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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칼로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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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텐칼로리
작품등록일 :
2023.05.19 20:00
최근연재일 :
2023.06.04 10: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46
추천수 :
96
글자수 :
119,604

작성
23.05.22 08:25
조회
73
추천
5
글자
12쪽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DUMMY

“과장님! 피하세요!”


서문주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박 대리의 배를 무릎으로 차올렸다. 박 대리의 몸이 움찔하는 그 찰나의 순간 팔에 힘을 풀었다.

아래를 향해 온 힘을 다하고 있던 박 대리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고 나는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굴렸다. 곧바로 시커먼 물체가 위에서 떨어졌다.


- 퍽.


떨어진 컴퓨터 본체가 박 대리의 머리에 부딪혀 튕겨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박 대리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고개를 드니 서문주 사원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서문주가 떨어트린 컴퓨터 본체가 나뒹굴었다. 사무실에서 제일 무거운 본체를 쓰는 김 부장의 컴퓨터였다. 얼마나 힘껏 떨어트렸는지 박 대리의 머리가 뭉개져 바닥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다가온 안경태가 굴러다니던 회사 창립 기념 티셔츠를 하나 내밀었다.


“과장님, 이걸로라도 닦으세요.”


티셔츠를 받아들고 팔과 얼굴을 닦았다. 몸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넥타이는 언제 끊어졌는지 남은 끈 쪼가리만 목에 덩그러니 걸려있었다. 긴장이 풀어졌는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티셔츠로 대충 몸을 닦고 있자 안경태가 안경을 한쪽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질문을 해왔다.


“혹······시 어디 물리신 거 아니죠?”

“어? 어. 물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일단 과장님 잠시만, 저기 소장실에 들어갔다 나오세요. 한 30분? 조금 있다 부를게요.”


나는 안경태에게 떠밀리듯 소장실로 들어갔다.


소장실 문이 닫히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벽에 있는 시계를 쳐다보니 3시 5분 전이었다. 점심 먹고 겨우 1시간이 지났는데 아주 오래된 일 같이 느껴졌다.


잠시 멍하니 시계만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업무 시간 중에 두 사람의 사망.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당장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지 않을까?


김 부장은 죽었던 걸까? 사실 천운으로 동맥이 다친 게 아니라서 살아있었던 게 아닐까? 박 대리를 죽인 건······컴퓨터 본체니까, 사고인 거로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그건 사고였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벌인 피치 못할 사고.


연구실 책임자는 백운태 소장이지만 이 상황에서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김 부장의 생사도 모호하고 정 과장은 신혼여행 때문에 휴가 중이다. 현재 사무실에서 이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어차피 김 부장을 때린 것도, 박 대리와 싸운 것도 모두 내가 한 일이다.


‘안경 대리는 내가 끼어들지 말라고 했으니까 크게 문제없겠지. 문주씨는······내가 위험해서 도와준 거니까, 정상참작이 될 거다.’


‘두 사람은 죽은 걸까?’


좆같은 김 부장의 얼굴과 박 대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 욱.


갑자기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구역질이 나 그대로 바닥에 토해냈다. 속에 있는 걸 다 게웠지만 계속 뭔가가 속에서 올라오는 것 같아 한참을 게워냈다. 나중에는 노란 액체만 나왔다. 목이 따끔거렸다.


머릿속에서는 상황정리가 끝났지만, 감정이 계속 널을 뛴다. 감정적으로 자꾸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말을 하지?’


그래도 남들한테 이야기 듣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주는 게 낫겠지.


일단 아내에게 전화하자. 그전에 장인어른한테 전화해야겠다. 결혼하고 싶다고 찾아갔을 때도, 소방관을 그만두고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IT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할 때도. 부족한 사위를 믿어주고 지지해준 든든한 어른이었다.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아, 그전에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부터 해야 할까······.’


모르겠다.


아침에 자는 꼬맹이는 깨워서 얼굴이나 보고 나올 걸 그랬다. 아빠만 보면 등 뒤로 기어오르는 꼬맹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길게 늘어지던 생각이 끊어졌다.


“과장님?”


안경태가 소장실 문을 살짝 열었다.


“어··· 어? 어! 왜?”

“괜찮으세요?”

“어, 괜찮지는 않은데, 일단 경찰에는 전화했어?”


유현의 물음에 안경태가 다시 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일단 나오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김 부장과 박 대리가 아무렇게나 늘어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죽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죽어 시체가 됐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 주검이 됐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사무실 곳곳에 피가 튀어있었다. 사무용품들이 흡사 폭풍이라도 지난 것처럼 엉망이었다.


- 휴.


넥타이가 없는데도 목 언저리가 답답해졌다.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안경태가 다가와 생수를 들이밀었다.


“일단 드세요.”


물을 보자마자 엄청난 갈증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생수를 받아들고는 500mL 생수병을 그대로 비워버렸다. 물을 마시고 나니 속이 풀리는 기분. 이제 망설임은 없었다. 이제 책임을 질 시간이다.


“안 대리, 경찰에는 전화했어?”


안경태 옆에 있던 서문주가 먼저 대답했다.


“112도 119도 다 전화가 안 돼요.”


의아했다. 왜 아직 연결되지 않지? 아까부터 전화하지 않았나?


