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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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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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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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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해자준설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아홉 번째 이야기






마키아 시 서쪽 성벽의 해자준설.

매해 조금씩 해자로 쓸려 들어가는 흙을 퍼내는 작업이다.

성벽의 방어력을 보장하기 위해 매해 이맘때쯤이면 늘 하는 일이었다.

이걸 안 하면 흙이 쌓여 해자가 메워진다.

농번기를 피해 주로 겨울에 했다.

겨울밀의 파종이 끝난 시기에.


준설을 하는 날이면 성벽 위에 보초를 세우고, 해자의 물을 비우고, 서쪽 성벽 밖으로 목책을 세웠다.

그리고 첫 종소리를 울렸다.

이제 막노동꾼들이 출근할 차례였다.

올던이나 막심 같은.


***


셋집의 바깥에서 경비대원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드레이프 씨, 오늘 나오실 수 있습니까?”


창의 덧문을 열고 대답했다.


“셋 다 나갑니다!”

“종소리가 세 번 칠 때까지 서쪽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경비대원은 그대로 아래쪽 인가를 향했다.

안드레이프는 아이들의 왼손에 헝겊을 둘러줬다.


“이건 왜 두르는 거야?”

“이거 안 두르면 줄 끌다가 손이 다 까져.”


든든하게 먹었고 손에도 헝겊을 둘렀고 더 준비할 게 있나?

아, 장화.

올던과 막심은 신고 있던 밀짚신을 벗고 장화를 신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두 번째 종이 울렸다.


“가자, 얘들아.”


막심과 올던을 몰아 마당으로 나오는 안드레이프였다.


“일단 성문으로 가자.”


안드레이프는 기분이 좋았다.

말 한 마리 하루 빌려주고 40코퍼라니.

땡 잡았다.


***


안드레이프는 말을 끌고 앞서 가며 말했다.


“이제 좋은 시간은 다 갔다. 밥값해야지.”

“진짜 마법사의 소굴로 가는 건가?”

“소굴은 아직이다. 기초 체력부터 키운다.”

“뭐야? 테스트 본다며?”


이 자식 그냥 흘린 말을 다 기억하고 있네.

살짝 마음이 켕긴 안드레이프가 화제를 돌렸다.


“너희들, 돈 벌고 싶지 않나?”

“돈이 있으면 뭐해. 힘센 놈들한테 다 뺏기는데.”


막심이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묘하게 현실적인 녀석들이군.


“스스로 빵과 먹을 물을 사서 자립하고 싶지 않냐 이 말이다. 내가 방법을 알려주겠다.”


긴가민가하면서도 녀석들은 안드레이프를 따라왔다.

한 달간 안드레이프에게 많이 익숙해진 녀석들이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안드레이프 일행은 2층으로 된 나무집이 양쪽에 가득 들어찬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 서쪽 성문에 다다랐다.

열린 성문 바깥에서 경비대원이 그들을 보고 손짓했다.


“저기로 가요.”


경비대원이 가리킨 곳에서는 막노동꾼들 수십 명이 관절을 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저 뒤에 서라.”


그리고 안드레이프는 경비대원들과 불을 쬐고 있는 보수책임자를 만나러 갔다. 올던에게도 낯이 익은 자유민이었다.

스승의 스승께 맹세하던 날 시장 어귀에서 만났던.


올던과 막심은 사람들이 하는 체조를 흉내내며 주변을 살폈다.


올던과 막심만큼 어린 애들이 두 명 정도 더 있었다. 농부처럼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의 나이는 영 종잡을 수 없었다. 백발 성성한 노인부터 배로만 살이 몰린 중장년, 막 스무살이 된 듯한 청년과 앳된 티가 여전한 소년들까지.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삼십 명 정도 됐다.


앞에서 붙여주던 구령이 사라지고, 동작이 멈췄다.

몇몇이 눈치없이 떠들어댔다.

막노동꾼들 앞에서 구령을 붙여주던 작업반장이 입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쉬이이이.

이를 본 앞쪽의 노동자들이 조용히 입다물라는 신호를 보냈다. 뒤까지 퍼져나간 소리가 잦아들고, 침묵이 찾아왔다.

모이는 시선을 잠깐 즐긴 작업반장이 으스대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알지? 점심때 뿔피리를 불어준다. 그럼 작업 시작!”


올던과 막심은 뭣도 모르고 인파에 떠밀려 갔다.


***


돌 곡괭이와 돌삽을 든 일꾼들이 해자 한쪽을 허물었다.

안드레이프는 보수책임자를 향해 물었다.


“철로 된 도구가 거의 없네요?”

“무기 만들어 팔아먹는다고 철을 다 쓸어갔지 뭡니까.”


그렇다고 효율도 안 나오는 도구로 저러고 있어야 되나.

철이 귀한 고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 시 동쪽에는 노천철광산이 있었다.


‘영 이상한데······.’


