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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룡 님의 서재입니다.

군웅천하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딕울프
작품등록일 :
2012.11.25 07:17
최근연재일 :
2012.12.03 06:0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295
추천수 :
30
글자수 :
36,835

작성
12.12.03 06:06
조회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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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군웅천하전 (2장) 고구려 소년 # 2

반갑습니다




DUMMY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비록 어린 나이라고 해도 기억이 들어선 아잇적부터 수나라 잔당에게 잡혀오던 그 시각까지, 소년은 주마등같은 제 평생의 일들을 천천히 보듬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오롯이 꿈일 뿐이었다.


오후 무렵, 천천히 눈을 뜨자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두옥(斗屋)에 누워있는 자신을 느꼈다. 대단한 궁궐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집의 모양새는 그야말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어디선가 그르릉 하는 호랑이의 식전 포효가 들려왔다. 아마도 심산유곡임을 뜻하는 바일 게다.


소년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아이들을 찾았다.


“일려야! 두웅아! 서진아!”


아직 몸을 추를 수가 없는 상태에서 소리를 쳤으니 소년의 목소리는 크게 울려 퍼지지 못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추슬러 밖을 나왔다. 아직 이내가 깔리기 전 이건만 사방은 이미 어둑했다.


“얍, 얍!”


식별이 곤란했지만 소년이 바라본 것은 분명히 일려와 두웅이가 목검으로 장난스럽게 승부를 겨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옆으로 예쁘장한 소녀 서진이가 괴석 몇 개를 모아놓고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을에서라면 매일같이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헌데, 소년의 눈으로 주르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우리 새끼들, 잘 놀고 있었느냐!”


소년이 마침 일려를 부르려던 찰나, 어둑한 숲섬을 뚫고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왼 손으로 토끼 두 마리 그리고, 오른 손엔 꿩 네 마리가 들려있었다.


북방 국내성 경계에 터를 세운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냥에 익숙한 부족이었다. 그 영향 탓인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초목채벌보다는 사냥에 익숙했다. 고로 들짐승, 산짐승 할 것 없이 아이들은 육식을 먹고 자라 주변마을 또래 아이들보다 두서너 살은 많아 보일만큼 건장했다.


그런 아이들이 끌려오는 동안 맛 본 고기라면 뼛조각에 붙어있던 여남은 살점이 전부였던 것이다.


노인의 손에 들린 토끼와 꿩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익숙한 듯 노인에게로 달려 나갔다.


저마다 한 마리씩 조막한 손에 쥐어들고 노인의 앞장을 서면서 껑충껑충 뛰는 것이 여간 천진만한 것이 아니다. 허나 아이들의 부모는 잔당의 악랄한 창칼에 주검이 되고 말았으니 저 미소 뒤에는 천애고아라는 암울한 미래가 응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주변에 마른 가지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아직은 불을 피울 수 없는 나이인지라 세 아이 모두 물끄러미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불을 지펴달라는 무언의 눈망울이었다. 노인은 백발설염(白髮雪髥)을 넉넉한 시간을 두고 어루만지며 인자한 미소를 내어 보였다.


“오냐, 오냐. 고 녀석들. 곧 불을 피워서 맛있는 토끼고기랑 꿩고기를 해 먹자꾸나!”


아이들은 온통 신나하는 모습이다. 그와 반대로 소년은 고문처럼 각인되어 있는 며칠간의 격통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어났는가?”


그 격통의 화살은 노인에게로 향했다. 마을사람들을 말살했던 수나라의 장군을 살려두었으니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성은 있었다. 실로 믿기지 않는 무공의 소유자가 아닌, 한낱 궐공한 노인인 뿐이었다면 복수는 고사하고 자신의 육신조차 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은인도 아니오, 원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린 소년은 닥치는 대로 무기를 집어 들었다. 무기라고 해봐야 조잡하게 얽어 만든 사냥용 철퇴뿐이었다.


소년이 곧 철퇴를 집어 들고 노인에게로 빠르게 뛰어갔다.


“왜 살려두었느냐?!”


그것이 자신을 말하는 것인지, 문백주를 지칭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노인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노인은 아이들을 슬그머니 자신의 뒤로 뺐다.


그 인자한 풍모 속에서 순간적이나마 잔인한 눈빛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달려 나오던 소년이 이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노인은 아무 동작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거대한 태풍에 밀려난 듯 튕겨졌던 것이다. 잠시 후 주변의 숲이 요동을 쳤다. 노인의 공력이 밀고 간 자리로 숲이 뒤늦게 반응한 것이다. 실로 인간의 능력이라 볼 수 없었다.


