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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녀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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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oc
작품등록일 :
2024.06.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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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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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공녀를 하녀로 들이다(1)

DUMMY

실험도구 설거지를 끝내고 올레그의 공방으로 돌아왔을 때,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외출한 모양이네.”


흔한 일이었기에, 섀럿은 놀라지도 않았다. 이렇게 말도 없이 휙 떠나 버리는 일이 태반이었다. 이웃 영지의 일을 받아서 갔을 때는 며칠씩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말없이 나가 버리다니, 오늘도 일만 하고 수업은 없는 건가.”


섀럿은 억울함을 삭이며, 집에 돌아가기 위해 태블릿(휴대용 칠판)을 챙겨들었다.


이런 억울함이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무서웠다. 아버지의 손찌검도, 영지민들이 겪는 빈곤함도, 모두 이젠 새삼스럽지 않다. 이 중세스러운 세상에서는 그게 일상이었다.



@



올레그의 공방 겸 자택은 마을 남쪽 끝자락에 있었다. 그리고 글렌티스 남작의 성은 그 반대쪽 강가의 하중도에 있었다. 섬이라고 해도 둘레가 100미터도 안 되는, 섬이라기보다 바위에 가까운 땅 위에 성벽을 둘러 놓고 탑을 세워 놓았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지금은 섀럿이 마을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는 사실 중요했다.


글렌티스 영지의 인구는 이천 명이 안 된다. 그중 성 아래 마을에는 그 중 칠백 명 가량이 모여 살고 있었다.


이런 작은 마을이니 섀럿의 눈길을 끌만한 것도 없었다. 그나마 마을에 있는 볼거리라고는 담벼락에 누군가 그려 놓은 남자의 거시기 정도?


섀럿은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차원을 넘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감탄했다. 벽이 있어야만 고추를 그릴 수 있으니, 어디에나 벽을 세울 수 있게 건축이란 기술을 발명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평소라면 그 낙서만 흘끗 보고 지나갔겠지만 이 날은 달랐다. 평소 조용했던 거리가 오늘따라 시끌시끌했다.


“꺼져! 반역자의 딸!”


“뒈져! 너에게 줄 빵은 없어!”


넝마를 뒤집어쓴 소녀에게 아이들이 돌과 오물을 던지고 있었다. 주변 가게 주인들도 그걸 보고만 있지 조금도 도와줄 생각이 없이 낄낄거린다.


섀럿은 그게 누군지 알아 봤다.


“루시아 가델 아슬란······.”


현 황제 루드비히 6세의 동생, 노덴펠트 대공의 외동딸.


혈통만 따지면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고귀한 혈통이었고, 이 시골 영지의 길바닥에서 저렇게 박대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제국은 오랫동안 혼란했고 황위 찬탈이 이어졌고, 그 상황은 대공녀라 불리던 소녀를 저런 비참한 꼴로 만들었다.



@



작년, 레지오넬 공작은 전 황제를 살해하고 현 황제, 루드비히 6세를 옥좌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4년 전 아버지가 섀럿을 판 돈을 갖다 바친 그 사람 맞다.


즉위 과정이 그렇다 보니, 현 황제는 정통성도, 실권도 없었다. 그러니 찬탈 이후에도 황위를 지키기 위해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문제 삼고 나설 수 있는 유력한 황족인 노덴펠트 대공의 일가를 쓸어버린 것도 옥좌를 지키기 위한 사전예방 조치 중 하나였다.


거기까지 만이라면 섀럿이 이 억울한 대공과 그 따님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터였다.


그가 가해자도 아니니, 도의적인 짧은 애도 한 번 정도로 할 것은 다 한 것이 되리라.


이것도 전생에 비하면 많이 유해진 태도였다.


전생의 그였다면 혈통 덕분에 이유 없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혈통 때문에 이유 없이 죽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냉소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글렌티스 남작가 또한 빈말로도 영지를 잘 다스린다고 할 수 없고, 섀럿은 그 아버지 덕분에 굶지는 않는 처지였다. 노덴펠트 대공녀의 처지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문제는 그 레지오넬 공작이 우리 집안에 떠넘겼단 건데.’


