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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님의 서재입니다.

내 하녀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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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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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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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2)

DUMMY

이 세상에서 작위를 얻지 못한 귀족 자재가 할 만한 일도 한정되어 있었다.


마법이나 검술을 배워서 무력을 갖추거나, 공부를 해서 관리가 되거나, 순결의 서약을 하고 교단에 들어가 성직자가 되거나.


대장장이나 목수 같은 기술자는 체면 떨어지니 절대 하면 안 되었다. 농업이나 상업도 지주나 대상으로 사람을 감독하며 하는 것은 허용되었지만 자영농이나 행상은 절대 불가였으니, 가난한 시골 귀족의 아들인 섀럿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가장 만만한 건 검술이었다. 글렌티스 가문은 기사 가문이었고, 일류급이라 할 수는 없지만 쓸만한 가전 검술도 있었다. 돈 안 들이고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니 섀럿은 일단 검술에 뜻을 두기로 했다. 난세이니만큼, 무기를 잘 다루면 어디서든 대우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전생에서 읽어봤던 판타지 소설도 주인공이 전사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더욱이 이 세상에는 마나란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하고, 강력한 기사는 이를 다루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난세의 어떤 불의에도 당당히 맞설 힘을 가지고, 당당히 기사도와 정의를 추구하며 이 낯선 세상을 모험한다. 그런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니 썩 맘에 들었다.


‘이세계에 떨어졌는데 어디 한 구석에만 머물러 살기는 아깝잖아.’


섀럿은 그렇게 결심하고, 검술을 배우겠다고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노렸다.


장례식은 망자를 애도하는 기간, 장례식 중 자신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까 일단은 참았다.


글렌티스 남작은 거리낌없이 웃고 먹고 마시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을 보면 그게 좋게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례식이 완전히 끝나고, 빙의한 뒤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남쪽에 있다는 모 백작 어르신에게 갔다 온다고 5일 가량 자리를 비웠었고, 돌아온 다음에는 침실에 이틀 동안 박혀 있었다.


하녀들이 소곤거리는 것을 보니 백작령에서 귀환하던 길에 화전민 여자 하나를 잡아왔다는 것 같다.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기 전 섀럿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섀럿도 아버지에게 정을 붙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섀럿은 귀족이지만, 누구의 돌봄도 없이 내팽개쳐져야 했다. 그나마 식사는 꼬박꼬박 나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생의 인격이 되살아나지 않았다면, 섬세한 성격의 어린아이가 버틸 수 없는 방임이었다. 지금의 섀럿도 뭐 해야 할지 무료해서 좀이 쑤실 정도였으니까.


책을 읽으려고 해도 이 세상에 인쇄술이 발명되질 않아서 책 자체가 귀중품이었다. 남작가의 성에도 몇 권 없었고, 그나마도 아이가 마음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나가서 마을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남작이라면 무척 두려워하니 그 자식인 섀럿과도 엮이려 하지 얺았다. 더욱이 비슷한 또래 애들이면 정신연령이 안 맞을 게 했으니 말이다.


이런 무료함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환생자는 전념할 것이 필요했다.


장례식 후 일주일이 지나고, 섀럿은 간신히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아버지의 곁에서 술을 따르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 잡아왔다는 화전민일 터인데, 듣고 상상했던 것만큼 여자의 표정이 어둡진 않았다. 죽을 치욕을 당했다는 게 아니라 재수없어서 개에게 물렸네. 그 정도의 표정.


그 무덤덤한 표정을 보며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섀럿은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아버······.”


“섀럿, 내가 좋은 혼처를 마련했다.”


그 순간, 술을 들이킨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예? 전 10세밖에 안 되었는데요?”


이 세상에서 보통 남자는 결혼을 20세 넘어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괜찮아. 원래 남자는 15세만 되면 사내구실을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그때가 치마 아래 뭐가 있는지 가장 궁금할 때지. 일찍 결혼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남작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씩 웃었다.


