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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녀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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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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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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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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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DUMMY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제국 동쪽 변방의 시골 영주, 글렌티스 남작가의 차남인 섀럿 글렌티스, 그게 나다. 지구란 곳에 살았던 전생을 어렴풋이 기억한단 점 정도가 특이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전형적인 귀족가 차남이다.


영지는 장남인 형이 물려받을 테니, 먹고 살 재주를 익히기 위해 발버둥치고,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이 세상을 떠도는 날을 꿈꾸는, 그런 평범한 귀족가 차남.


어쨌든 그 말단 귀족가에서도 별볼일없는 존재가 황제와 같은 마차를 타고 여행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심지어 보는 눈 없이 단둘이 타고 있다면 더더욱 있을 가능성이 없는 일이겠지.


······그 없어야 하는 일이 내게 일어나서 문제다. 이 세상 희귀한 일은 내게 흥분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내 맞은편에는 18세의 황제 폐하가 앉아 계신다.


비단 드레스로 몸을 휘감고, 비단 쿠션에 편히 몸을 기대고 있다. 내가 태어난 글렌티스 남작가에서도, 이 주변 영주의 성에서도 보지 못한 화사한 드레스와 신발, 장신구였다.


하지만 그 화려한 차림새도 그것이 감싼 알맹이와 비교하면 빛이 바란다.


박명(薄明)을 한 움큼 잘라다 짠 것 같은 검푸른 머리카락, 그 아래 자리잡은 얼굴은 설원처럼 하얗고, 그 반듯한 얼굴에 떠오른 새파란 눈동자는 구름 한 점 없는 겨울하늘 같다. 비단으로 가려져 있지만 허리나 팔이 그리는 선도 시원시원하게 잘 빠져 있었다.


한마디로 절세미녀, 이 분이 어제 이 아슬란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신 루시아 3세 폐하이시다.


말단 귀족 가문의 차남과 단둘이 마차에 타고 있을 이유가 없는 지고의 신분,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할 만큼 내게 지고한 관심을 보이시는 분.


난 그 관심이 전혀 달갑지 않다는 게 문제다.


황제에 미인, 헤벌레 할 조건 아니냐고? 물론 겉보기만 보면 그렇지.


‘마차 좋다.’


난 현실도피를 했다. 여제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마차의 호사스러움과 안락함에 집중했다.


지금 지나는 길은 제국 서방 변경의 글렌티스 남작 영지에서 수도인 아슬라가트로 향하는 길이다. 글렌티스 남작가가 워낙 낙후된 변경이다 보니 다른 영지로 향하는 길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흔들림이 심하지 않았다. 보통 수레를 타면 멀미가 심하니 말을 타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정도면 편히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제께서는 그런 나의 현실도피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도련님.”


“이제 하대하시죠, 폐하.”


“입에 익어서요. 제가 도련님의 하녀로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그동안 익힌 습관이 다 가시겠어요.”


여제는 입을 가렸다. 그 모습이 아주 우아하다.


“송구할 뿐입니다.”


그랬다. 난 여제가 등극하기 전 황제를 하녀로 부렸었다.


반역자의 딸로 낙인찍히고 변방으로 유배된 그녀를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었기에 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주제도 모르는 짓을 했다고밖에 안 보였다.


어렸을 때 배운 예법을 잊지도 않고 쓰는 걸 보면, 하녀때 습관이 안 떨어져서 그렇게 부른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딱히 괴로웠던 기억도 아니고요. 도련님의 시중을 드는 동안 꽤 행복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다행이군요.”


난 이렇게 운을 뗐다.


지금처럼 루시아가 복권되서 본래의 신분을 찾을 거라 미래를 내다봤기에, 내 안위를 위해 살린 것이긴 했다.


다만 이렇게 황제로 추대되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난 하녀 생활이 행복했다는 그녀의 발언에 살짝 짜증이 났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하녀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면 왜 황제의 자리를 받아들인 겁니까? 말이 황제지, 허수아비고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자리란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다면 왜 저를 데리고 가는 겁니까? 아슬라가트 사람들이 절 볼 때마다 폐하께서 시골의 하녀로 살았단 것을 상기할 텐데, 폐하의 위신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난 마음 속에 쌓였던 말들을 다다다 쏟아냈다.


명목상 이 대륙 전체를 지배하며 이제 루시아가 다스리게 될 나라, 아슬란 제국은 충실히 멸망을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30년 동안 황제만 10명이 넘게 바뀌었고, 11년 전에는 한 해에 세 명의 황제가 거쳐 간 적도 있었다. 그간 제 명에 죽은 황제가 없다.


이 혼란의 와중에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대귀족들이 입맛대로 갈아치우는 존재가 되었다.


혼란한 와중에 제후들은 자신들끼리 다툼에 정신 팔렸고, 내부에는 사교도들이 준동하고 야만족과 몬스터들이 제국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변방에서 하녀 일을 하며 먹고 살았던 루시아에게까지 제위가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가 작용했을 터였다. 한창 배워야 할 때 변방에 유배되서 자란 루시아라면 무식해서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거다, 그런 계산이겠지.


