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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내 하녀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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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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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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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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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1)

DUMMY

섀럿 글렌티스는 제국의 서쪽 변방, 글렌티스 남작가의 차남이었다.


그가 어찌 생겼는지, 성격은 어떻고 능력은 어떤지보다 어느 가문의 몇 번째인지부터 소개하는 건 이 세상이 개인의 개성보다 어느 가문의 누구냐가 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섀럿의 삶이 어떨지 결정지었다.


영지 귀족의 후예이니만큼 성장기에 배곯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장차 영지는 장남이 상속받을 테니 그것을 대비해 먹고 살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도 정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섀럿이 살아갈 앞날은 개인의 의사나 능력에 상관없이 태반이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먹고 살 방안을 정할 때는 개인의 개성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이 세상은 뒤떨어진 문명과 그에 걸맞은 의학과 위생관념을 가지고 있고, 생활환경은 훨씬 혹독했다. 그래서 제 명에 못 살고 사고나 질병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 그걸 믿는 방법이 있었다.


즉, 본인은 무사히 자라고 장남이자 적법한 계승자인 형은 저 세상으로 보내 달라고 신에게 비는 방법이 있다. 안전하면서, 의외로 성공확률도 높은 방법이었다.


그 밖에는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


사고든 질병이든 죽을 이유가 많단 말은 그걸로 사인을 가장하기도 쉽단 뜻이니까, 장남이 아니면 장남이 되게 만들면 된다.


다만 이것도 걸리면 아버지의 진노를 살 수도 있었다. 글렌티스 남작가의 가주로서, 섀럿의 아버지 베르트 글렌티스 남작은 아들들의 생사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는 방법도 존재했다.


전문 기술을 익혀서 직업을 구하는 방법. 일단 어렸을 때는 영지 귀족으로서 안정된 생활과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그걸 이용해서 훗날 살아갈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통 기사나 마법사, 관료와 성직자 등이 귀족이 할 만한 직종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취향은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몇 안 되게 허락되는 취향이 이 세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 했으니, 이제 섀럿 글렌티스란 인간의 개성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붉은빛이 감도는 금발과 녹색 눈이 어릴 때부터 귀여웠던 소년은 어릴 때부터 준수한 얼굴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아버지인 베르트 글렌티스 남작은 폭압적인 지배자이자 독선적인 남편이었고, 자녀들은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고, 헛된 욕심으로 영지의 재정을 탕진하는, 인간으로서는 여러 면에서 낙제점을 가진 인간이다.


내세울 것이 있다면 외모 하나는 준수한 외모 정도겠지만, 그마저도 나이가 들며 많이 퇴색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들에게 그 잘난 외모를 그대로 물려주었다. 그가 지금껏 살며 했던 몇 안 되는 선행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잘생긴 얼굴만이 소년의 개성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개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본인도 다른 누구에게도, 심지어 부모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비밀스런 개성이란, 바로 전생을 기억한단 사실이었다.



@



섀럿은 태어나고 정확히 10년은 살았을 때, 10세 생일에 전생을 떠올렸다.


생일, 아버지는 그런 날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었고, 병석에 누운 어머니만이 내가 널 정확히 10년 전 오늘 낳았노라고 속삭였다.


“섀럿, 네가 늠름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떠나야 하는데.”


글렌티스 남작부인, 아리엘 글렌티스는 자신의 침대 맡을 떠나지 않는 어린 섀럿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말했다.


어머니를 유난히 따르던 조용한 소년, 소년은 섬세했던 만큼 그 어머니의 손놀림에 유난히 힘이 없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부풀어 올랐다.


아직 죽음이 뭔지 정확히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느릿하고 힘겨운 모습, 그리고 어머니의 말 속에 들은 슬픔에 공명했다.


그 모습에 남작부인은 생명의 불길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뚝, 울지 마렴. 아버지처럼 씩씩해야지.”


글렌티스 남작은 둘째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을 쏙 빼닮았지만 좀더 선이 가늘고, 성격은 아내를 닮은 아들을 계집애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욱 박대했고, 그만큼 아이는 자상한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약속해요. 울지 않겠다고.”


“네, 훌쩍.”


섀럿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도 보고 가고 싶은데.”


“지금 연락이 갔어요. 내일엔 도착할 거예요.”


섀럿의 형이자 이 영지의 장남, 레온은 얼마 전 다른 영지 기사의 종자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 영지에 없었고, 나흘 전 급히 돌아오란 연락이 갔다.


“그래.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야······”


남작부인의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손이 힘없이 처졌다.


“엄마, 엄마!”


“마님!”


그녀의 수발을 들던 시녀가 통곡하고 섀럿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소년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역시 어미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나약한 것이었어. 지금껏 툭하면 그랬던 것처럼 질질 짜질 않으니 보기 좋구나.”


장례식에서, 우는 대신 무덤덤하게 추모 미사와 하관(下棺)을 응시하는 섀럿을 보며, 글렌티스 남작이 흐뭇하게 말했다.


남작은 남자의 눈물이란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나이의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 넣어놓은 거라 믿는 사람이었기에, 지금도 전혀 슬픈 기색이 없었다.


아니, 그는 진짜로 아내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


근 몇 년간 병석에 있어서 귀족가의 안주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후사도 더 늘리지 못하는 아내에게 애정이 식었다. 정략으로 맺어진 사이였기에 애정이 별로 없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울지 말라고 하셨어요.”


섀럿은 덤덤히 대답했다.


