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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의 놀이터

흔한 망한 서버의 망한 길드의 망한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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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飛劒]
작품등록일 :
2013.03.05 14:00
최근연재일 :
2013.04.08 12:21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11,054
추천수 :
508
글자수 :
125,977

작성
13.03.2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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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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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0쪽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2)

DUMMY

“확실히 그러고도 남지.”

가입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강희성 그 자신도 여기서 눈에 튀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지 않은가. 일단 눈밖에 한 번 나면 끝이었으니까. 천신혈갑이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형, 형도 지금까진 어떻게 생각해 왔을지 모르지만 이젠 마음 바꿔먹으세요. 걘 절대로 형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애가 아니에요.”

“그래…… 적어도 마냥 좋기만 한 애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정말 일말의 희망이나 다름없었지만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강희성은 한참을 끙,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다가 입을 겨우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음…….”

잠시 생각하던 천신혈갑이 하나의 제안을 꺼냈다.

“일단 그러면 형, 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녹화 동영상 보실래요?”

“녹화?”

“이드 누나가 보내 줬던 대화 영상이에요. 김예빈을 몰아붙이는 데 쓰느라고 따로 저장해 뒀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가상현실기기에 있던 파일은 지웠거든요. 벌써 석 달 전이네요.”

내용이야 아까 천신혈갑의 입으로 전해 들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강희성은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리스를 불러 메모장 기능을 열었다. 리스는 위드 리스 온라인 내부에서 무언가를 적거나 녹화, 녹음하여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했는데, 이를 전용 USB를 통해 다른 전자기기로 옮길 수 있었다.

천신혈갑의 휴대폰 메신저 ID와 전화번호까지 교환하자, 한층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이드에게도 했던 질문을 천신혈갑에게도 똑같이 던졌다. 진중한 질문을 받은 천신혈갑이 눈을 두어 번 먼 곳을 바라보는 개구리처럼 끔뻑였다.

“으음…… 저는 글쎄요. 이드 누나가 도와줘서 그런대로 무시하면서 게임하고 있긴 하지만 형은 현실에서도 김예빈하고 마주치니까…… 음…….”

그가 안개가 퍼지듯 말끝을 작게 흐리더니만 헤헤, 하고 능청맞게 웃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게임 접는 거죠.”

“뭐?”

뜻하지 않은 말에 강희성은 멍하니, 잠에서 덜 깬 듯한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천신혈갑의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맞잖아요. 게임 접으면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고생 안하고 현실에서만 좀 피하면, 헤헤…….”

그제야 사태 파악을 한 강희성이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거 스스로 말해 놓고도 말이 전혀 안 된다는 거 알고는 있지?”

“아뇨 뭐…….”

금방 풀이 죽는 천신혈갑이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취미라고는 게임밖에 없는 강희성에게 있어서 위드리스 온라인을 접으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거기에 캐릭터를 맘에 드는 외모로 만들기 위해서, 혹은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 들였던 공을 생각하면 게임을 그만두는 게 가능할래야 가능할 수가 없었다. 무슨 천재지변 급의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럼…….”

강희성은 시선을 천신혈갑을 너머 저 멀리 부활석에 두었다.

어쩌다 부활해서 바로 덤벼드는 자들이 아직까지 있었지만, 대개는 거의 5초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 다시 로그아웃 되곤 했다. 30분간 접속 불가라는 페널티에 비해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이제 부활석 앞은 불야성한테 거의 점령당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몇 사람 정도 빠져도 티가 나지 않을 듯했고, 현시언도 슬슬 리스를 통해 게임 홈 페이지를 체크하는 것이 철수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본다. 파일 보내놔.”

“네, 그럼 저도 나가서 파일 보낼게요. 용량 꽤 크니까 넉넉히 비워 두시구요.”

