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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고래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노랑고래
작품등록일 :
2024.02.09 05:46
최근연재일 :
2024.03.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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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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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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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
글자수 :
220,424

작성
24.02.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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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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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방랑의 끝, 마키아 시

DUMMY

[(메레이라 대륙에서)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 여섯 번째 이야기






‘세 번째였나, 네 번째였나?’


익숙한 표지판이었다.


【 마키아 시까지 북쪽으로 10 베르스따 】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 서서 얼마간 기다리자 과연 길을 따라 나타났다. 

지금쯤 빙빙 돌고 있는 걸 알 텐데.

안드레이프는 말의 고삐를 채며 속도를 늦췄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마법사를 권해볼 기회였다.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나? 계속 따라오던데.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든가.”


안드레이프는 최대한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러면 정령술을 배우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


오산이었다.

안드레이프는 올던의 성격을 잘못 파악했다.


“당신 마법사지?”


이 고깔 형태의 기나긴 모자와 마석이 박힌 검은색의 긴 지팡이를 보면, 누가 봐도 마법사인데.

새삼스럽게 저런 질문을.

흠.

마법사를 본 적이 없는 촌놈들이라 그런가.


“그래서?”


정령술을 배우겠다는 건가?


마나를 느낄 수 있고, 정령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호를 받는 꼬마라.

조그만 녀석도 정령을 보기는 하던데.

둘 다 제자로 받아들일 수도.


올던이 엉뚱한 말을 했다.


“어서 너의 소굴로 안내해라. 이 사악한 인간아, 거기에 나처럼 불쌍한 애들을 잔뜩 가둬둔 걸 알고 있다.”


뭐, 뭐? 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안드레이프가 꼬마의 말을 되씹어보는 동안 건방진 꼬마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불쌍한 애들을 풀어줄 거야?

둘이서 나를 이겨보겠다는 건가?

꿈도 크지. 


“아이들을 꼬드기는 중이지? 거기에 데려가서 가두려고 빵을 뿌린 거잖아? 다 알고 있어. 우리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황당하고 억울하네.

어째 마녀와 요정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은 거 같다?

언제 자신이 아이 납치범이 됐지.

 

아니, 이 녀석들 유인을 하긴 했는데······.

그건 맞지.

그래도 납치범은 아니다. 


"스승님께 맹세코 난 악한 인간이 아니다.“

 

양심껏 살아온 삶이었다. 이 허무맹랑한 녀석들한테 오해받을 입장은 아닌데.

올던의 눈빛은 장난을 치자는 건지, 진지하게 따지는 건지 알 수 없고.

막심은 경계심이 살짝 묻은 표정으로 안드레이프를 봤다.


허허.

안드레이프는 실소 끝에 생각을 바꿨다.


‘장단을 맞춰줘 볼까.’


안드레이프는 둘을 내려보며 쯧하고 입소리를 냈다.


“너희 맛없게 생겼는데?”


손을 휘저으며 저리 가라 손짓했다.

작은 놈이 안드레이프의 반응에 움찔했다.

큰 놈은 크게 신경 안 쓰며 답했다.


“우리가 비쩍 말랐는데 잡아 먹겠어?”


그렇지.

머리가 좀 돌아가네.

대부분의 아이는 미신이랑 헛된 이야기 때문에 도망가던데.


“거기 가서 살찌운 다음에 커다란 놋쇠항아리에 집어넣을 거잖아.”


아;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지.

이 녀석들 마녀와 과자집 이야기에 너무 심취해 있다.

차근차근히 대응해 봤다.


“지금껏 니들이 먹은 건 그럼 무슨 고기냐?”


헉.

입이 떡 벌어진 막심의 표정.

막심을 돌아봤던 올던이 다시 마법사에게로 돌아섰다. 여전히 근본 없이 짧은 말투다.


“그거 사람고기였냐?”


놀란 척 하는 건가.

작은 녀석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이다.

이쯤 되면 장단을 맞추는 게 안드레이프인지, 저 꼬마 녀석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저 녀석 장단에 놀아나는 건가?’


아리송한 마음을 숨기며 안드레이프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장난은 그만.


“놋쇠 항아리는 없다. 또 뭐가 있을 거 같냐?”

“과자집.”

“과자집도 없다. 그건 동화 속에나 나오는 거다.”


올던은 안드레이프의 눈을 흔들림 없이 올려보고 있다.

알고 있다, 이 녀석.

알고 있으면서 묻는 거다.

눈동자에 그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으면서 안드레이프의 표정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동화도 안 믿으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불편하네.

안드레이프는 이 올던이라는 꼬맹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떤 때 보면 자신보다 더 노련한 거 같고.


“거짓말 하지마, 영감. 그러면 왜 우리를 끌고 가려는 건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땅바닥에 먹을 걸 뒀잖아.”


이번에는 안드레이프가 놀란 척 했다.