공작이 무서워서 말하진 못하지만, 다들 누명이란 걸 안다. 거기다 현 황제는 인망도 없다. 섭정공은 이런 현실에 대공의 외동딸까지 죽이는 것은 켕겼는지, 자비를 보인다는 명목으로 살려줬다. 일단은 말이다.


그리고 남의 손을 빌려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때마침 도착한 글렌티스 남작의 편지였다.



글렌티스 남작은 영지를 쥐어짜서 거액의 돈을 바치고도 뭐 하나 얻은 게 없었다.


하다못해 보안을 이유로 보낸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도 없을 정도였다.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레지오넬 공작이 모반을 일으킬 거란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이 다 아는 상황에서 말이다.


남작 빼고 모두가 이게 먹튀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두려워서 말을 못할 뿐.


그런데도 남작은 중앙에 진출한단 단꿈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언제 수도로 불러줄 거냐고 묻는 편지를 보냈다.



이젠 제국 섭정이 되신 레지오넬 공작과 그 측근들의 눈에 띈 편지가 바로 이 편지였다.


이걸 본 높으신 분들은 글렌티스 남작이 지금 자신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줄 호구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용당했는지도 눈치 못 채는 좁은 시야.


편지에 문장 하나하나 그득그득 담겨 있는 탐욕.


욕심을 위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폭력성.


나중에 문제되었을 때 책임을 전부 떠넘기고 죽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만한 한미한 가문의 힘.


모든 면에서 대공녀를 처리하라고 하늘이 내려준 인재(?)였다.


고귀한 공작께서는 세상에 무엇 하나 쓸모없는 사람을 낳지 않은 신을 찬양했고, 덤으로 그 쓸모를 발견한 스스로의 혜안도 칭송했다.


공작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요약하면 자신은 글렌티스 남작의 충심을 잊은 적 없으며, 그런 충신인 남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반역자의 딸 루시아를 처리하는 거다······.


남작은 공작이 자신을 신임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이 이득도 없이 위험한 일을 덥석 받아들였다.



@



루시아가 도착하자, 남작은 소녀를 초겨울 날씨에 옷도,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내쫓아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 보이는 비참한 광경이었다.


남작 아래서 숨도 못 쉬고 살던 추레한 사람들은 소녀에게 마음껏 악의를 드러냈다.


그들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정도로 고귀했었고, 지금은 그들이 그 어떤 일을 해도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몰락한 소녀는 지금껏 남작 때문에 쌓인 울분을 풀기에 적당한 상대였다.


‘아버지가 대공녀를 덥석 받아들인 건 바보짓이란 말이지.’


섀럿은 이 일을 루시아를 만난 뒤에나 알게 되었다.


섀럿은 루시아를 봤을 때 뒷골이 땡기는 것을 느꼈다. 나이가 어리고 건강하기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나이가 들었으면 정말로 뇌출혈이 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현 황제가 명분이 취약하고 실권도 없다는 건 이 변방에 사는 섀럿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너지는 제국에는 그걸 문제 삼고 찬탈을 노릴 귀족이 한 트럭이었다.


그러니 만약 루드비히 6세가 폐위되면, 다음 황제는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노덴펠트 대공가를 복권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전임 황제의 패악에 동참한 자들을 징벌해야 하고, 첫 번째 표적이 글렌티스 남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잘 대해 주면, 이번에는 현 황제와 섭정에게 찍힌다. 그럼 더 빠른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


진퇴양난, 거기다가 황족을 해친 건 반역으로 간주되기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연좌제가 걸린다.


저 애꿎은 대공녀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처럼 말이다. 커서 가문을 버린다고 해도 현상금이 버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섀럿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멈춰!”


“누구야, ㅆ······, 어? 쟁기 도련님 아니십니까.”


자신들을 제지한 자가 섀럿이란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고분고분해졌다.


영지에서 섀럿의 평판은 나쁘지 않다.


섀럿은 천성이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 마을을 가로지르다 보면 남작의 착취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그 참상을 보다 못해 한 가지 방안을 꺼내들었다.


그건 강철 쟁기를 보급하는 것이었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쟁기를 써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나무 쟁기는 땅을 깊게 갈지도 못했고, 억센 잡초도 제대로 갈아엎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섀럿은 강철 쟁기를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5년간 세금과 소작료, 쟁기 값을 더해 기존처럼 소출의 70%를 받는 게 아니라, 기존 소출의 90%에 해당하는 액수로 고정해서 매년 받기로 했다.


