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네가 성(城)이면 우리는 파성(破城)이다! 의지는 좋았지만…(2)
시엘-레니아.
알카스와는 다르게 복작대는 도시의 형국을 한 마을. 평소 같았으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PK를 하고 있던지 자기 볼일을 보고 있던지 할 텐데, 오늘은 사람이 유독 적었다.
한적해진 마을 구석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건 다름 아닌 현시언이었다. 게임이라고는 해도 장시간의 PK는 그로서도 피곤한 일이었다.
“오빠, 여기서 뭐해?”
리느테스가 다가왔다.
“쉬고 있잖아. 보면 몰라?”
현시언은 언제나 그렇듯 느긋했다. 지금 모습만 보고 있자면 어떻게 이런 놈이 PK 1위를 먹었나 싶을 정도로. 리느테스가 옆구리에 양 손을 짚더니 고개를 숙였다. 평상시에 보이던 과한 애교 따위는 어디에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 천령은월 얘기냐?”
“그래!”
다소 높아진 어조가 현시언의 귀를 찔렀다.
“반란을 계획했다곤 해도 실제로 내전이 일어난 건 아니잖아! 충분히 말로 수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가게 놔둔 거야? 이드, 천신혈갑이야 그렇다 치고 천령은월이 나간 건 진짜 손해라고! 그 여자를 견제할 가장 좋은 사람이었는데.”
“아, 시끄럽네. 이래서 어린애란…….”
“누가 어린애야!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
진짜로 화가 났는지 리느테스가 부채를 휘둘렀다. 칼날 같은 바람이 현시언의 몸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공격력이 낮은 선인이다 보니 큰 타격은 주기 힘들었다.
“피하기도 귀찮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섰다.
“야, 김희진. 넌 이대로 좋다고 봐?”
“무슨 헛소리야?”
뾰로통한 얼굴이었지만 아까보다는 덜 거친 말이 새어나왔다. 현시언이 닉네임이 아닌 본명, 그것도 성까지 붙여서 자신을 불렀다는 건 상당히 화가 났다는 표시였으니까.
“우리 서버 말이야. 사람 더럽게 없는데 균형까지 안 맞으니 망섭이란 이름을 못 떼고 있는 거 아니냐.”
“그게 뭐? 어차피 오빤 반쯤 직업이잖아, 이 게임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시언이 피식 웃더니 되물었다.
“그래서 더 문제라는 건데?”
“아, 좀. 말을 하려면 끝까지 다 해봐.”
결국 포기했다는 듯 리느테스가 두 손 다 드는 제스처를 취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노려보는 시선을 마주하던 현시언이 한숨을 내쉬었다.
“망섭에서 잘 나가봐야 망한 거지. 템 파밍해서 돈만 버는 거야 지금으로도 충분하지만 난 아직 젊다고. 만족 못해. 한낱 게임 폐인 소리나 들으면서 이러고 살 순 없잖아.”
“가상현실 기기 안에서 청춘 썩히는 주제에 말은 청산유수지.”
“위드리스의 PK시스템은 충분히 흥할 요지가 많아. 운영진도 이걸 염두에 두고 PK서버를 따로 만들었지만 결과는 개판. 우리 때문이지.”
레드 페어리가 만들어진 건 약 3년 전이었다. 당시 현시언은 일반 온라인 게임만을 하다가 위드리스를 접했고, 친한 사람들과 캐릭터를 어느 정도 키운 뒤에 레드 페어리로 길드째 이전시켜 지금의 불야성을 만들었다.
“물론 네 말대로 난 이게 거의 직업이야. 그러니까 소중한 작업장의 뒷받침을 없앨 순 없지. 그러면서도 이 서버를 흥하게 만들고, 동시에 내 몸값이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거기까지 말한 현시언이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반란? 그건 그야말로 적당한 계기에 불과해. 난 기다리고 있었어. 이런 기회가 오길 말이지.”
“오빠 말대로 난 어린애라서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뜬구름 잡는 헛소리 말고 제대로 된 설명 좀 해주실래요? 응? 이러니까 이모가 맨날 오빠 걱정만 하지.”
리느테스가 눈을 매서운 기세로 부라렸다. 현시언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해 봐. 스포츠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끌 수 있는 요소가 뭔지.”
“이게 스포츠랑 뭔 상관이야!”
기어이 화가 폭발한 리느테스가 씩씩대며 일어서더니 휙 돌아섰다.
“나갈래. 오빤 진짜 구제불능이야.”
그러더니 로그아웃을 외쳤다. 현시언이 점점 흐릿해지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돌을 던지듯 말했다.
“시간 나면 위드리스 PK로 검색해 봐라. 개발팀 인터뷰 하나 있을 테니까.”
리느테스가 다시 뒤돌아서더니, 주먹을 쥔 오른손을 들어 올리곤 지그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대로 로그아웃이 되어버린 사촌 여동생의 자리를 바라보던 현시언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 다 말해주기엔 니 입이 너무 싼 걸 어쩌겠냐. 알면 엄마가 가만 안 있을 텐데.”
그러더니만 뚜벅뚜벅 걸어 골목 밖으로 나왔다.
“카르휘 그 자식은 잘 하고 있으려나.”
