇게 자란 배경 탓인지 아이는 부모에 대해 그다지 정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에게 애면글면하는 할아버지와 유모에게 더 많이 집착했다.

소룡도, 나름의 계산속으로 혼인을 치른 데다 중독자로 일생을 보내는 아내에 대한 정이 없던 탓인지 아이에 대한 책임감 외에 크게 정을 주지 못했다.

아침 일찍 눈을 뜨면 해남파 장원의 뒷산으로 올라 온종일 무공만 수련하는 소룡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소룡은 비통하게 눈을 감은 아버지의 피눈물을 잊을 수 없었다.

삼 년 동안 해남파 속가제자들의 정보활동이 적지 않아서,

소룡은 오래전 잊힌 그들, 광풍 십걸의 무리들 마지막 발자취를 전해 들었다.

듣기로 그들은 십여 년 전 신강(新疆) 지구 인근에서 흔적이 묘연해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무림 맹의 추적을 피해 서역(西域)으로 통하는 관문, 실크로드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는 의미가 된다.

그 지역은 역시나 명나라의 변경.

중앙의 법치가 닿기 힘든 곳인 데다 명문정파가 드문 야만의 땅 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던 소룡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소룡은 오랜만에 장문인, 장인에게 독대를 청했다.


소룡이 장문인을 뵙기는 오랜만이었다.

장인과 사위의 사이이기는 하나, 애초부터 서로의 속셈과 한계가 이미 드러나 있던 혼사.

그 결과로 천금 같은 손녀를 얻긴 하였으나 사이가 좋긴 어려운 상태.

중간 역할을 하는 금시화가 멀쩡하였더라면 달리 방법이 없진 않았겠지만,

이미 양귀비중독이 중증이라 장인은 사위가 제대로 다스리질 못한다는 탓을 한지 오래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자식 임에도 고치지 못하던 딸의 앵속중독을 사위가 못난 탓이라 공공연하게 둘러대는 장인이었다.

하지만 소룡으로서는 그런 세간의 평 보다는 해남파를 이용한 정보의 수집에 무게를 두는 처지라 모른 체 참아온 시간이었다.

“ 이번에, 원수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실로 십여 년 만에 들은 소식이니 반드시 원수들을 찾아 나서고 싶습니다.”

이미 집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받은 해남파의 장문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룡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리 인상만 쓰며 앞에 놓인 찻잔을 어루만지고 있던 장문인 이 입을 열었다.

“ 이미 십여 년 전에 일어난 일.

물론 부모의 원수와 한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다는 건 알겠네만 자네도 이미 자식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시화도 온전치 않은 마당인데······.

그냥 덮어두고 가면 안 되겠나? 간다고 반드시 그들을 찾으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시화도 저 모양인데 자네까지 떠나버리면 어리디어린 애는 어찌할 셈인가? ”

실상은 소룡이 해남파를 떠남으로써 해남파 전체의 무력이 줄어든다는 것과,

어쩌면 떠맡겼다고 생각하던 골치 아픈 딸을 다시 책임져야 한다는 게 더 귀찮았을 장인의 대답.



“ 음마투전(飮馬投錢)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라도 저는 약조를 지키려 했었고 나름 지켰습니다.

지난 삼 년간 해남의 문도들 중 제게 사사 받지 않은 문도가 없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승이 창안한 권법 중 가장 살기가 짙은 아수라 파천권을 버리지 않고 계속 수련한 이유. 오직 원수를 갚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제 선친뿐 아니라 아무 죄 없는 마을 주민 백여 명을 몰살하고 여인과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 버린 자 들입니다.

하늘이 그들에게 죗값을 내리지 않았다면 제 손으로 인벌을 내려야지요.

물론, 아이에 대해 염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지금까지도 아버님과 유모가 정성 들여 키워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악마의 무리에게 원수를 갚고 선친의 영전에 제를 드린 후 다시 돌아와 아비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해남파의 장인은 물끄러미 평소 같지 않게 긴말을 토해내는 소룡을 건네 보았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름의 계산 속으로 받아들였던 사위,

소룡이 최초 반발할 거란 예상과 달리 순순히 시화를 받아들이고 각별히 정을 나눌 상황도 아니었을 터인데 후손을 보게 한 것.

조금 의외였지만 그 또한 소룡 나름대로 해남파의 정보력을 이용하려 한 것 이란 점을 알고,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았었다.

무릇 사내란 자신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팔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의 목을 취하는 법.

