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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4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유신언
작품등록일 :
2021.05.22 17:51
최근연재일 :
2021.06.28 07:15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70,534
추천수 :
1,569
글자수 :
240,661

작성
21.06.16 07:15
조회
1,139
추천
27
글자
13쪽

7. 세계를 지키는 기둥 (5)

DUMMY

“그래, 나다. 네 아비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 지대호는 아들 지유천에게 냉랭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해후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어, 아버지가 왜에? 에에? 에에에에? 설마! 내가 온 걸 알고 쫓아온-”

“또 지랄하는구나. 먼저 보자고 한 게, 네 녀석이지 않냐.”

“에에에에? 제가요!?”


당황한 지유천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육전을 손으로 그대로 든 채.


당사자 간 황당할 테니, 여기선 이 사건의 주모자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나서기로 했다.


“미안 지유천. 내가 네 이름 좀 썼어. 내 이름을 쓸 순 없었거든.”

“에에에에! 왕자님?! 아무 말씀도 없이 이러시기에요오! 그리고 왜! 구 산원이랑 인자성 이름도 있는데에!!”


그거야 네 이름을 말해야 지담의 상단주, 지대호가 만나줄 테니까.


구호영이나 인자성이 대뜸 만나자고 하면, 상단주라는 자가 그렇구나! 하고 만나 줄 리가 없잖아.


“무슨 문제 있어?”


난 속내는 놔둔 채, 당당한 얼굴로 지유천에게 물었다.


사실, 척 봐도 문제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니까.


“너? 방금 왕자님이라고 한 거냐?”

“앗, 아아······”


나와 지유천의 대화를 듣던 지대호가 내 신분을 파악했다.


지유천이 자신의 실언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난 나무라지 않았다.


어차피 왕자로서 지대호와 대화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거니까.


“일단 문 닫고 들어와. 상단주.”


내 명령을 들은 지대호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별실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난 그제야 머리를 가리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내 신분을 밝히는 데에는 왕족의 연보라색 머리칼이 가장 빠르고 정확했으니까.


“······!”

“내가 연 왕국 제4 왕자 연세희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대호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난 다시 두건을 쓰며, 그에게 편히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지대호는 그 자세 그대로 내게 물었다.


“그럼 수레 문제로 저를 보고 싶다고 한 게, 저 멍청한 녀석이 아니고 왕자님이십니까?”

“멍청하다닛······”

“응. 내가 불렀어. 신분을 노출할 수 없으니 부하의 이름을 빌려서.”

“부하······ 제 아들 지유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정확히는 내가 저 녀석이 소속된 표국을 고용한 거지만.”

“······그러셨군요.”


지대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유천에게 향했다.


아들의 얼굴을 담은 그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치는 게 보였다.


난 웬일로 주눅 들어 있는 지유천을 불렀다.


“지유천. 왜 가만히 있어. 평소처럼 네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엣? 아니 그게, 저······”


내 부름에 당황한 지유천이 더듬는 사이. 지대호가 먼저 아들에게 말을 꺼냈다.


“오래전에 얘기는 들었다. 보표가 됐다고.”

“에······ 네. 알고 계셨어요?”

“내가 유성쯤 되는 표국을 모를 리가 없지 않냐.”

“에, 그런 것 치곤 6년간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으셔서······”

“네 녀석도 집 문을 박차고 나가서 6년 동안 서신 한 장 부친 적 없었지.”

“······”

“······”


침묵 속에 둘 사이의 기싸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부자의 모습이 퍽 닮아 보였다.


“참, 월평 고개 산적 무리 하나를 소탕했다면서?”

“에? 아! 맞아요. 헤헤. 들으셨군요!”

“흥, 그건 잘했다. 왕자님께 고용도 되고 생각보다 성공했구나.”

“와핫하! 이제야 제 천재적 판단을 인정하시겠나요! 제가 그랬죠! 보표로 성공할 거라구우!”

“네가 보표를 하겠다며 나가지 않고 내 밑에서 상단 운영을 배웠다면, 6년이 가기도 전에 더 크게 성공했겠지. 이 식당도 네 것이었을 테고 말이다.”


