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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칼로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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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텐칼로리
작품등록일 :
2023.05.19 20:00
최근연재일 :
2023.06.04 10: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54
추천수 :
96
글자수 :
119,604

작성
23.05.28 16:03
조회
56
추천
4
글자
12쪽

뭐 하세요? 얼른 갑시다.

DUMMY

편의점 안은 한쪽 매대가 넘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깨끗했다.


“일단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챙기는 걸로.”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500L 생수와 초코바 혹은 사탕 같은 것들을 각자 가지고 있던 가방 틈새에 끼워 넣었다.


“헐, 형! 아니, 양갱이 웬 말?”

“야, 양갱이 얼마나 완벽한 식품인데! 네가 양갱을 알아?”


안경태와 강삼래가 다시 툭탁거리기 시작하다 갑자기 야단법석을 떨었다.


“오! 이거 대박!”

“어? 와, 완전 대박!”


뭔가 해서 쳐다보니 안경태의 손에 소방 도끼가 들려 있었다.


“웬 거야?”

“저기 구석에 소방함이 있더라고요. 보니까 소방 도끼가 있길래 잽싸게 꺼냈죠. 참, 이건 과장님이 가지시죠.”


안경태와 둘이서 네가 가져라. 아니다 하며 서로 넘기고 있는데 강삼래가 다가왔다.


“오! 도끼는 당연히 탱커꺼죠!”


결국 소방 도끼는 내가 들기로 했다. 주로 내가 제일 앞에 나서는 만큼 알루미늄 바 보다는 이게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때, 입구가 있는 로비 쪽에서 괴상한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안경태와 시선을 맞춘 후 재빨리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로비에는 뜻밖에도 긴 머리 여자가 돌아와 가만히 서 있었다.


왜? 무슨 일이죠?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와 안경태는 서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나갈 때와는 판이해졌기 때문.


눈에 보이는 모든 몸이 울긋불긋했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옻 독이 오른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온몸에 수포 같은 것들이 비규칙적으로 돋아나 있었는데, 긴 머리는 자기 몸을 미친 듯이 긁으며 상반신을 진자처럼 흔들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ㅂㅁ ㅓㅇㄹㅣ······!$^%&@”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 기시감이 들었다.


‘최 대리가 출장 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지금 저 여자 같이 혼자 중얼거렸었다. 최 대리의 목에도 저런 물집이 있었었나?

내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여자가 바닥에 속을 게워냈다. 한참을 토하던 여자는 끈이 끊긴 인형처럼 갑자기 쓰러졌다.


“과장님······.”


나는 어느새 다가온 서문주를 뒤로 물리고 천천히 긴 머리에게 다가갔다.


‘뭐지? 왜?’


혹시나 다른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먼저 나간 5층의 보험사 CS팀의 세 명 중 한 명이 맞았다.


‘좀비에 물린 건가? 아니야. 그렇다면 바로 좀비로 변했을 거다. 나가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우리가 1층 오른쪽에 있는 사무실을 확인하고, 편의점에 들어가 좀비들을 처리하고 물건들을 찾을 때까지 걸린 시간을 다하면 대략 20여 분.

그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긴 머리가 삐거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소방 도끼를 꽉 쥐었다.

번쩍 고개를 든 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눈동자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번에 끝낸다.’


저쪽에서 달려들기 전에 내가 먼저 친다. 나는 몸을 낮춰 달려 나갔다. 눈을 뜬 긴 머리가 나를 보고 포효했다.

그대로 몸을 날려 긴 머리에게 부딪혔다. 긴 머리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다 나와 부딪히며 그대로 튕겨 나갔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비상 도끼를 여자의 머리에 내려쳤다.


- 퍽.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다. 나는 여자의 시체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세 사람을 잡았다면, 그 사람들은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까? 일단 구조대를 불러올 테니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 내가 뭐라고.’


나는 쓸데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털어냈다. 내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 하지만 그러기엔 죽음이 너무 가벼웠다.


내가 시체를 치울 동안 다들 모여서 나름대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나가서 바로 물린 걸까?”

“그런데, 형. 좀비한테 물리면 5분 정도면 변한다고 하지 않았슴? 그럼 거의 여기 건물 나가자마자 바로 앞에서 몰렸다는 거 아님?”

“대리님, 그 말은 저 안갯속에 지금 좀비들이 우글대고 있는 걸까요?”

“완전 소름!”


고개를 들자 문밖으로 새하얀 벽처럼 가득 차 있는 하얀 안개가 보였다.

나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안개가 낀 밖으로 외근을 갔다가 돌아온 최지열 대리. 밖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 파란 넥타이. 마지막으로 안갯속으로 나갔다 돌아온 긴 머리 여자.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는 것이다.


차 유리로 다가왔던 안개, 편의점 밖에서 봤다던 안개 덩어리, 안경태의 등 뒤로 접근했던 새하얀 촉수.

이 두 가지를 조합하니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났다.


최 대리에게 물려서 변한 김 부장과 박 대리는 눈빛이 회색이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좀비에게 물린 게 아니지 않을까?


하얀 눈동자로 변한 사람들은 좀비에게 물린 게 아니라 안개에 당한 게 아닐까?


‘안갯속에 뭔가 있다!’


저 안개가 좀비를 생성하는 스위치 같은 건가? 저 안갯속에 엄청난 생화학 무기가 숨겨져 있는 건가?


왜? 아니, 어떻게?