얼마 전의 오슈르 백작령에선 흔한 일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행정으로 유명했으니까.

선대 오슈르 백작은 얼간이 백작이라고 불렸다.

지방 실정에 안 맞는 지시를 내리다가 자기 영지의 동쪽절반을 날려버렸다고 해서.

몰락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선대 오슈르 백작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도시의 행정은 마키아 시에서 알아서 하고 있을 건데······.


흠.

차차 알게 되겠지.


***


허물어뜨린 흙이 해자 쪽으로 흘러 내려갔다. 일꾼들이 오르내릴 경사로였다.

어른들이 먼저 그 길을 내려가며 바닥을 다듬었다. 해자의 바깥에서 시작된 경사로가 해자 가운데서 멈췄다.


“어이, 너무 높아. 조금 더 길게 빼.”


작업반장이 소리를 질러 경사로 공사를 지휘했다.

몇 명의 인원이 남아 기울어진 바닥을 매끄럽게 다져가며 경사로에 공을 들였다.

나머지는 좁은 통로에서 몸을 비틀며 경사로를 내려갔다.

해자의 바닥 곳곳에 덜 빠진 물이 고여 있었다.

해자 바닥에 내려선 사람들이 이곳저곳 자리 잡고 진흙들을 퍼냈다.


“니들도 내려가.”


작업반장이 꼬마 하나의 어깨를 잡고는 아래로 밀쳐냈다.

해자바닥으로 내려선 올던과 막심, 다른 꼬마 둘, 그리고 소년 셋에게 나무로 된 큰 통을 보내줬다.

나무 술통을 세로로 놓고 반쯤 자른 것처럼 생겼고 뚜껑은 없었다.

터브의 크기는 올던의 몸 정도로 꽤 컸다.


“그 터브에 진흙을 채워라. 반쯤 채우고 위에 알려줘.”


막노동꾼들이 파낸 진흙들이 바닥 곳곳에 쌓이고 있었다.

물에 푹 젖은 흙에선 역겨운 냄새가 났고, 무거웠다.

그나마 손에 헝겊이라도 두르고 나와서 다행이었다.


돌로 된 곡괭이랑 삽은 돌려 쓰는 형편이라 손으로 진흙을 옮겨야 했다.

고역이었다.


막심이 터브를 채웠다고 알리니 위쪽에서 밧줄을 던져줬다.

이걸 매라고 던져준 거 같기는 한데.


‘어떻게 매는 거지?’


막심이 밧줄을 손에 들고 헤매자 주끈깨 투성이의 다른 소년이 다가와 막심을 밀쳐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터브에 밧줄을 묶었다.

그러고는 터브 옆면을 두들기며 외쳤다.


“올려!”

“이랴.”


해자 위쪽에서 말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터브가 경사로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주근깨 소년이 막심을 쳐다보며 몰아세웠다.


“뭐하고 섰어. 다음 거 안 하고.”


그러면서 남은 밧줄 한 쌍을 던져주며 구석으로 밀쳐냈다.

주눅이 든 막심이 올던한테 다가왔다.

올던은 돌아가는 상황에 짜증이 났다.

주근깨 소년에게 한 마디 하려는데, 막심이 그 손목을 잡아 끌었다.


“그냥 가자, 올던.”


올던이 화를 삭히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막심은 소년들이 있는 쪽을 살펴봤다.

올던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도 많아 보이는 소년들은 혼자서 터브 하나씩을 맡고 채우고 있었다.

막심과 올던이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막심의 판단이었다.


***


첫번째 터브는 그나마 나은 거였다.

주근깨 소년에게 밀려 구석으로 쫓겨나고부터는 경사로에서 떨어진 곳의 흙을 채워야 했다. 다시 말해 터브를 채운 다음에 경사로까지 터브를 끌고 가야 한다는 거였다.


‘밧줄을 한 쌍 더 준 이유가 있었군.’


막심과 함께 터브를 채웠다. 일부러 반이 안 되게 채웠다. 그 정도면 될 거 같았다.


‘이 정도면 수월하게 밀지 않을까?’


마음처럼 안 됐다.

진흙이 든 터브가 엄청나게 무거워서 둘이서 안간힘을 쓰며 밀고 당겨서야 겨우 움직였다.

얼마 못 가, 뒤에서 밀던 막심이 지쳤는지 힘을 푸는 게 느껴졌다.


“멈추면 안 돼, 막심.”


중간에 멈추면 더 힘들어지더라.

꼬마 둘이 밀고 있는 옆 터브가 그랬다.

한 번 멈추더니 다시 못 움직였고, 그 모습을 본 작업반장이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옷을 입은 곳에 내려쳐 아프진 않을 거다. 그래도 짐승처럼 두들겨 맞는 게 싫었다.


계속 앞으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밧줄을 잡아당겼다.