“혹시 내가 버린 걸 주워 먹은 건가? 그거 딱딱해서 이빨도 안 들어가던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런 걸 먹으면 쓰나.”

“역시 할아범이었나, 나이가 들어서 이빨이······”


할아범?

울화가 살짝 치밀어 오른다.

참자.


“니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난 꽤 부자다. 퍼석해진 빵을 먹을 만큼 가난하지 않아. 마법사의 집에는 그런 거 말고도 먹을 게 많다. 쿠키와 케이크와 흰빵과 신선한 우유랑 치즈도 있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효과가 있는 듯했다.

호기심을 보였으니까.

올던은 막심을 돌아보고 물었다.


“막심, 케이크가 뭐야?”

“빵 위에 크림 바른 거.”

“크림빵이야?”

“훨씬 맛있어. 부드럽고, 달콤해.”


케이크의 맛과 생김새를 상상해 보던 올던이 안드레이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말 케이크가 있어?”

“궁금하면 와서 보든가.”


그러고는 말을 몰아 나갔다.

걸음을 망설이는 꼬마녀석들에게 물어봤다.


“안 따라올 거냐?”


예상대로, 갈 곳 없는 거지꼬마들이 안드레이프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안드레이프는 돌아서서 웃었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나다.’

 

글쎄······.

올던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던데.



***



그날 밤이었다.

안장주머니를 시험 삼아 말에 걸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훔쳐 가려나?’

 

불을 등지고 돌아누워 귀를 세우고 있는데, 꼬마들이 목소리를 낮춰 의논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 거야, 올던. 훔칠 거야?”

“아직 모르겠어.”


역시 훔치는 게 목적이었나?

귀가 쫑긋 섰다. 


“저 안에 돈도 많이 들었겠지.”

“그럴 거야. 하지만 저걸로 만족해서는 안 돼. 저 녀석 소굴에는 보석이랑 금화가 가득한 상자가 있을 거야. 저 얼굴을 보라고. 분명 강도질하다가 칼에 맞았을걸.”


강도라니.

강도질하는 놈이 다른 사람을 구해줄 리가.

 

잠깐만, 그러면.

내가 강도같아서 나를 털려고 했다는 건가?

 

막심에게는 또다른 의문이 있었다.


“하는 걸 봐서는 강도 같지는 않던데······.”

“아니야, 확실하다고. 손발 묶었던 밧줄 기억하지? 누가 그렇게 굵은 밧줄을 그렇게나 많이 갖고 다니냐고. 소몰이꾼도 아니면서.”


소몰이꾼이 밧줄을 많이 갖고 다니나?

쟤는 목동의 후예라도 되는 건가.


막심과 올던이 기나긴 토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일단 따라가자. 정령술인지 뭔지 그 신기한 재주에 대해서도 좀 물어보고.”


내 안장 주머니는 안전하겠군.

자자.

이제 좀 자고 싶다. 슬슬 졸립고 그러네.

그러나 올던과 막심의 이야기는 다른 데로 옮겨가 있었다.


“케이크라는 게 정말 있어?”

“있지, 그럼. 엄청 맛있어.”

“그거 만들기 힘든 거지?”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평야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잡혔다.

잠 못 이루던 안드레이프가 뒤척이며 정자로 눕자, 올던과 막심도 순간 조용해졌다.

올던과 막심의 이야기를 듣고 석연치 않은 점이 풀렸다.


‘한 방 먹은 기분이군.’


어른들도 미신을 진지하게 믿고 밤의 망령이니 악령이니 하는 시대다.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동화가 이 아이들 역시 망친 줄로만 알았다.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과자집이니 놋쇠항아리 이야기는 연막이었을 수도 있다.

순진해 보이는 가면.


그랬다면 목적은?

강해 보이는 마법사의 소굴, 거기 있을 보물상자를 노렸던 걸까.

처음부터 그랬던 거라면, 녀석들이 순순히 따라오던 게 말이 되긴 하지.

이상한 인간에게 잘못 걸렸다간 팔려 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보면, 간 큰 아이들이지.’


강도를 습격해 의적이 되려는 간 큰 아이들.

안드레이프는 다시 모로 누웠다.

 

아닐 수도 있다.

험난한 이 시대의 비겁한 생존법일 수도.

거칠고 간악한 황야의 무법자 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먹을 걸 흘려주는 마법사를 택한 걸 수도 있었다.

공생을 할지, 의적질을 하려고 들지 슬슬 알게 되겠지.

어찌 됐건,


‘가보면 알게 될 거야.’


이렇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알 수 없게 만들어 놨다는 것만 해도 올던이란 저 녀석, 물건이긴 하다.

 

열 살이나 됐을까. 어린 나이에도 영특하다는 건 좋은 점이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정령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전혀 감도 못 잡던데······.’


제대로 배움을 얻지 못하면 그냥 썩어버릴 재능이었다. 요즘 세태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마나공학자가 되면 다행인 정도의 재능으로 비췰지도.