소년은 분하지만 참아야했다. 더군다나 노인의 곁으로 천진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때 서진이가 달려 나왔다. 이제 막 다섯에 접어든 발음조차 성숙하지 않은 여아였다.


허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만큼 곱디 고운 자태를 숨기고 있었다.


“오빠, 많이 아파?!”


노인의 손속이 없었으니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달려오다 넘어진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일려와 두웅이도 달려 나갔다. 그럼에도 제 손에 들려있는 토끼와 꿩은 놓지 않았다.


주춤했던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소년이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일려야, 두웅아, 서진아. 다들 괜찮아?”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노라고 답했다.


소년이 아이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노인의 기품 있는 발걸음이 어느새 소년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보게, 그 놈의 노기와 분노는 잠시 거두시게. 아이들부터 먹이고 살려야하지 않겠는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은혜가 될지, 원수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임했다간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는 위치로 흩어질 것이 뻔했다.


숲 속의 밤은 금새 찾아왔다. 모닥불이 지펴지고 고기가 익어가자 여기저기서 산짐승들의 음산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서진이는 와락 노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노인은 생각지도 않게 아이가 달려들자 품에 보듬으며 행복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우리 여동께서 많이 놀랐구나. 괜찮느니라. 여기 산짐승들은 이 할아버지한테는 덤비질 못하니까 염려 푹 놓거라.”


노인은 아이의 귀밑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제 자식 다루듯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런 모습이 마땅치 않았는지 소년의 눈빛이 차가운 서리처럼 흔들렸다.


노인은 그런 소년을 보면서 말했다.


“괜찮으이. 이 늙은이가 어찌 아이를 해하겠느냐. 이토록 아름다운 소녀는 내 평생에 본 적이 없어 잠시 넋이 나가있을 뿐, 소년영웅께선 걱정하지 마시게.”

“소년영웅이라 부르지 마시오. 난 영웅도 아니고 되어본 적도 없소. 수나라 개들에게 모진 핍박과 치욕을 당한 고구려의 백성일 뿐이오. 한이 되지만 어쩌겠소?!”

“허허, 어찌 싸워 이겨야만 영웅인가. 여기 이 어린 옥동(玉童)들을 구해내지 아니했는가. 게다가 하나도 버거울 판인데 셋이나 구했으니, 그대가 영웅이 아니면 게 누가 영웅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스운 말일랑 집어치우시오. 짐승들도 제 새끼는 챙기는 법,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내가 키우다시피 했던 아이들이니 지키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 아니오?”

“허허, 선행을 그저 당연하다하니 그대의 어리석은 행동과 달리, 마음은 보살이지 않은가?”

“자꾸 그런 미사여구로 꾀지 마시오. 나를 방심케 할 작정이라면 통하지 않을 것이오.”

“허허, 드시게. 얼른 기운을 차려야 방심케 해도 대응을 할 수 있을 터이니……”


그는 두옥 주변을 정리하고는 뒷짐을 진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교교한 달빛이 녹림을 운휴한 빛으로 물들였다. 아이들의 얼굴도 근심이 사라져 그저 노닐고 때 묻히기 좋아하는 아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달포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노인은 중후한 내력을 숨긴 채 그저 평범한 노존의 삶을 이어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의 식사를 위해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산짐승을 살생한 것이다.


그들의 억심(-心)이 곁들어진 공동생활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소년의 행동이었다. 처음 경계와 분노, 그리고 복수다짐으로만 점철된 소년의 모습이 점점 유순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고난의 과거가 언제였냐는 듯 점점 지나간 일들을 잊어갔다.


오늘도 일려와 두웅이는 열심히 목검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서진이는 할아버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손녀와 할아버지의 관계처럼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서진이는 항시 노인의 품으로 자신의 조그만 몸을 숨기곤 했다. 그런 모습에 노인역시 잠소(潛笑)로 답하곤 했다.


많이 유순해진 소년이었다지만 아직 아이들처럼 노인과의 살가운 거리감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소년을 불렀다.


“현비야! 게 바쁘지 아니하면 잠시 이리 오너라.”


한창 계곡물에서 아이들과 소양어를 낚던 소년이 노인의 부름에 하던 낚시를 아이들에게 맡긴 채 물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시선에 둔 채 그리 멀지 않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부르셨습니까, 어르신.”


노인은 인자하지만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 덧 맹춘, 중춘, 계춘, 이 삼춘(三春)이 지났구나!”

“신세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세라…….”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치켜뜨며 멀리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홀로된 노인의 벗이 되어준 것이 신세라고 한다면 내 천 번, 만 번의 은혜를 입은 셈이로구나.”

“아닙니다, 어르신. 저희 어린 것들을 거둬주셔서 진심으로 감대하고 있으니 부디 오해하지 마십시오.”