끌고 나가다 어딘가 터브가 부딪혀 방향이 조금씩 틀어질 때마다 밧줄이 팽팽해지면서 몸을 뒤로 낚아챘다.


으으.

너무 무거웠다.

간신히 경사로 아래에 밀어다 놓고, 숨을 몰아 쉬었다.

해자 위쪽에서 안드레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받는다.


“야! 이 빌어먹을 스승아!”

“여어, 올던. 스승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안드레이프는 빙긋이 웃으며 올던이 던진 밧줄을 말에 묶었다.


잠시 손을 놓고 있자 주위에서 눈총을 주는 분위기가 됐다.

안드레이프한테 따질 틈도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터브를 몇 번 올려보내고 나니 옷이 엉망이 됐다. 옷 안쪽으로도 진흙이 튀어 들어왔다.


‘이래서 옷을 몇 벌씩 사 준 거였구나.’


올던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정령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막노동을 시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


부우우웅.

뿔피리가 울려 점심시간을 알렸을 때, 올던은 지쳐서 기진맥진한 막심을 끌고 경사로를 내달려 올라갔다.

안드레이프를 찾아야 했다.


그는 성문 옆 모닥불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시에서 나온 보수책임자와 함께.

주름이 잡힌 보수책임자의 옷에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이 인간은 철저한 사무직임을, 다시 말해 이 현장에서 한 손가락도 안 움직였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끓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옆에 있는 안드레이프 역시 비슷한 거 아닌가?

안드레이프와 일하면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올던의 의식에서 지워졌다.

그만큼 올던은 흥분한 상태였다.


“야, 이 영감아!”

“배고프지? 밥 먹자.”


어디서 자애로운 척이야, 이 미친 할아범이!

올던은 할 수만 있다면 안드레이프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 수 없었다.

안드레이프가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흥분 가라앉히고 들어라. 여기서 한 달만 체력을 기른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다.”


엄한 눈빛이 된 3아르신의 거인을 바라보다가 올던은 한숨을 푹 쉬었다.

떠돌이 생활보다는 이게 나은 거 같기도 한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이게 뭐냐고, 대체.”


안드레이프는 우선 빵과 마실 것을 내주었다.


“입맛이 없어도 먹어라. 그래야 오후에 일을 한다.”


먹느라 올던과 막심의 입이 조용해졌을 때 한 마디 덧붙였다.


“고블린과 싸울 수 없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목숨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거다.”


고블린?

마법사의 소굴에 고블린도 있었나.

과자집을 기대 안 했다고, 고블린이 튀어나오다니.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돼 먹은 거냐고!


어, 올던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계속 고블린이 나왔었다.

올던과 막심만 몰랐던 거지.

이 시대의 현실은 잔혹동화다.

그래서 어른들한테 동화가 인기 없는 거지.


***


안드레이프는 올던이 엉뚱한 짓을 하기 전에 확실하게 짚어줬다.

점심을 마치고 안드레이프가 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 멀리.


“우리들의 소굴이 있다. 고블린한테 뺏긴 상태지.”


올던은 안드레이프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염병을 하세요.

마법사의 소굴이고 고블린이고 다 모르겠다.

도망이나 갈까?

아, 근데 맹세가 마음에 걸리네.

쳇.

고개를 들어올리는데 안드레이프가 올던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니가 엄한 데로 도망갈까 봐 하는 이야기야. 잘 들어. 서쪽에는 고블린이 있다. 저쪽으로 도망가면 안 돼. 아이들 두 명 정도는 순식간에 쓱싹 하니까.”


그러면서 목에 손을 대고 긋는 안드레이프였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건 무슨 자신감이지.

서쪽으로만 도망 안 가면 언제든 붙잡을 수 있다는 건가.


***


해가 서쪽 지평선에 닿을 때쯤 뿔피리 소리가 다시 울렸다.

막노동꾼들이 경사로를 올라갔다. 막심은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했다.

올던의 몸도 무거웠다.

물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면서 뜻대로 안 움직였다. 앞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걸었다.

성문 앞에서 만난 안드레이프가 뭐라고 하는 말이 귀에 잘 안 들렸다. 비몽사몽 안드레이프를 따라 셋집으로 걸어갔다.


눈을 떴을 땐 다음날 아침이었다.

안드레이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라. 밥먹고 일하러 가야지.”


아?

밤중에 일어나서 도망가든가 숨었어야 했는데.

밤이 사라졌네?



작가의말

1아르신 = 71.12cm = 28인치


안드레이프 = 2아르신 27인치 = 21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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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변곡점에 다다른 여정 +3 24.02.14 310 20 12쪽
4 막심 인생 최고의 모험 24.02.13 344 20 11쪽
3 안드레이프의 끝나지 않는 여행 (2) 24.02.12 426 22 13쪽
2 안드레이프의 끝나지 않는 여행 +2 24.02.10 584 26 14쪽
1 프롤로그 +2 24.02.09 828 3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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