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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칼로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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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텐칼로리
작품등록일 :
2023.05.19 20:00
최근연재일 :
2023.06.04 10: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455
추천수 :
96
글자수 :
119,604

작성
23.05.20 11:05
조회
103
추천
5
글자
12쪽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DUMMY

UGI 시스템 연구소는 IT 개발 연구소다. 원래 본사와 같이 있었는데 여러 복잡한 이유로 본사가 경기도 쪽으로 이전하면서 연구소만 개발인력 수급 문제로 그대로 역삼동에 남았다.


누군가 창문을 열어뒀는지 서늘한 아침 공기가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자리에 앉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네, 이유현입니다!······ 아, 강 소방사님! 네, 네······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아무래도 데이터 서버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저희 직원을 그쪽으로 보내서 우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리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눈앞에 안경태 대리와 최지열 대리가 다가와 있었다.


이미 테스트 완료된 개발 프로그램이었고 서버 QA 관련된 문제만 업데이트하고 오면 되는 간단한 일인 걸 깨달은 두 사람이 눈을 반짝거렸다.


나는 두 사람을 못 본 척 의자에 걸어둔 겉옷으로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안경태가 다급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과장님, 동작 그만! 겉옷 빼지 않습니다!”


나는 목을 한번 긁어낸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증거 있어? 내가 겉옷 입으려고 했다는 증거 있냐고!”

“하, 증거? 증거 있지. 이 과장님은 이 일이 1시간 만에 끝난다는 걸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목적지인 강남 소방서까지 왕복 40분. 하지만 점심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었겠죠. 덤으로 오늘 주간 회의는 들어가지 않고요. 이거 아닌가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려는 거에 오늘 점심 회식에 야근 건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우리 두 사람의 치열한 외근 전쟁을 보던 최지열 대리가 ‘아, 또 시작이네’하는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아 참. 최 대리! 여기선 중간에 치고 들어왔어야지!”


안경태가 최지열에게 화살을 돌렸고 최지열은 진짜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 진짜. 두 분 친한 건 알지만 회사에서 자꾸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하하 그리고 저 이런 거 못 한다고 매번 이야기해 드렸잖아요. 두 분 중의 한 명 다녀오세요. 제가 주간 회의 내용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고하겠습니다.”

“하, 김샌다. 김새.”


안경태는 장난을 그만두고 다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안경태를 무시하며 최지열 대리에게 외근을 다녀오라고 전했다.


“아하하. 안 대리님이 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안돼. 안 대리는 서버 쪽 내부 지원해야 해. 그거 안 대리 말고 다른 사람이 건들면 좀 피곤해져.”


내 말에 안경태가 배신감 느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와, 과장님, 진짜 이런 식인가요? 하, 노린 거네 노렸어. 우리 이 과장님은 저 없으면 심심해서 회사 어떻게 다닐까 모르겠어요.”


최지열 대리를 보내고 우리는 낄낄거리며 커피 한 잔씩 뽑아 들고 6층 바로 위 옥상으로 향했다.


“이야, 오늘 날씨 좋네요!”


나는 안경태 대리를 따라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무척이나 맑게 느껴졌다. 아침 내내 찌뿌둥하던 몸이 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때요? 그거 봤어요? 완전 죽이죠?”

“어, 완전!”


안경태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오르기를 잠시.


“완전, 잠 설쳤거든!”


내 말에 안경태는 그제야 ‘하, 안 통했네’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어느새 10년. 안경태 대리는 내 첫 부사수였다.


“하, 과장님. 제가 이 회사 6년 됐잖아요? 신입으로 들어와서 진짜 과장님 밑에서 개고생했는데, 그래도 초창기에 10명 있을 때 들어와서 회사가 점점 커가니까 같이 성장하는 기분? 그런 것도 생기면서 꽤 뿌듯하기도 했거든요. 뭐, 애사심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이지 제가 이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더라고요. 오늘도 진짜 회사 나오기 싫던데요. 아침에 눈 떴는데 그냥 확 쨀까? 이랬다니까?”