고개를 끄덕인 강희성은 리스에게 로그아웃을 명령했다. 이윽고 잠깐 정신이 깜빡이는가 싶더니, 묵직한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불이 켜진 방 안 풍경이 가상현실기기 뚜껑 밖으로 들어왔다. 그래픽과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의 모습에 잠시 강희성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장시간 접속을 했다 나왔을 때 드는 이 이질감은 게임을 오래 한 그로서도 적응이 쉽사리 되질 않았다.

잠시 찬물로 목을 축이고 있자니 휴대폰에서 파일이 전송되었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확인해 보니 천신혈갑이 보낸 동영상 파일이었다. 휴대폰에서 재생할 수 있도록 압축했는지 미리보기에서 보이는 화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받는 것에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강희성은 물을 마저 마신 뒤에 맑아진 정신으로 파일을 수신했다. 30여 초가 지나 완전히 받은 파일을 재생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물컵을 내려놓은 강희성은 침대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파일을 재생했다.

잠시 로딩 시간이 지나간 후, 파일이 재생되었다. 배경으로 보아 루닉스 던전 안이었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보스까지 모두 잡은 뒤, 몇 명이 나가고 두 사람만 남은 듯했다. 영상은 이드의 리스 입장에서 촬영된 듯, 좋지 않은 화질에서도 선명한 붉은 머리가 가장 먼저 보였다.

[너, 방금 나간 사람이랑 무슨 관계야?]

다소 날카로운 음성이 대화의 시작을 알렸다. 화질 때문에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음성에서 충분히 노기가 느껴졌다.

[뭐가요?]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는 두말할 것 없는, 확실한 김예빈이었다. 목소리를 한 상대를 쳐다보는 리스 AI의 특성상, 화면이 김예빈을 잡았다. 글래머한 몸매와 남색의 머리칼이 그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뭐냐니, 시치미 떼지 마. 얼마 전부터 아주 핑크빛이던데.]

[아~ 아르카논요?]

아까 천신혈갑이 언급했던 ‘양다리 걸친 다크 게이머’인 모양이었다. 강희성은 점점 날카로워지려는 신경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휴대폰 화면을 주시했다. 이드의 언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아~ 아르카논요?’라니. 너 남자친구 있잖아. 대체 그 사람이랑 왜 그러는 거야?]

[언니,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저 아무 짓도 안 했다구요.]

간곡하게 타이르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이드의 목소리는 점점 더 사나워져 갔다.

[정확히 말해 줄까? 게임이라지만 서로 껴안고, 닭살 돋는 말 하고, 천신이 없을 때 둘이서만 사냥 가고, 천신이가 와도 외면하고 둘이서만 다니잖아?]

[…….]

잘 보이진 않았지만, 강희성은 틀림없이 김예빈의 낯빛이 확 바뀌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서늘하게 식은 분위기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느껴졌다. 김예빈이 이드의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게 언니랑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누구랑 무슨 짓을 하던…….]

[상관있지. 천신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상해하는데. 그거 받아주느라고 내가 다 죽을 맛이라고.]

대충 당시의 상황이 짐작이 가는 강희성이었다. 자신보다 아르카논이라는 남자와 같이 다니는 김예빈을 보며 애끓는 감정을, 아마도 천신혈갑은 이드에게 털어놓았으리라.

[나 참, 여하간 귀찮은 놈이라니까.]

[……너 지금 네 남자친구를 귀찮은 놈이라고 한 거냐?]

이드의 목소리가 점점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니,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역으로 이드를 타박하는 김예빈을 보며 강희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잔인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태도가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눈치라고?]

[천신혈갑 걔는 그냥 노예에요, 노예.]

문제의 노예 발언이 나왔다.

[템 대주고, 사냥 가주고, 만나서 뭐 사달라고 하면 다 사주고. 그런 노예라구요. 전 그렇게 재미없는데다 비전도 없는 남자랑 사귈 생각 없어요.]

비록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희성은 가슴에 비수가 박힌 듯 그 자리에서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예쁘장하고 상냥한 외모와 말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음처럼 차가운 선언이었다.