“물론 네 아내가 그런 네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지는 모르겠지만. 뭐, 너보다 다섯 살 위인데 키가 너만하더구나. 더 클 것 같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으니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에머란드 백작가의 글로리아 공녀.


그녀는 난쟁이에 언청이, 정신지체까지 온갖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백작이 거액의 지참금을 내걸고 남편감을 찾고 있지만 누구도 응하지 않고 있는 여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여자와 결혼이 약속된 거다.


“돈을 받으신 겁니까?”


아무리 성인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건 아찔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미인의 마음을 얻길 바라는 것이 본능이었으니까. 아니, 외모가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 의사소통이라도 제대로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섀럿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아버지를 만나려 했는지도 잊고 다급히 물었다.


“어허, 다 좋은 데 쓰려고 그러는 거다. 조만간 레지날드 공작 각하께서 지금 황제를 폐하고 적법한 분을 황제 폐하로 세우실 거다. 그분께서 대업을 이루려면 돈이 필요한데, 우리가 크게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벌써 모든 게 성공한 양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화전민 처녀를 끌어안고 옷섶에 손을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는 아들 앞에서 저래도 되는 건가, 섀럿은 고민했지만 그걸 내색하진 않았다. 아버지의 난봉질보다는 자신의 미래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소년은 자연스레 아버지의 결정에 깐깐해졌다.


“정확히 돈을 원한 겁니까? 물자나 무기, 다른 주변 영주를 끌어들이란 요구가 있진 않은 겁니까?”


그 말을 들은 남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섀럿은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아버지랑 말을 섞지 않으려고 했다.


더욱이 계집애처럼 어머니의 말동무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 그 나이 애들이 할 법한 전쟁놀이나 장난감 무기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 아들이 지금은 정연한 말투로 자신에게 뜻을 밝히고 있었다.


그가 평소 원하던 아들의 모습이건만, 지금은 그 모습이 거슬리기만 했다. 아들의 질문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아버지, 이 시골까지 황위 교체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이미 다른 사람들도 다들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거기다가 다른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만 봐도 공작이 아버지를 어찌 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도는데 현 황제가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다. 그것만 봐도 레지오넬 공작이 킹메이커가 될 확률은 높았다.


문제라면 그 공작이 글렌티스 남작가를 발가락의 때보다도 하찮게 여기는 게 확실한 것이었다.


“닥치지 못해!”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손을 들어올렸다. 섀럿은 그걸 보고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퍽!


솥뚜껑같은 손바닥이 어린 섀럿의 볼을 휘갈기고, 입술이 터진다. 그럼에도 섀럿은 울지도 않고, 고개를 떨구지도 않았다.


저 폭력적인 아버지가 자신의 쓴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건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사람 구실 못 하는, 거기다가 외가는 지나치게 빵빵해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상대와의 약혼을 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설득해야만 했기에 각오했다.


그리고 맞았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당당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좆만한 게······.”


남작은 피식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닮았다. 그리고 의연한 모습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난폭한 것과 의지가 강한 것은 차이가 있지만, 남작이 볼 땐 같아 보였다. 원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법이니까 남작이 자신의 난폭함을 강인함이라 미화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변하긴 했구나. 질질 짜지 않고, 그 모습은 내 아들답다.”


“······.”


“하지만 아비에게 도전하는 건 봐주지 않는다. 약혼은 무를 수 없다. 안된다고 포기하면 우리가 중앙에 진출할 기회는 없을 거다. 지금 같은 난세가 아니면 어떻게 우리같은 변방 남작가가 수도의 공작과 연줄을 만들 수 있겠냐?”


그러면서 남작은 이건 시작일 뿐이고 이렇게 조금씩 인연을 만들어 가면 이 가문이 공작가는 못 되어도 후작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섀럿은 그것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면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들을 기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거지상 짓지 마라. 여자가 아내만 있냐? 정 걱정되면 어떻게 상황 봐서 없애고 재혼해라. 멍청하니 그냥 테라스에서 밀어버리고 실수로 떨어졌다고 해도 의심할 사람 없을 거다.”