일단 범죄자의 신분이니까 경찰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벗어나지 말자. 아니다. 지금 연락이 잘 안 되는 상황이니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다. 경찰서로 찾아가서 자수하자. 정상참작이 되겠지. CCTV는 없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다 보면 정상참작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후 터벅터벅 입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그때 갑자기 안경태가 내 앞을 막아섰다.


“과장님, 어디 가세요?”

“어? 아니. 그, 미안하다. 현장을 이탈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경찰서로 바로 갈게.”


안경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내심 안경태라면 같이 가겠다고 말을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나 보다.


“어, 제 생각에는 말이죠 과장님. 이게 아무리 봐도 사람이 아닌 것 같거든요?”


응? 사람이 아니라니?


“제가 과장님 들어가시고 나서 김 부장님을 좀 살펴봤는데요, 김 부장님은 이미 죽어있었어요. 목이 뜯겨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된 사람이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제가 입을 닫게 하려고 했는데 딱딱해서 닫히지 않더라고요. 잘은 모르겠는데 그거 사후경직 아닌가요? 제가 알기로 사후경직은 죽은 지 2시간 정도 돼야 나타나는 거거든요. 뭐 어차피 온도에 따라 다르다 치고, 여기가 좀 더웠지만. 그래도 일단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는 거죠. 그렇다는 건 과장님한테 달려들었을 때 이미 죽은 상태였다는 거죠. 죽은 사람을 죽이면 시체훼손죄? 사자명예훼손죄? 하여튼 모르겠는데, 죽은 자가 먼저 공격해서 반격한 거니 그것도 일단 문제가 없다는 거죠.”


안경태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서문주가 다시 물병을 들이밀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물병을 받아서 다시 꿀꺽꿀꺽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빠르게 정리됐다.


‘이미 죽어있었다라······.’


아까 전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렸다. 속에서 뭔가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 보니, 김 부장이 엄청나게 차가웠었다. 마치 시체처럼.


“최 대리가 김 부장을 물었죠. 그리고 5분 정도 있다가 김 부장이 이상하게 변했어요. 그리고 바로 박 대리를 물었죠. 박 대리도 5분 정도 있다가 이상하게 변했고 바로 과장님한테 달려들었고요. 혹시 뭔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요?”


물리면 안 된다. 물리고 나서 변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짐승 같았다. 죽은 사람이다. 이건 마치······.


“정답! 좀비!”


옆에 서 있던 서문주가 한쪽 팔을 위로 쭉 뻗으며 외쳤다.


“빙고! 아무리 봐도 좀비 같다는 거죠.”


안경태의 안경알이 빛나고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서문주가 옆에서 뿌듯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좀비라고?”


그래도 그렇지, 좀비라니.

생각을 정리했다.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일어난 일과 사실확인이 된 부분을 제거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고 나니 말도 안 되는 명제가 명확하게 보였다. 물론, 영화가 아닌 실제상황이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 혹은 지금 상황에서 뻔뻔한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좀비라······.”


좀비라고 가정하면 모든 게 말이 된다.


‘물리면 감염이 된다라···.’


생각이 꼬리를 물다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그럼 최초 발현자가 최지열 대리인 건가? 최지열 대리는 어디서 물려온 걸까? 최지열 대리는 5분 넘게 변하지 않았다. 그건 왜 그런 거지?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표본이 적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물리면 변한다. 변한 후에는 미친 듯이 다른 사람을 물어뜯는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는 급하게 스마트폰을 찾았다.

이게 서브컬쳐에서 흔히 말하는 ‘좀비’라면 몇 가지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저기 떨어져 있던 걸 제가 챙겼어요.”


나는 서문주가 건넨 스마트폰을 받자마자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 소리 없이 ‘뚜뚜뚜’ 소리만 나다 끊겼다. 119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사태가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그래서 전화가 몰려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거라면. 미심쩍던 생각이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일단 밖에 나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해.’


내가 밖에 나가려고 문 쪽으로 걸어가자 서문주가 앞을 막았다.


“나가지 마세요!”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자 서문주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밖에도 같은 상황이에요!”



* *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시체부터 치우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체와 계속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시체가 부패할 때 생기는 박테리아가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도 있었지만, 좀비로 변했던 시체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논의한 후 사무실에서 분리된 공간에 시체를 두기로 했다. 사무실에 분리된 공간은 소장실과 회의실 두 곳. 회의실에는 최지열 대리가 갇혀 있었기에 소장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바닥에 내가 뱉어낸 토사물이 보였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수건으로 토사물을 덮어 닦았다. 김 부장의 다리를 잡고 소장실로 밀어 넣었다.


안경태와 서문주가 나섰지만 두 사람에게는 사무실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일단 내가 벌인 일은 내가 수습하고 싶었기도 했고 두 사람에게 손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손만 더럽히면 될 것 같았다.


김 부장과 박 대리의 시체를 나란히 눕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나중에 꼭 깨끗이 마무리해드리겠습니다.’


안경태와 서문주는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정리했다. 세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1시간이 안 돼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 보던 안경태가 급하게 자신의 자리로 가더니 우리를 불렀다.


“다들,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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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23.05.22 74 5 12쪽
4 이대로 23.05.21 85 5 12쪽
3 뛰는 대리 위에 날아다니는 과장님! 23.05.20 94 5 11쪽
2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23.05.20 10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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