“각설하고, 내 심중의 말을 꺼내겠다.”

“이르십시오.”

“너는 어찌 본심을 숨기고 있느냐. 낮이고 밤이고 소로에서 맞부딪혔던 장군에 대한 복기가 남아있을 터인데, 어찌 드러내지 않는 게냐?”


현비는 다소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동공이 커졌다.


“걱정 말거라. 늙으면 다른 것은 다 쇠하여도 원경에 비추는 것만큼 또렷이 사람의 속내가 보여 지니 내 어찌 너를 모르겠느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노인은 현비가 말을 이을 때까지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아직은 청년의 몸도 아니오, 어르신처럼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을 할 줄도 모릅니다. 어르신의 말씀처럼 단순히 오기로만 복수를 꿈꾼다면 미련한 실패에 그칠 것이 빤하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각설하겠다. 현비 너는 구렁이같은 심산으로 이 늙은이의 무공이 탐나는 것이냐?”


현비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어르신의 무공이 절세무공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나, 그것이 탐나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가르쳐 달라고 했을 것이 빤하지 않습니까?”


“네 이놈!”


노인의 호령에 숲이 깊숙한 곳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고기를 낚던 아이들의 발목으로 물결이 출렁였다.


노인은 아이들이 들을까 짐짓 헛기침을 하고는 음성을 낮췄다.


“네 이놈! 어찌 풍파를 거두고 살아온 나에게 거짓을 이른단 말이냐?”

“거짓이 아니옵니다.”


현비의 몸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네 녀석이 끝까지 고집을 피워 거짓만 늘어놓는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네 녀석을 감금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유랑을 떠나겠느니라. 이래도 거짓을 아뢰겠느냐?”


현비는 사지에 몰린 쥐새끼마냥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솔직함으로 이르면 너의 인성에 흠이 가는 것이오, 거짓을 이르면 내 뻔히 아는 사실인지라 너도, 나도 그 진위를 다 아는 것이니 사방이 막힐 터, 내 오늘은 여기서 대화를 접겠으나 추후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놔야 할 것이다. 따라오너라.”


벌벌 떨고 있던 현비는 따라오라는 노인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오라지 않았느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꿇었던 무릎의 흙을 털 새도 없이 노인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노인이 당도한 곳은 오장 넓이의 터로, 대나무를 이용해 원형의 테를 두른 조가지였다. 시야가 아직도 아이들에게서 벗어나지 않은 곳이라 노인과 현비는 안심하고 그 자리에서 마주섰다.


“때가 올 것이니 따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무지유 만수어동(天無地有 萬數御動)”


노인은 한 손을 번쩍 들더니 포의 자락을 휘날리며 하늘로 성큼 뛰어올랐다. 그의 출중한 공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지 빛에 휘감긴 노인의 모습이 잠시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에 현비의 눈앞에 노인의 쇠염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 역시도 잠깐, 현비의 눈으로부터 삼장 뒤로 빠져있었다.


현비는 작금을 직시하자 넋이 나갈것만 같았다.


“천무지유, 하늘은 비었고 땅은 기운으로 충만하니 오로지 땅의 기운으로 벌할 것이다!”


이번엔 노인의 보폭이 이를 데 없이 빨리 움직였다. 현란한 움직임에 처음 대하는 정식 무공인지라 현비는 깊이 각인할 새도 없이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만수어동. 땅을 아울러 수많은 생명을 다스리고 부릴 것이다!”


그의 쉼 없는 보폭은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현비가 답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었다. 조금씩 노인의 발놀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이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천무지유, 만수어동!”


약간의 여진이 느껴지자, 동작을 따라하던 현비의 발놀림이 멈췄다. 잠시의 정적, 이윽고 어디선가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를 넘기지 못하고 하늘로 시커먼 새떼가 보였다. 독취(禿鷲:독수리)였다. 얼마 있지 않아 숲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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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89 44조
    작성일
    12.12.03 07:53
    No. 1

    건필하세요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딕울프
    작성일
    12.12.03 08:08
    No. 2

    항상 44조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미천한 글인데 항시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44조님 한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쓸게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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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웅천하전 (2장) 고구려 소년 # 2 +2 12.12.03 286 6 13쪽
5 군웅천하전 (2장) 고구려 소년 # 1 +1 12.11.29 308 5 16쪽
4 군웅천하전 (2장) 고구려 소년 # 0 +3 12.11.28 324 5 12쪽
3 군웅천하전 (1장) 시작되는 역사 # 2 +1 12.11.28 301 4 12쪽
2 군웅천하전 (1장) 시작되는 역사 # 1 12.11.27 417 6 12쪽
1 군웅천하전 (1장) 시작되는 역사 # 0 12.11.26 660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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