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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칼로리 님의 서재입니다.

출근하니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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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텐칼로리
작품등록일 :
2023.05.19 20:00
최근연재일 :
2023.06.04 10: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44
추천수 :
96
글자수 :
119,604

작성
23.05.25 20:15
조회
56
추천
4
글자
11쪽

돌아가자.

DUMMY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이 되는 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닌 덕도 있지만, 초창기부터 연구소가 별도로 분리될 때까지 항상 믿고 따라와 준 사람이 안경태였다.


내가 6층을 정리하자고 말하자 안경태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말했다.


“아 뭐. 유현 과장님이 하자고 하면 그냥 하는 거죠. 그게 맞겠죠.”


안경태는 평소에 이것저것 깐깐하게 따지는 편이지만 목표가 설정이 되고 내가 결론을 내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생존을 위한 극한 상황에서 이렇게 믿고 따라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됐다.


나 역시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나는 다시 무기를 들었고, 사람들을 이끌고 문 앞에 섰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는지 덤덤한 안경태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 강삼래, 수심이 가득한 서문주를 둘러봤다.


내가 6층을 정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다.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안경태와 서문주와 강삼래도 역시 포함된다.


나는 아까부터 주야장천 강조했던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말했다.


“좀비는 보통 사람들보다 힘이 훨씬 세.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쳐. 자신의 힘으로 안 될 것 같아도 도망쳐. 주변 사람들 챙기지 마. 일단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 아무도 뭐라고 하지 마. 혼자라도 살아서 사무실로 돌아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거야. 알았지?”


내 말에 세 사람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늘어졌던 긴장이 다시 조여지고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복도 문을 열고 나오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시체가 썩고 있는 냄새였다.


다들 시체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대로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죽음에 굴복한 두 구의 시체를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파란 넥타이는 이제 다시는 딸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류성호 사원은 승진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드는 미래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부디 그 죽음이 좀비로 사는 삶보다 행복한 것이기를 나는 조용히 애도했다.


파란 넥타이가 매고 있던 카드키를 끊어 손에 들고 옆 사무실로 향했다. 내 뒤로 안경태, 서문주, 강삼래가 줄지어 따라왔다.


내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기를.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파이프를 강하게 그려 잡았다.




* * *




회계 사무소의 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사무실 안이 비쳐 보였다.

가만히 있기도 하고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어느 사무실의 평범한 풍경 같았다.


- 휴.


나는 숨을 한번 깊게 내 쉰 다음, 문이 열리는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으로 안경태, 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향에 서문주와 강삼래가 무기를 들고 섰다.


먼저 출입 방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 회사에서 쓰는 동그란 지문 방식의 출입 장치와 다르게 납작한 형태로 카드를 대면 열리는 출입 장치였다.


나는 일단 손에 들고 있던 카드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입구 문에 <해승 회계 사무소>라는 로고가 쓰여 있었는데, 그 틈새가 투명해서 사무실 안이 보였다.


내가 틈새로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는 그때, 그림자가 다가왔다.


“헉!”


강삼래가 자신도 모르게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가 바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 드르륵.


갑자기 불투명한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제길’


열린 문 앞에는 피 칠갑한 남자가 우리를 똑바로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 크악.


나는 좀비가 달려드는 순간 발로 밀어버렸다. 좀비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지만, 시차를 두고 또 다른 좀비가 뒤에서 달려들었다.


나는 안경태에게 바로 눈짓하고 달려오는 좀비를 향해 알루미늄 파이프를 휘둘렀다. 크게 타격은 없었지만 달려들던 좀비가 앞으로 고꾸라지듯 휘청였다.


팔꿈치로 좀비의 등을 찍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경태가 소화기를 들어 올리며 달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제일 처음에 넘어졌던 좀비한테로 달려들었다.


바둥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좀비의 목을 밟아 제압한 다음 알루미늄 바를 사선으로 입 안에 밀어 넣었다.