그것이 무림의 법이고 살아가는 수단이니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낱같은 실마리 하나를 잡았다고 바로 떠난다고 할 줄은 몰랐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 조금은 헤아릴 것이라 생각했거늘.

“ 아직 금아의 나이도 어린데 그리 떠나도 되겠는가?

그래도 어미도 저런 상태인데 아비라도 있는 게 낫지 않느냔 말일세.”

소룡의 날카로운 눈이 뚫어지게 장문인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해 온다.

노려보는 눈길도 아니지만, 그 시선에 담긴 차가움과 감정 없는 무심함에 장문인의 등골이 오싹 해가 졌다.

그저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늘, 문도를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일체의 음주·가무도 거절하고 마치 수도승처럼 연공실 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었다.

보아하니 소룡의 내공은 이미 나이 든 자신을 능가한 지 오래 일 듯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장강의 새 물결이 옛 물결을 밀어낸다고 하더니······세월의 힘은 어쩔 수 없구나!’

속으로 장탄식을 흘린 해남파의 장문인 금 재부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 허면, 언제 떠날 생각인가?”

장문인의 말에 소룡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이왕 소문을 들은 것.

오래 지날수록 자취를 잡기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 일 정도 말미를 두고 주변인들과 금아 에게 양해를 구한 후 떠나겠습니다.”


오 일 후 해남 도의 부두에는 허름한 마의(麻衣) 차림을 한 외팔이 한 명이 배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소문이 퍼져 원수들이 행여 자취를 감출까 두려워한 소룡의 변복이었다.

실로 삼 년 만에 다시 중원으로 재 출도를 하는 소룡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무남독녀인 금아 는 자신이 부재하더라도 충분히 해남파의 공주로 자라날 것이었다.

그래도 하나뿐인 아비가 얼굴도 못 본 친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간다고 설명을 하자,

야무지게 잘 이기고 돌아오라는 응원을 하는 철없는 어린 딸이었다.

역시나 무가의 피를 속일 수 없다고 할까.

그렇지만 자신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도 못 했다.

그동안의 세월 동안 광승이라는 기연을 만나 무공을 터득하고 대륙을 종단하며 실전을 쌓았다.

소위 명문정파는 물론이고 사파나 녹림에 이르기까지 정사지간을 모두 상대하며 어느 정도 자신감도 가졌었다.

하지만, 그들 광풍사라고 그 세월 동안 놀고 있지는 않았을 터.

불과 변방의 비적이었던 타호조차 엉뚱한 기연으로 무당파의 신공절학을 물려받았고,

그것을 기회로 악행을 떨치며 자신의 의형제들까지 가르쳤으니 세상의 흐름이란 짐작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동안 정보들을 수집하는 시간에, 해남파의 사범인 것처럼 제자들을 가르친 바가 있으니 해남파에 있어서 자신이 무공으로 전력을 더 해 줄 수는 있었지만,

외부 어디에고 드러낼 만큼의 위상이란 없이 조용하게 세월을 보낸 시간이 무려 삼 년.

지금은 강호에 이전처럼 광룡의 명성은 없었다.

더는 이름값으로 해남파에 큰 무게감도 없고, 그것을 장인인 해남파의 장문인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련을 더 가지지 않고 놓아준다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소룡이기에 새삼 음마투전(飮馬投錢)이라는 문자가 와 닿았다.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어. 그걸 잊지 말아라. 금아 야. 네가 막강한 외할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고 태어났지만, 그만큼의 대가는 또 치러야 할 것이다. 너 또한 그러할 것이니.’


장도(長途)를 떠나는 광룡의 앞에 그날따라 파도는 거칠게 몰려왔다.

유명한 남해의 태풍이 몰려올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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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5 520 4 11쪽
14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4 516 4 12쪽
»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3 535 4 9쪽
12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2 572 5 9쪽
11 맹룡과강 (猛龍過江) +2 20.02.29 637 6 9쪽
10 맹룡과강 (猛龍過江) 20.02.27 664 4 8쪽
9 잠룡출도(潛龍出道) +1 20.02.26 712 6 12쪽
8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5 710 3 8쪽
7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4 744 4 8쪽
6 나려타곤 懶驢打滾 20.02.21 760 4 9쪽
5 약육강식 弱肉强食 20.02.20 817 5 8쪽
4 당랑거철 螳螂拒轍 20.02.19 902 9 9쪽
3 허허실실 虛虛實實 20.02.18 936 10 8쪽
2 첩첩산중 疊疊山中 20.02.17 1,062 8 8쪽
1 서장 20.02.14 1,42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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