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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의 서재입니다.

남화북룡전 南花北龍傳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2.14 15:56
최근연재일 :
2020.04.22 17:1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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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3
추천수 :
174
글자수 :
181,617

작성
20.02.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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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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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8쪽

첩첩산중 疊疊山中

DUMMY

2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타호 때문에, 비적들도 촌민들도 잠시 멍청한 얼굴이 되어 팽팽하던 긴장이 느슨해졌다.

한참 웃던 타호는 웃음을 그치곤 말 위에서 훌쩍 뛰어올라 말 앞에 내려섰다.

그냥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반동도 없이 솟아오르는 타호의 모습은 흉악한 용모와는 달리 고아하고 날렵했다.

타호가 허공에 우아한 새처럼 뛰어올라 마치 새가 내려앉듯 별소리도 없이 거친 땅바닥 위에 내려앉는 모습을 본 진가의 패기 넘치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지며 저도 모르게 신음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 제운종(梯雲縱).....”

무당파 비전의 신법( 身法 ). 제운종이었다.

무당파 문도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배우게 되어 있는 경공술이지만, 그 성과의 차이는 크게 달랐다.

진가는 천산파에서 무공에 입문하긴 했으나, 지인을 만나러 천산파에 들렀던 무당의 도인이 진가를 눈여겨보았다가 그를 무당산에 데려갔었던 이력이 있다.

천산파에서 진가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속가제자, 사실 속가제자라기에도 뭣한 입문자였기 때문에 당파에 크게 연연할 이유가 없음도 한몫했다.

출신이 크게 보잘것없었지만 그를 이끌어준 무당의 도사는 제법 입김이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 덕분에 진가 또한 무당의 진전을 이어받진 못했지만, 속가제자로서는 꽤 많은 가르침을 받은 바 있었다.

비록, 빈한했던 집안의 문제로 배움의 도중에 하산하긴 했지만, 그 역시 제운종을 배운 바 있고, 기본적인 경공으로 쓰고는 있지만 지금 타호처럼 말 위에서 말에게 전혀 충격을 주지도 않은 상태로 허공에 몸을 솟구쳐 오르고, 다시 바닥에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가볍게 내려앉는 수는 따라 할 자신이 없었다.

단 한 번의 몸짓으로 타호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드러나 버린 것이다.

저 비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은, 운 나쁘게도 어떤 연유 인지 무당파의 수많은 곁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진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는.


무공에 있어서 사실 어느 파 어느 류 무공이다 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테면 당금에서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곳이 소림과 무당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림에서 무공을 십 년간 수련한 제자가 먼 변경의 삼류도장에서 오 년 정도 흔한 삼재검 을 배운 자와 맞붙어 겨루었을 때 반드시 소림의 제자가 이기진 않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배운 자의 자질, 그리고 타고난 체력,

숙련 정도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단순한 무공 고하의 겨룸이 아닌 목숨을 건 실전 일 경우는 매우 달랐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많이 경험해 본 자의 과감성과 잔인함이, 법도를 중요시하는 정파 제자들의 망설임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은 게 그런 것이다.

이럴 경우, 같은 사문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오히려 실전 경험도 무공의 숙련도도 높아 보이는 적이라는 건 매우 불리했다.

진가가 배운 모든 것 이상을 저 비적 두목도 배웠을 것이다.

그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적한다 해도 이미 자신의 수가 읽힐 것이니 불리했다.

자신 하나에 산골 마을 모두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진가는 목덜미에 진땀이 흘렀다.

뒤의 청년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을 최고의 고수,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데.


진가는 검을 거두면서 비적의 두목에게 깊이 포권 을 하며 질문했다.

“ 동문(同門)인 모양입니다. 어느 분께 사사(師事)하셨는지요? ”

갑자기 겸손하게 바뀐 진가의 목소리를 듣자 타호는 코웃음을 쳤다.

“ 사사?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

빙글대며 웃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해지며 타호는 고함을 질렀다.

“ 오래전, 내가 전쟁고아로 헤매다 무당 도사 놈 꾐에 빠져 입산을 했었지.

딴에 사부라 생각하고 그래도 고아로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웬걸. 무술이라곤 보법 하나 안 가르치고 어린 꼬마를 매일 밥하고 빨래하는 것만 시키더구나.

출신이 비천하다는 이유로, 비슷한 시기에 무당산에 입산한 다른 놈들이 무술을 배우고 정진하는 사이 나는 매일 밥 짓고 빨래하고 농사짓는 게 일이었다.

말이 좋아 동문이지 그냥 고아 놈 데려다 말코도사놈들의 종노릇이나 시키려던 거지.

소위 동문(同門)이란 놈들의 식사와 빨래가 다 내 몫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파에 죄를 짓고 유폐된 죄수의 감옥에 밥심부름을 다니다 무술을 배웠지.