좀비가 알루미늄 바를 딱딱 깨물며 온몸을 비틀며 발광했다. 온몸에 힘을 실어 그대로 밀어 넣자 살갗을 뚫는 느낌이 들었다.


‘한 놈.’


뒤로 고개를 돌리자 안경태가 두 번째로 달려들었던 좀비를 소화기로 내려쳐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잠깐새 축축해진 땀을 닦아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사무실 중간으로 뛰어 들어간 강삼래의 모습이 보였다.


“야, 너 뭐해?”


안경태가 강삼래를 부르자 그가 ‘파밍은 기본’이라며 희희낙락하며 대답했다.


순간 떠오르는 불안감.

점심때 스치듯 봤던 회계 사무소 사람들은 총 4명이었다.


‘복도에서 파란 넥타이, 내가 죽인 놈 하나, 안경태 대리가 죽인 놈 하나. 총 세 명.’


그걸 떠올린 순간 나는 소리 질렀다.


“강삼래, 당장 나와!”


그와 동시에 시커먼 물체가 강삼래에게 달려들었다.


- 으악.


강삼래가 좀비와 함께 엉겨 붙으며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으악! 이거 놔! 도와주세요! 헬프미!”


요란을 떠는 강삼래와 좀비 사이로 알루미늄 바를 들이밀었지만, 심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바람에 계속 빗나가버렸다. 안경태는 소화기를 휘둘렀다가 강삼래에게 타박만 받았다.


“아, 씨발, 형! 나 죽이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알루미늄 바를 강삼래와 좀비의 틈새에 밀어 넣었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바로 몸에 힘을 줘 둘 사이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강삼래가 몸을 빼자, 밀려난 좀비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 씨발.


둘을 떼어놓으며 알루미늄 바가 떨어져 나갔고, 몸에 힘을 주고 있던 터라 자세가 어정쩡했다. 나는 그대로 좀비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그때 머리 위로 검은 물체가 떨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팔을 휘둘러 좀비의 안면에 타격을 주고 옆으로 굴렀다. 다시 기어오르는 좀비를 발로 차 검은 물체 쪽으로 보내버렸다.


- 쿵.


서문주가 떨어트린 검은색 모니터가 좀비의 안면을 강타한 순간 안경태가 튀어나왔다.


- 후, 하, 헉, 헉.


순식간에 긴장된 상황에 모두가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고 있을 때, 좀비의 머리에 소화기를 찍어 내리며 마무리한 안경태가 씩씩거리며 강삼래의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씨발아! 안전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뛰어 들어가면 어떡해!”


안경태가 버럭 화를 내자 강삼래가 안경태의 손을 풀며 구시렁거렸다.


“아, 진짜 형은 또 나만 갖고 그래, 뭘. 필요한 거 있으면 빨리 살펴보고 나가려고 했죠. 아포칼립스에서는 파밍이 생명이잖···.”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궜다.


“휴. 그래도 잘못한 건 아니까 됐다. 제발 정신 좀 챙기자!”


강삼래를 타박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서문주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서문주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문주씨, 나이스!”

“과장님, 제가 두 번 구해줬습니다!”


왠지 엄청나게 뿌듯해하고 있는 것 같아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우리는 복도에 있던 파란 넥타이와 류성호의 시체를 회계 사무소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창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 두두두두두두두.


강삼래가 후다닥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깜빡거리는 빨간 불빛이 보였다.


“헬기다!”


강삼래의 목소리에 다들 창문 앞으로 몰려갔다. 건너편 어디선가도 헬기를 봤는지 곳곳에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우리, 우리 이제 살았다!”


서문주가 기뻐서 방방 뛰었고 강삼래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팔을 크게 흔들었다.


맞은편 빌딩에서는 어떤 여자가 고함을 질러댔지만 이내 헬리콥터 소리에 파묻혀버렸다.


‘여기서 소리를 질러봤자 들리지 않겠네.’