그녀는 실크 장갑으로 덮인 손으로 턱을 괴며 비스듬히 누웠다. 장갑을 낀 것도 손이 거칠어져서 그걸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부터. 그래야 내가 도련님의 약혼을 깰 수 있으니까. 두 번째 질문의 답은, 도련님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약혼을 깰 의미가 없으니까.”


“그 말씀은······, 제게 청혼하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정확히 들었어요. 3년 전에 말씀하셨죠? 저를 아끼기 때문에, 정식으로 맺어질 수 없으니 제 애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그럼 제가 고귀한 신분이면, 당신의 단 하나뿐인 반려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의 옆에 설 수 있잖아요.”


이제야 도련님의 오래된 고백에 답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덧붙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건······.”


겨우 나랑 결혼하고 싶어서 이 위험한 제위를 받아들였다고?


그 전에 내가 루시아에게 그런 말을 했던가?


난 기억도 안 나는 일을 거론하는 루시아의 말에 어물거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기억 안 난다고 말하기엔 여제의 권력이 무서웠다. 허수아비 여제의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남작가 차남을 교수대로 보내기엔 넘친다.


“에머란드 백작가에서, 글로리아 백작공녀를 만난 뒤 했었어요.”


글로리아 공녀는 내 약혼녀의 이름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루시아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앞으로 기울여 나에게 그 아름다운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련님이 저를 소중히 여기신다면,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당신의 곁에서는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가 될 기회를 주세요.”


물론 루시아 개인만 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절세미녀가 나 좋다고 하는데 싫을 이유가. 성격이 나쁜가? 몇 년간 돈 한 푼 못 받고 부려먹혔는데도 웃고 넘어가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성격도 좋다.


하지만 저걸 받아들이면 제 명에 못 사는 게 문제였다.


“폐하, 수도의 대귀족들이 제가 폐하와 맺어지는 것을 두고 보겠습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황제는 허수아비다.


생존자 중 루시아의 서열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녀는 죄인의 딸로 계승권을 박탈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녀를 복권시켜 황제로 추대한 건, 아무리 봐도 루시아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대귀족들은 아슬란 가문의 대륙 지배를 끝내기로 합의한 모양이었다. 그녀와 결혼해서, 황위를 자신의 가문으로 가져올 생각이겠지.


다들 그녀가 가진 혈통과 젊음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남작가 차남 나부랭이가 여제를 꿰찬다? 그럼 암살자가 찾아올 가능성이 100%다.


그리고 나와의 결혼을 강행하면 그녀에게도 손해다.


지금까지 10명이 넘는 황제가 칼을 맞았는데, 거기 한 명 더 추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반면 얌전히 대귀족과 결혼한다면, 남편의 나이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을지언정 풍요와 평화를 누릴 가능성이 커진다. 아, 물론 그 귀족가문이 깨져나가면 남편, 자식과 같이 죽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말했잖아요. 제가 황제가 된 가장 큰 이유가 도련님의 약혼을 깨고 당신의 아내로 죽기 위해서라고. 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어요.”


섀럿은 왜 그녀가 자신에게 이렇게 목을 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루시아에게 딱히 잘 해주지도 않았을뿐더러, 배경도 별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도 힘낼테니 도련님도 제 손을 잡아 주세요. 여제를, 그리고 제국을 욕심내 줘요. 궁벽한 시골 영지는 도련님이 뜻을 펼치기에는 너무 작잖아요?”


난 공단(貢緞, 광택이 있는 비단의 한 종류) 장갑으로 감싸인 길다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이걸 잡느냐, 안 잡느냐에 따라서 길이 갈릴 것이다.



고생은 죽어라 하고, 비참한 죽음으로 끝날 확률이 높지만, 잘만 되면 세상의 모든 영광과 절세미녀 아내를 얻을 수 있는 모험을 택할 것인가.


지금까지 생각했듯, 약혼녀에게서 도망쳐서 홀로 세상을 떠돌고, 나이를 먹으면 어딘가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땅에 정착해서 조용히 죽어갈 것인가.




그걸 결정하기 전에 과거에 루시아와의 인연을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다사다난한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고귀한 황족이 왜 하녀 생활을 하게 되었고, 둘이 어떻게 살았는지 짚어본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말

프롤로그만 1인칭이고 다음부터는 3인칭입니다. 그리고 20화 정도는 프롤로그보다 과거의 이야기가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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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공녀를 하녀로 들이다(2) NEW +1 3시간 전 22 1 13쪽
5 대공녀를 하녀로 들이다(1) 24.07.03 48 0 12쪽
4 마법 입문 24.07.02 52 0 14쪽
3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2) 24.07.01 76 1 13쪽
2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1) 24.06.30 102 0 12쪽
»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24.06.29 15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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