지대호와 지유천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지유천이 본인에 대한 평판을 크게 신경 쓴 건, 금의환향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였겠지.


비록 지금 그 인정을 전혀 못 받고 있지만. 그건 지대호가 바랐던 게 아들의 성공이 아니라, 잘못했다며 숙이고 돌아오는 거였기 때문이다.


“에후우 또 시작이네! 애초에 보표의 도움 없인 산적들한테 아무것도-!”


제대로 부자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전. 내가 끼어들기로 했다.


“저기, 부자 상봉이 감격스러운 건 알겠지만 회포는 좀 있다가 풀까? 음식 차려놓고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거든.”

“으읏······ 네 왕자님.”

“상단주도 같이 식사하자고. 부른 이유는 먹고 나서 말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지대호가 감정을 절제하며 대답했다.


이후, 우린 아주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시끄러웠던 지유천이 아버지 지대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드디어 지대호에게 용건을 말하기로 했다.


“상단주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수레는 구실이었어. 따로 하고픈 말이 있어서 보자고 한 거야.”

“말씀하십시오.”

“최근 아바마마 명으로 내가 강진 군을 다스리고 있어.”

“전해 들었습니다. 군남 진도종이 대역죄를 짓고 염전 노역 형에 처해 졌다는 것도.”

“맞아. 그리고 난 강진 군수로서 꽤 노력 중이야. 둘째 형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왕자님께선 저의 도움이 필요하신 거로군요.”


자연스럽게 내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부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지대호는 내 의중을 쉽게 파악했다.


이렇게 대화가 빠르게 통한다면, 굳이 장황하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맞아. 강진 군은 땅덩어리에 비해 군민도 적고 큰 특색도 없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지. 가끔 진주가 나오는 것 말고는 말이야.”

“최근에 군청을 지으시면서 돈을 많이 쓰셨더군요. 인력들이 많이 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단기 부양이 아닌, 장기적 성장을 원해. 군의 자산을 쓰는 것도 한계는 있으니까.”


진도종이 남겨둔 재물의 규모는 솔직히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 진씨 가문이 오랜 세월 부정한 행위로 축적해온 양이겠지.


그래도 무한한 건 아니다. 내가 지금 소모 중인 금액대를 유지한다면, 1년도 가지 않아 자금이 바닥날 거다.


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지담 상단의 주인으로서 지혜를 빌려줘. 강진을 발전시킬 방법에 대해.”

“강진은 해산물이 많이 잡히는 지역이지만, 교통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비싼 소금을 잔뜩 써 절이지 않는 한, 다른 지역으로 생선을 운송하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상인이 그곳에 많이 다니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래. 소금은 모두 왕성에 관리하게 돼 있으니, 우리가 건들 순 없고. 그렇다고 역시 귀한 얼음을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말이야.”


연 왕국에선 얼음이 귀했다. 쉽게 만들 수도, 보기도 힘든 재료였다.


그렇기에, 높은 온도에 쉽게 상하는 고기나 생선을 멀리 배송한다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방도가 있습니다.”

“뭐지? 만약 주술을 쓰는 거라면, 사양할게.”


지혜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보통 왕실에선 수십의 주술사를 이용해 얼음을 만드는데. 비가 내릴 것 같이 먹구름이 낀 날. 여러 주술사가 주술을 부리면, 비가 아니라 우박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걸 관리들이 받아서 석조로 만든 냉동 보관 창고, 석빙고에 넣어 오래 보관하는 식이다.


‘그 정도로 많은 주술사를 고용할 수도 없거니와, 큰 우박이 떨어지면 어선이 바다에 나가기 힘들어진다.’


즉, 주객전도란 얘기다.


하지만 다행히, 지대호의 해결책은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주술로 얼음을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또 단순히 얼음을 쓰는 거라면, 생물이 얼어 품질이 떨어지는 겨울엔 무용지물입니다.”

“그럼, 상단주의 지혜 기대해도 될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지대호가 내 눈치를 보더니, 뭔가 사족을 달려 했다.


순간 난, 그가 무슨 말을 덧붙이려는 건지 직감했다.


“제가 상인이라는 것을 잊으시진 않으셨습니까?”

“······역시 그렇네.”