나는 밖으로 내달렸다. 내가 뛰어나가자 안경태와 서문주가 덩달아 따라 뛰었다.


“어? 뭐에요? 같이 가요!”


강삼래는 결국 창문에 몸이 끼어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흘깃 바라본 후 그대로 옥상까지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근처를 날았던 헬리콥터는 먼 곳으로 작아져 갔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뭔가 눈앞에 1등 로또 복권이 떨어졌다가 누군가 주워간 기분이었다.

우리는 멍하니 헬기가 사라진 방향만 쳐다보았다. 옆에서 있던 안경태가 자조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강남 쪽이네요.”

“후, 그러네. 저긴 뭐가 있길래.”

“많죠. TB인터네셔날 한국 지사, 삼성이 있고, 삼성 생명, 화재, 동부그룹 계열 금융사들···.”

“다 대기업이네.”

“아! 문피아도 강남에 있어요!”

“······.”


우리는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휴. 과연 이런 작은 빌딩까지 구조대가 오겠습니까?”


강삼래가 말을 꺼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인생도 직업도 회사도. 왜 우리는 항상 우선순위가 밀리는 걸까. 입 안이 씁쓸해졌다.


아니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

헬기가 다닌다는 것. 지금 이 사태가 알려지고 누군가 구조활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꼬마빌딩에도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로 했다.


내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달리자 다들 ‘어?’하면서 우르르 따라왔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A4 용지 상자를 챙겨 들었다. 그걸 보던 안경태가 바로 테이프와 가위를 챙겼다. 서문주도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보드마카를 챙겨 들었다.


“아이 뭔데!”


뒤늦게 따라 들어온 강삼래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소리쳤지만 다들 무시하고 옥상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 바닥에 A4 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 SOS 만드는 거!”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강삼래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안경태는 테이프를 뜯어 나에게 건넸고 나는 그걸 받아 A4 지를 바닥에 붙였다. 서문주는 A4 용지 한 장 한 장에 ‘도. 와. 주. 세. 요!’를 여러 개 쓴 다음 난간 이쪽저쪽에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콥터 한 대가 날라왔다. 서문주와 강삼래가 옥상 이곳저곳을 방방 뛰며 헬리콥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무심하게 우리를 지나쳤다. 헬기가 내려간 곳은 가까운 곳에 있는 GS 빌딩이었다. 아래쪽에서 보이지 않아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를 태웠는지 양재 쪽으로 다시 날아 가버렸다.


그 이후로 우리가 있는 역삼역 방향으로 날아오는 헬기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해가 지고 시꺼먼 허공이 거대한 빌딩들을 물들였다. 우리는 그림자처럼 옥상에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궐련형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고개를 돌려 도로를 내려다보니 하얀 안개가 넘실거렸다. 이제는 도로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소리치던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갔던 것 같던데 괜찮을까? 혼자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처럼 누군가와 서로 푸념하고 있을까.


안개는 어느새 4층 정도까지 올라와 있었다. 안개 사이사이로 불쑥 솟아나 있는 빌딩들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나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던지고 뒤돌아섰다.


“돌아가자.”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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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좀비면 내리치고, 사람이면 내리친다! +1 23.05.27 57 4 11쪽
11 조심하세요! +2 23.05.26 54 4 12쪽
10 어우, 저 야망 덩어리 같으니! 23.05.26 60 4 12쪽
» 돌아가자. 23.05.25 57 4 11쪽
8 불안 요소는 하나도 남겨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23.05.24 60 4 12쪽
7 잠시만요! 같이 가요. 23.05.23 64 4 12쪽
6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23.05.22 71 4 11쪽
5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23.05.22 73 5 12쪽
4 이대로 23.05.21 85 5 12쪽
3 뛰는 대리 위에 날아다니는 과장님! 23.05.20 94 5 11쪽
2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23.05.20 103 5 12쪽
1 좋은 아침입니다! +1 23.05.19 167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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