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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칼로리 님의 서재입니다.

출근하니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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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텐칼로리
작품등록일 :
2023.05.19 20:00
최근연재일 :
2023.06.04 10: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51
추천수 :
96
글자수 :
119,604

작성
23.05.19 20:01
조회
170
추천
6
글자
12쪽

좋은 아침입니다!

DUMMY

눈을 뜨니 새하얀 공간이었다.

위, 아래, 좌, 우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온통 새하얀 공간.


귓가에 커다란 소리가 웅웅거렸다. 마치 물 밖에서 누군가가 떠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적에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는데, 소풍을 갔다가 왜인지 혼자 있다 연못에 빠졌다.


물속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고 살려달라는 외침은 수압에 짓이겨졌다.


무척이나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기억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충격적인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무 상처 하나 없이 물밖에서 흠뻑 젖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물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멍하니 젖은 채로 서 있는 나를 우연히 발견한 교사가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학교에서도 크게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물이 있는 곳을 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피해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물속인가?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심리적 외상에서 비롯된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발버둥 치던 몸이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둥둥 밀려나자 물속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


그저 움직였을 뿐인데 몸이 앞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이동했다.


이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연법칙까지 깨져버린 미지(未知)의 공간이 나를 매료시켰다.


슈퍼맨처럼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로켓처럼 몸을 날리기도 했다. 귓가에 웅웅대는 소리가 어느새 잔잔한 음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하얀 공간이 갈라지면 길이 생겨나고 있었다. 뭔가 싶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니 이 하얀 공간이 모두 아주 작은 구름 같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기이하고도 당혹스러운 광경에 압도돼 나는 멈칫거렸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스르륵 미끄러져 앞으로 밀려 나갔다.


아까부터 웅웅 울리던 소리가 어느새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인간의 몸은 다양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메커니즘은 신경을 통해 우리의 몸을 제어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과연 우리의 몸을 제어하는 건 우리의 심장일까요, 아니면 머리일까요?



뭐라는 거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뭐 이런 개꿈이 다 있냐!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쉽니다.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머리가 멍했다. 가슴속에서 세차게 뛰던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호흡이 일정해졌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물 속인 것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그 시공간 속에서 실체가 분리되고 원형이 해체되어 먼지로 비산하는 감각을 느낄 무렵.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하얀 공간인데 하얀빛이라니?


이상했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자꾸 그 빛에 가까워지며 자석처럼 끌려갔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도망가려고 애썼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빛 앞에 도달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손바닥만 한.


씨앗?


강낭콩처럼 생긴 밝은 빛무리가 눈앞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씨앗을 손안에 담아보세요.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빛무리가 손바닥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따뜻하다. 평온하다. 익숙하고 그립고 아름다운 그 뜨거운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목소리가 말했다.



자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의념(疑念) 속에는 이처럼 작은 띵띵 띠리링♬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헉!······’


띵띵 띠리링♬


다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바로 핸드폰을 찾았다. 한참을 뒤적이니 베게 뒤편에 끼어 있는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알람을 끄고 나니 스마트폰 화면에 재생되고 있는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쉽니다.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다가올 미래를 보는 기업, TB 인터네셔널이 함께합니다.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 꿈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창을 눌러 닫으니 바로 회사 단체카톡방이 보였다. 최신 톡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안경태 대리) - [★5분 만에 꿀 잠자는 동영상★ 클릭하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자고 있습니다!]


아, 아!


금요일이었나보다. 회사에서 요즘 통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지나가며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잠 잘 오는 동영상이라는 말에 무지성으로 클릭하고 잠이 들었었나 보다.


온몸이 무거웠다. 머릿속에서 지독하리만큼 기묘한 그 꿈이 떠나지 않았다. 꿈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유영하다 지구의 중력 속으로 강제로 끌려온 것 같았다. 머릿속에 안개가 사라지지 않아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차, 늦었다!


아이 방을 열어보고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확인하고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회사까지는 대략 1시간 20분. 대중교통이 아니라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온 건 좋은데 출퇴근이 빡빡하다.


무지성으로 틀어났던 라디오에서 첼로 신동의 신들린 연주가 시작됐다. 귀를 뚫는 첼로 소리에 깜짝 놀라 채널을 돌리자 교통 안내 방송이 나왔다.


[경부고속도로 현재 서울 요금소 방향으로 진행이 어려워 보입니다. 유난히 연무가 심한 월요일입니다. 특히 강남 진입 후에는 시야 확보가 조금 어렵습니다. 다가올 미래를 보는 기업, TB인터네셔날 제공 ······ 57분 교통정보였습니다.]


마침 경부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신논현 방면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뭐지? 이게 연무?


나는 자동차 와이퍼를 벅벅 돌렸다. 워셔액이 유리창을 씻어내렸지만,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계속 뿌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 신호등을 노려보고 있는데, 유리창 한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외부환기로 돌렸는데도 없어지지 않더니 어느새 실 뱀처럼 늘어나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미끄러져 운전석 앞쪽으로 이동해 유리창에 쩍하고 달라붙었다.


어? 뭐야?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시 노려보고 있는데 퍼져나간 덩어리가 퍽하고 폭발했다.


억!


순간 당황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 빵!


뒤 차에서 바로 클랙슨이 요란하게 울렸다.

갑자기 채널이 돌아간 라디오에서 첼로의 거칠고 날카로운 선율이 차 안을 찢어대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 빵! 빵! 빵-!


뒤 차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눌러댔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출근길 자동차들만 보일 뿐이었다.


