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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녀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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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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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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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대공녀를 하녀로 들이다(2)

DUMMY

하녀는 절대적인 약자이기에, 고용주의 인성에 따라 부당한 일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심한 경우에는 성추행을 당할 수도 있고, 이런 한적한 시골이면 살해당해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수 있었다.


이런 위험 때문에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귀족 영애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 하녀다.


그러니 이 일이 레지오넬 공작의 귀에 들어가도 공작이 이게 그녀를 살리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몰락한 루시아를 조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섀럿은 그걸 노렸다.


“그 말씀은······.”


“하녀 일을 하란 거지.”


셀 수 없는 하녀를 부리고 사는 것은 물론, 귀족 시녀까지 줄줄이 따라다니던 과거가 루시아의 뇌리를 스친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겪을 굴욕은 다 겪었고 흘릴 눈물은 다 흘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흘릴 눈물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섀럿도 그런 소녀의 반응을 예상했다. 그래서 기분나빠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가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알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요.”


“처형당한 것이지.”


섀럿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금 그는 상대를 달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네가 지금 왜 이렇게 푸대접받는지 알고 있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아니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 아냐?”


루시아는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일가친척 다 죽고, 어릴 때부터 시중을 들어주던 가신들도 없이 짐짝처럼 이 변방 영지로 실려 왔다. 이곳에 도착해서는 의식주 어떤 것도 받지 못하고 내쫓겼다.


바보가 아니라면 깨달을 수 있는 일이다. 이건 남의 손 더럽히지 말고 알아서 죽으란 뜻임을 말이다.


머리는 그걸 알았지만 굶주린 배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아우성쳤고, 전 대공녀는 결국 본능에 굴복했다. 자존심을 꺾고 구걸에 나선 것이다.


자존심을 꺾은 보람도 없이, 상처만 늘었지만.


그렇게 구질구질하게라도 살려고 했던 루시아였기에, 자존심을 내세워 섀럿의 제안을 물리칠 수 없었다. 섀럿도 그런 생에 대한 집착을 봤기에 이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었고.


“널 살릴 방법을 아무리 고민해 봐도, 천한 일을 시키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아. 네가 그렇게까지 굴욕을 참으며 일자리를 구했고, 내가 일시적인 변덕으로 고용했다고 치면 대충 무마가 가능해.”


루시아는 말없이 그 말을 들었다. 섀럿은 그녀가 반응하든 말든 말을 이어갔다.


“물론 남들 의심받지 않게 진짜 일을 해야지.”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 그땐 이대로 죽게 놔두고, 나중에 불똥이 튀면 달아날 준비를 해야지.


“······게요.”


루시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섀럿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뭐라고?”


그제야 간신히 들을 만한 크기의 말이 들렸다.


“할게요. 글렌티스 공자님, 소녀가 살아갈 길을 주세요.”


루시아는 거지보다 하녀가 낫다고 생각하며, 섀럿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루시아를 데리고 돌아온 섀럿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아버지를 설득한 차례인데, 육체적 고통이 따를 것이 분명했다.


‘이게 맞는 건가.’


섀럿은 다시 한 번 자문했다. 역시 다른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루시아가 소년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상, 소년은 루시아를 책임져야 했다.


“아버지.”


“왜 그러냐? 네가 널 찾아오다니 의외구나.”


하필 남작은 검을 휘두르며 단련하고 있었다. 술과 여자에 빠져 사는 사람이지만, 단 하나 근면하게 하는 것이 검술 훈련이었다.


남보다 강해야만 남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어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뭐지?”


남작은 섀럿과 일상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의 아내가 죽고 시간이 지나며, 그는 아들과의 대화가 점점 껄끄러워졌다.


아들과 생각이 다를 때, 그는 언제나 폭력으로 자신의 뜻을 따르게 했다. 다르게 말하면 말로는 아들의 논박을 당할 수 없단 뜻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반대는 언제나 지나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폭력에 복종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통쾌하기는커녕 불쾌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만날 일을 안 만들게 되었다.


섀럿이 기사수행을 하지 못하고 마법에 매달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기초를 잡아줘야 하는 아버지가 내켜하질 않았다.


“루시아를 제 하녀로 들이려고요.”