혼잣말을 계속하더니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아니, 잘 해야만 해. 그 정도 센스를 가진 저격수는 흔치 않으니까…….’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했다. 비록 저렙들이긴 했지만 다수를 상대로 단신으로 훌륭히 전투를 치르던 모습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속박 트랩을 적절한 곳에 설치하는 것부터, 적당히 공격하고 몸을 뺀 뒤 침착하게 환영검사를 전장에서 순간적으로 이탈시키고 광전사를 유도해 발을 묶던 카르휘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재생되었다. 비록 결계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해 마지막에 사망 위기에 처했다지만, 그가 PK 자체가 아예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보기 드문 수준이다.
‘카르휘,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절대로. 넌 내 계획에 있어서 꼭 필요해.’
머릿속의 중얼거림이 한 줄기 바람과 같은 몸짓과 함께 사라졌다.연락처까지 주고받은 후 강희성은 로그아웃을 했다. 어차피 당장 5명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으니 현실에서 의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참이었다.
접속해서 한 것이라고는 대화와 이동뿐이다 보니, 시간은 한 시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슬슬 저녁을 먹을 때라는 것을 자각한 강희성은 라면이나 끓여먹을 심산으로 냄비에 물을 부었다. 이내 조용했던 자취방에 물 끓는 소리가 가득 찼다. 저녁을 먹고 과제를 하기 위해 책을 미리 꺼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잉갑인가?’
별 망설임 없이 확인해 보았다.
-파성 단체방 되시겠습니다~
말투만 봐도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5명 전부를 초대해서 단체방을 만든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장 : 이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제가 만들려고 했는데 이드 누나가 선수 쳤네요.
천령은월이었다.
-다들 밥 안 먹음요? 전 배고픈데……
게임과 약간은 다른, 맞춤법에 슬쩍 어긋나지만 왠지 정겨운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은 레닭이었다.
-어 단체방이다.
이어 천신혈갑까지 반응했다. 아무래도 다들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접속을 종료한 듯 싶었다. 하기야 5명뿐인 상황에서 뭘 더 하겠느냐만은.
-휘 형은 잠수에요?
연락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강희성의 호칭을 ‘카르휘 씨’에서 ‘휘 형’으로 바꾼 천령은월이었다. 내심 천령은월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지 않을까 했던 강희성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외였더랬다. 레닭과 천신혈갑이 동갑인 것도 꽤나 예상 밖이었다.
-아니, 라면 끓이고 있었어.
어쨌거나 자신을 찾는 것 같았으니 답변을 했다.
-근데 왜?
이번에는 천신혈갑이 장문의 메시지를 써냈다.
-르웨델한테서 약조를 받은 건 좋은데 현시언이 가만히 있을까요? 르웨델 말 들을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현시언이 죽이라 하면 죽일 텐데.
-애당초 그렇게 죽일 거면 길드 순순히 탈퇴하게 놔두지도 않았을 걸.
이드가 끼어들었다. 강희성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맞아. 우리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그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야 알 수가 없지만, 르웨델의 제안을 알면서도 은월이까지 보내줬다는 건 당분간은 진짜 칠 의사가 없다고 봐도 되겠지. 그게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럼 사람부터 모아야겠네요.
역시 부길마 노릇을 하던 녀석이라 그런지 눈치가 빠른 천령은월이었다. 강희성은 펄펄 끓는 물에 라면 하나를 투하하곤 다시 휴대폰에 집중했다.
-그렇겠지. 일단 각자 아는 사람부터 어떻게든 모아 봐야 할 것 같아. 나도 최대한 지인들을 꼬드겨 볼게.
-형은 레드페어리 지인이 없을 텐데요?
강희성은 그 문자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천령은월의 말대로 그는 레드 페어리에서 사귄 사람이라고는 이들과 현시언뿐이다. 그러니 꼬드긴다고 해봤자 타 서버에 있는 사람들뿐이다. 대충 머릿속으로 낚아볼 만한 몇 명을 떠올리며 다시 손을 놀렸다.
-안 해 보는 것보단 낫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아휴, 답답하긴. 카르가 한다면 하는 거지.
이드가 말끝을 흐리는 천령은월에게 대놓고 핀잔을 줬다.
-어차피 몸집 불려야 하는 건 맞는 말이잖아. 해볼 건 다 해봐야지.
-맞는 말임요. 저도 아는 사람 최대한 끌어 모아 보겠음요.
가만히 있었던 레닭이 동조했다. 강희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일단 그렇게 합시다.
라면이 거의 다 익었다. 강희성은 뒷말을 확인하지 않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라면 특유의 매콤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 작가의말
당분간은 개인적인 일이 바빠서 1일 1연재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연중은 저한테 천재지변이 날아오지 않는 한 없습니다.
설정 붕괴에 대해 지적이 많은데....
저도 능력이 되는 한,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리 생각해둔 시놉시스와 어긋나는 지적이 나올 경우에는
고민이 3톤쯤 머리에 쌓이는 기분입니다.
일단 완결을 향해 달리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오류라고 판단되는 곳을 후수정하는 쪽으로 방침을 잡겠습니다.
아무리 못 쓴다 하더라도 연중보다는 완결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니
부디 이에 관해서는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문피아 독자님들 무서워요.. 흑흑..
사.. 살살 해주세요.. 저는 문피아 뉴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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