남작은 친절하게도 성탑에 하나 있는 테라스를 손가락으로 까닥거리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줬다.


‘역시 형과 아버지를 암살하고 작위를 승계하는 것은 어렵겠다.’


그 방면에서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경험 있는 프로인 것이 분명해졌다.


섀럿이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를 죽여본 적은 없고 아무런 무력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전사로서 체력과 경험이 절정일 30대의 나이이고, 지금 언행만 봐도 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 최적화된 악당이었다.


“새겨듣겠습니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앞에서 작아질 뿐이다.


이 생의 아버지가 두려울지언정, 존경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압하고 빼앗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생각이 짧고 주먹이 먼저 나간다. 시골 구석탱이에서나 행세할 소악당일 뿐이니.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삽질을 해도 자신이 자립할 때까지는 망하지 않겠지 싶었다.


‘빚이나 악연은 형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고.’


어쨌든 난데없이 생긴 약혼녀 때문에 섀럿은 식사가 끝날 때 즈음에나 간신히 꺼낼 수 있었다.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네, 아버지를 귀찮게 하진 않겠습니다. 겔리엇 경에게 기초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안 돼.”


“아버지.”


“생각해 봐라. 검술은 관절과 근육을 혹사시키는 일이다. 그걸 어릴 때 하면 오히려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체구가 왜소하면 어지간해서는 불리하다. 팔다리도 더 짧으니 그만큼 공격할 수 있는 간격도 좁아지고, 힘을 키우기도 불리하다.”


또 심술부리나 했는데, 뜻밖에도 합리적인 이유였다.


생각해보니, 오로지 무력만으로 영지를 지배하는 것이 이 세상의 귀족들이었다. 대를 이어, 밤낮으로 사람 죽이는 기술만 익힌 사람들이 인체에 대한 지식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고 그 나이 대에 익혀야 할 것을 익히거라. 가주와 주군에 대한 복종과 예절이 그것이지. 지금처럼 아버지의 결정에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것 말고 말이다.”


그래도 남작은 더 이상 손찌검하지 않았다. 힘과 권력에 대한 갈망, 용기야말로 그가 아들에게 가장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섀럿은 오늘 그걸 보여 주었다.


“아, 한 달 뒤, 약혼식을 위해 에머란드 백작가에 방문할 거다. 알고 있어라.”


“네.”


한편으로는 약혼녀에 대해서 일말의 기대를 하긴 했다.


이 세상은 마법과 기적이 실존하는 세상, 약혼녀의 장애가 뭔가 저주인 것이고 본래는 현명한 미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동화 속 미녀들이 그러는 것처럼 추한 모습도 받아들여주는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X발.”


에머란드 백작가에 와서 약혼녀를 만난 그날, 약혼녀의 방에서 나온 섀럿은 다른 사람이 보던 말던 욕설을 했다.


어디나 동화는 동화고, 이곳은 이세계일지언정 현실이란 것을 절절히 느꼈다. 에머란드 백작영애, 글로리아는 알려진 그대로 난쟁이에 입술은 찢어져 있었고, 결정적으로 정신지체 때문에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약혼자가 뭔지 모르고, 간신히 이해한 것이 유모 죽으면 자신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 정도였던 모양이다. 만나자마자 하인처럼 하대했고, 섀럿이 이에 응하지 않자 들고 있던 장난감을 집어던졌다.


이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던진 장난감은 가벼운 플라스틱이 아니라 묵직한 도자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 걸 정통으로 맞았으니 이마가 깨졌다.


“섀럿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백작가 사람들은 대놓고 분노를 감추지 않는 섀럿을 걱정하면서도 약혼을 파하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거액을 쓰고 어렵게 잡은 사위였으니까.


작가의말

다음 챕터, 마법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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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24.06.29 15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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