“공작께서는 루시아가 죽길 원하신다. 직접 죽이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까 얼어 죽거나 굶어죽게 하려는 거지.”


섀럿도 그걸 아니까 이 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뒷감당이 안 될 것을 아니까. 조리있게 설득하는 대신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알 바 아니에요.”


“귓구멍에 좆대가리를 박았나? 내 말 못 들었어? 그년은 죽어야 한다고.”


“예쁘잖아요! 제 약혼자를 멋대로 정하셨으면 하녀라도 내 마음대로 정하게 해 주세요.”


섀럿은 루시아의 얼굴에 넘어가서 살려주려는 것인 양 연기했다.


이 세상은 신분제 사회다. 신분은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가주의 권위를 무시하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죽여도 되는 죄로 여겨졌다.

그러니 남작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보다 여자 문제로 몰고 가는 게 안전했다.


낮은 신분의 여자는 염문이 나더라도 신분과 돈푼으로 입막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 시대 귀족들의 사고방식이니 말이다.


그리고 섀럿은 14세, 슬슬 이성에 관심이 생길 때인데다 도저히 사람 구실을 못하는 약혼녀 때문에 이 억지가 더 잘 통할 여건이었다.


“네 약혼자가 어때서 그러냐? 가문도 좋은데.”


“저보다 다섯 살 위인데다 난쟁이에 언청이, 주걱턱이잖아요! 글도 못 읽어요. 아니, 이 모든 것 전에 남편이 뭔지도 이해 못하잖아요.”


전생에서 사회가 얼마나 소수자와 약자에게 차별적인지 열변을 토하던 사람들도 본인에게 혼담이 들어오면 말문이 막힐 조건이 아닐까, 섀럿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권이란 개념이 없는 이 야만적인 시대라면 어디 서커스단에 끌려다니면서 구경거리나 되는 게 정상인 약혼녀.


그래서 예쁜 또래 소녀를 보고 눈이 돌아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나 남작도 어이없어할지언정 섀럿이 루시아에게 빠진 것 자체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벌써부터 여자 얼굴이나 밝히고 말이야. 에머란드 백작께서 아시면 뭐라고 하겠어?”


“제가 루시아를 아내로 삼는다고 해요, 글로리아와 약혼을 파기하겠다고 했어요. 그저 몸종으로 삼겠다는 거잖아요. 어차피 아직 어려서 건드리기도 어려워요. 그냥 곁에 두고 얼굴이라도 감상할게요.”


“너, 말 잘했다.”


남작은 연습용 목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목검이 섀럿의 오금을 후려친다. 바닥에 무릎을 꿇자 그 위로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졌다. 그래도 섀럿은 계속 허락해 달라고 외쳤다.


십여 분 후, 백작은 부러진 목검을 내던졌다. 섀럿은 바닥을 굴러다니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멋대로 해. 대충 먹고 버려라. 그년에게 빠져서 야반도주하거나 하면, 다시는 뛰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그년도 네 방 창문 앞에 갈가리 찢어서 걸어놓을 거야.”


아버지는 그거 좋겠다고 이죽거렸다. 반역자의 딸이긴 하지만, 사형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니 지금처럼 방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한 신분으로 귀족 신분인 약혼자의 자리를 노린다면 그건 죽일 수 있는 죄였다.


“으윽, 명심하겠습니다.”



@



섀럿이 루시아를 살리기 위해 죽도록 맞았으니, 그녀의 첫 일은 섀럿을 간호하는 게 되었다.


“아야야.”


찬물을 적신 수건으로 멍든 부위를 냉찜질한다. 지금껏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입장이라 서투를 것 같지만, 의외로 병 수발을 잘 했다.


“미아내, 너도 다쳥능데(미안해, 너도 다쳤는데.)”


얼굴도 퉁퉁 부어서 발음이 잘 안 나온다. 말도 잘 못하는 섀럿보다 낫지만, 루시아도 얼굴과 손에 생채기와 멍이 보였다.


“괜찮아요. 공자께서 입은 부상과 비교하면 제 부상은 다친 것이라 할 수도 없으니까요.”