당연히 첫 해에는 다들 섀럿을 욕했다. 흉년이라도 들면 세금 낸 뒤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강철 쟁기를 산 사람들이 50% 가까이 수확이 늘어나는 것을 보자 다음해에는 너도나도 쟁기를 샀다.


풍작에 눈이 돌아간 남작이 약속을 깨고 세금을 기존 방식으로 되돌리려 하자, 그걸 필사적으로 말렸다.


분노한 아버지에게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지만, 결국 섀럿의 뜻대로 당분간 세금을 줄일 수 있었다.


매일 마법을 배우러 가며 마을을 오가니, 마을 사람들도 섀럿이 멍투성이가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희생을 하고도 그걸 내세우며 자랑하지도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영지민들은 남작은 증오해도 그 아들인 섀럿은 쟁기 도련님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그래서 지금도 섀럿의 한 마디에 사람들의 돌팔매질이 멈췄다.


섀럿의 목소리를 들은 소녀도 고개를 들었다.


흑요석 같은 블루블랙 머리칼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드러난다. 객관적으로 예쁘장한 외모지만, 지저분한 머리칼 아래로 희망을 잃은 눈빛, 그리고 상처와 멍이 그 미모를 가린다.


돌을 맞은 것 치고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멀쩡해 보인다. 섀럿은 지금 그걸 내색하지 않았지만 신기하다 생각했다.


황가가 대단한 무가 혈통이라 가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몸을 가진 황족이 태어난단 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인데 저들이 너에게 돌과 쓰레기를 던지는 거야?”


“먹을 것을 구걸했어요.”


귀하게 살던 소녀가 구걸이라니, 정말 밑바닥으로 떨어졌네. 섀럿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혀를 찼다.


“그런데 그걸로 돌을 던졌다고?”


“입을 맞추게 해 주면 돈을 준다고 해서 거절했더니······, 제가 남자를 유혹했다고 누명을 씌웠어요.”


‘아, 예쁘장하니까 어떻게 해보려고 했네.’


그런데 루시아 대공녀는 섀럿보다 한 살 적다. 즉, 13세밖에 안 되었다.


“누구냐? 13세 아이가 유혹한다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주장한 인간이?”


섀럿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웃고 있긴 한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관습법에 따르면, 혼인할 나이가 안 된 소녀를 추행하다 고발당하고 그게 인정되면 거세였지? 누구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사라진다. 섀럿은 그 모습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소년에겐 마음 편한 고향 마을이지만, 이들은 다 아는 사이고 한다리 건너면 친척이라 무슨 범죄가 있어도 쉬쉬한다. 지금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말하기보단 입 다물고 도망가는 길을 택했다.


작은 사회의 폐해였다.


“물론 부모가 고발할 때의 이야기지만.”


섀럿의 중얼거림은 텅 빈 길거리에서 소녀만 들을 수 있었다.


이 제국의 관습법상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 취급이라 저렇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주인 없는 물건 취급이라, 루시아는 조금 전 같은 상황에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저들이 무지한 평민이라 겁먹고 도망간 거지, 법에 능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큰소리를 쳤을 터였다.


섀럿의 중얼거림을 들은 루시아가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다시금 실감한 모양이다.


“루시아라고 부르면 되지?”


“네.”


작위와 성씨도 박탈당했으니, 성씨가 없다. 황족도 아니고 그냥 평민이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평생 올 일이 없을 이 변방까지 오며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루시아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붉은 빛이 도는 금발과 녹색 눈을 가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이렇게 길거리에 내던진 남작의 아들이란 것을 알 수 있는 닮은 외모, 그럼에도 나이에 맞지 않는 침착한 눈빛과 신중한 언행 때문에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리고 소녀를 구해 주었다. 고마움보단 왜일까 싶었다. 소녀는 자신의 편은 그 누구도 없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너, 내 시중들래? 굶는 일 없게 해 주고, 앞으로 이런 일 없게 막아 줄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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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법 입문 24.07.02 88 1 14쪽
3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2) 24.07.01 112 2 13쪽
2 환생자와 최악의 약혼녀(1) 24.06.30 145 2 12쪽
1 여제에게 존대받는 남작가 차남 24.06.29 22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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