“아앗, 아버지이! 왕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들다니이!”

“당연하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장사를 안 하면 그게 잘못이다. 왕자님도 이는 이해하실 터다.”


지유천이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경악해 소리쳤다. 왕자인 나하고도 거래를 하려는 게 황당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대호의 반응은 한결같았고. 나 역시 지대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이건 상단주 말이 맞는 거지. 보표가 돈 받고 호위를 하듯, 상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죄가 아니야.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우선, 강진에 지담 상단의 지부를 만들어주십시오.”

“군의 자금으로 만들어달란 거군. 좋아. 그다음은?”

“가능하다면, 강진과 담주 사이에 있는 월평 고개에 넓은 길을 내주십시오. 마차 여러 대가 안전히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대호가 거침없이 내게 요구사항을 말했다.


지담 같은 거대 상단의 지부를 만드는 건, 강진에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게다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반면, 우리가 직접 지나면서 봤던 월평 고갯길은 확장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담주와 강진의 교류를 활발하게 만들 수 있다면, 밑지는 작업은 아니겠지.’


난 지대호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좋아. 강진으로 돌아가면, 바로 준비하지. 그게 준비되면 내게 방법을 알려주는 건가?”

“강진지부가 만들어지면, 제가 직접 강진으로 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흠, 그래.”


속 시원하게 답을 알려주지 않아, 좀 불안하긴 했지만. 지부까지 만들어놓고 내 뒤통수를 칠 일은 없을 터.


마음 편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추가로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하나 더? 너무 욕심이 과하면 좋지 않다고?”


지대호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 난, 그에게 경고하듯 지적했다.


그러나 지대호는 내게 고갤 가로 저어 보였다. 내가 오해했다는 뜻이었다.


“아닙니다. 이건 다른 거래입니다.”

“다른 거래?”

“제겐 어업 외에도 강진의 상업과 공업을 같이 발달시킬 방도가 있습니다.”

“······뭐?”


두 눈에 힘이 들어갈 만큼 솔깃한 소리였다.


내가 가장 고민하던 게 바로, 강진은 어업 외엔 특별한 산업이 없다는 거였다.


그 고민을 타파해줄 묘안이 있다니. 난 바로 지대호를 재촉했다.


“뭐야, 뭔데 그게?”

“왕자님은 유리 공예를 아십니까?”

“유리 공예? 알지.”

“연에선 유리보단 자기瓷器가 더 많이 쓰이고 귀히 여겨집니다. 그래서 유리 공예는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타국에선 유리가 더 보편화된 상황입니다.”

“우리보고 유리를 만들라는 말인가?”

“청자나 백자를 만들 때 쓰이는 백토는 비쌉니다. 반면 유리는 해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래가 주원료입니다. 강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난 한 손으로 턱을 쓸었다.


분명 유리 공예가 지리적으로 강진에 적절한 산업인 건 맞다.


다만, 우리에겐 제일 중요한 요소가 없었다.


“아쉽지만, 강진엔 유리 공예를 할 줄 아는 자가 없어.”

“괜찮습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 유리 공예에 미친 자를.”

“······하하하!”


결국 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작해야 유리 운송이나 원료의 수급 등을 제안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런 점은 아들과 다르게, 정말 틈이 없는 남자였다. 지대호는 강진의 문제점을 콕 짚고 있었던 거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큰 상단의 주인에 걸맞은 자다.’


난 지대호에게 마음을 열고 물었다.


“상단주에겐 정말 못 당하겠네. 그래서 이번엔 뭘 해주면 되는데?”

“그자가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공방工房을 강진에 마련해주십시오.”

“뭐야, 그거면 돼?”


너무도 싱거운 부탁에 난 살짝 놀랐다.


중요한 인재의 소개인 만큼, 더 큰 뭔가를 원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한데, 지대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자를 구해주십시오.”

“뭐?”


예상치 못한 마지막 말을 듣고, 내 정신이 살짝 멍해졌다.


작가의말

구린 글 조차 써지지 않으니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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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6. 드디어 내게로 걸어왔다 (2) +2 21.06.10 1,534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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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4. 참는 자와 참지 못하는 자 (3) +1 21.06.03 1,763 3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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