강남을 뒤덮은 안개를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좀비도 생겨난 마당에 추론이 틀렸다고 말할 근거도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는 저 안개가 가장 수상해 보였다. 지금 건물 입구 현관이 열려 있는데, 안개는 건물 안쪽으로 퍼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건지. 속이 답답해졌다. 어젯밤에 봤던 헬리콥터가 떠올랐다.


‘그건 가능성이 작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안개로 나가는 건 위험하다.’


나는 입구로 다가가 유리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어버렸다.


“어? 과장님, 왜요?”

“저희 안 나가요?”


다들 어리둥절해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든 것이 다 내 추측일 뿐이다. 그렇다고 직접 실험해 볼 수는 없는 일.


“일단, 편의점에서 물이랑 좀 챙기고···, 우리 하루만 여기에 더 있자!”

“““네?”””


믿을만한 동료들이어서? 아니면 부하 직원이어서 그랬을까. 말을 안 들으면 생떼라도 부려 붙잡고 싶었는데 다들 그냥 수긍했다.


“하긴, 좀 찝찝하긴 했어요.”

“하, 나는 왜 나온 거임! 욕만 더럽게 처먹고. 어휴. 내 팔자.”


우리는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와 먹을만한 음식을 더 챙겼다. 의외로 레토르트 식품 외에 먹을만한 게 많지 않았다.


“으! 돌고 돌아 라면!”


강삼래가 투덜거리며 컵밥을 여러 개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편의점 창고에 들어가 2L 생수를 챙겨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겼다.


그때, 어디선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일정한 소리가 반복되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다들 하던 일을 멈췄다.


“무슨 소리일까요?”

“잠시만.”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 유명한 모스부호인 SOS 신호였다.


“혹시···. 좀비는 아니겠죠?”


워낙 별의별 상황을 다 겪다 보니 이제는 뭐가 됐든 믿을 수가 없었다.


“안 대리, 이 위가 어디지?”

“어···. 한의원인 것 같은데요? 혹시 정확하게 소리가 난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대략 추측하던 위치로 이동해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한의원 원장실 같은데요?”

“허, 오픈도 안 했는데 그걸 안 대리가 어떻게 알아?”

“당연히 공사할 때 들어가 봤죠. 그때 공사하는 아저씨들한테 여긴 뭐냐 이러면서 둘러봤죠.”


아직 개업도 안 한 한의원에서 나는 소리라···.


‘휴, 그냥, 못 들은 척할까?’


계속 긴장된 상황, 직원들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

많은 것들을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신 차리자!’


한 번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모든 게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 한 번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두 번, 세 번째는 쉬워진다. 어쩌면 나중에 더 위험한 상황에서 동료들을 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정신 차리자, 이유현!’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 거고, 구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우리는 일단 6층으로 가지고 갈 것들을 상자에 넣어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모자라는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나을 것 같아 과하게 챙겨 6층으로 짐만 올려보냈다.




* * *




비상구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비상구 문을 닫았을 때는 안쪽에 별다른 이상한 게 없었지만, 혹시 모를 일.


조심스럽게 비상구 문을 열고 2층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별일 없이 오픈 준비 중이던 한의원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다행히 한의원 문은 열려 있었다.


안쪽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대기실이 보였다. 바닥에는 양탄자 같은 게 깔려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불이 켜지지 않아 꽤 어두웠다.

나는 커튼으로 구분된 안쪽 공간을 주시하며 천천히 접수대 위를 두드렸다.


- 쿵, 쿵, 쿵.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 이쪽저쪽으로 비춰보니 원장실 앞쪽으로 3단 책장이 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넘어진 위치가 교묘해 딱 문틀에 맞춰 걸려 있었던 것. 책장을 치우고 문을 두드렸다.


- 똑똑.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지? 혹시 벽을 타고 넘어온 다른 층 소리였던 걸까?


‘3층으로 다시 가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원장실 안을 이쪽저쪽 비췄다. 그때, 원장실 책상 아래에서 누군가 천천히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대로 멈추세요!”


막 일어나 다가오려던 인영이 주춤했다.


“본인이 누군지 밝히세요!”

“저, 저는 한의사 한보현입니다!”


힘없는 남자 목소리.


“일단,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 나오세요.”


천천히 다가온 사람은 대략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손전등으로 남자를 구석구석 비추자 눈이 부신 지, 눈을 살짝 찡그렸다.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혹시 월요일 점심에 어디서 식사하셨습니까?”

“네?”


남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대답을 재촉했다.


“어서 말씀하세요!”

“어, 그러니까 어제 점심엔 밥을 못 먹었죠. 원래는 간단하게 오픈 준비만 하고 들어가려고 아침에 출근했는데···. 갑자기 밖에서 큰 소리가 나더라고요. 일단은 별일 없겠지 싶어서 그냥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있다 나가보려고 했는데 문이 안 열리는 바람에···.”


월요일 오전에 출근했고, 점심도 못 먹고 건물 안에 있었다면 이상하게 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우리도 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했었으니까.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고 원장실 안쪽을 둘러봤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여기에 소독 도구나 간단한 외상 치료 도구 같은 게 있습니까?”

“어, 그게, 여긴 한의원이라서······.”

“있습니까, 없습니까?”

“잠, 잠시만요. 일단 여기 감기 걸렸을 때 먹는 탕제랑 해열제랑 이비인후과 완화제······.”

“일단 가방에 넣으세요.”


한보현이라고 말한 한의사는 주섬주섬 물건을 찾아 가방에 넣었다. 상당히 궁금해하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갑시다.”


나는 앞장서서 한의원을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의사가 물건을 챙긴 가방을 꼭 안고 서 있었다.


“뭐 하세요? 얼른 갑시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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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23.05.20 10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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