그 양반도 한때는 무당의 방계 제자였지만 본산의 차별에 대들다 잡혀 왔다 하더구나.

나중에 그게 들통 나는 바람에 집법당(執法堂) 놈들이 내 근맥을 자르고 단전을 폐해서 불구를 만들려고 하는걸,

목숨 걸고 절벽 아래 계곡 뛰어내려 살아난 몸이다.

모름지기 정파니 뭐니 하지만, 결국 배경이 그럴 듯하던가 집안에서 공물이라도 잘 바치는 놈들이라야 그나마 후기지수에 들 수 있는 거지.

나처럼 배경도 없고 부모도 없는 천애 고아란 무당파의 제자로 받아들입네 하고는 결국 공짜로 부려먹을 종놈으로 주저앉는 법이다.

그게 명문정파라는 놈들의 실체지.

그런데 뭐? 사문? 동문? 웃기지 마라!”


타호의 장황하고도 격분한 말을 듣던 진가와 촌장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반대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타호가 다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 내 오늘은 대강 좀 손봐주고 가려 했건만, 이곳에 무당의 찌꺼기가 있다고 하니 새삼 살심이 확 돋는구나! 오늘 이 마을을 없애지 않는다면 내가 광풍이 아니다.”

낭패였다.

물론 정파의 편협함과 옹졸함을 진가도 모르지 않았다.

늘 원리원칙과 정의와 협의를 부르짖는다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일 뿐.

실상은 산 아래 세상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명의 문도 와 건물들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그건 일반 신도들의 헌금이나 주변 농지에서 얻어지는 수입만으론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도관이지만, 무림 세력인 만큼 생산을 하거나 이익을 얻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속가제자(俗家弟子)들을 본산 제자보다 더 많이 받는 게 일반적 무림당파(武林黨派)의 현실이었고, 그 대상들은 대부분 표국(鏢局)을 운영하는 자의 자제 이거나 지방 유력자, 또는 상인들의 자제들이 많았다.

그들로서는 무림의 대방파 와 직간접으로 연결을 하여 위세를 떨치기도 좋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적절한 보호비를 보내어 위협세력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니, 서로 필요에 의한 거래 같은 관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재질이 있어도 배경도 돈도 없는 일반 제자들은 아무래도 도관의 허드렛일과 같은 쪽으로 돌려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눈에 보이는 차별대우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무당파는 조사였던 장삼봉이 도적들을 소탕하고 대대로 장문인들이 이른바 협행을 거한 일도 적지 않아서, 황제로부터 무당산 주변의 경작지를 하사받고, 나라에 내야 할 세전도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왔음에도 그랬다.

이를테면 문파라는 것을 유지하고 세를 불린다는 것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돈이 드는 법이다.

경작하고, 그 경작물을 거두고 팔고, 외부의 시장이나 장사치들과 거래를 하고,

표물을 받고 보내며 무당파 내부에 필요한 건물관리나 장서각을 관리하는 일조차도 다 돈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당파는 기본적으로 도관, 도를 닦기 위해 무공을 배우고 전파하는 일문이다.

전적으로 돈이 될만한 일이라고는 하는 것이 없다.

그건 단지 무당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문파가 가진 문제였다.

이른바 ‘세가’라고 불리는 명문가들은

본인 스스로도 직간접으로 그 피해를 봤던 입장에서 진가는 타호가 말하는 그것들이 어떤 문제인지를 다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지금 무당파와 아주 보잘것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태어난 마을이 몰살의 위기에 처했음이 분명하니 진가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아, 이걸 어쩌란 말이냐. 저 무지막지 한 자를 당해 낼 실력이 부족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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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5 520 4 11쪽
14 중경삼림 (重慶森林) 20.03.04 516 4 12쪽
13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3 534 4 9쪽
12 음마투전(飮馬投錢) 20.03.02 572 5 9쪽
11 맹룡과강 (猛龍過江) +2 20.02.29 637 6 9쪽
10 맹룡과강 (猛龍過江) 20.02.27 664 4 8쪽
9 잠룡출도(潛龍出道) +1 20.02.26 712 6 12쪽
8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5 710 3 8쪽
7 잠룡출도(潛龍出道) 20.02.24 744 4 8쪽
6 나려타곤 懶驢打滾 20.02.21 760 4 9쪽
5 약육강식 弱肉强食 20.02.20 817 5 8쪽
4 당랑거철 螳螂拒轍 20.02.19 902 9 9쪽
3 허허실실 虛虛實實 20.02.18 936 10 8쪽
» 첩첩산중 疊疊山中 20.02.17 1,062 8 8쪽
1 서장 20.02.14 1,4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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