요즘 연구소 분위기가 안 좋은 탓에 안경태가 이직을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나는 궐련형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깜빡거리던 불빛이 켜지고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나도 이직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저 한숨만 쉬었다.


“하, 진짜 과장님만 아니면 바로 때려치우고 보는 건데! 아닌가? 과장님 때문에 못 벗어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안경태 말을 바로 정정했다.


“응, 그건 나한테 책임 전가하는 거고. 내가 안 대리 아끼지만, 미래까지 책임을 질 순 없는 일이고.”


안경태는 ‘에이, 이건 이제 안 통하네.’ 하며 구시렁거렸다.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로가 희미하게 보였다.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차량 등의 희미한 불빛만 안개 속에서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한가?”


난간에 기대 하늘을 보고 있던 안경태가 돌아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 그러네요.”

“근데, 이상한데? 미세먼지가 저렇게 밑에만 깔리나?”

“이게 다 중국발이라서 그렇죠. 뭐. 미세먼지에 중금속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까짓 게 위로 가겠어요? 밑으로 가지?”


자동차가 움직일 때마다 안개가 출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안개 속에 솟아난 고층 건물들이 오늘따라 위태해 보였다.




* * *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 문을 여는데 어디선가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저건 백 퍼센트 김 부장이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나는 평소보다 좀 더 힘주어 인사를 했다. 늘 그렇듯 김 부장은 나를 본체만체하면서 안경태에게 바로 잔소리를 시전했다.


“안경태 대리, 아침부터 업무 준비는 안 하고 뭡니까?”

“아이고, 부장님. 아직 업무시간 되려면, 어디 보자···15분 남지 않았겠습니까? 업무시간 전에 이렇게 풀어줘야 업무효율도 높지 않겠습니까. 부장님,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안경태는 슬그머니 김 부장을 탕비실로 끌고 갔다.


창문을 닫았는지 사무실 안이 왠지 후끈거리는 것 같았다. 넥타이를 맨 목 언저리가 괜스레 갑갑해졌다.


-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몇 달 전 인맥으로 들어온 김 부장은 연구소 소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야망을 위해 자기 영향력을 늘리려고 하는 건 알겠지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위로 찍어 내리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본질을 피해 꼬투리를 잡는 그 행태는 지저분했다.


‘하, 돌겠네.’


몸을 쓰며 일할 때는 사무직이 그렇게 안정적이고 좋아 보였는데, 막상 사무직이 되니 이건 이거대로 참 피곤한 일이었다.


후루룩거리며 커피를 마시던 김 부장은 큼큼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를 지나치는 안경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옆 머리를 긁적여 줬다.


연구소 책임자인 백운호 소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소장실로 향했다. 내 뒤를 따라 김 부장이 들어왔다.


“소장님, 아침에 강남 소방서에서 연락이 와서 최지열 대리가 외근 나갔습니다. 전자 서류는 방금 올렸습니다.”


내 보고를 듣던 김 부장이 바로 딴지를 걸었다.


“이봐, 이 과장. 그런 일 있으면 윗사람에게 보고부터 하고 진행을 해! 하 참. 이렇게 프로세스가 엉망이어서야.”


휴. 그래서 보고를 하고 있는 건데 어쩌란 건지.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가슴을 비집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UGI 시스템 연구소는 팀 단위로 업무를 진행하고 현재 개발 완료된 소방 요구조자 GIS 활용방안 연구는 내가 입찰하고 구성한 TF팀 연구 과제다.

김 부장의 저 말은 자신이 더 윗사람이니 자신을 통해서 하라는 것이고 우리 프로젝트에 조금이라도 숟가락을 올리겠다는 말이다.


‘이걸 지금 뒤집어, 말아?’


김 부장이 들어오고 몇 번의 난장이 벌어지고 나서 나는 ‘사직서’를 출력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요즘에는 전자 서류로 처리를 해서 그럴 필요는 없지만 퇴사할 때 김 부장의 면상에 던져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던져볼까?’