뒤 차에 손을 들어 사과하고 바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방금, 뭐였지?


나는 피곤한가? 나는 약을 먹었는가? 나는 정신을 놓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헛것을 본 것인가?


머리를 쓸어올리고 전방을 바라봤다.

월요일 출근길. 시야는 갑갑했고 출근길의 도로는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월 주차장에 차를 넣고 회사 방향으로 걸었다. 밖으로 나오니 뿌연 느낌이 더 심해졌다. 마치 습도가 높은 여름 날씨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피곤해서 그런가?’


빨리 사무실로 가서 커피나 한잔해야겠다며 서둘렀다.




* * *




역삼역 3분 거리에 있는 빌딩은 30년도 더 되었는데, 작다는 이유로 여전히 꼬마 빌딩으로 불리고 있다.

안개가 낀 뿌연 도시 대로변에 있는 꼬마 빌딩이 오늘따라 유난히 음산해 보였다.


건물에 들어서니 한 대밖에 없는 구식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위쪽을 향하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갈라지는 느낌에 밖으로 나가서 커피를 사 올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인사를 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뒤돌아보니 지난달에 회사에 입사한 신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 성호씨. 주말 잘 보냈어요?”


류성호는 신입이어서 그런지 아직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네, 잘 보냈습니다!”


뭐 하고 보냈냐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안녕하십니까!”


돌아보니 안경태 대리가 서 있었다. 나는 안경태를 보자마자 보내준 동영상의 정체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튀었다.


“오, 성호씨! 이거 뭐야? 멋진데!”


류성호의 백팩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삼각형 펜던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달랑거리고 있었다. 펜로즈 삼각형 같은 건가?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아, 이거 지난주에 모임에서 받았습니다! 회 정기 모임에서 특별 행사를 수료하고 나면 원하는 오브젝트를 발급해 주거든요. 저는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서 받았습니다. 이 삼각형은 바리온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완전 멋지지 않습니까! 물론 더 멋진 일도 많은데 쉽게 말할 수가 없으니 조금 답답하네요. 아, 혹시 이유현 과장님이랑 안경태 대리님도 신규회 한 번 참여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정말 유익한 곳인데 한 번만 참석하고 나면 아마 제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상한 것 절대 아니고요. 참, 글로벌 기업 TB인터네셔날 아시죠? 글로벌 순위 6위인 기업인데 거기서 지원도 엄청나게 하거든요! 파트너십 같은 거라서 회에 가입한 사람들은 TB인터네셔날에 입사할 때 우대하는 조건도 있더라고요.”


나는 입사 이래 이렇게 말이 많은 류성호는 처음 봤다. 종교란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종교적 광기라는 것의 일면을 본 느낌이었다.


반면 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안경태 대리는 꽤 진지하게 ‘가입 조건’이라든지 ‘신규회’라는 게 무엇인지 ‘조직의 목표’ 등을 조목조목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이야기를 들으며 류성호가 회사에서도 저만큼만 하면 회사생활은 금방 씹어먹겠는 걸! 하고 생각했다.


“그럼, 따로 가입비 같은 것도 없고 신규회라는 행사 한 번만 참여하면 된다는 거야? 감사헌금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들은 필요 없다고? 진정, 리얼리? 아니 그러면 어떻게 단체가 운영이 되는 건데?”


“아, 기업체 후원과 회의 원로들의 공헌을 통해 성장하는 모임이라서요. 정말 신규회원은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그저 열심히 활동하는 거죠.”


구식 엘리베이터가 6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우리를 태우고 다시 올라갈 동안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안경태는 어떻게든 그 ‘회’라는 모임의 빈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곧 두 손을 들어버렸다.


- 띵. 6층입니다.


구식 엘리베이터는 도착한 후에도 한참 후에 문이 열렸다.

열림 버튼에 제일 가까이 있었던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버튼을 잡고 기다렸다. 열리는 건 느린데 닫힐 때는 정말 재빨리 닫히는 탓이었다. 마지막에 내리던 파란 넥타이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5년 동안 오가며 마주친 파란 넥타이는 옆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데 30대 초중반이고 결혼한 지는 6~7년 정도 됐다.


매일 마주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사소한 걸 꽤 알게 된다. 어떤 날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응, 아빠 금방 갈게!’ 하는 걸 보며 아이가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식이었다.


나는 파란 넥타이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오늘도 회사로 힘차게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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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23.05.31 51 5 12쪽
16 모두 사라졌다. 23.05.30 54 4 12쪽
15 여길 벗어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23.05.29 56 4 12쪽
14 뭐 하세요? 얼른 갑시다. 23.05.28 56 4 12쪽
13 뜻밖의 상황과 마주치고 말았다. 23.05.27 53 4 12쪽
12 좀비면 내리치고, 사람이면 내리친다! +1 23.05.27 58 4 11쪽
11 조심하세요! +2 23.05.26 54 4 12쪽
10 어우, 저 야망 덩어리 같으니! 23.05.26 60 4 12쪽
9 돌아가자. 23.05.25 57 4 11쪽
8 불안 요소는 하나도 남겨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23.05.24 60 4 12쪽
7 잠시만요! 같이 가요. 23.05.23 64 4 12쪽
6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23.05.22 71 4 11쪽
5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23.05.22 74 5 12쪽
4 이대로 23.05.21 85 5 12쪽
3 뛰는 대리 위에 날아다니는 과장님! 23.05.20 94 5 11쪽
2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23.05.20 103 5 12쪽
» 좋은 아침입니다! +1 23.05.19 17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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