하녀의 옷을 입었지만, 쓰는 말 자체가 품위가 있다. 섀럿은 상대가 잘 배운 귀족 영애란 사실을 실감했다. 가문이 몰락하지 않고, 무사히 성장하고 사교계에 데뷔했으면 뭇 사내들의 숭배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잘 하네, 경험 있어?”


섀럿은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없었지만, 루시아는 별 문제 없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들었다.


“하기보다는 놀다가 화상 입었을 때 받아 봤죠. 어떨 때 편했는지 기억하니 흉내내는 건데······, 만족하신다니 다행이에요.”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끊겼다. 섀럿은 섀럿대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 일단 살려서 데려오긴 했는데, 앞으로는 어떡하지?’


남에게 의심 안 받으려면 힘들게 부려먹어야만 한다.


그러면서 루시아가 그를 은인이라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기껏 살려놨는데 부려먹은 원한만 기억하고 있으면 안 살리느니만 못했다.


이 두 전제는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전부 이루지 못하면 그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앞으로 이 소녀를 어찌 다룰지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앞날을 생각하는데 골몰하느라 말이 없자, 루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신 거예요?”


“뭐가?”


“이렇게 맞으시면서 까지 절 들이신 이유를 알고 싶어요.”


“맞은 건 언젠가 회복되고, 그걸 대가로 넌 목숨을 건졌지.”


“저를 구하고 싶어서?”


섀럿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은 얼굴로 미소를 짓다 보니 통증이 와서 다시 얼굴을 찡그린다. 루시아가 얼른 물수건을 대 줬다.


“눈앞에서 누가 죽는 게 싫었을 뿐이야. 아버지가 반역을 저질렀을 뿐, 넌 잘못이 없잖아?”


본심과 거짓이 반반씩 섞인 대답이었다. 죽는 것을 보기 싫었던 것도 사실, 단순히 그 이유만이 아닌 것은 거짓.


“제 아버지는 결백하세요.”


“그 말은 마음속에만 담아 둬. 내가 맞장구쳐줄 일은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 반응으로 끝나지 않을 거고.”


“명심하겠습니다······.”


섀럿의 반응에 루시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떼를 부리면 따끔하게 혼내서 꺾어 줄 생각이었는데, 의외라고 생각했다.


역시 어린아이로 남아 있을 수 없는 처지여서일까.


섀럿은 그런 루시아가 안쓰럽게 느껴졌지만, 위로해 주지는 않았다. 루시아는 지금 자신이 하녀이고, 고용주에게 어리광을 부릴 처지가 아님을 자각해야 했다.


“너도 알겠지만, 다른 사람이 네가 특혜를 받는다고 느끼면 못 지켜 줘. 앞으로도 하녀로서 해야 할 일은 충실히 지켜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공자님.”


루시아의 입장에서도 섀럿은 지금 그녀의 편을 들어 주려는 유일한 사람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말에 수긍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그를 돌봐 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커 보였는데.’


루시아는 섀럿을 처음 봤을 때, 자신보다 겨우 한 살 많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웅크린 채로 올려다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지민들의 폭력을 막아 주고, 살 길을 열어 주고, 몰락해서 아무 것도 아닌 소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그 모습 때문에 커 보였다.


정치적 책략을 쓰는 것은 어른의 능력이고, 희생 또한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렇기에 루시아는 소녀를 지켜준 섀럿이 소년라고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다친 몸을 돌봐주고 있자니, 비로소 섀럿이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소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대단해 보이는 소년이 지금 그녀의 손길을 의지하고 있단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기쁨을 느낀 지 너무 오래라, 어떨 때 기쁜지조차 헷갈리게 된 걸까.’


자신은 대공녀고, 남의 시중을 드는 일이 즐거울 리가 없는데.


혼란스러움을 잠깐 마음 한 귀퉁이로 밀어 넣자,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 까먹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린치에서 구해 주셔서요.”


바로 감사 인사였다. 귀족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작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예의바른 거라 배웠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인간으로서.”


섀럿은 자신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갔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상처가 쓰려 오자 얼굴을 굳혔다. 그 인간적인 모습에 루시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네, 도련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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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2) 24.07.01 113 2 13쪽
2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1) 24.06.30 146 2 12쪽
1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24.06.29 22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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