“마지막엔 옳은 소리를 하고 갔구나. 맞다, 사내새끼는 다른 놈들의 눈물을 쥐어짜내고, 감당하지 못할 적의 칼에 죽을 때도 즐겁게 살다 갔다고 상대에게 웃어주며 떠나야 하는 거다.”


섀럿은 여기가 장례식이란 것을 신경도 안 쓰고 껄껄거리며 웃는 ‘이 몸의’ 아버지를 보며 과연 아버지는 자신의 장담을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혼절했다 깨어난 순간, 소년은 자신의 전생을 기억했다. 아니, 오히려 그 전생이 소년의 영혼과 기억을 잡아먹었다고 해야 할까.


전생도 완전하진 않았다. 이름도 기억나진 않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서른 살 즈음까지 지구라는, 이 세상과는 다른 체제와 지식 기반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작은 나라에서 살았던 것만 기억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도시에 어마어마한 사람이 모여살고, 하루가 멀다하고 무언가가 개발되고 더 나은 것이 나오는 세상이었다. 배워야 하는 것도, 그 사람을 둘러싼 물질과 지식의 홍수는 개인이 모두 이해할 범주를 뛰어넘었다.


지구가, 그리고 전생의 그가 살던 한국이란 나라의 문명이 발달하긴 했지만, 그 세상과 나라를 모든 것이 이상적이진 않았고 기억 자체도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기억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변화가 없는 이 변방의 땅에서 자란 시간과는 자극의 강도, 그리고 밀도가 차원이 달랐다. 그 세계에서 이미 어른이 되며 뚜렷한 정체성을 완성했으니, 소년의 기억이 모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섀럿은 섀럿이라기보단 섀럿이란 어린아이의 기억을 가진 이세계의 어떤 어른에 가까웠다.


지금도 섀럿의 기억에 공명한 몸은 눈물을 떨구려 한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은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한다. 어린아이가 보고 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보였다.


‘이거 꼭 그거 같은데, 게임 튜토리얼을 끝낸 것.’


섀럿이 된 누군가는 지금 상황을 이렇게 느껴졌다. 지금 이 몸은 분명 본인이지만, 몸이 어린아이로서 겪은 일이 자신의 경험이라기보단 이 세상을 자신에게 소개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느껴졌다.


소년을 보듬어 주던 유일한 사람인 남작부인, 아리엘이 죽는 순간 이 자아가 깨어난 것도 공교롭지 않은가. 10년 살며 배경설명이 끝났으니 이제 플레이어가 컨트롤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섀럿이 된 누군가는 그렇게 어린아이가 보았지만 그 진의를 깨닫지 못한 것을 재구성했고,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선택했다.


울지 않는 것이 그 첫 번째 선택이었다.



@



지난 세기의 시인은 인생은 살기 힘들다고 읊었었다.


열 살 아이의 지난 기억을 짚어본 섀럿은 그 시구가 그것이 세월을 넘는 것도 모자라 세계를 넘어선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삶에도 끝없는 경쟁이나 절망, 온갖 모순들이 삶을 괴롭게 했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입어야 했었지만, 이곳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대륙을 지배하던 제국은 쇠락했다.


나라가 제 역할을 못 하니 마물과 산적, 야만족 등 온갖 위협이 전 대륙에 들끓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상처입고 죽어나갔다.


이런 잔혹한 세상의 귀족들은 피지배층을 공포로 지배하며 착취했고, 그렇게 쥐어짠 물자로 자신의 영지와 군대를 늘리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과 농노들은 무력을 가진 귀족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그 착취를 감내하며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악업을 저질렀던가?’


섀럿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가장 먼저, 이렇게 자문했다. 전생보다 더 험악한 세상에 떨어진 이유가 무어냐고. 이유를 모르기에 이 두 번째 생이 천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자살로 이 엿같은 삶에 피한다? 환생하면 더 나은 삶을 얻으리란 보장도 없단 것을 안다.


‘이유 없이 이 세상에 나진 않았을 거야. 좌절하지 말자.’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단 말도 있지 않는가.


이렇게 전생을 기억하고 환생한 것도 뭔가 이유가 있고 그 덕분에 이 세상을 해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섀럿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확신하려 노력했다.


세상이 아무리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라고 해도,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전생을 살며 얻은 교훈과 지식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도 농노로 태어난 것보단 낫잖아? 지금까지 굶진 않았으니.’


아무리 세상이 암울하고, 주어진 환경이 나쁘더라도 살아가겠노라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 만큼, 어딘가엔 행복과 평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실체도 없는 이상향을 향해 다가가기로 했다.




장례를 치르면서, 섀럿은 자신의 앞날을 고민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앞서 말했듯, 이 세상에서 삶은 태어난 위치에 따라 거진 정해진다. 그 안에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 방안, 형이 죽기만 기도하는 건 다른 대책과 병행할 수 있으니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 방안, 형을 암살하는 방법, 이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 자체가 양심에 가책이 온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뒤에도 가문을 상속받을 때까지 저 폭력적인 아버지와 부대껴야 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이 영지가······, 아버지가 영지에서 암군 그 자체라 그리 상황이 좋지도 않았다.


그러니 섀럿은 세 번째 방향, 무난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기술을 배워서 독립하는 것 말이다.


독립해서, 이 영지가 아닌 다른 땅에서 기회를 찾아 보자.


작가의말

오후 7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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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공녀를 하녀로 들이다(1) 24.07.03 48 0 12쪽
4 마법 입문 24.07.02 52 0 14쪽
3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2) 24.07.01 76 1 13쪽
»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1) 24.06.30 102 0 12쪽
1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24.06.29 15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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