바로 집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아, 네. 김 부장님.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점검할 사항이 있다면 아무리 급한 건이라도 바로 연락드리고 아무리 부장님이 출근하지 않았더라도 선보고 후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반발하던 내 태도가 바뀌자 김 부장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 부장의 말꼬리 잡기는 주간 업무 회의 시간까지 이어졌다. 업무 현황 및 보고 하나에 김 부장의 딴지 두세 개가 얽혀든다.

회의는 지지부진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앞에 놓인 서류에 얼굴을 박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백운호 소장만 골이 지끈거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회의가 끝나니 12시 반.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나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우리 팀원들만 데리고 후다닥 사무실을 나왔다. 제발 밥은 편히 먹고 싶었다.




* * *




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현관 밖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다들 ‘오, 이게 뭐야.’라며 현관 앞까지 다가갔다.


원래 점심시간 때의 강남은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거려야 하는데 하얀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사람이 앞에 있어도 모를 것 같았다.


“우와. 과장님, 이 정도면 가시거리가 거의 10cm도 안 되겠는데요?”


안경태의 말에 뒤쪽에 있던 강삼래 사원이 깐죽거렸다.


“안경 대리님. 가시거리가 10cm면 한 치 앞도 안 보인다는 거죠?”

“야, 무슨 심 봉사냐. 한 치 앞도 안 보일 순 없지. 이 정도면 그냥 자기 손도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이내 안경태 대리와 강삼래 사원이 툭탁거렸다. 허구한 날 저렇게 툭탁거리는 두 사람이라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가야 하나? 나갔다가 괜히 사고라도 생기면 큰일이겠는데.’


나가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안개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저 안에 있긴 한 걸까?


한참 안개를 보고 있으니 아침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안개는 왠지 껄끄럽게 느껴졌다. 빽빽하고 밀도 높은 안개가 사람들을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그때, 눈앞으로 텔레포트 하듯 갑자기 네 사람이 문 안으로 나타났다.


- 아이고! 이게 어찌 된 게 바로 눈앞도 안 보이네. 아까 나갈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요?

- 그러니까요. 아까, 최 선생님이랑 부딪힐 뻔했잖아.


네 사람 중 제일 끝자락에 서 있는 파란 넥타이가 보였다.


‘6층 회계사무소 사람들이네.’


그 뒤를 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십여 명 나타났는데 서로 손을 잡고 들어오고 있었다.


- 꺅. 언니! 손 놓지 마.

- 나 진짜 하나도 안 보여!

- 어머, 어머! 조심해요! 넘어지겠다!”


전부 다 여자 직원인 거로 봐서 5층에 있는 보험사 CS팀 사람들 같았다.


“과장님, 이거 나가기 영 그런데요?”


결국 우리는 2층 식당으로 방향을 돌렸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아 여기 식당 정말 맛없는데’ 하며 툴툴거렸다.


2층 비상계단을 나가니 눈앞에 한의원 입간판이 보였다. 한의원이 개원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었고 인테리어 공사 자재들이 복도에 나와 있어 불편했는데 앞쪽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오, 드디어 여기가 문을 여는군요!”

“오, 안 그래도 요즘 어깨가 결렸는데, 하여튼 제가 1빠입니다.”

“어허,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에이, 그럼, 저기 유현 과장님이 먼저죠. 대리님이 위는 아닌 듯?”

“그러거나 말거나. 삼래씨는 제일 아래인 듯?”


서로 오픈 날 먼저 오겠다며 안경태와 강삼래가 툭탁거렸다.


그건 한의원에서 정하지,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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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좀비면 내리치고, 사람이면 내리친다! +1 23.05.27 58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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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잠시만요! 같이 가요. 23.05.23 6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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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23.05.22 74 5 12쪽
4 이대로 23.05.21 85 5 12쪽
3 뛰는 대리 위에 날아다니는 과장님! 23.05.20 95 5 11쪽
»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23.05.20 104 5 12쪽
1 좋은 아침입니다! +1 23.05.19 17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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