하기사 


‘그런 삶도 녀석들에게 나쁘지는 않겠네. 지금처럼 쫄쫄 굶으면서 다니지는 않을 거니까.’


마나공학의 유행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의문이다만.

성공하든 아니든 가르쳐 볼 만한 건가.


눈꺼풀이 내려왔다.

풀벌레 하나가 끝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


다음날 아침에도 안드레이프의 소지품은 멀쩡히 있었다.

그걸 보고 마음이 마저 기울었다.

지켜보겠다는 건지, 강도로 의심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이 꼬마놈들을 속이면 재밌겠네.’


안드레이프의 고약한 장난끼가 고개를 들었다.

나름 영악하게 머리를 돌리는 이놈들을 제자로 강제채용해서 세상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는 게 안드레이프의 속셈이었다.


그날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고 안드레이프가 선언했다.


“이제부터 마키아 시로 간다.”

“거기에 마법사의 소굴이 있어?”


안드레이프는 올던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말을 몰았다.

 

‘꺾이지 않을 제자를 키우고 싶다.’

 

십 년을 묵어온 고민이 단 하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실마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안 되면 말고.’


간단하게 생각해보는 안드레이프였다.



***



정착을 한다면, 어디에 정착할까?

이 질문의 답은 몇 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오슈르 백작령에 정착하는 게 제일 좋다.’


십여 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눈여겨 봐둔 땅이 그곳에 있었다. 정령의 기운도 좋고, 풍광도 좋고, 도시도 비교적 가까웠다.

정령들도 말했다.

 

- 여기는 정말 너무 좋다. 사방에 마나가 충만해.

- 마법사가 살기도 괜찮을 걸. 안드레이프 여기 살면 안 돼?

 

그 말대로였다.

거기라면 마나공학 공방을 세워도 됐고, 그냥 집을 짓고 살아도 괜찮았다.


마키아 시 서쪽의 땅이었다.

버려진 땅이라 영주의 횡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 그 곳은 아무도 안 사는 곳이라서.

 

고블린들들이 장악한 곳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였다.


‘선대 오슈르 백작은 정말 영주로서의 능력이 형편없었다.’


오슈르 백작가의 한미한 군사력과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은 몇 년 새 여러 악영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영지 한쪽을 뒤덮은 고블린 떼였다.

정령들과 안드레이프가 마음에 들어했고, 통행이 자유로웠던 곳은 지금 고블린 떼로 뒤덮여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작고 재빠른 모습으로 묘사되는 고블린은 한 둘이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몬스터다.

수가 적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수가 적을 때 빠르게 토벌해야 된다.

 

오슈르 백작가에서 적절한 때를 놓치자 고블린들은 폭발적으로 수가 늘어났다.

지금은 평범한 양민들이 어쩌기에 고블린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고블린이 출몰하는 마키아 시 서쪽엔 사람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그러니 고블린을 물리치고 그곳에 들어가 살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고블린을 물리치고 들어가서 자리 잡는다면 대가는 확실하게 돌아올 것이었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마법사의 집’을 세울 수 있다.‘


제국에서 모든 땅은 황제의 것.

황제가 하사하는 땅만이 법적으로 의미있다.

땅의 소유권은 모두 황제에게 있고, 영주는 황제를 대리할 뿐이다.


법적으로는 그렇고 실제로는 영주가 그 땅의 모든 걸 다스렸다.

다시 말해 오슈르 백작가가 신경을 못 쓰고 있는 땅을 수복하면, 그 땅의 주인처럼 행세할 수도 있었다.

요새 간간이 보이는 자유남작들이란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황제폐하를 대신하여 잃어버린 땅을 수복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황제한테 세금을 바치면 아무도 뭐라고 안 했다.


안드레이프는 그런 점을 노렸다.

뒤따라오는 꼬마들을 돌아봤다.

꼬마들이 몇 가지 잡일을 해 준다면, 고블린들을 사냥해 가면서 땅을 얻어낼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마법사로서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거였다.

마물과 사람들로부터 살아남는 방법.


그것이 메레이라 대륙에서 마법사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니까.


‘일단 살부터 찌울까.’


사람이 굶주림은 면해야지.


그리고 꼬마 녀석들을 단련시키고.

안전한 마키아 시에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8 mi******
    작성일
    24.03.07 17:33
    No. 1

    머리 색은 몰라도 이건 소위 머리 검은 짐승 수준인데, 이렇게 염치도 모르는 것들을 제자로 욕심낸다고요? 음...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24.03.08 12:30
    No. 2

    첫단추를 거하게 잘못 끼우시는 것 같은데요. 장난꾸러기 스승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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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막심 인생 최고의 모험 24.02.13 343 20 11쪽
3 안드레이프의 끝나지 않는 여행 (2) 24.02.12 425 22 13쪽
2 안드레이프의 끝나지 않는 여행 +2 24.02.10 584 26 14쪽
1 프롤로그 +2 24.02.09 828 3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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