[생각해 봐요. 잘난 것 하나 없이 게임이나 하루 종일 하면서 제가 사달라는 거 하나 하나에 쩔쩔매는 그런 남자랑, 진짜로 사귀고 싶겠어요? 제가 안 사귀어주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아서 사귀어 주는 거지. 그러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죠. 주제를 알아야지.]

아마 김예빈은 이 영상이 녹화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강희성의 손으로 들어올 줄은 더더욱.

[뭐, 뭐, 뭐라고? 너 원래 이런 애였어? 정말 실망이다, 김예빈!]

[실망이라뇨? 다 알고서 이런 거 아니었어요?]

김예빈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칼날 같은 독설을 뱉어냈다.

[언니도 저랑 다닌 덕분에 득 많이 봤잖아요.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 하죠?]

[그래도 이건 아냐. 너 그러는 거 아냐. 아르카논하고 사귈 거면 차라리 천신이를 차라고.]

[싫은데요?]

[뭐?]

대놓고 싫다고 말하는 김예빈의 뻔뻔함에 강희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이런 애였단 말이지.”

오갈 데 없는 분노가 괜한 휴대폰에 쏟아졌다.

[바보 아니에요? 걘 제가 아무 말 안하면 계속 저한테 퍼다 줄 텐데. 그런 걸 걷어차는 사람이 멍청한 거죠.]

[넌 정말 남의 입장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거니? 어떻게 사람이 그래?]

[현실도 아니고 게임인데 그런 거 생각을 왜 해요?]

이 말이 결정타였다. 이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내뱉었다.

[와, 정말…… 정말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씨발, 넌 진짜 미친년이다. 썅년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넌 개새끼야.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홧병 환자처럼 내뿜는, 불타오르는 격노에 강희성은 거기서 동영상을 정지했다. 더 보지 않아도 이드와 천신혈갑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제는 그도 확신할 수 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강희성은 그대로 머리를 감싼 채 상체를 숙였다. 뜨끈한 머리가 무릎 사이로 파묻혔다.

“미치겠군 정말…….”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허망함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맥없이 부서져 갔다.


작가의말

헉헉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통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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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 네가 성(城)이면 우리는 파성(破城)이다! 의지는 좋았지만… +11 13.04.02 3,383 24 9쪽
23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6 13.03.30 3,528 21 9쪽
22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6) +15 13.03.29 3,268 27 9쪽
21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5) - 수정본 +18 13.03.28 3,451 19 15쪽
20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4) - 수정본 +11 13.03.27 3,569 20 9쪽
19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3) - 수정본 +13 13.03.26 3,475 20 12쪽
»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2) +12 13.03.25 3,259 20 10쪽
17 4. 길원 많은 길드 파벌 잘 날 없다. +7 13.03.23 3,709 17 11쪽
16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7) +9 13.03.22 3,577 17 13쪽
15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6) +11 13.03.21 3,550 23 10쪽
14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5) +10 13.03.20 3,544 13 9쪽
13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4) +6 13.03.19 3,583 15 10쪽
12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3) +13 13.03.18 3,627 19 13쪽
11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2) +8 13.03.16 3,756 17 11쪽
10 3. 이름값 하는 길드, 불야성(不夜城)과 현시언 +10 13.03.15 3,969 19 9쪽
9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4) +8 13.03.14 3,800 18 11쪽
8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3) +13 13.03.13 3,972 12 13쪽
7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2) +11 13.03.12 4,058 16 10쪽
6 2. 어서와, PK는 처음이지? +8 13.03.11 4,041 13 12쪽
5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5 13.03.09 4,216 13 12쪽
4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3) +8 13.03.08 4,188 14 8쪽
3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2) +12 13.03.07 4,562 18 7쪽
2 1. 강남은 친구 따라 가고, 망섭은 여자 따라 간다. +4 13.03.05 4,954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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